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가고 있다. 가끔 시간의 소리가 들린다. 몇 주 전 친구가 생일선물로 준 모래시계에서 나는 소리다. 검은 모래가 한 시간여 좁은 구멍을 타고 흘러 내린다. 그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아 유리 안을 찬찬히 바라보면, 눈에 잘 띄지 않아도 모래는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다. 다시 시간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실제로 모래는 멈추기도 한다. 나는 모래시계를 살짝 흔들어 본다. 여전할 때도 있고, 다시 흘러내리다 다시 멈추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한번 그렇게 멈추고 모래가 잘 흘러내리지 않을 때 모래시계를 흔들어 모래를 다시 흘려보낸다 해도 이내 다시 멈추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럴 땐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다. 모래는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시간의 소리도 돌아온다.
하릴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모래가 다했을 때를 유심히 살피고 다시 시계를 돌려놓는 일에 왜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성실성을 약속하며 다시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일기마저 쓰지 않고 모래시계를 돌려 놓는 일에 심한 자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책으로 채찍 삼아 나를 길들이는 수밖에는 나 자신을 위한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