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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약을 구하러 떠난 바리데기.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지닌 신화속 바리데기를 황석영 작가는 새롭게 부활시켰다. 김일성이 죽고 온 나라가 기근에 시달리던 1990년대의 북한을 배경으로, 신화 속 바리데기를 북한 소녀 바리로 환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 중국,그리고 영국으로 이어지는 바리의 여정을 통해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삶은 어쩌면 지옥일지 모르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어가고 믿고 살아가면 언젠가 밝은 미래가 올거라고 얘기한다. 그런 희망을 끈을 놓지 말아야 우리는 이 불안정한 세상을 살아낼수 있는것이다.
바리는 아들을 원했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딸만 여섯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남편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아내는 핏덩어리인 바리를 산에 버리게 되지만, 키우던 강아지 흰둥이가 바리를 살리게 된다. 흰둥이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된 바리는 성장하면서 할머니의 영험함을 물려받았는지 벙어리인 언니의 말을 들을수 있고 귀신을 볼수있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무서울법도 하지만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할머니가 있기에 거부감없이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 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넉넉하진 않지만 부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언니들 틈에서 사랑받고 자라온 바리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한건 나라 사정이 나빠지면서이다. 끔찍한 기근은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화 시켰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북한을 떠난 바리네 가족은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결국 할머니와 흰둥이의 죽음으로 바리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렇게 바리는 중국으로 갔다가 영국으로 불법 밀양을 하게 되는게 그 과정이 너무도 끔찍하다. 뉴스를 통해 불법 밀양자들이 잡히는 모습만 봐왔지, 그 과정은 잘 알수 없었다.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채 배 밑바닥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 숨조차 제대로 쉬지못해 바닥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숨을 들이마시고 용변도 그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 안에서 강간 사건이 발생하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도 장담할수 없는 막막한 상황, 비명 가득한 아수라장이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바리를 기다리고 있는건 불법 체류자 로서의 삶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삶은 힘들긴 하지만 다양한 인종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남편 알리와 결혼을 결심하는 장면은 좀 설득력이 없었다. 영매 능력이 있고 평범한 또래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하지만 그래도 꽃다운 사춘기 아닌가. 어쨌든 이슬람 교를 믿는 알리와 결혼함으로써 어느정도 안정을 찾게되는 바리였다.
그렇지만 연이어 벌어지는 불행 앞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힘들때마다 죽은 할머니와 흰둥이가 나타나 길을 알려주며 토닥여줘 살아갈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 앞에서 바리는 고통속에서 오열할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아이의 목숨을 잃게 만든 사람을 용서하는건 죽는것보다 힘든 일이다. 하지만 꿈속에 나타난 사랑하는 가족들, 미운 사람들, 바리 곁을 스쳐간 사람들을 만나고 죽은 아이와 조우하며 바리는 미움대신 용서를 택한다. 용서만이 이 지옥같은 세상을 살아갈수 있게 만든다고 믿게 된다. 바리가 찾는 생명수란 바로 용서인 것이다.
신화 속 바리는 자신을 버린 부모님을 용서했다. 북한 소녀 바리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원망스런 사람들을 용서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게 바로 화해와 용서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것이다. 작가는 바리를 통해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다같이 공존하려면 용서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황석영 이라는 작가의 이름 값에는 조금은 못 미쳤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좀 뜬금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반쪽뿐인 성공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