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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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가 한밤중에 문 앞에 서 있다."


오랜만에 참 유쾌한 소설을 읽었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한스 라트가 쓴 이 장편 소설은
읽는 내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전개가 빠르고, 대사가 차지다. 
빵빵 터지는 유머는 아니지만
시종일관 입꼬리가 근질근질한
어찌보면 참 매너있는 유머다. 

사람의 몸을 빌어 신이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그가 신인지 그냥 정신병자에 불과한지의 판단은
각자의 몫....
하지만, 분명한 건
자기가 신이라 주장하는 그(혹은 그녀, 혹은 그들)이
그들과 접촉한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들을 변화시키며
세상은 점점 신이 처음 계획했던 그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아무것도 없는, 빅뱅 이전의 상태에서,
어찌보면 외로움으로 시작된 신의 천지창조....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인간들은
점점 신의 처음 창조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꿔간다. 
그런 인간들을 돕기위해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에 와
수고스럽게 역사의 순간순간을 함께 겪는
이 지극히도 인간적인 신....

"세계 종교치고 관점이 완전히 틀린 건 없어. 다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약간 틀릴 뿐이지. "
라고 아벨 바우만의 몸을 빌린 신은 말한다. 

어쩌면 나도 신을 만났을지 모른다. 
그(혹은 그녀)가 신인지도 모른채
그냥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신은 내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도 있다. 
신은 코앞의 자신을 못알아본 채
입으로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싸우는 인간들을
한심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이 바라는 건,
종교나 교리를 떠나
그저 자신의 피조물들이 
서로 잘 조화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 아닐까?

이 소설이 종교 소설은 아닌데 너무 심각해졌나?
^^;;;

아무튼 아주 재밌고 유쾌하고 맘 잔잔해지게 하는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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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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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소설은 제목만큼이나 시작 첫문장이 참 중요하다. 
적어도 난 그렇다. ^^
책을 고를 때에도 제목을 보고 고른 후,
첫 장을 펼쳐 첫 시작 문장을 읽어본다. 
첫 문장이 가슴으로 쏘옥~ 들어오는 책은
평론가 백명이 추천을 날리는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재밌고, 가슴에 남는다.
그것이 베스트셀러든 아니든....


이른 태풍이 올라오는 저녁,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하얀 눈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부드럽고 섬세한 문장들이
끝없이 펼쳐진 이국의 설경처럼 펼쳐진다. 
과하지도, 퍽퍽하지도 않은 딱 좋은 비유들이다. 
번역본이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실제 그의 모국어로 읽는 설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실,
나는 이 소설을 그저 어느 소설가가
시골의 한 게이샤와 나누는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저 작가의 글발로 아름답게 치장한
그렇고 그런 연애소설일거라
읽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치부했었다. 

그러나.....
하루사이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는 그렇게 치부될만큼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 어느 나라 말로 번역을 해놔도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작가였다. 
그의 책을 읽는 사람마다
그의 모국어를 배우고싶게끔,
그래서 원어로 그의 책을 다시금 읽고싶게 만드는
마법같은 힘을 지닌 작가였다 



하룻밤 사이에 내 감정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은 
이 소설.....
거센 바람을 타고 뿌연 밤 위에 흩뿌리듯 내리는 비가
차갑지만 포근한 함박눈이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눈을 감았다 뜨면
긴 터널 끝 눈부신 설국이 펼쳐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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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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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도 걸렸다. 
정신없고 마음 바쁜 4, 5월 내내 잡고있던 책을
드디어 읽어내다. 
역시 나는 멀티형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다. ^^;



일본의 꿈없고, 열정 없던 젊은이 중 하나였던 저자,
그가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천연균만을 이용한 빵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는 현재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서
'다루마리'라는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스트나 배양된 균을 사용하지 않고,
공기, 고택, 나무 등에 서식하는 천연 발효균만을 이용해 "일본식빵"을 만드는 이타루씨...
그는 빵을 만들고, 다루마리를 운영하는 것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마르크스니, 자본론이니, 돈의 순환이니, 부패니
이런 말들은 흘러가버리고
고소하고 시큼한 빵냄새만 맴돈다. 

모든 기업이, 가게가, 사업자가, 소비자가
그처럼 이윤추구와 이익 분배의 개념을 살짝 달리 하기만 한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건강한 생산자, 건강한 유통업자, 건강한 소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잠깐 해본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고,
일어난대봤자 또 다른 문제가 생길것이지만 말이다. ^^;


책을 덮으며,
가장 가슴에 강렬히 남는 것은.......

'다루마리'가 있는 물 좋고, 장인들이 모여사는
그 일본 시골마을에 가서
그가 만든 '일본식빵'을 한번 맛보고 싶다는 것!!
^^

뜬금없이 마무리는 "여행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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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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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었을 때, 내게서 평범한 세계는 사라졌다."



나는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질릴 때 까지 하는 버릇이 있다. 
물냉면이 그랬고, 
자갈치과자가 그랬고,
김건모의 노래가 그랬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랬다. 

'키친'이란 소설을 읽고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빠져
그녀의 소설을 사모으고, 읽고 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연달아 읽다보니 
그녀의 글쓰는 패턴이 보이고,
그 소설이 그 소설같은 느낌이 들어
결국 4권째인가 5권째인가에서 관두었었다. 

오늘,
집 바로 옆의 작은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호박군 책 읽을 동안 
얼른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을 고르다
다시 그녀를 만났다. 

'키친'을 처음 읽었을 때 처럼
그녀는 조분조분하고 차분하게 다가왔고
나는 그 익숙한 편안함에 다시 빠져들었다. 

짧은 소설 속 아르헨티나 할머니처럼 그녀는
낯설지만 편안하게 나를 안심시키고
나긋한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책을 덮고 나니
내 맘 속에 작지만 탄탄하고,
비슷한 톤의 색유리창이 반짝이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건물이 지어졌다. 
방방마다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들이 쌓여있고,
옥상엔 은은한 파스텔빛 만다라 모자이크가
영원히 오늘이 계속되기를 염원하듯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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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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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어느 날, 아침 해가 구름에서 나오고 있었고, 알랭은 파리의 거리를 천천히 지나는 중이었다."


이 늙은 거장이 이리도 재치있는 이야깃꾼이었다니...

사실 난 그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다. 
(심지어 내 책장엔 그의 소설이 2권이나 꽂혀있다. 
'농담',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레 짐작에 그의 소설은 딱딱하고 무거울 거라 
낙인을 찍어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유명한 것이라면 영화든, 책이든 배제해 버리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마흔의 봄에 처음 맞이한 그의 소설은
참으로 가벼우면서도 복잡하고,
유쾌하면서도 쓸쓸하며,
술술 읽히면서도 이해가 안간다. ^^;

장편이라 하기엔 왠지 아쉽고, 
단편이라 하기엔 왠지 긴 이 소설엔
4명의 친구가 나온다. 
짧게는 한페이지, 길어봐야 2~3장 정도의
짧은 챕터, 챕터들로 이야기는 연결된다. 

번역본 특유의 어법때문인건지,
아니면 나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얇은 두께에 비해 한번에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장을 넘기며 소리내어 웃었고,
심각하게 생각 속에 빠져들었고,
다음번에 다시 한번, 혹은 두번, 세번 읽어봐야겠다
다짐을 했다. 



"신앙이 없는 내 사전에 단 하나 성스러운 단어가 있으니 그것은 우정이다." -p. 32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
.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 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을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
.
.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 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P.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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