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사실 이 일을 하게 된 것이 같이 사는 친구가 이 잡지의 사진을 찍기 때문이었는데, 친구와 함께 포토에세이류의 꼭지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친구는 사진을 찍고, 나는 글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예전에 비슷한 코너가 없지 않았는데, 글 쓰는 이는 사진에 맞춰 쓰겠다 하고, 사진 찍는 이는 글에 맞춰 사진을 찍는다고 해 손발이 잘 안 맞아 사라졌다고 했다. 같이 사는 친구니 수월하지 않겠느냐고. 결정 되거든 연락달라고.
교정에 더해 매번 잡지의 커버스토리라는 것을 몇 줄 끄적였었고, 번번히 그닥 반갑지 않은 반응을 받아왔던 터라 의외의 제안이었다. 오늘만 해도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던가. 지면 채우는 데 새로운 아이템이 부족했던가. 그래도 은연중에 노루 꼬랑지만한 신뢰감은 같은 게 있긴 있었나.
내가 쓰는 글이나, 머리를 맴도는 생각이란 것은 언제나 도식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좀체 벗어나기 힘든 문법의 틀 안에 갖혀있기 마련이다. 문학을 하기 힘들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정치한 보고서를 쓰는 데 실패한 것도 대개 이런 탓이다. 그 별것 아닌 듯한 표지이야기라는 것도 몇 가닥 문장으로 구체적인 세계를, 섬세한 감수성을 길어 올리지 못하는 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되고만다. 사람을 만나도 할 말이 없고, 비슷한 이야기나 되풀이하게 되는 괴로움. 여러 다른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결국 가지들은 잘라버리고, 똑같은 몸통만 지겹게 쌓아두는 어리석음.
4월. 방갈로에서 바라본 해변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라는 표제어. '장 콕토는 사람의 귀 모양을 소라껍질에 비겼다. 잡답한 거리 한 가운데 멈춰 서서 파도소리에 귀기울인다'
2월. 개선문 앞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 사진,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다'는 표제어. '복잡하고 답답한 거리를 가르자. 두 다리와 네 바퀴 사이를 두 바퀴로 가로지르자.'
둘 다 퇴짜였다. 시를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