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내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가시고기]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조창인 이라는 이름 석자를 독자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신파적인 이야기는 되도록 멀리하던 나였기에 [가시고기]는 나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할일도 없고 잠도 오지않아 동생이 빌려온 [가시고기]를 읽게되었는데 결국 책을 다 읽고서야 잠이 들수있었다. 옆에서 자고있는 동생이 깰까봐 큰 소리도 내지 못하며 펑펑 울었는데 덕분에 하루종일 눈이 퉁퉁 부은채로 지내야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날 눈물바다에 잠식시킨 조창인 작가. 그후로 작가는 [등대지기]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신작 [아내]에선 제목 그대로 아내의 사랑을 보여줬다.
솔직히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바보스러울만큼 헌신적인 아내의 이야기는 이혼율이 OECD 국가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선 케케묵은 소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이가 조금만 어긋나도 이혼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고 조금만 피해를 입어도 악다구니를 쓰는 세상이다. 묵묵히 참고 사는게 미덕이 아닌 세상이니 이혼율도 세계 정상급을 다투는 것이다. 게다가 아내 상희의 모습은 젊은 세대가 아니라 마치 우리 어머니 세대를 보는것 같았다. 남편의 배신과 멸시가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어도 끝까지 참고 견딘다. 왜냐하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 하나만으로 이 모든 고통을 견디는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상희의 모습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니 나 부터라도 절대 상희의 삶을 살지 않을것같다. 상희라는 여자가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으로 비춰지기 보다는 미련하고 우둔한 여자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싫다며 이혼 도장을 찍어달라는 남편에게 끝까지 아내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상희. 다시 만난 첫사랑에게 또 다시 마음을 빼앗긴 남편이 밉고 분해서라도 깨끗이 물러나는게 나아보인다. 누가 봐도 이기적이고 나쁜 여자때문에 아내를 떠나려는 찬우의 인간성과 철이 안든 모습에 실망해서라도 떠날것이다.
차라리 상희가 화를 내고 실컷 따졌으면 했다. 분노를 폭발했으면 싶었다. 왜 하필 미나에게 가냐고,다른 여자도 아닌 왜 미나여야만 했냐고 물었으면 했다. 지금까지 찬우를 위해 살았던 그녀였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남편하게 솔직히 얘기하지도 않고 남편의 상황에 모든것을 맞추었다. 마치 남편의 그림자처럼 말이다. 자신의 색깔은 모두 지운채 오직 남편 찬우를 빛나게 하는것이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인 양.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인 양. 그렇게 결혼을 유지해나갔는데 갑자기 이혼이라니. 난 아직 사랑이 식지 않았는데, 오히려 더 깊어졌는데 이혼이라니.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란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그들에겐 운명의 빨간 실이 서로 이어져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상희는 그를 좋아했다. 그리고 난소암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을 아내로 맞아준 찬우에게 너무 고마워서, 평생 그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병에 걸린 시어머니를 수발하고 감옥에 간 찬우를 옥바라지 했다. 출소한 찬우가 세상과 화해하지 못했을때도 여전히 포장마차를 하며 빚도 갚고 그를 재기시키려고 애썼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조금 살만해졌다 싶었더니 남편이 이혼을 통보했다. 화가 나고 억울한 상황이다.
차라리 그를 미워할수 있었다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찬우에 대한 사랑이 깊은 상태다. 상희란 여자는 그런 여자였다. 남들이 보면 '희생'이라는 말로 그녀의 행동을 규정지을 것이다. 하지만 상희는 이것이 '사랑' 이라고 알려준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때 그 보답을 받지 못하면 실망하고 좌절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매달리기만 한 찬우는 사랑을 주려고만 하는 상희를 통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게 된다. 찬우가 한 사랑은 이기적 이었지만 상희가 보여준 사랑은 숭고했다. 형편없는 남자인 찬우가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런 사랑만 있다면 세상엔 다툼도 질시도 미움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상희처럼 살려면 마음이 부처같아야 할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을 상희처럼만 한다면 부부 사이가, 연인 사이가 더 굳건해질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