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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5
윌리엄 포크너 지음, 권지은 옮김 / 민음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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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인이 무얼 가리키는지 번역자 작품해설에도 설명이 없다. 읽기 전엔 노인 죄수의 회상인 줄 알았다. 미국 남부에서는 미시시피 강을 ‘Old Man River‘라 부른단다. 당시 흥행 뮤지컬 노래로도 유명했다고.
구글링 후 본문을 되짚어 찾아낸 331쪽 괄호 안에 노인=미시시피 강이 언급된다. 포크너에게 미시시피가 갖는 의미를 보면 종려나무보다도 노인의 은유에 대해서 해설이든 각주가 필요하다

“미시시피강을 다시 만났을 때 죄수는 즉시 강을 알아보았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이제 강은 그의 과거, 그의 삶의 지울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만약 나중에 그가 유산을 남길 수 있다면 강은 그의 유산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사 주가 지나면 강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테고, 실제로 달라져 있었다. 타락했던 그(노인)가 회복해서 강둑에 다시 올라와 있었다. 그 노인은 양옆의 제방 사이에 있는 초콜릿만큼 진한 갈색 물을 바다 쪽을 향해 평화롭게 찰랑거리도록 만들고 있었다. 강과 맞닿은 양쪽 제방의 안쪽 면은 대경실색해서 얼어 버린 얼굴처럼 주름져 있었고, 제방 위쪽에는 버드나무들이 만드는 여름의 짙은 녹음이 가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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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대의 종말
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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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닉이 여기저기 실었던 원고뭉치를 들이밀며 책 한 권 될까 하니 편집자 데브 체스먼이 다 버려 이것만 살려, 제목은 '연애소설의 종말', 표제작은 새로 써, 한 게 97년 이 책 초판이다. 


본인 인생, 결혼, 연애가 기준점인 분이라, 아내와 엄마로 사는 주인공에겐 두려움과 적의를 높이고, 결혼의 환멸을 다루면 감탄하고, 여자에게 위로를 구하면 유약한 놈이다. 홀로 굳세게 인생을 개척하는 현명한 미국여성에겐 본인 인생이 정답임을 확신한다. 이젠 낭만적 사랑의 위력은 안 통해, 즘 연애소설은 다 가짜야, 19-20세기 위대한 소설만 읽고 또 읽어야지. 그게 내 끝나지 않을 일이지. 고닉 식으로 거칠게 자르고 붙이면 이런 내용이다.

 

책으로 묶을 순 있지만 제목에는 밀린다. 감정이 실린 높은 목소리가 매체만 바꿔 반복된 원고라 이 얇은 책이 살짝 피로하다. 그간 읽은 고닉 책의 피로 누적일 수도. 이때 고닉은 아직 팔팔했다. 말년의 화양연화는 오기 전이라 강퍅하기도 하다. 이에 비해 근년 출간된 끝나지 않은 일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톤이다

담당 편집자가 자리를 옮겨 지면을 주고 묶어낸 십여 년 뒤 The Men in My Life 가 번역되면 이 책과 짝이 되려나. 주인공이 나쁜 놈이면 작가도 나쁜 놈이라 몰아붙이겠지만 그래도 고닉은 글 잘 쓰는 나쁜 놈은 오케이, 싫어하지 않을 거다.

 

고작 몇백 년짜리 낭만적 사랑이 사라진대도 남녀는 서로 다정함과 위안과 연결을 갈구할 테고 소설은 그 마음을 붙잡아 담아낼 거다. 60대까지 연애는 놔본 적 없다는 고닉 말처럼 사랑이 우리를 다정하고 현명하고 너그럽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아무렴, 애초에 로맨스가 이런 것들과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다정하고 현명하고 너그러운 여자와 남자가 되어야 그 사랑이 계속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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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디스토피아 - 거대 플랫폼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
알렉 맥길리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사월의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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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아마존 관련서는 아마존 세상 모든 것을 팝니다(2014)였다. 아직은 출판업계와 킨들이 거론되던 때다. 주주서한 등을 묶은 방황과 도전(2021) 때는 이미 블루오리진 대표 베조스는 우주에 올라갔다 온 후였다. 팬데믹 시절이다.

이 책 아마존 디스토피아는 이 사이 아마존의 영향력 아래 놓인 주요 도시들의 부침과 변모를 통해 미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다룬다. 막상 잡고 보니 다른 책은 손에 쥘 틈이 없다. 사회학으로 분류됐기에 미뤄둔 책인데 경제경영서로 읽은 아마존만큼이나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번역도 편안하다. (원서는 21, 한국어 번역본은 25년이다. 원제는 Fulfillment.)

 

저자 경력상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정은 구름 위부터 아스팔트 바닥까지 훤했겠지만 취재와 인터뷰에 들인 발품이 커 보인다. 미국경제 긍지의 철강노동자가 아마존 물류 지게차를 운전하고, 정부 조달업무를 아마존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텍사스 엘파소 문구사무업자들이 발버둥치고, 볼티모어 철거 주택의 고벽돌을 워싱턴 호화 아파트에 팔게 되는 개개인의 삶을 풀어내 지역경제라는 큰 그림과 짜맞췄다. 이에 비하면 존재조차 비밀이던 들판 한가운데 데이터센터 위장 출입문을 구별하고, 데이터업계 파티에 나타난 번호판 숫자 하나짜리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차량을 알아보는 건 뭣도 아닐 거다.

 

미국 로비산업 역사에 등장한 큰손 아마존 덕분에 화려해진 워싱턴의 변모가 읽기에 무척 흥미롭다. 한 시간 떨어진 노동자들의 도시 볼티모어의 몰락과 대조되며 두 도시의 양극화가 극명하다. 악착같이 세금노조만은 피하려는 아마존의 깨알 같은 노력은 뻔뻔하지만, 경쟁자 없는 세상에서 정부의 감시와 규제를 피하는 데 쓸 돈은 아끼지 않는다. 워싱턴의 정계, 로비스트, 안보산업 등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조사가 촘촘하고 방대하다. 아마존 제2본사가 완공된 후에도 워싱턴포스트 소유주가 베조스라면 워싱턴은 연방정부의 대표 도시가 아닌 아마존의 도시로 불리게 될 정도다.

 

시애틀을 다룬 장에서 길거리에 볼일을 보는 노숙자 언급이 있다. 뉴욕과 LA의 노숙자 문제와 다른 점은 갈 곳 없는 길거리 노숙자들 비율이 더 높다. 문제는 시민 92%가 트럼프에 반대했던 이 진보의 도시가 노숙자 텐트를 다 밀어버리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크레인이 세워진 초번영 도시 시애틀의 집값 상승으로 이득을 본 중산층들이 자신은 마땅히 이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고 그 이면의 대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2018년 시애틀 주거 문제 해결에 쓸 조세안 타협을 아마존이 이틀 만에 뒤집은 배경일 것이다.

 

책을 다 읽어갈 무렵 시애틀 편에 비중 있게 나온 케이트 윌슨이 시애틀 시장으로 선출된 기사가 나왔다. 옥스퍼드 졸업 6주를 앞두고 돌연 시애틀로 와서 지금껏 시애틀의 역진적인 세금 정책에 맞서 대중교통부터 노숙자 문제까지 이십여 년을 활동가로 살아왔다고 소개된다. 책 속의 인물을 오늘 뉴스로 보다니 반갑고 기대된다. 또 한 명 기억할 이는 리나 칸이다. 일명 아마존킬러. 왜 기존 미국독점금지법으로는 플랫폼 기반 경제의 아마존이 제어가 안 되는지를 처음으로 밝힌 예일대 로스쿨 졸업논문 이후, 바이든 정부 때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빅테크 기업들을 압박하고 소송을 이끌었다. 트럼프 2기에 현직에서 물러났다. 괜찮다. 한창 젊다.

 

철도 시대에 선로를 지배한 자들이 기차에 실어 나르던 석탄 산업까지 장악하며 양쪽에서 이익을 취했듯이, 플랫폼 세상에서 그 일을 아마존이 반복한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의 월마트라고 하기엔 팬데믹으로 절호의 기회를 잡은 아마존의 성장이 너무 가파르다. 이제 곧 아마존 드론이 날아다닐 판이니 감시와 규제, 입법이 더 필요하다. 사나운 개라면 더 튼튼하고 정교한 목줄을 채우는 법.

열 살짜리 외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꾸중 대신 한 말을 떠올려보면 그는 베조스를 한눈에 알아본 거였다.

제프,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똑똑한 머리를 갖는 것보다 더 어렵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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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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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 살아봐야 수긍할 결론. ‘예술괴물‘ 비평서보다는 이를 소비하는 ‘인간괴물‘ 관객의 자아성찰 회고다. ‘얼룩 ‘론을 거부하던 저자는 알콜중독 회복을 통해 결국 사랑이라는 ‘열린 결말‘을 동아줄로 붙든다. 이 물에 물 탄 듯한 결론이 괴물+인간계의 복잡함이다. (표지 출생 67년으로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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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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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쟁이 계속되는 1650년대 유럽 피 묻은 거리에서도 음악과 예술을 붙잡고 사는 이들, 키냐르는 류트와 비올라가 사라지는 세월 동안 그들의 인생사와 당대 음악사를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낸다.


중심은 튈린과 하튼의 사랑. 떠나는 이는 남자가 아닌 여자다. 노작가가 아름답다, 아름답다를 연발하는 바다의 여인 튈린. 아름다운 목소리는 숨기고 비올라를 켜는, 길고 하얗고 머리는 새를 닮은 선장의 딸, 아무래도 반인반조 님프 세이렌이 모델인가. 그러니 어찌 하튼 옆에 머물 수 있을까.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떤 작은 틈에서 금이 가기 시작하는지, 그 실체를 깨닫게 하는 세심하게 포착한 대목들이 아름답다.

이곳에도 아쟁을 켜고 거문고를 뜯는 악공들과 은둔의 명인들이 넘쳤을텐데... 키냐르가 없는 것인가.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꾸는 꿈으로 상대를 길들이는 일이 아니다. 그 꿈들은 우리 각자가 홀로 경험한 것의 유령일 뿐이며, 따라서 오직 우리 자신하고만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_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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