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만나뵙고, 집에 와서 고등학교 때 받았던 선생님의 편지를 뒤적거리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휴식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선생님은 너끈히 그런 사람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선생님과의 만남이 어떤 불변과 정체의 징후 이상이 될 수는 없을거라 불안스레 짐작했지만, 그런 느낌을 아예 버릴 순 없을지라도 나는 선생님과 더불어 충분히 잘 쉬었다. 한 시간 남짓한 만남에서, 나는 하소연했고, 선생님은 경청해주셨다. 그리고 예의 그 대답.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냐? 너나 잘 해라.'를 듣고야 말았다. 피식 웃으며 하시는 말씀. 나는 한창 얄미운 고참 이야기를 뇌까리고 있었는데, 일순 무안해졌다. '뭐 그게, 그 사람이 싫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부럽잖아요. 부러워서 한번 해본 소리예요.'
선생님은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새치가 하나 둘 늘고 있다. 나는 나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던 것인데, 선생님은 남과 비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며, 지금 받고 있는 기간제 교사 월급이 전 월급에 비해 50만원은 족히 적으며, 퇴직금조차 불안정하다고 장난처럼 말씀하신다. 물론 나는 선생님에게 현재 중요한 문제가 돈이 아님을 알고 있다. 선생님은 몇년 전부터 귀농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변색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갈지에 대한 두려움이 선생님의 가장 큰 두려움일 것이다. 아직은 모험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선생님과 헤어지며 난 3만원을 챙겼다. 도망가는 나를 붙잡고 3만원을 구기적 내 바지주머니에 찔러주셨는데, 결과적으로 선생님의 지갑은 빈 지갑이 되고 말았다. 책이나 사 읽으라고. 내게 처음 문학을 알려주셨던 선생님은 이제 소설은 읽지 않으신다. 선생님을 만나뵌지 어느새 7년째. 세월의 힘이랄까. 선생님은 변했고, 두말할 나위 없이 나도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은 사람을 쉬게 하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