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6월의 어느 날, 아침 해가 구름에서 나오고 있었고, 알랭은 파리의 거리를 천천히 지나는 중이었다."


이 늙은 거장이 이리도 재치있는 이야깃꾼이었다니...

사실 난 그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다. 
(심지어 내 책장엔 그의 소설이 2권이나 꽂혀있다. 
'농담',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레 짐작에 그의 소설은 딱딱하고 무거울 거라 
낙인을 찍어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유명한 것이라면 영화든, 책이든 배제해 버리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마흔의 봄에 처음 맞이한 그의 소설은
참으로 가벼우면서도 복잡하고,
유쾌하면서도 쓸쓸하며,
술술 읽히면서도 이해가 안간다. ^^;

장편이라 하기엔 왠지 아쉽고, 
단편이라 하기엔 왠지 긴 이 소설엔
4명의 친구가 나온다. 
짧게는 한페이지, 길어봐야 2~3장 정도의
짧은 챕터, 챕터들로 이야기는 연결된다. 

번역본 특유의 어법때문인건지,
아니면 나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얇은 두께에 비해 한번에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장을 넘기며 소리내어 웃었고,
심각하게 생각 속에 빠져들었고,
다음번에 다시 한번, 혹은 두번, 세번 읽어봐야겠다
다짐을 했다. 



"신앙이 없는 내 사전에 단 하나 성스러운 단어가 있으니 그것은 우정이다." -p. 32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래. 나는 왜 틈만 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
.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 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자기 잘못을 고백하는 자는 패하리라.
.
.
.
사과를 하는 건 자기 잘못이라고 밝히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다는 건 상대방이 너한테 계속 욕을 퍼붓고 네가 죽을 때 까지 만천하에 너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이게 바로 먼저 사과하는 것의 치명적인 결과야."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P.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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