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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디스토피아 - 거대 플랫폼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
알렉 맥길리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사월의책 / 2024년 6월
평점 :
처음 읽은 아마존 관련서는 『아마존 세상 모든 것을 팝니다』(2014)였다. 아직은 출판업계와 킨들이 거론되던 때다. 주주서한 등을 묶은 『방황과 도전』(2021) 때는 이미 블루오리진 대표 베조스는 우주에 올라갔다 온 후였다. 팬데믹 시절이다.
이 책 『아마존 디스토피아』 는 이 사이 아마존의 영향력 아래 놓인 주요 도시들의 부침과 변모를 통해 미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다룬다. 막상 잡고 보니 다른 책은 손에 쥘 틈이 없다. 사회학으로 분류됐기에 미뤄둔 책인데 경제경영서로 읽은 아마존만큼이나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번역도 편안하다. (원서는 21년, 한국어 번역본은 25년이다. 원제는 Fulfillment.)
저자 경력상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정은 구름 위부터 아스팔트 바닥까지 훤했겠지만 취재와 인터뷰에 들인 발품이 커 보인다. 미국경제 긍지의 철강노동자가 아마존 물류 지게차를 운전하고, 정부 조달업무를 아마존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텍사스 엘파소 문구사무업자들이 발버둥치고, 볼티모어 철거 주택의 고벽돌을 워싱턴 호화 아파트에 팔게 되는 개개인의 삶을 풀어내 지역경제라는 큰 그림과 짜맞췄다. 이에 비하면 존재조차 비밀이던 들판 한가운데 데이터센터 위장 출입문을 구별하고, 데이터업계 파티에 나타난 번호판 숫자 하나짜리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차량을 알아보는 건 뭣도 아닐 거다.
미국 로비산업 역사에 등장한 큰손 아마존 덕분에 화려해진 워싱턴의 변모가 읽기에 무척 흥미롭다. 한 시간 떨어진 노동자들의 도시 볼티모어의 몰락과 대조되며 두 도시의 양극화가 극명하다. 악착같이 ‘세금’과 ‘노조’만은 피하려는 아마존의 깨알 같은 노력은 뻔뻔하지만, 경쟁자 없는 세상에서 정부의 감시와 규제를 피하는 데 쓸 돈은 아끼지 않는다. 워싱턴의 정계, 로비스트, 안보산업 등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조사가 촘촘하고 방대하다. 아마존 제2본사가 완공된 후에도 워싱턴포스트 소유주가 베조스라면 워싱턴은 연방정부의 대표 도시가 아닌 아마존의 도시로 불리게 될 정도다.
시애틀을 다룬 장에서 길거리에 볼일을 보는 노숙자 언급이 있다. 뉴욕과 LA의 노숙자 문제와 다른 점은 갈 곳 없는 길거리 노숙자들 비율이 더 높다. 문제는 시민 92%가 트럼프에 반대했던 이 진보의 도시가 노숙자 텐트를 다 밀어버리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크레인이 세워진 초번영 도시 시애틀의 집값 상승으로 이득을 본 중산층들이 자신은 마땅히 이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고 그 이면의 대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2018년 시애틀 주거 문제 해결에 쓸 조세안 타협을 아마존이 이틀 만에 뒤집은 배경일 것이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시애틀 편에 비중 있게 나온 케이트 윌슨이 시애틀 시장으로 선출된 기사가 나왔다. 옥스퍼드 졸업 6주를 앞두고 돌연 시애틀로 와서 지금껏 시애틀의 역진적인 세금 정책에 맞서 대중교통부터 노숙자 문제까지 이십여 년을 활동가로 살아왔다고 소개된다. 책 속의 인물을 오늘 뉴스로 보다니 반갑고 기대된다. 또 한 명 기억할 이는 리나 칸이다. 일명 아마존킬러. 왜 기존 미국독점금지법으로는 플랫폼 기반 경제의 아마존이 제어가 안 되는지를 처음으로 밝힌 예일대 로스쿨 졸업논문 이후, 바이든 정부 때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빅테크 기업들을 압박하고 소송을 이끌었다. 트럼프 2기에 현직에서 물러났다. 괜찮다. 한창 젊다.
철도 시대에 선로를 지배한 자들이 기차에 실어 나르던 석탄 산업까지 장악하며 양쪽에서 이익을 취했듯이, 플랫폼 세상에서 그 일을 아마존이 반복한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의 월마트라고 하기엔 팬데믹으로 절호의 기회를 잡은 아마존의 성장이 너무 가파르다. 이제 곧 아마존 드론이 날아다닐 판이니 감시와 규제, 입법이 더 필요하다. 사나운 개라면 더 튼튼하고 정교한 목줄을 채우는 법.
열 살짜리 외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꾸중 대신 한 말을 떠올려보면 그는 베조스를 한눈에 알아본 거였다.
“제프,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똑똑한 머리를 갖는 것보다 더 어렵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