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외롭다 문학동네 시인선 34
김승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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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연속된 결정의 순간들 속에 우리는 잠시도 긴장감과 불안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마치 잔잔한 파도 위에 떠 있는 상태인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잔잔한 파도 뒤에 숨겨진 커다란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커다란 파도를 바라보며, 그것에 부딪혔을 때의 결과를 예상하면서 공포에 떨고, 절망 속에 시련을 맞이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고자 한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희망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처럼 절대적인 힘,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엇으로 인식되어 왔다. 모두들 희망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하지 않았지만 ‘희망이 있어 다행’이라며 고마운 눈초리로 안도를 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희망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진리로 자리매김하였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문학에서 역시 희망은 일관되게 밝고 긍정적인 존재였다. 적어도 김승희가 이 시집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승희는 시집 <희망이 외롭다>에서 이 시대에서 희망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작가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남발되고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희망이란 무엇이고,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가 되묻는다. 희망이라는 단어만이 속 빈 껍데기처럼 떠돌아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희망이라는 껍데기 속에 진실된 희망은 존재하고 있는지, 만약 희망이 보이지 않아 되찾아야 한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이 시대에 희망을 버리지 못해 되려 희망이 고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는 이 시대에 희망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희망을 염려하고 있다.

 

1. ‘희망’ 그 본연의 모습

 

작가는 ‘하물며’, ‘아직’, ‘이미’, ‘어쨌든’, ‘비로소’, ‘아랑곳없이’라는 말에서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쉽게도 홀로 설 수 없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절망 끝에 달려 있거나, 절망을 외면하는 경우에 대부분 위치한다. 이토록 희망의 위치는 위태위태하다. 그러나 위태위태한 것이 희망의 본연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믿는다. ‘덜어내고도 다시 고이는 힘’인 희망은 ‘매화’처럼 ‘힘이 세’다고 말이다.

 

 

2. ‘희망’이 변색될 수밖에 없는 우울한 공간

 

그러나 이 말들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우울해진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서울’이라는 곳을 연작으로 엮어 자세히 지켜보고 있다. 서울의 현실을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희망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이 차디찬 공간을 ‘얼어붙은 입이 자꾸 구겨지며 피가 터지도록’ 안타까워하며 아파한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내가 내 이름으로 사는 것이 힘든’ 공간이자, ‘자살도 깊이 들여다보면 타살이라고 할 증거가 너무 많’은 곳이라며 비판한다. 그러한 도시에서 희망은 결여되어 있다. 작가는 희망이 결여된 순간을 포착하여 시 속에 담아낸다. ‘골목마다 어린 소녀를 따라가는 성추행범이 많’고, ‘성폭행 하고 손목까지 잘라 유리컵에 꽂아놓는 미친놈이 많’다. ‘손바닥 뒤집는 거짓말’이 많으며, 그 ‘손바닥 뒤집는 그 손바닥들로 하늘이 자욱하’다. 거짓이 난무하고 범죄가 폭발하는 이 공간에서는 ‘법’도 ‘허전’한 상태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살벌한 도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차디찬 얼음같은 도시에서 끝없이 피를 쏟아내면서도 도망갈 수 없는 이유는 작가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기 때문에, 이 우울할 수밖에 없는, 희망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공간을 바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공간 속에서 과연 희망은 존재할 수 있는가, 또한 희망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인지, 만약 희망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와야 할 것인가 작가는 고민하며 도시를 서성인다.

 

3. 마지막 ‘희망’을 찾아서

 

작가는 이내 ‘낙원역’을 찾고자 한다. 끝내 그는 마지막 희망을 저버릴 수가 없다.

결국 그가 택한 희망을 찾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하면 오늘이 오늘이 아니고 자기는 자기가 아니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요’ 하며 오늘의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 작가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부인하기에 이른다. 심지어는 ‘밀가루가 바람에 날아가듯 세상의 오만가지 자아가 원심력의 궤도를 타고 날아간다 아니 궤도 따위는 없다 얼굴 없는 시간이 된다’ 며 절망적인 ‘현재’를 완벽하게 지움으로써 희망을 품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달걀’처럼 ‘냉장고 위 칸에 희고 얌전히 꽂혀 있’을 뿐이다. 시인에게 삶은 이미 냉장고 안처럼 너무나 춥다. 현실을 춥디 추운 곳으로 인식하고 벗어나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냉장고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희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내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품을 수밖에 없어서, 희망은 절망보다 더 외롭다.

 

4. 희망은 외롭다

 

작가는 이 시대에 존재하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끝내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힘겨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절망적인 공간에 사는 우리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단순히 가라앉음으로써 끝낼 수 있는데, 마지막 ‘희망’이라는 말이 끝까지 남아서 놓아버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더욱 힘겹다고 한탄한다. 작가는 희망까지도 놓아버릴 정도로 힘겨운 이 시대를 아프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끝내는 세상과 시대가 희망을 놓아버려야 할 정도로 어렵게 돌아가고 있지만, 희망은 끝까지 남아 ‘더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며 위안한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은, 아니, ‘이 시대의 희망’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 외롭고도 힘겨울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희망을 지킨다는 것은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중지할 수 없는, ‘희망과 나’는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이어진, ‘희망은 종신형’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작가에게 ‘희망은 외로운’ 것이다.

 

등단 40년을 맞이하여 <희망이 외롭다>를 발표한 김승희 시인은 작품집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희망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희망이란 원래 그 존재방식이 위태한 것은 사실이나,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위험하고 잔혹한 이 공간은 희망을 숨쉬기 힘들게 만들었고,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점점 희망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것이 끝내 놓아지지 않아, 아니 더욱 더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려 희망을 가지고 있기가 너무나 힘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버릴 수 없는 희망은 종신형이 되고야 말았고, 이 시대의 희망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처럼, 이 시대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그래서 희망이 숨쉴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희망이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면서도 아프게 희망을 지켜내고자 하는 시인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이 종신형이라 하더라도, 희망이 외로운 상태라 하더라도 그래도 희망을 염려하고 외치고 있는 작가가 있어서 희망적이지 않은가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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