전출처 : 플라시보 > 400일간의 여행으로 찾은 꿈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젊은예술가의 세계기행 2
박훈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언젠가 지인이 다른 책을 나에게 선물하면서 함께 준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터넷 서점의 실수로 (알라딘은 아님) 주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 책이 왔고, 어차피 나에게 선물을 하기 위한 주문이었던지라 그냥 나한테 준다고 했다. 다른건 몰라도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 만큼은 고집스럽게 내 취향대로 하는 인간인 나는 꽤 오랫동안 이 책을 책장에 그냥 묵혀두기만 했다. 그러다 오늘 문득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어치웠다.

이 책은 박훈규라는 디자이너의 여행기이다. 디자이너가 되기 전. 늦은 나이에 군대를 제대하고 때마침 터진 IMF때문에 고민하던 그는 무작정 시드니행 티켓을 끊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런던을 거쳐 40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부를 마치고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언뜻 이것만 읽으면 부모 잘 만난 팔짜좋은 디자이너의 여행기 쯤으로 들리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때 만화를 그리겠다고 가출을 했고, 신문팔이 부터 일용직 노동자까지 안해본것 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평화시장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한 경험도 있다. 시드니와 런던의 여행도 한국에서 누군가가 돈을 보내주어서 한 여행이 아니라 직접 거리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번 돈으로 했던 것이다. 사실 여행이라 말하기는 좀 그런것이 그는 언제가서 언제 오겠다는 혹은 무엇을 구경하겠다고 떠난게 아니라 그냥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간 것이다. 외국으로 이사를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그의 여행은 여행이 아닌 일상 그 자체이다.

400일동안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체험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감명깊게 만나고 체험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 그리고 그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관한 것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가끔 자기 자신이 진짜로 원하고 또 가야하는 길을 모를때가 많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라 누구보다 더 잘 알것 같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책의 저자도 비로서 외국에 가서야 자기 자신이 원하는 길을 좀 더 잘 가게 되었고 또 해야할 일들을 찾게 되었다. 여행으로 저렇게 큰 것을 얻기는 힘들텐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저자는 행운아다.

요즘 여러가지 일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조금은 용기를 얻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꾸준하게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건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해 줄 것이라는 믿음 같은게 생겼다고 할까? 너무 교과서적이고 고리타분한 얘기긴 하지만 한 청년이 경험을 통해 쓴 진솔한 얘기를 통해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다만 내용이 너무 단편적으로 끊기고 좀 더 길게 연결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림이나 디자인. 이런 쪽에는 워낙 무관한 삶을 살아온지라 나는 박훈규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는데. 나중에 읽다가 보니 그가 딴지일보의 로고 디자인을 했다는 것을 보고 조금은 반가웠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한때 딴지일보와 약간의 인연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동안 계속해서 나는 나를 생각했다. 나는 정말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할 용기가 있는 사람일까? 나처럼 두려움이 많은 인간은 여행도 도어 투 도어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 (게으름을 핑계대곤 하지만 결국에는 두려움이 가장 큰 문제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더 낙관적이되 결코 자신의 상황이나 가진것에 대해 자만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훈규가 400일동안 고생고생해서 얻은 깨달음을 책 한권으로 간단하게 수혈받은 기분이다.

책이 좀 두꺼운 편이지만 그림과 사진이 워낙 많아서 읽는데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책도 꽤 가벼운 편이고. 다만 책값이 13,000원으로 조금 비싼게 흠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보는 사람에게 는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썩 글을 잘 쓰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분명 진실은 담겨있는 책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일용직 노동자 쯤으로 (일용직 노동자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나 이 땅에서 중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살았을지도 모르는 저자. 그런 저자가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찾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내용은 나에게 충분하게 용기를 주었다. 어딘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배송실수를 한 인터넷 서점과 이 책을 나에게 선물한 지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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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gzem > 신영복 선생님, 고맙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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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편안함' 그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숨낳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나무야 나무야 p82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도서관에서 책이 얇고 작다는 이유로 처음 집어들었을 때 이 대단한 만남을 나는, 기대하지 못했다 그런 찰나의 선택으로 인한 우연한 만남이었기에 훨씬 더 감동적이고 그만큼 고마웠다, 감사했다.

송광리 소나무숲. 올해 혼자서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버렸다 매끈한 재질의 책 속에는 몇 장의 사진과, 신영복 선생이 직접 그린 그림이 실려있다 느낌을 살리고자 직접 그렸다는 그림은 글과는 다른 감정선으로 다가온다 나도, 못다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구절구절마다 마음이 배여있다 낮고 깊게, 그리고 천천히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확신이 단단히 배여있다 그런 확신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아닐런지... 가볍고 가벼워 샛바람에도 아파하는 나는, 단단히 뿌리를 내린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고 때론 시샘하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고만 고맙기만 했다

고마워요, 신영복 선생님. 우리 만남의 시기가 절묘한가봐요.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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