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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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조창인 이라는 이름 석자를 독자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신파적인 이야기는 되도록 멀리하던 나였기에 [가시고기]는 나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할일도 없고 잠도 오지않아 동생이 빌려온 [가시고기]를 읽게되었는데 결국 책을 다 읽고서야 잠이 들수있었다. 옆에서 자고있는 동생이 깰까봐 큰 소리도 내지 못하며 펑펑 울었는데 덕분에 하루종일 눈이 퉁퉁 부은채로 지내야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날 눈물바다에 잠식시킨 조창인 작가. 그후로 작가는 [등대지기]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신작 [아내]에선 제목 그대로 아내의 사랑을 보여줬다.

솔직히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바보스러울만큼 헌신적인 아내의 이야기는 이혼율이 OECD  국가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선 케케묵은 소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이가 조금만 어긋나도 이혼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고 조금만 피해를 입어도 악다구니를 쓰는 세상이다. 묵묵히 참고 사는게 미덕이 아닌 세상이니 이혼율도 세계 정상급을 다투는 것이다. 게다가 아내 상희의 모습은 젊은 세대가 아니라 마치 우리 어머니 세대를 보는것 같았다. 남편의 배신과 멸시가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어도 끝까지 참고 견딘다. 왜냐하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 하나만으로 이 모든 고통을 견디는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상희의 모습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니 나 부터라도 절대 상희의 삶을 살지 않을것같다. 상희라는 여자가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으로 비춰지기 보다는 미련하고 우둔한 여자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싫다며 이혼 도장을 찍어달라는 남편에게 끝까지 아내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상희. 다시 만난 첫사랑에게 또 다시 마음을 빼앗긴 남편이 밉고 분해서라도 깨끗이 물러나는게 나아보인다. 누가 봐도 이기적이고 나쁜 여자때문에 아내를 떠나려는 찬우의 인간성과 철이 안든 모습에 실망해서라도 떠날것이다.

차라리 상희가 화를 내고 실컷 따졌으면 했다. 분노를 폭발했으면 싶었다. 왜 하필 미나에게 가냐고,다른 여자도 아닌 왜 미나여야만 했냐고 물었으면 했다. 지금까지 찬우를 위해 살았던 그녀였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남편하게 솔직히 얘기하지도 않고 남편의 상황에 모든것을 맞추었다. 마치 남편의 그림자처럼 말이다. 자신의 색깔은 모두 지운채 오직 남편 찬우를 빛나게 하는것이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인 양.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인 양. 그렇게 결혼을 유지해나갔는데 갑자기 이혼이라니. 난 아직 사랑이 식지 않았는데, 오히려 더 깊어졌는데 이혼이라니.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란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그들에겐 운명의 빨간 실이 서로 이어져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상희는 그를 좋아했다. 그리고 난소암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을 아내로 맞아준 찬우에게 너무 고마워서, 평생 그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병에 걸린 시어머니를 수발하고 감옥에 간 찬우를 옥바라지 했다. 출소한 찬우가 세상과 화해하지 못했을때도 여전히 포장마차를 하며 빚도 갚고 그를 재기시키려고 애썼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조금 살만해졌다 싶었더니 남편이 이혼을 통보했다. 화가 나고 억울한 상황이다.

차라리 그를 미워할수 있었다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찬우에 대한 사랑이 깊은 상태다. 상희란 여자는 그런 여자였다. 남들이 보면 '희생'이라는 말로 그녀의 행동을 규정지을 것이다. 하지만 상희는 이것이 '사랑' 이라고 알려준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때 그 보답을 받지 못하면 실망하고 좌절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매달리기만 한 찬우는 사랑을 주려고만 하는 상희를 통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게 된다. 찬우가 한 사랑은 이기적 이었지만 상희가 보여준 사랑은 숭고했다. 형편없는 남자인 찬우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런 사랑만  있다면 세상엔 다툼도 질시도 미움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상희처럼 살려면 마음이 부처같아야 할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을 상희처럼만 한다면 부부 사이가, 연인 사이가 더 굳건해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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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1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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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에 이어 [논개]로 역사 속 여인들의 삶을 재해석한 작가 김별아. 개인적으로 [미실]은 재미가 없어서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었다. 다행히 [논개]는 전작보다 더 성숙되고 발전된 느낌이 들어 끝까지 다 읽었지만 생각보다는 별로였다는게 내 솔직한 감상이다. 논개가 주인공 임에도 불구하고 논개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굳이 두권짜리로 만들지 말고 한권으로 알차고 집약적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그랬다면 장황한 시대상황 설명에 지치지도 않았을테고, 국사 책을 읽는것과 같은 지루함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논개라는 여성에게서 많은 매력을 느끼지 못한건 주변 인물들의 삶이 더 역동적이고 강하게 끌렸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과도한 욕심과 열정이 논개의 모습을 가렸다고 생각한다.

꽃같은 스무살 나이에 왜놈 장수를 끌어안고 강에 투신한 논개. 이것이 우리가 논개에 대해 알고있는 전부였다. 더구나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생 논개' 로만 알고있었다. 하지만 논개는 기생도 아닐뿐더러 최경회의 부인이었고 성은 '주'로 주논개였다. 조선은 여자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개에 대한 오해가 생겼지만 그녀는 자신의 평판에 신경쓰지 않았고 옳은 일을 했다. 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진실된 모습으로 남았을 것이다. 

소설의 첫 부분은 논개가 왜놈 장수를 껴안고 강에 떨어지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초반부터 무척 강한 이미지로 묘사해 마치 내가 그 사건을 겪는것처럼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파왔다. 손가락마다 반지를 껴서 고리 역할을 하고 장수를 결코 놓지 않았던 논개.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의 근육이 파열되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지만 논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겁에질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건 왜놈 장수였다. 죽음으로 가는 그 길고 긴 순간, 논개는 사랑하는 이와 만날 생각에 행복한 웃음을 지었으리라. 그가 없는 이 세상에 더이상 미련이 없으니 죽음의 고통도 달게 생각했으리라. 작가는 논개가 느꼈을 심정을 세세하게 묘사해 우리를 그 시간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시간은 거슬러 논개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몰락한 양반가 출신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최경회 댁에 사노비로 들어가게 되는 과정이 지난하게 이어진다. 어머니 박씨와 힘들고 고된 생활을 보냈지만 논개는 한번도 투정하거나 꾀를 부리지 않았다. 친구라 생각했던 업이가 배신을 했어도 원망하지 않았다. 비록 여자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곧은 심성을 지닌 논개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씀씀이가 훌륭했다. 아버지는 논개의 특이한 사주에 감탄하면서도 안타까워했는데 그것은 논개가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이었으니,남자로 태어났다면 장군이나 큰 일을 해낼 품성이었다.

이런 그녀에게 어느날 사랑이 찾아왔으니 그 상대는 바로 최경회 였다. 나이차이가 곱절에 곱절이었고 최경회는 부인이 있었지만 결국 사랑을 이룬다. 하지만 서로 마음이 끌리게 된 계기도 안 나오고 느닷없이 이루어져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경회에 대한 논개의 사랑이 이 책의 요지일진대 애틋하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게 되지도 않았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되니 두근거리지도 않고 오히려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오히려 논개의 사랑보단 임진왜란이 발발하게된 배경과 절대적인 열세속에서 끝까지 일본군에 맞선 의병들의 모습이 더 와 닿았다.

논개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요약해서 보여줘도 될 법한데 작가는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쏟아붓는다. 파벌싸움부터 최경회의 일생, 스승들과 동기들의 이야기까지 끝도없이 이어진다. 뜻하지 않게 역사 공부를 한 셈인데 읽다보니 논개보단 이쪽 이야기에 더 흥미가 일었다. 그당시 임금과 신하들은 전쟁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한채 향락만을 즐겼다. 일본을 다녀온 충직한 신하 몇몇이 전쟁에 대한 암시를 주었지만 당장의 편안함을 원하는 신하들은 헛소리라고 일축했고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백성들이 왜놈에게 짓밟혀 피를 흘리자 그들이 한 행동은 너무도 민첩했다. 군대를 조직해 왜놈들과 맞서 싸운게 아니라 자신의 목숨 보존 하는데만 급급했던 것이다. 임금은 궁을 떠나 도망을 치고 장수들과 높은 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싸우기는 커녕 곳간과 창고에 불을 지르고 도망갔다. 이보다 더 한 추태가 또 어디 있을까.

결국 무능한 정부 때문에 목숨을 빼앗기고 굶주리는건 백성들의 몫이었다. 정부의 요청으로 들어온 명나라 군대는 자신들의 잇속만 채우고 생색만 냈고 일본군과 암묵적인 거래를 했다. 진주성에서의 참혹한 전투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였는데 그 처절한 모습에, 패배가 자명한 전투앞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장수들과 무능한 나라때문에 끔찍하게 죽어간 백성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이 책은 논개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를 바꾸고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주었다. 허구와 진실이 뒤섞였을테지만 왠지 논개의 삶이 이러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부턴 기생 논개가 아닌 주논개로 그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작가가 들려준 아름다운 어휘였는데, 처음엔 신기하고 책의 이미지와 잘 맞아 보였지만 너무 과하다 싶을정도로 많이 사용해 조금 숨막히게도 만들었다. 이렇듯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이 있었지만 그나마 논개를 새롭게 조명하고 알린것이 이 책의 미덕이라 할수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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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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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코노 일족의 두번째 이야기인 [민들레 공책]은 미노코가 과거에 겪었던 일을 써놓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지금은 기억이 가뭇가뭇 해진 그때 그 시절의 신비하고 따스했던 경험을 민들레 공책을 통해 들려주는 미네코. 때는 100여년 전, 아이에서 여자로 변하는 시기의 미네코가 겪었던 꿈결같던 이야기이다. 자신의 일기장에 "민들레 공책"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미네코는 그 해에 사토코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가 주치의로 있는 마키무라 가의 막내딸 사토코의 말동무가 되면서 결코 잊지못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개구쟁이 남자아이와의 미묘한 사랑, 도코노 일족이라 불리우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사코토와 함께 겪게되는,어느 것하나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일들.

미노코는 사코토를 보자마자 앞으로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것을 예감한다. 이승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졌고, 나이 답지 않은 결단력과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토코에겐 무언가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 사코토는 온다 리쿠 작품에서 자주 볼수있는 캐릭터인데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극의 중심에 서있고 강한 매력을 내뿜는다. 아무리 비중이 적은 역할이라도 이런 캐릭터는 어느샌가 주연으로 생각될만큼 독자로 하여금 빠져드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사코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미네코도, 도코노 일족도 아닌 사코토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마을의 지주격인 마키무라 가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작은 심장 때문에 바깥출입도 못하고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는 병약한 소녀 사코토. 하지만 미노코와 같이 놀면서 그 한해를 아름답고 눈부시게 찬란한 빛으로 물들인다. 그렇게 사토코와 미노코, 양쪽 모두의 인생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그런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중에 연분홍색 리본을 머리에 달고 여학교에 다니자는 약속도 하고, 자신들의 꿈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하루타 가족이 나타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권력을 갖지 말고,무리를 짓지 말고, 너른 벌판에 흩어져 살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도코노 일족. 그 규칙대로 하루타 가족은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한다. 그리고 마키무라 촌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잠시 머물게 된다. 미래의 일을 볼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 가족의 신비한 힘과 사코토가 보이는 신기한 행동들은 조만간 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려준다. '사람을 넣는' 능력을 통해 그 사람의 모든것을 기억하는 하루타 가족이 왜 이곳에 나타나게 됐는지, 사코토가 별안간 한 이상한 말의 의미도 나중에서야 밝혀진다.

이 촌락이 '먼 눈' 능력을 지닌 하루타 족 출신의 며느리 때문에 유지가 되었고 번성이 됐다는 오래전 이야기. 그리고 이제 그때와 똑같은 무시무시한 수마가 마을을 덮치게 되고 '며느리'의 역할을 '먼 눈'의 후계자인 사토코가 해야만한다. 어쩌면 예정된 운명인지도 모른다. 사코토가 해야만 하는 일은 가슴아픈 결말을 맞게 될 터이고 잔혹한 현실에 울부짖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코토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용감하게 해냈고 하루타 가족은 사코토 부모에게 큰 위안을 주는 일을 해낸다. 그제서야 모든 의문이 풀리고 웃음을 짓게 된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 시대의 일본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마키무라 집엔 항상 손님들로 북적북적 거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풍성함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마치 자신들은 피해자인양, 외국의 악독한 사람들이 일본 땅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 한것이 조금 거슬렸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낸건 생각하지 않은채 그저 자신들의 피해와 상처에만 아파하는 모습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작가의 입담이 잘 어우러진,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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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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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약을 구하러 떠난 바리데기.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지닌 신화속 바리데기를 황석영 작가는 새롭게 부활시켰다. 김일성이 죽고 온 나라가 기근에 시달리던 1990년대의 북한을 배경으로, 신화 속 바리데기를 북한 소녀 바리로 환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 중국,그리고 영국으로 이어지는 바리의 여정을 통해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삶은 어쩌면 지옥일지 모르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어가고 믿고 살아가면 언젠가 밝은 미래가 올거라고 얘기한다. 그런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야 우리는 이 불안정한 세상을 살아낼수 있는것이다.

바리는 아들을 원했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딸만 여섯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남편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아내는 핏덩어리인 바리를 산에 버리게 되지만, 키우던 강아지 흰둥이가 바리를 살리게 된다. 흰둥이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된 바리는 성장하면서 할머니의 영험함을 물려받았는지 벙어리인 언니의 말을 들을수 있고 귀신을 볼수있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무서울법도 하지만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할머니가 있기에 거부감없이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 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넉넉하진 않지만 부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언니들 틈에서 사랑받고 자라온 바리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한건 나라 사정이 나빠지면서이다. 끔찍한 기근은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화 시켰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북한을 떠난 바리네 가족은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결국 할머니와 흰둥이의 죽음으로 바리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게 바리는 중국으로 갔다가 영국으로 불법 밀양을 하게 되는게 그 과정이 너무도 끔찍하다. 뉴스를 통해 불법 밀양자들이 잡히는 모습만 봐왔지, 그 과정은 잘 알수 없었다.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채 배 밑바닥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 숨조차 제대로 쉬지못해 바닥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숨을 들이마시고 용변도 그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 안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하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수 없는 막막한 상황, 비명 가득한 아수라장이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바리를 기다리고 있는건 불법 체류자 로서의 삶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삶은 힘들긴 하지만 다양한 인종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남편 알리와 결혼을 결심하는 장면은 좀 설득력이 없었다. 영매 능력이 있고 평범한 또래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하지만 그래도 꽃다운 사춘기 아닌가. 어쨌든 이슬람 교를 믿는 알리와 결혼함으로써 어느정도 안정을 찾게되는 바리였다.

그렇지만 연이어 벌어지는 불행 앞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힘들때마다 죽은 할머니와 흰둥이가 나타나 길을 알려주며 토닥여줘 살아갈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 앞에서 바리는 고통속에서 오열할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아이의 목숨을 잃게 만든 사람을 용서하는건 죽는것보다 힘든 일이다. 하지만 꿈속에 나타난 사랑하는 가족들, 미운 사람들, 바리 곁을 스쳐간 사람들을 만나고 죽은 아이와 조우하며 바리는 미움대신 용서를 택한다. 용서만이 이 지옥같은 세상을 살아갈수 있게 만든다고 믿게 된다. 바리가 찾는 생명수란 바로 용서인 것이다.

신화 속 바리는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용서했다. 북한 소녀 바리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원망스런 사람들을 용서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게 바로 화해와 용서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것이다. 작가는 바리를 통해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다같이 공존하려면 용서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황석영 이라는 작가의 이름 값에는 조금은 못 미쳤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좀 뜬금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반쪽뿐인 성공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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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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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흥미롭게도 여기자와 작가 볼프 하스의 인터뷰를 통해 소설을 유추해낼수 있게 만든다. 덕분에 처음부터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진 않았다. "15년전의 날씨"가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자와 작가가 나누고 있는 책에 관한 대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작가가 쓴 책의 내용이 서서히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고 인물들의 성격,직업,친구 관계 등에 대한 정보를 알수있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처음엔 모호했던 이야기들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게 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작가는 한 프로그램에 등장한 코발스키를 보고 책을 만들게 된다. 독특한 사연을 가진 이 남자에게 매료된 작가는 평소의 게으름을 일순간에 떨쳐버리고 당장 그를 찾아나서게 된다. 그렇게 만난 코발스키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15년전의 날씨"라는 책이 탄생하게 되고 이제 이 책을 가지고 기자와 작가는 인터뷰를 하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발스키의 사연은 과연 어떤 것일까?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매년 똑같은 곳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 코발스키는 어떤 사건 이후로 그곳에 더이상 가지 않았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오스트리아 산골 마을에 발길을 끊은 것이다. 풋사랑을 나누었던 휴양지의 소녀 아니를 15년간 보지 않고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 노력한 코발스키. 이제 그에게 산골 마을과 아니는 옅은 추억으로 남아있을만큼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그 마을의 15년간 날씨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외웠다. 그는 왜 산골 마을의 날씨를 외웠을까? 그곳에 가지 않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의 날씨를 외울 정도면 한번쯤 가볼만도 한데 그는 왜 이토록 오랜 세월을 보낸것일까?

하지만 궁금증에 대한 답변은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해결할수있다. 총 5일동안 인터뷰가 진행되는데 기자와 작가의 대화를 따라가야만 그 윤곽을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정말 독특한 형식이라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들의 만담같은 이야기에 중독되어갔다. 특히 이 책엔 유머가 가득한데 시시때때로 삼천포로 빠지는 작가의 모습도 재밌었고, 여성과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바라보는 기자의 기상천외한 상상력도 즐거웠다. 작가가 아무 의미없이 쓴 글을 기자는 어떤 암시가 있는거 아니냐며 물어보고, "15년전 날씨"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가 혹시 작가의 생각이 아니냐며 따지고 캐묻는다.

같은 문화권 이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번역하는게 꽤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리고 "은별 오르가즘" 이나 "느낌 테러"라는 단어는 의미가 불분명해 이해가 쉽지 않았는데 몇 페이지 뒤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런 부분이 꽤 많아서 페이지를 수시로 넘나들며 읽어야 했다.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100%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궁금했던 부분이 나오면서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분명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인터뷰 형식이라 해서 딱딱한 분위기일줄 알았는데 오히려 코믹한 쪽에 가까웠다. 썰렁한 농담이 난무하고 너무 말이 많아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모습에선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인터뷰가 종료된 후에 작가와 기자가 나눌 은밀한 진실을 같이 듣고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인터뷰가 즐거웠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 볼프하스, 이 작가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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