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시련이 있다. 
여러 종류의 아픔과, 상실, 좌절과, 절망, 슬픔이 있다. 
아픔을 느끼는 정도는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두 다리를 잃은 '너'보다 
발가락 하나를 잃은 '내'가 더 비참하고 힘들 수있다. 
중요한 건, 
살면서 만나게 되는 이 수많은 시련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니나는 언니를 잃었다. 
그녀에게 언니는 정신적 지주이자, 롤모델이자, 친구이자, 안식처이자, 조력자이자, 스승이었다. 
그래서 언니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더욱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상실의 아픔과 삶의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책'을 선택했다. 
1년간 매일 1권씩, 365권의 책을 읽으며
그녀는 조금씩 스스로를 치유하고, 삶의 이유를 찾았다.  
 
 
내가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니나와 다르지만
책을 읽으며 느끼고, 얻는 것은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가 책을 통해 치유되고, 위안을 얻고,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삶의 진정한 이유를 찾았듯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마음의 안정과 사고의 확장과 자아의 성찰과 자존감 회복을 경험한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어제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오늘을 위해.... 
 
오늘도 읽어보자.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시릴 코널리 <조용하지 않은 무덤>)" -p.32-

"오랫동안 책은 내게 다른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삶의 슬픔과 기쁨과 단조로움과 좌절감을 어떻게 다루는지 내다보는 창문이 되어주었다. 그곳에서 공감과 지침과 동지의식과 경험을 다시 찾아버려 한다. 책은 내게 그 모든 것을, 그 이상의 것을 줄 것이다." -p.47-

"독서는 언제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가치 있는 노력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커피 타임과 학부모회 모임과 체력 단련 시간에도 빠질 수 있다. 할 일이 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계획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이 일을 할 시간이 있고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운이 좋은 것이고, 그 운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한 권씩 책읽기의 한 해를 결정한 다음에는 얼마나 많은 헌신이 필요한지, 얼마나 큰 즐거움을 얻게 될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따.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장단점을 논의하지 않았다. 내 선택에 대해 따지느니 그럴 시간이 있으면 그 선택을 실행하는 데 쓰는 편이 낫다." -p.50~51-

"세계가 이동하고 삶은 변한다. 경고나 이유도 없이 건강하던 누군가가 병이 들고 죽는다. 뒤에 남은 우리는 슬픔, 회한, 분노, 공포의 습격에 파묻힌다. 절망과 무기력함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세계가 다시 바뀐다. 새날이 오고 온갖 가능성이 제시된다. 내면에는 깊이 각인되고 절대 잊지 못할 고통과 슬픔의 경험이 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미지의 미래가 제시할 잠재력을 인식한다. 나는 `괴상한 세계`에 사는데, 그곳은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풍요롭고 경이적이기도 하다. 세상이 괴상하다는 것, 그리고 계속 굴러간다는 것을 둘 다 인정하는 데서 기쁨이 오고 회복력도 생긴다." -p.84-

"삶의 진실은 죽음의 불가피성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살았다는 경이에 의해 입증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로부터 삶을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그 진실을 승인한다. 내가 자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행복은 찾지 마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살아온 삶의 가치, 산다는 것의 순전한 가치가 그것이다." -p.100-

"이제 몸을 돌려 뒤를 봐야 할 시간이다. 뒤를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p.101-

"기억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 남자들은 나와 오랜 기간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과 나는 수천 순간들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오래전에 내가 가졌던 감성에는 지속성이 없었다. 그런 감정이 그립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런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페이스북 메시지에 웅크리고 있는 질문에 들려줄 대답은 있다. 난 예전에 너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p.166-

"전쟁은 폭발과 땅의 진동과 불이 휘몰아치는 인류의 폭풍이다. 무지와 증오와 탐욕과 자존심과 이기심과 권력에 대한 어리석은 사랑으로 인해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인위적인 자연 재해이다. ------ 그것은 조용한 땅과 친절한 사람들 위로 불의 폭풍처럼 닥쳐온다." -p.176~177-

"상상한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경험의 가치는 우리가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 않을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상이한 캐릭터들과 그들의 선택이 낳은 결과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삶의 슬픔과 기쁨을 영위하는 새롭고도 분명한 방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p.178

"하지만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삶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겪고 있는 바로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제 독서를 통해 나는 고통과 기쁨의 발견은 보편적인 경험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경험들이 나와 바깥 세계를 연결해준다는 것도 알았다. 친구들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겠지만, 친구들과의 사이에는 항상 장벽도 있고 숨겨진 구석도 있고 은폐된 감정도 있다. 책에서는 그런 캐릭터들이 속속들이 내게 보이며, 그들을 아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알게 되고, 내 세계에 살고 있는 실제 인물들을 알게 된다." -p.182-

"독서는 나의 상실과 혼란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두렵고 피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살아간다. 공포와 혼란감, 고독과 슬픔의 부담을 나누어 짐으로써 나는 내 부담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부담은 이미 멀어지고 있다. 나의 욕망은 다시 파종되고 나의 필요는 다시 심어진다. 나는 들장미 가시와 잡초가 돋아나지 않는 정원에 있고, 혼자가 아니다. 거기에는 잡초를 뽑고 태양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모두가 있다." -p.190~191-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떤 순서로 분배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그 순서를 결정하지 못한다면 집중을 못하게 되고 당신 삶은 균형을 잃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221-

"우리는 누구나 사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공간,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상기할 장소가, 우리의 의식 속으로 행복과 살아 있는 기쁨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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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참 안읽히는 봄이다.

의식을 깨우는 인문서도,
잠 못 들게 하는 소설도,
눈이 즐거운 그래픽 노블도,
마음 설레게 하는 그림 관련 책도
모두 잡으면 한달을 간다.

독서모임의 이번 책인 `그 많던 싱아는....` 역시
금새 읽겠지 라는 생각과는 달리
2주를 건성건성 붙들고 있었다.
그렇게 반도 못 읽은 상태에서 당장 독서 모임을 하루 앞두고 반나절만에 읽어버린.......

책 느리게 읽기로는 금매달감인 내가
반나절만에 장편소설을 다 읽었다는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 중 하나이다.
그만큼 이 책은 재미있다.
(깔깔 웃음이 나오는 의미의 재미가 아닌
글을 읽는 내내 그 작가만의 글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재미 말이다.)

나는 박완서의 글이 처음이다.
유명하면 일단 제쳐두고 보는 이상한 성격 탓일까?
아니면, 한국 소설은 비슷해 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초판 발행년도가 20년도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 대단한 책을
그간 나는 얏잡아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박완서.......
참 대단한 작가구나....
아니, 작가이기 이전에 참 대단한 여자구나 싶다.
일제시대부터 6.25 전쟁까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살아온 시간들이 소설의 옷을 입고 내 앞에 마주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켜켜히 쌓여 역사가 되고,
그저 살고자, 살아내고자 발버둥치며 선택했던 삶은
이념이라는 양날의 검 앞에 어느 쪽에 서든 상처를 남겼다.
그 시대를 살았던 내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들이 감수하고, 버티며 살아온 시절이, 세월이
새삼 가슴아프면서도 존경스럽다.

내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 새끼 배 안 곯게 하고,
내 집안을 무탈하게 건사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식민 상황에 적응하고,
대세인 이념에 동조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문득, 식민도, 전쟁도 경험 못한 지금에 사는 게
참 감사하다.

박완서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 말이 주는 느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모국어의 그 미묘한 느낌.......
이 감동을 어떻게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단말인가...
어느 한국말을 잘 하는 외국인이
이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말이, 우리 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란 말인가.....

벼르고 벼르던
우리의 대하소설을 접할 때인가보다.

"그러나 텃밭에는 먹을 게 한창일 때였다. 당장 따서 쪄낸 옥수수의 감미를 무엇에 비길까. 더위가 퍼지기 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 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 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 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p.97-

"내 꿈의 세계 창 밖엔 미루나무들이 어린이 열람실의 단층 건물보다 훨씬 크게 자라 여름이면 그 잎이 무수한 은화가 매달린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고, 겨울이면 차가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힘찬 가지가 감화력을 지닌 위대한 의지처럼 보였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p.135-

"시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꾀어 놓고 떠난 사람들 같지 않게 안하무인이었다. 어쩌면 자기 잘못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선수를 치느라고 그렇게 위세를 부리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친일파의 정상은 그렇게도 잘 참작해 주던, 그야말로 성은이 하해와 같던 정부가 부역에는 그다지도 지엄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p.253-

"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 -p.255-

"엄마는 상상력 속에서도 아들을 죽일 수가 없었으므로 계속 인민군으로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 -p.261-

"우리가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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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시릴 페드로사 지음, 배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근원은 어디인가?
나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세 개의 그림자`의 작가 시릴 페드로사가 그려낸
이민 3세의 뿌리 찾기 이야기.....

설렁설렁 무심한 듯 그어진 선들은
나무가 되고, 하늘이 되고, 사람이 되고, 풍경이 된다.

잔잔하게 그려진 시몽의 가족 이야기가
그의 그림처럼 무심하게 내 맘속을 파고든다.

책을 덮고 나니,
포르투갈이란 나라가 몹시 궁금해진다.
그림도구 챙겨들고 가보고 싶구나.....

"내가 하는 일에서 좋은 점 한가지.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면 여러 도시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거.
신기한 건
일곱군데 정도에서 살아봤는데도
어디 하나 그리운 곳이 없는.
사실....
어딜 가든 내 집 같이 느껴지긴 하는데.
어디에도 내 집은 없는지도?
어쩌면.
그런 건지도."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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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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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한다. 
어디서나 한번쯤은 들어봄직, 혹은 봤음직한
그런 이야기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한 장면 처럼
외딴 산장에 모인 사람들....
그들은 주인공이기도 하고, 주변인이기도 하다. 

아무런 연관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렇게 허무하게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더니
또 다른 이야기가 조금전 이야기의 마디마디를 숙주 삼아 기다랗고 꼬불거리는 이야기를 새끼친다. 

(어찌 보면 4개의 중단편 소설을 읽은 것도 같은 게
저번에 읽었던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 때엔, 장편인가? 하며 읽다 보니 단편이었다는....^^;)

책을 다 읽은 뒤 몇몇 후기들을 찾아 읽어보았다. 
대부분 이 소설을 미스터리 소설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죽음'이라는 글제를 놓고 끊임없이 무한재생산 되는 '천일야화'의 오마주쯤이라 해야 할까?

챕터 A의 결말이 챕터 B의 시작이 되고, 챕터 C의 가해자가 챕터 D의 피해자가 되는 .....

어느것이 진실이고, 어느것이 거짓이며,
어느것이 꿈이고, 어느것이 현실인지 모를...


최제훈의 이야기는 확실히 재미지다.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일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최제훈, 혹은 M, 혹은 Y, 연우, 세카이 라코, π(파이), 세헤라자데,........
혹은 무수한 누군가들에 의해 이야기는 변하고, 이어지고, 분열하고, 조합되어 끝없이 재탄생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나도 그 중 하나겠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하나이거나,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하나이거나......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π)처럼." 그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게 바로 당신이 갈망하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 아니었어?"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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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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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을 필두로 한 "밥상"시리즈 읽기. ^^
ㅋㅋㅋ

물론 이 책들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
그저 제목에 "밥상"이 공통적으로 들어간다는 것 뿐.....


<왕의 밥상>을 빌리며 전부터 목록에 넣어놓았던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와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도 함께 빌렸다. 
나의 책읽는 속도로는 3주에 책 3권은 당연히 무리이나 
왠걸~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 

3일만에 뚝딱 읽을만큼 <내 밥상위의...> 는 
쉽고도 재밌다. 

산전수전 다 겪은 거문도 출신 작가의 글은
그가 소개한 바닷것들처럼 싱싱하고도 차지다. 

비린 것을 싫어하는 나지만,
해삼의 식감과 미더덕의 향, 
광어회의 쫄깃함과 삼치구이의 넉넉함,
홍합의 찐한 맛과 새우의 달착지근함,
게의 부드러움과 미역의 미끈함은 정말 좋아한다. 

읽는 내내 소개하는 물고기, 조개, 해조류가
머릿속을 헤엄치다 혀끝에서 박차올라
입안 가득 파도처럼 침이 고였다 사라진다. 

섬은
사람 살기엔 외로울지 몰라도
입은 하나 외롭지 않겠구나 싶다. 


"몇 달 전,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들 부부는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아들이 마당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중략...) 아이 말대로 하자면, 학교에서 돌아오니 좆나게 큰 문어가 길에 올라와 있던 것이다. 앞뒤 볼 것 없이 책가방 벗어 던지고는 달려들었다. 둘은 뒤엉켰다. 문어는 아이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이를 악물곡 마당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니 서로 조르고 물어뜯고 패대기치는 전투를 한동안 치렀던 것이다.
<잘했다. 잘했어.>
크기가 크기인지라 부부는 말려서 팔 생각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가 기특한 소리를 했다.
<아부지하거 어무니하고 잡수라고 내가 목숨 걸고 잡았으니께 팔지 말고 잡수시오.>
그러니 어떻게 팔겠는가. 워낙 커서 하루에 다리 하나씩, 몸통은 마지막날, 이렇게 9일간 훌륭한 몸보신을 했으며 자기의 기운은 거기에서 나온단다. 문어가 대표적인 보양식이긴 하지만 그런 마음을 얻는다면 어떤 힘인들 안 나올까.
그 때부터 우리는 힘을 쓰지 않았다. 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사장이 채근하면 아들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 p.66~67-


"밤낚시의 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들 돌아올 때 찾아가는 역행의 맛이 있고 모든 소음을 쓸어낸 적막의 맛도 있다. 넓은 바닷가에서 홀로 불 밝히는 맛도 있고 당빛을 머플러처럼 걸치고 터우빈 마을길 걸어 돌아가는 맛도 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회 떠놓고 한 잔 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밤에 하는 짓이 몇가지 되는데 가장 훌륭한 게 이 짓이다." - p.100~101-


- p.112~113 "확률에 대해서 생각하다"


"고둥 - 철수와 영희의 소꿉놀이 같은 맛"
- p.203-


"무료함을 본격적으로 맛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은, 주인이 손을 떼면 그 자세 그대로 한정 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때였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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