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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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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혔다. 이게 작가 능력 덕분인지 내 기대치 탓인지는. <빛과 물질>과 연속된 정서는 한결같지만 의외성의 매력은 약하다. 그래도 반가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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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 위의 개
클로디 윈징게르 지음, 김미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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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과 개라니 궁금했다. 여든셋의 클로디 윈징게르. 이 독특함이라니. 와우 놀라며 읽었다. 생경한데 편안하고 아름답다. 한번 읽기엔 아까운 시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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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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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하로 웃음을 파는 광대처럼 자신을 직시하는 예리한 슬픔으로 관통하는 에세이. 몰라봐서 미안, 피츠제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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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오래 보기 - 진정한 관점을 찾기 위한 기나긴 응시
비비언 고닉 지음, 이주혜 옮김 / 에트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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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뉴욕타임스30년 만에 재출간된 애착을 상찬하지 않았다면 고닉의 80대는 덜 왕성했으리라. 그래도 2000년대 서평 열일곱 개와 70년대 에세이 일곱 개를 묶어 50년간의 에세이 선집이라 내세우는 건 베르소 출판사의 무성의이거나 나이든 작가의 글 욕심이다.


균형감 없는 책 구성이지만 읽는 재미는 전반부 서평들에 있다. ‘독자로서 고닉을 관찰할 수 있다. 고닉이 씹어대고 돌려 까고 드물게 누군가를 존중할 때 본인의 결핍과 욕구가 드러난다. 케이진의 불안과 트릴링의 전투력은 이미 본인 안에 있었던 거고, 매카시와 보부아르와 스탠턴에 대한 흠모는 외로워도 불안해도 고닉이 살고 싶은 인생일 것이다. 우크라이나 출신 노동자계급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유대인성에 대한 답은 아렌트 리뷰로 대신한다. 레이첼 카슨 서평이 그나마 가장 흥분하지 않고 사심 없이 쓴 경우가 아닐까.


기존 회고록이나 에세이보다야 오래보기』 『상황이 고닉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중산층에 대한 반감, 전후 유대계 남성작가들에 대한 경멸, 남자에 기댄 여자에게 느끼는 공포심, 결혼과 모성에 대한 거부, 자기 세대가 지녔던 비전에 대한 강렬한 자부심, 그리고 이루지 못한 소설가의 꿈을 에세이와 논픽션으로 해소하려는 열망.


본인 입으로 수주 만에 몰아서 읽었다는 설터. 팔십 할머니가 아흔 할아버지 평생 소설 전작을 몰아 읽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그래도 옹졸해 보인다. 설터도 당신처럼 말년에야 영광 좀 봤기로서니. 설터처럼은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할 테고 쓰고 싶지도 않을 테지만, 평생 한 이야기만 하는 작가의 당위로서의 발전을 요구할거면 본인부터 여기저기 원고 살짝 바꿔 실으며 우려먹지 말아야 한다. 특히 말레이 서평은 돌려 싣기엔 좀 살벌하다. 고닉 본인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글감이나 원고를 이리저리 재사용하는 경향을 변명하며 인정했다.


고닉 못지않은 회고록 인기작가인 메리 카의 에세이에는 누가 사실 따위 신경이나 쓰냐고내지르는 고닉의 인터뷰 한 대목이 인용됐다. 논픽션 작가들 사이에서 글쓰기 윤리와 관련해 문제시되는 발언이다. 고닉이 이십 대 좋아했다는 매카시는 회고록과 소설 모두 인정을 받은 작가인데 사실에 상상력을 덧입힌 게 밝혀져 고해성사를 치렀다 한다.애착』『도시』『공연을 읽을 때까지는 다 믿었다만, 이제는 고닉의 글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이 순수한 사실이라기보다는 고닉이 상상력으로 덧대고 버무린 재조립일 거라 여긴다. 레너드도 네티도 다. 많이는 말고 살짝만 손댔기를 바라면서.


고닉의 관점이나 페르소나가 썩 새롭지 않은데도 마치 제 발견인 양 영역 주장하는 게 의아했다. 저 시대 핫했던 뉴저널리즘 영향 아래 잡지들은 1인칭 퍼스널 저널리즘 기사를 쏟아냈고, 톰 울프는 뉴저널리즘이 소설을 대체하리라 호언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미국 내 뉴저널리즘의 신선함은 시들해졌고 남은 몇몇이 논픽션에 소설의 기술을 발휘한다. 그걸 고닉이 갈고닦아 발전시킨 게 퍼스널 내러티브이고 그 노하우를 담은 게상황』이다. 그러나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없다고 기존 소설을 논픽션이라 재분류할 필요까지야. 뒤라스와 제발트가 동의할 것 같지도 않다.


오래보기에서 다룬 책 몇몇이 올드해 보여 찾아보니 비슷한 때 나온 파라스트라우스앤지루의 국내 미출간 책 에세이가 있다. 읽었던 책을 재독삼독하며 자신을 발견한단다. 책을 통한 회고록이라고 봐야 하나. 고닉이 하고 싶은 건 서평이 아닌 자기 이야기일테니 무슨 책인들 상관있겠나. 단 고닉이 분석한 작가의 페르소나는 순전히 고닉 생각일 뿐이고, 읽는 이에 따라 다 다른 페르소나 다른 관점을 움켜쥘 테니 고닉을 계속 읽을지 말지 가늠이 될 터다.


의식화를 거친 타고난 수다 성향이 냉소와 훈계질이 될 때는 싫지만, 어머니와 네티가 보여준 여자의 일생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 걸 생각하면 다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존경스럽게 현역이다

고닉의 어머니는 아흔넷에 돌아가셨단다. 고닉의 펄펄한 기운은 더 오래오래 가기를. 건강하십시오. 고닉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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