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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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사는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에 나오는 동물들은 외로움을 달래고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일 뿐이었다. 반면에 조선인 아이들에게 동물이란 가계의 생계를 꾸려 가는 수단 가운데 하나로, 그런 동물과 노는 일은 자연스레 그 동물이 맡은 생산적 행위와 연관돼 있다. 따라서 아이들이 가장 슬픈 순간은 가축이 죽었을 때가 아니라 팔 때다. 병이나 죽음이 아니라 생계로 인한 이별이기 때문이다.

-이영은, 『제국의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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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 쓴 수필의 존재는 물론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생길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저자가 한일 관계 및 그 중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며 공부한 덕분에 만날 수 있었는데 마침 광복80주년과 맞물러 더욱 의미 있고 가치있는 책이 아닐 수 없다.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총 7화에 걸쳐 개최된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는 당시 조선 반도에 살았던 일본인 어린이들은 물론 조선의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고단한 시대배경이 짐작되므로 당시 조선인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반짝거리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겠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그늘 진 표정들이 일렁일 줄이야. 특히 조선에서 사는 일본 어린이들의 세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더욱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일말의 작은 기쁨이라거나 일상의 활력이 느껴질 때면 매순간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다.

은유 작가님의 추천사 중 "역사서이자 아동 심리서이고 글쓰기 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의 해설이 그 모든 역할을 충실하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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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ul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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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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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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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이 저자의 눈과 입과 사유를 통해 건네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자 쌍방향으로 오가는 대화의 형식이었다면 『인생, 예술』 은 저자 내면의 내밀한 이야기로 향한다. 밀도와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예술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 이번 신간은, 뭐랄까- 시공간의 움직임을 감각하는 경험이었달까. 애써 드문드문 전시를 찾는 나에게 베니스비엔날레부터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 작가의 작업실, 컬렉터의 집을 오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나.

물론 책이라는 물성을 통해서이고 또는 다른 책으로도 가능한 일이겠다만 저자만이 가진 고유한 예술적 순간과 경험들을, 그 기억과 기록들을 나는 이전부터 깊이 좋아했다. 게다가 어떤 예술 작품 앞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형언할 수 없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저자의 문장들은 안도의 한숨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500여 쪽을 읽는 동안 푹-빠진 것은 당연하고 기꺼이 기쁜마음으로 동행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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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기록하거나 소유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사실을 체득하는 데도 절대적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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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예술 세계로의 여행이 의미 있는 이유 역시 돌아올 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침 심신이 피로할 때, 더 정확히는 세상만사가 다 짜증스러울 때 읽었다. 덕분에 예술적 성취보다 "오로지 예술가로 살고자 분투한 삶을" 보며 경탄과 감탄 사이를 넘나 들었고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마음껏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멋진 세계를 향유하면서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고, 그곳이 바로 '나'라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고 또 느슨하게 멀어지겠지만 끝내 아예 놓아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윤혜정의 예술 3부작'으로 끝인가? 4부작은 안되나? 작품 앞에서 관람하는 관람객의 뒷모습이 예술 작품만큼이나 좋아 에세이로 풀어내고 싶은 정도로 감동받으신다고- 사실 나는 그 문장이 제일 좋았다:) 왜인지 작품의 완성은 관람객의 뒷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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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게 '예술을 경험한다'는 건 단순이 보고 읽고 아는 것을 넘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만약 어떤 인생이 숭고하다면,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단 한 가지 때문이다.

🔖내가 선 데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사유해야 나의 주위를 제대로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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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정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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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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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 출신의 스타작가 오스카, 왕년의 톱배우 레베카, 페미니스트 블로거 조에. 과거에서부터 지독하게 얽히고설킨 세 사람이 주고 받은 이메일 형식의 소설이다. 연령대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이들의 메일 속에는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현대사회에서 언제나 화두에 오르는 주제들을 신랄하고도 유머스럽게 주고 받는다. 서로 다른 견해로 바라보는 페미니즘, 미투운동, 마약 중독, 코로나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분노가 일렁이기도 한다. 이 모든 중심에는 한가지 키워드가 따라오는데 '혐오'이다. 그래서 세사람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신하고 미워하는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생생하게 피부로 느껴질 소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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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영화 특별판)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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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청하오니, 부디 내 인도자가 되시어, 내 표가 반드시 교황이 되어야 할 분께 가도록 이끄소서."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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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교황을 뽑는 전 세계 추기경들의 모임. 교황이 사망하거나 물러나면 16~19일 사이에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예상은 적중했다. 신과 교회를 믿든 않든 『콘클라베』에 푹 빠져들 것이라고. 예기치 못한 교황의 죽음 이후 신임 교황 선출을 위해 전 세계 118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모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콘클라베 선거 관리 임무를 맡은 단장 로멜리 추기경을 중심으로 무려 여덟차례의 투표가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유력 후보들의 은밀한 암투가 긴장을 고조시킨다. 성스러운 장소에서 가감없이 드러나는 속내와 권력의 의지들. 극과 극의 대비만큼이나 재미 이상의 몰입도를 자랑하는 소설은 자연스레 최근에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의 기대감을 상승시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에서는 머리가 띵했다(?). 미묘한 심리 변화 흐름을 눈여겨 보면서 스릴러 소설로 추천한다.

-무신론자까지는 아니지만 딱히 한 종교에 치우치지도 않는 나는 종교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책속에서 로멜리 추기경의 연설문의 일부가 인상 깊어 옮겨본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P132

-책 읽는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원소식까지 접했다. 부디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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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rhkorea_books

#콘클라베 #로버트해리스 #RHK
#콘클라베원작소설 #올해의영화 #아카데미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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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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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세스페데스의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성년이 된 두 아이를 둔 43세의 발레리아가 반년동안 기록한 일기장 형식의 소설이다.

1950년대의 발레리아는 부유한 친구들의 동정의 눈길을 받는 직장인이었고 동시에 살림을 빈틈없이 해내고 있는 슈퍼맘이었다. 그런 그녀의 삶을 흔들만한 사건(?)이 생기는데 그녀가 충동적으로 일기장을 샀다는 것이다. 가계부라면 모를까, 당시 여성이 일기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사회나 가정에서 통용되는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일기장을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쓰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발레리아는 일기를 쓰며 가족과 외부로만 향하던 시선이 점점 내면을 향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수록 일기장 밖의 그녀도 과감해지지만 해방감과 죄책감이 뒤얽힌 채로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감히 발레리아의 인생 통틀어 가장 진실된 순간이라고 느꼈다.

나는 16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취방을 여러번 옮기면서도, 결혼 후 잦은 이사를 하면서도 이고지고 다니던 일기장이 올해로 벌써 스물세권이 있고 스물네번째 일기장을 쓰고 있는 참이다. 어쩌다 한번씩 들춰보는 일기장은 아리송하다. 풀 수 없는 암호 같기도,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나는 내가 왜 두루뭉실한지 잘 안다. 발레리아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을 세세히 기록하면서 매일 나의 깊은 내면을 알아간다. 자기 자신을 알면 알수록 발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반대로 나를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웠다. 사실 이토록 꾸준하고 냉혹한 분석 앞에 어떤 감정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불안에 취약한 나는 혼란스러움을 극도로 피한다. 그건 나의 감정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발레리아는 그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일기를 쓸 때면 점점 또렷이 자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기장 속에 진짜 발레리아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나는 어떤가. 내 스물세권의 일기장 속에는 내가 있던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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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모임에서는 '일기와 나', '엄마 발레리아', '여자 발레리아'를 소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21세기의 우리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 일기를 쓸 때면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지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발레리아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발레리아에게 일기장이 갖는 의미, 남편과 귀도/아들과 며느리, 딸과의 관계를 살피며 발레리아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나눌수록 서글퍼지기도 짠하기도 했다(때때로 발레리아가 무섭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쓰는 존재는 멈추지 않는다고, 쓸수록 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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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누군가의 딸이고, 아내이며, 엄마이기 때문일까. 모든 관계에서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화끈거리면서도 속수무책으로 걸려 넘어지는 문장들 앞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감정이 어쩌면 보편적인 걸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어떤 말보다도 진한 위로가 되는 부분이었는데 혼자 전전긍긍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자고, 그래서 조금 더 솔직해지로 다짐했다.

이 책을 연초에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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