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아름답고 진실해 보이는 것은 삶이 다양한 것이라는 것을 그 가능성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25)
소설은 그러나 넋두리나 논리가 아니고 구체성을 가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감정적 자제와 논리의 육화를 요구한다.(31)
치유의 방법을 꿈꿀 수는 있지만 그것을 살기는 힘들다. 삶은 개인적 희원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정황 속에 있기 때문이다.(32)
그것들에서 삶은 이해하기 힘든 아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들의 주인공들은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삶은 열려 있는 아픔이지 닫혀있는 아픔은 아니다.(33)
자기는 일상적인 삶을 살지 않는 것처럼, 태연하게 남의 삶만 이야기하는 소설가란 속물이다라고 말하는 소설가를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도, 자기의 소설을 읽는 독자도 똑같은 속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36)
삶에 어떤 식으로든지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든 언어적 시도는 문학 작품이 될 수 있다.(67)
다시 말하면 억압적인 언어가 행복한 언어로 완전히 대체될 때까지이다. 그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우리는 올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 믿음만이 행복한 언어를 낳게 할 수 있다. 그 믿음이 믿음으로서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시작의 밑에 숨는 원리로 나타나야 한다. 다시 말해 나타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그 믿음이 근거하고 있는 억압적인 폭력의 거부와 깨어난 세계의 행복스러움을 새롭게 억압하는 정치 구호로 이용될 가능성을 갖는다.(90)
진정한 대화는 자료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논리적 어려움에 대한 토론을 의미하는 것이데, 분석정신이 헤이해지면 그러한 대화는 거의 불가능해지며, 자신의 주의 주장에 대한 과격한 옹호, 자신의 추상적 이론에 대한 비판에 접했을 때의 경련적 흥분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102)
공동체 의식이란, 대화에서 싹터 나오는 공감대의 확산이 발휘하는, 같이 있다, 같이 느낀다, 같이 판단한다라는 의식이다...동인지나 계간지의 중요성은 그것들이 그런 공동체 의식을 만들기 쉬운 자리라는데 있다...그 의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동인지나 계간지는 말의 엄정한 의미에서 동인지나 계간지라 할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발표 기관일 따름이다.(103)
세계에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는 절망적이지만, 이 세계는 아직 그러한 질문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이다.(115)
문제작 편향은, 선동적이고 충격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는 편견을 낳게 한다...때로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에 있어서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를 감추기 위한 허위 문제라는 것도 문학은 보여준다.(122)
예술은 넓은 의미에서 그 말의 제도성을 부숴 버리려는 달성하기 힘든 욕망을 동인으로 간직하고 있는 제도다. 그것은 제도를 파괴하려는 제도다...제도가 제도를 파괴하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은 역사의 간계이겠지만 사회는 문학이나 예술같은 제도를 만듦으로 사회의 부정적 폭발을 어느 정도는 해소한다.(129)
예술 속에서의 편안함이란, 현실 부정 속에서의 편안함이다.(140)
그러나 정말 힘있는 충격 효과는 사소한 것들의 집합에서 나온다. 과장되지 않은 사실들의 나열은 때로, 나아가서 대개 과장된 것들의 나열보다 훨씬 깊은 충격을 준다.(165)
부정적 힘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면 대개 힘을 잃게 마련인데, 문화적 공간이란 그 부정적 힘을 없애는 공간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문화는 더럽고 짐승스러운 것들을 더럽고 짐승스럽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173)
삶의 자리를 떠나는 문화란 관념이지 문화가 아니다...그것이 이론에 맞는가 안 맞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그것이 좋은 작품인가 아닌가를 따져야 한다.(174)
술 자리는 즐거워야 한다. 그곳은 울분을 터뜨리는 자리나 슬픔을 과장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술 자리에서 지나치게 슬픈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괴롭다...술이 인생의 무상함을 덮어 주는 마취제가 되어서는 안된다.(199)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 중에서 내가 보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문장을 많이 외는 것이다...좋은 문장을 외는 것은 나쁜 문장을 나쁘다고 인식하는 태도의 밑바탕을 이룰 수가 있다. 나 자신도 그런 잘못을 흔히 범하지만, 나쁜 문장은 겉치레가 많고 과장이 심한 문장이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는 겉치레를 않고 과장없이 사고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232)
죽음이 그 충일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부터, 육체는 그 충일감을 더욱 강조한다...견딜 수 없다! 들판에 나가 나는 행복하다고 외쳐야 할까 보다.(236)
* 괄호 안은 페이지
-김현, <두꺼운 삶과 얇은 삶>, 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