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모인 사람 중 반이 고시생. 한 사람은 내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동창 하나는 고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점점 술에 약해지는 것 같다. 아무도 무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어쩌면 과단성 있게 결정해야 할 일들과 치러야 할 일들 앞에 남겨진 셈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도 같다. 취하는 건지도 모르게 술을 마셨다.

 좁은, 덕분에 정갈하고, 한편으로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던 친구의 원룸. 그곳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나섰다. 잠이 덜 깬 채로 잘 가라, 인사하던 친구가 문득 나이 들어 보였다. 언덕배기를 내려와서 횡단보도를 건너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 밖을 보니 언덕 가득 원룸과 고시텔로 빼곡했다. 각각의 방향과 높이로 서 있던 건물들은 다른 듯했지만 비슷했고, 칙칙했다. 듣던대로 주변에 고시학원이 많았다. 미처 복개되지 못한 곳, 그 건물들을 가르던 커다란 도로 가운데에는 흐르기나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천이 하나 있었고, 그것에 뿌리를 내린 듯한 잡풀이 가득했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마주친 서울. 철로 주변의 고층 건물들. 좁은 공터 하나 없이 임립한 집들.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공사중인 철길이 완성되면 누군가  내 집 또한 그렇게 바라 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한강을 보며 내 굼뜬 열망도 조금씩 바깥으로 새어나오기를 바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