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들레 공책 ㅣ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도코노 일족의 두번째 이야기인 [민들레 공책]은 미노코가 과거에 겪었던 일을 써놓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지금은 기억이 가뭇가뭇 해진 그때 그 시절의 신비하고 따스했던 경험을 민들레 공책을 통해 들려주는 미네코. 때는 100여년 전, 아이에서 여자로 변하는 시기의 미네코가 겪었던 꿈결같던 이야기이다. 자신의 일기장에 "민들레 공책"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미네코는 그 해에 사토코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가 주치의로 있는 마키무라 가의 막내딸 사토코의 말동무가 되면서 결코 잊지못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개구쟁이 남자아이와의 미묘한 사랑, 도코노 일족이라 불리우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사코토와 함께 겪게되는,어느 것하나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일들.
미노코는 사코토를 보자마자 앞으로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것을 예감한다. 이승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졌고, 나이 답지 않은 결단력과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토코에겐 무언가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 사코토는 온다 리쿠 작품에서 자주 볼수있는 캐릭터인데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극의 중심에 서있고 강한 매력을 내뿜는다. 아무리 비중이 적은 역할이라도 이런 캐릭터는 어느샌가 주연으로 생각될만큼 독자로 하여금 빠져드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사코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미네코도, 도코노 일족도 아닌 사코토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마을의 지주격인 마키무라 가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작은 심장 때문에 바깥출입도 못하고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는 병약한 소녀 사코토. 하지만 미노코와 같이 놀면서 그 한해를 아름답고 눈부시게 찬란한 빛으로 물들인다. 그렇게 사토코와 미노코, 양쪽 모두의 인생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그런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중에 연분홍색 리본을 머리에 달고 여학교에 다니자는 약속도 하고, 자신들의 꿈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하루타 가족이 나타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권력을 갖지 말고,무리를 짓지 말고, 너른 벌판에 흩어져 살아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도코노 일족. 그 규칙대로 하루타 가족은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한다. 그리고 마키무라 촌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잠시 머물게 된다. 미래의 일을 볼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 가족의 신비한 힘과 사코토가 보이는 신기한 행동들은 조만간 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려준다. '사람을 넣는' 능력을 통해 그 사람의 모든것을 기억하는 하루타 가족이 왜 이곳에 나타나게 됐는지, 사코토가 별안간 한 이상한 말의 의미도 나중에서야 밝혀진다.
이 촌락이 '먼 눈' 능력을 지닌 하루타 족 출신의 며느리 때문에 유지가 되었고 번성이 됐다는 오래전 이야기. 그리고 이제 그때와 똑같은 무시무시한 수마가 마을을 덮치게 되고 '며느리'의 역할을 '먼 눈'의 후계자인 사토코가 해야만한다. 어쩌면 예정된 운명인지도 모른다. 사코토가 해야만 하는 일은 가슴아픈 결말을 맞게 될 터이고 잔혹한 현실에 울부짖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코토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용감하게 해냈고 하루타 가족은 사코토 부모에게 큰 위안을 주는 일을 해낸다. 그제서야 모든 의문이 풀리고 웃음을 짓게 된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 시대의 일본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마키무라 집엔 항상 손님들로 북적북적 거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풍성함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마치 자신들은 피해자인양, 외국의 악독한 사람들이 일본 땅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 한것이 조금 거슬렸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낸건 생각하지 않은채 그저 자신들의 피해와 상처에만 아파하는 모습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작가의 입담이 잘 어우러진,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