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들 1
밥 존스턴 지음, 박정태 옮김 / 굿모닝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제는 We Were Burning = '우리는 불타고 있었다'이다. 일본어 표현을 영어로 옮긴 거라는데, '한 번 해보자'하면서 투지를 불태우는, 뭐 그런 모습인 듯하다. 왠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지었을 표정이 연상된다.

요즘 TV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연구진이 난관을 무릅쓰고 기술을 개발하거나 시장을 개척했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다큐멘터리의 일본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수많은 기술들(전자계산기, 레이저프린터, CD 등등)의 태동과, 특히 그 속에서 일본인 과학자, 기술자들이 이룩해낸 업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학기술정책이나 산업의 역사를 논할 때 보통 일본식과 서구식을 대비시키는데, 이 때 일본식이란 뭐랄까, 정부의 지휘 하에 각 기업이 일사불란하게 협조하고 움직여 서양의 첨단기술을 적절하게 모방하고 나름대로 편리한 모습으로 만들어낸다는 그런 이야기다. 이 책은 이런 통상적인 이야기를 반박하면서 시작한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기술은 애초에 미국 등 서양에서 처음 개발된 것이고, 일본인들은 이 기술을 도입해서(라이센스) 제품으로 만들거나 개선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럼 왜 처음 그 기술을 개발해낸 서양 과학자들은 일본인들에게 그런 기회들을 넘겨 주었는가? 왜 자신들은 더 진전을 시키지 못했는가? 이 책은 벨연구소를 비롯한 서양의 유명 연구소들과 이제는 친숙하게 된 소니 같은 일본 굴지의 기업들의 명암의 역사를 몇 가지 반도체 관련 제품의 개발 역사를 통해 함께 엮어가고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늘 궁금했던 것, 일본은 겉보기에는 매우 획일적이고 우리보다 더 답답한 교육, 기업 문화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혁신적일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은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흥미진진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힘들었던 부분은 우선 여러 일본인 기업가나 엔지니어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었고, 또한 기술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뒤쪽으로 갈 수록(2권으로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해져서 줄거리르 압도할 정도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 책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흥미 있어 보이는 이는 우선 1권을 읽어보기 권한다. 그러나 2권은 1권에 비해서는 다소 진부해보였다. 어쩌면 2권을 먼저 읽어도 지장은 없을 듯하다. 반도체 산업에 정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두 권이 부담스럽진 않을 것이다. 번역자가 소망하듯이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 책과 같은 대접을 받을 날이 곧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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