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쎈연필 > 인간이 만든 틀과 자연이 주는 본성의 차이

형이 돌연 "넌 바울과 프란체스카의 사랑을 알 테지?" 하고 물었다. 나는 들어본 듯, 못 들어본 듯한 느낌이 들어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형의 설명에 의하면, 바울은 프란체스카의 시동생으로 그 두 사람이 남편의 눈을 피해 서로 사모한 결과, 마침내 남편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는 슬픈 이야기로, 단테의 『신곡』 어딘가에 적혀 있다고 했다. 나는 이 안타까운 이야기에 대한 동정보다도 이런 얘기를 새삼스레 꺼내는 형의 의도에 대해 적이 언짢은 의심을 품었다. 형은 냄새나는 담배 연기 사이로 시종 내 얼굴을 지켜보며 13세기인지 14세기인지 알 수 없는 먼 옛날의 이탈리아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사이, 불쾌한 기분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그런데 일단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갑자기 뜻밖의 질문을 내게 던졌다.
"지로, 어째서 세상 사람들이 중요한 남편 이름은 잊고 바울과 프란체스카만 기억하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
(……)
"난 이렇게 해석해. 인간이 만든 부부라는 관계보다도 자연이 일궈낸 연애 쪽이 훨씬 신성하니까.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옹졸한 사회가 만든 갑갑한 도덕을 벗어던지고 거대한 자연의 법칙을 찬미하는 목소리만이 우리의 귀를 자극하듯 남는 게 아닐까? 하긴 그 당시엔 모두들 도덕에 가담하지. 두 사람의 관계를 부정하다며 비난해. 하지만 그건 그런 사정이 생긴 순간을 수습하기 위한 도의적 충동, 다시 말해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것이고 나중까지 남는 건 아무래도 청천(靑天)과 백일(白日), 즉 바울과 프란체스카야. 어떠냐, 네 생각은?"
(……)
"지로, 그러니까 도덕에 가담하는 자는 일시적 승리자임엔 틀림없지만, 영원한 패배자다. 자연을 따르는 건 일시적 패배자이긴 해도 영원한 승리자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 일시적 승리자조차 될 수 없어. 물론 영원한 패배자다."

ㅡ 나쓰메 소세키, <行人>(234-23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