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지키던 소나무숲 조경용 팔아넘기다니…


강원 송림리 주민들 허탈
100년 넘은 나무들 파헤쳐
힘모아 공사저지 나섰지만
사유지 막을 길 없어 발동동


» 김낙기씨가 27일 오전 강원 강릉시 연곡면 송림1리 마을 인근 소나무 파내기 현장을 지켜보다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송림리인데….”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1리 김낙기(70)씨는 100년 넘게 마을을 지켜주던 소나무숲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소나무숲은 마을의 한 부분이었는데 사유지라고 외지인이 팔아넘기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허탈해했다.

28일 송림리 주민들은 시민운동 단체인 강릉 생명의 숲 회원들과 함께, 닷새째 벌어진 소나무숲 이식작업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송림1리와 2리 사이 밭두둑에 약 200m 길이로 펼쳐진 숲에는 가슴높이 지름 42㎝, 높이 10m 가량인 소나무 50여그루가 서 있다. 이 가운데 37그루를 파내기 위해 굴삭기와 삽으로 인부들이 뿌리 주변을 떠내 줄로 동여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한때 실력으로 파내기 공사를 저지하기도 했지만, 사유지에서 벌어지는 합법적 공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주민 김황식(53)씨는 “4년 전 밭을 매입한 서울의 부재지주가 지난해 조경회사에 소나무숲을 팔아넘겼다”며 “마을 사람들이 솔잎혹파리 방제작업을 하는 등 애써 가꾸지 않았다면 숲이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홍동선 강릉 생명의 숲 고문은 “지난 15일 소나무를 강릉의 명품으로 키워나가겠다고 추진위원회까지 발족시킨 강릉시가 마을의 상징이자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강릉시도 이 숲의 경관과 공익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뾰족한 보전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릉시는 땅주인에게 소나무 반출에 필요한 소나무재선충 감염 여부 확인증 발급을 거부했지만, 최근 강원도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았다. 박종환 강릉시 보호계장은 “시에서 땅을 사들이지 않는 한 (소나무숲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8일 소나무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개정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 시행령이 발효됐지만, 이 지역이 재선충 발병 지역이 아니어서 이들 소나무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주민 정정순(64)씨는 “오대산 찬 바람을 막아주던 당당한 소나무들이 이제 수도권 아파트의 정원수가 돼 약물을 매달고 연명하게 될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강릉/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사진 박종식 기자                       2007. 3. 28


 

 

ps. 요즘은 모든 일이 자본의 논리로 돌아간다. 돈이 된다면 그 속에 어떤 세월,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한낱 휴지조각이 될 뿐이다. 자본의 논리 아래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 어디 한둘이냐... 돈의 논리로만 가격 매겨져 사들이고, 팔리고, 파헤쳐지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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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제품1호’ 유에스비포트
‘나눔제품1호’ 유에스비포트

나눔유에스비포트는 우리나라 나눔상품 1호다. 제품 판매 금액의 일부를 떼어 기부하거나 기증받은 일부 제품을 판매해 모은 수익금을 나눔에 쓴 적은 있지만 나눔 자체를 목적으로 기획, 생산, 판매된 제품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이 제품은 최근 1만1364개 상품 전량이 모두 팔렸고, 매출액 3억6천만원은 모두 국제적인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기부됐다.

이 제품에는 많은 이들의 땀과 정성이 깃들여 있다. 지에스칼텍스는 2억5천만원에 달하는 제작비와 억대의 비용이 드는 마케팅 및 홍보 업무를 맡았다. 지난해 유에스비포트판매와 함께 벌인 주유 마일리지 기부캠페인을 통해 모은 3천만원에 회사 돈 5천만원을 보탠 8천만원도 가난한 대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추가로 기탁했다. 자회사인 넥스테이션 직원들은 제품을 발송하려고 ‘야근 봉사’를 했다.

나눔 목적으로 첫 기획·생산·판매
뜻모은 업체들 제작비·디자인 분담
3억여 매출 전액 월드비전 기부
“나눔이 나눔을 낳자는 뜻에서 U자 하나 덧뭍였지요”



» 지에스칼텍스 박필규 과장, 이은희 월드비전 후원개발팀 간사, 이노디자인 김성준 팀장(오른쪽부터)이 ‘대한민국 나눔상품 1호’인 나눔유에스비포트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나눔유에스비포트의 판매에는 디자인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 제품의 디자인은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인 이노디자인에서 기부했다. 김영세 대표는 월드비전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궁극적인 가치는 바로 ‘사랑으로 출발하라’입니다. 월드비전을 통해 국내 최초의 자선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접했을 때 이것이야말로 디자인을 통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적극적인 참여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김 대표는 월드비전 활동의 뿌리인 예수님을 상징하면서도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멋드러진 십자가를 디자인에 담았고, 제품 이름은 Nanuum으로 지었다. 우리말로 읽으면 나누움이다. 유(U)자를 하나 덧붙인 것은 나눔이 나눔을 낳고 나눔이 나눔을 이어가도록 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제작사인 아이오셀은 고가의 금형을 공짜로 제공했고 유에스비포트를 컴퓨터에 연결했을 때 곧바로 동영상이 뜨도록 하는 기술도 탑재했다. 이 기술로 인해 이 포트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한비야 긴급구호팀장이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손’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이 나온다.

나눔유에스비포트의 탄생과 전량 판매는 우리 사회 나눔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기획부터 생산과 판매까지 1년3개월의 여정을 바라보면서 가장 기뻐했던 이는 이 제품을 처음 기획한 월드비전 후원개발팀 이은희 간사다.

그가 나눔상품을 기획하게 된 것은 2005년 12월. 전재현 후원개발본부장이 영국의 나눔상품에 대한 기사를 전해주면서다. 영국의 세계적인 그룹 유투(U2)의 리더 보노는 자선브랜드 ‘레드’를 만들어 소비와 나눔을 이을 수 있도록 했다. 애플, 모토롤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의류회사 갭(GAP), 신발회사 콘버스 등이 참여해 자사 제품에 레드 상표를 달았고 판매액의 일부를 에이즈 사업에 기부하고 있다.

이 간사는 그보다 더 창조적인 상품을 만들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소녀가장 집에서 다친 아이를 안고 있다. “이 아이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가치있는 아이들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모으는 나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 고민과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번 제품이었다.

이 간사는 이제 두 번째 나눔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실용적이면서도 크게 부담되지 않고 쓸 때마다 나눔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상품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다. 문구류쪽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지에스칼텍스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나눔 상품을 계속 개발해 소외된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권복기 기자, 사진제공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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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운' 미국 도서관 13곳 돌아보니...
 
» ‘부러운’ 미국 도서관
한겨레신문사와 삼성,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지난 11~19일 가장 앞선 도서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미국을 방문했다. 무려 89개의 도서관이 밀집해 있는 뉴욕과, 지역 커뮤니티와 도서관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리고 ‘모두를 위한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워싱턴주 3곳을 찾았다. 일주일 동안 둘러본 미국의 다양한 도서관들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한국의 도서관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 미국 뉴욕공공도서관의 어린이 도서관인 도넬 분관 서가 모습. 어린이 책이 나이대별로 세분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서가에 분류돼 있다.

대형 열람실 없고 카페 분위기

지난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번컴 카운티에 있는 팩 메모리얼 도서관. 어린이실 한 귀퉁이에서 3~6살 아이 6~7명이 귀를 쫑긋 세운 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다. 스토리 텔링 시간이다. 선생님은 책장을 넘겨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중간에 잠깐 덮고 노래를 불러준다. 손수 기타를 튕겨 가며. 그리곤 아이들을 모두 일으켜 세워 같이 춤을 춘다. 6살 조슈아는 “너무 재미있다. 매일같이 (스토리 텔링이 있는) 수요일이면 좋겠다”며 밝게 웃었다.

‘라지 프린트’(large print; 큰 활자)라는 표지가 붙은 책장 앞에서는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4명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목들을 살펴보고 있다. 왼 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책을 고르던 한 그리섬(72)은 “5년 전부터 일주일에 나흘 정도는 도서관에 온다.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벽 쪽에 있는 서가로 가보니 벽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는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앉아 낚시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한 아주머니는 서너 권의 책을 펼쳐놓고 뭔가를 베끼고 있다.

일주일 동안 둘러 본 미국의 도서관들을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운영 방식, 예산 및 장서 규모, 사서의 수, 운영 프로그램 등 저마다 특색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의 도서관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주민을 위한 열린 도서관은 그 무엇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다. 미국 도서관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우체국이나 소방서, 동사무소, 시민체육센터처럼 지역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시는 아예 ‘모두를 위한 도서관’(Libraries for All)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지난 1998년부터 대대적인 도서관 신설 및 정비 작업을 벌이고 있을 정도다.


■ 책읽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가 기본…곳곳에 소파 놓여 편하게 독서

둘러본 13곳 도서관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대규모 열람실은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1~2인용 책상이나 소파가 놓여 있다. 사람들은 서가 사이에서 벽장에 기댄 채 책장을 넘겨보다가 더 편하게 읽고 싶을 땐 책상이나 소파로 옮겨 앉았다. 간단한 메모 공책을 가져와 중요한 대목을 옮겨 적거나, 노트북을 열어 타이핑하는 모습도 흔하게 띄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 캐피톨힐 분관은 편하게 책을 읽도록 벽 사이에 거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해 놓고 있었다. 마침 그 공간에서 영화 잡지를 보고 있던 사무엘 리치몬(21)은 “집에서보다 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며 “비번일 때나 주말에 자주 찾는다”고 도서관 예찬론을 폈다.

널따란 책상은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보거나 지도책을 뒤적이는 노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장소. 철학서적을 읽듯 진지하게 신문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 늦은 나이에 러시아어를 배우겠다고 러시아어 교본을 보고 공부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무위고(無爲苦)’라는 단어를 무색케 했다.

서가의 구조 또한 책읽는 사람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했다. 군대 열병식처럼 줄을 딱딱 맞춰 배치된 서가 대신 사람들의 동선을 고려해 자연스럽고 편한한 느낌의 서가가 들어서 있었다. 채플힐 공공도서관 케이 엘 톰슨 관장은 “픽션·논픽션 코너와 참고도서(레퍼런스북) 코너, 신문·잡지 코너, 어린이 코너 등을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서가 높이도 적절히 조절해 편의성을 최대한 높였다”고 설명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도 각 서가의 층이 약간의 경사를 두고 죽 이어져 있고, 바닥마다 책 분류 번호가 크게 적혀 있어, 원하는 책을 곧바로 찾을 수 있는 편리성을 극대화했다.

편리성은 이동도서관 운영에서도 확인된다. 상당수 도서관이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책을 무료로 배송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의 분관인 ‘와싱톤 말하는 책과 브래일 도서관’은 관내 도서관들의 배송 요청을 전담해주는 독특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신청땐 무료 배달

■ 풍부한 장서와 다채로운 프로그램…책 외에 음반 등 자료 무궁무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뉴욕 공공도서관은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 중심으로 구성된 연구도서관 4곳과 지역별로 거미줄처럼 설치된 분관 85곳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곳의 도서자료는 무려 1억점이 넘는다. 한 곳당 약 110만점의 도서자료를 갖고 있는 셈이다.

도서자료는 단지 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의 비중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이밖에도 시디, 음반,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디브이디, 오디오북, 이(e)북(전자책), 사진, 영화필름, 무대의상, 포스터, 악보 등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뉴욕 공공도서관 도넬 분관은 16㎜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작품 8500점을, 미드맨해튼 분관은 출판·광고업자,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위한 사진컬렉션만 1만2천점을 소장하고 있다. 미드맨해튼 분관 사서 월수 리(72)는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모든 것이 장서”라고 설명했다.

특히 오디오북은 미국 도서관에서 특색 있고 인기를 끄는 도서자료다. 도서관마다 오디오북 코너가 따로 있고, 그 곳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권까지의 책이 꽂혀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 도넬 분관 조안 로자리오 선임사서는 “오디오북은 차를 타고 가면서나 집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책이라는 장점이 있다”며 “하루에만 1천권 넘게 대출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5권 정도의 오디오북을 빌련간다는 산 안드리아(34)는 “아이들 침대 맡에서 들려주기에 딱 좋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독서토론 모임, 스토리 텔링, 숙제 지원, 영유아 서비스, 가족 서비스, 직업 상담, 건강정보센터 운영 등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심지어 이력서 첨삭강의, 자영업자 센터까지 두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전문 사서들보다는 지역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지원을 받는다. 예컨대 숙제 지원은 대학생들이, 독서 토론은 교수나 연구자들이, 직업 상담은 컨설턴트들이 해주는 식이다.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지역내 도서관에 없다면 다른 도서관 프로그램을 찾거나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한다.

채플힐 공공도서관 매기 하이트 사서는 “공공 도서관의 제일 목표는 지역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공공서비스와, 정보화 사회에서 필요한 고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디지털 서비스는 미래도서관의 핵심…도서관끼리 소장 책 목록 공유

1996년 벤튼재단이 미국 시민 101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이 미래의 공공도서관에 요구하고 있는 역할 가운데 디지털과 종이매체의 정보자원을 결합한 복합 서비스가 중요하게 꼽혔다(60%).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높은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에 걸맞게 미국 내 어느 도서관을 가더라도 인터넷 서비스는 기본이다. 인구 1만명이 안되는 작은 동네도서관에 가더라도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가 최소한 2대 이상 설치돼 있다. 노트북을 가져와 쓸 수 있도록 무선인터넷 환경도 거의 대부분 구축하고 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 캐피톨힐 분관 낸시 슬로트 관장은 “인터넷이 안되는 도서관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디지털 서비스를 위해 미국 공공도서관들은 저마다 ‘오피에이시(OPAC; Online Public Access Catalog)’라는 종합정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관내 장서에 대한 목록 정보를 검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출 상태를 확인하거나 및 희망 도서 대출을 예약할 수 있게 해준다. 또 희망도서 구입을 신청하거나, 도서관 이용이나 도서 정보에 대한 질문을 올리고 답을 받을 수도 있다.

오피에이시는 도서관끼리 도서자료를 서로 공유해서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도 제공한다. 가령 어떤 책을 검색했는데, 관내 도서관에는 없고 다른 도서관에 있다면 온라인으로 대출을 예약해서 받을 수 있고, 자기 동네에서 빌린 자료를 다른 도서관에 반납할 수도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 58번가 분관 존 박 완딘 관장은 “주 또는 카운티마다 관내 모든 도서관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고 했다.

■ 학생, 학교와 손잡은 공공도서관…학교숙제 도와주는 서비스까지

도서관은 나이,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가장 긴요하게 이용하는 층은 학생들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미국 공공도서관들은 갖가지 학습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최근 몇년 동안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히 고안된 다양한 프로그램과 과외활동을 운영해 오고 있다. 우선 5개의 분관에 ‘숙제 도움 센터’가 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와서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숙제에 대한 도움을 받는다. 숙제 도움은 인터넷으로 가능하다. 8개의 분관에서 온라인 숙제도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시애틀 시내에 8곳이나 된다. 6~12살의 학생들에게 숙제 도움, 컴퓨터 교육, 읽기와 쓰기 능력 향상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3개 도서관에는 ‘부모 자원센터(parents resource center)’가 있는데, 부모가 어떻게 자녀의 학교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얻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은 학교 수업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뉴욕 공공도서관 도넬 분관은 교사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수업을 도서관에 와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도서관 조안 로자리오 선임사서는 “아이들 수업을 위한 교실을 따로 마련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채플힐 공공도서관 카보로 분관은 아예 학교 안에 설치돼 있다. 1995년부터 맥더글 초·중학교 안에 있는 학교도서관을 공공도서관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1만8천명으로 극히 적은 이 지역 주민들은 관내에 공공도서관을 갖게 됨으로써 차로 40분 넘게 걸리는 채플힐 도서관에 가는 불편을 덜게 됐다. 제임스 레러 사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공공도서관 담당 사서가 각각 1명씩 있어서 유기적 협조를 하기 때문에 운영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지역민들도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뉴욕·애쉬빌·채플힐·시애틀/글·사진 박창섭 기자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에 있는 수와나노아 도서관. 사서 2명인 작은 도서관으로 주민들의 휴식공간 기능도 하고 있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 이 도서관을 찾은 60대 주민이 응접실처럼 꾸며진 열람실을 이용하고 있다.

미 공공도서관 10곳중 8곳 ‘작은도서관’의 힘!
인구 2만 5천명 미만 지역 도서관 ‘주민 활동센터’ 역할

미국 도서관은 17세기 청교들에 의해 세워진 작은 규모의 개인도서관에서 시작됐다. 이 도서관들이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공공성 개념이 등장했고, 작은도서관들은 점차 각 주나 카운티가 예산지원을 하고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미국의 작은도서관들은 개인이 만들어 운영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 공공도서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인구 규모로 볼 때 미국 작은도서관은 2만5천명 미만 지역에 세워진 도서관을 말한다. 전체 공공도서관의 약 80%가 작은도서관이다. 인구 2500명 미만이 사는 지역에 있는 작은도서관도 3천개에 육박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 있는 스와나노아 도서관이 이처럼 아주 작은 도서관에 속하는데, 상근 직원이 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 작은도서관은 규모와 상관없이 도서관의 고유기능인 장서 구비, 대출, 참고 서비스, 인터넷 서비스 등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수와나노아 도서관 사서 그리프 포드는 “카운티 공공도서관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운영에 별다른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각 주들은 작은도서관이 지역의 활동센터로서 주민과 지역단체를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장서 구입, 인터넷 환경 구축, 사서 교육에 있어서 도심 도서관과 차별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년 전 빌 게이츠 재단에서 받은 200만달러 기금 가운데 상당액을 작은도서관에 투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작은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매년 시상도 한다. 미국 공공도서관협는 1991년부터 인구 1만명 이하 지역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보인 공공도서관을 선정해 ‘최우수 작은도서관 서비스상’을 주고 있다. 또 2004년부터 라이브러리 저널과 빌게이츠 재단이 공동으로 모범적인 업무를 하는 작은도서관을 찾아내 ‘베스트 작은도서관상’을 시상한다.

박창섭 기자

 

 

ps. 이런 글을 보면 부러운 건, 가지지 못한 자의 동경...

내가 사는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운대 지역엔 신도시 건설 후 엄청난 인구가 불어났음에도,

나 어릴 적 이용하던 낡고 작은 건물의 시립도서관 한 곳만이 유일하다.

신도시가 생겼으니 좀더 크고 현대적 건물의 도서관도 하나 생기겠지? 하며 동생이랑 이야기나누며

기대하던 게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수많은 건물들이 새로이 생겼건만, 그 중에 도서관은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왜 이런 데에는 인색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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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교’ 7년 성적표, 이만하면 100점 아닌가요?
한겨레 권복기 기자 이정아 기자
»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지난 2000년 설악산 오색약수터 부근 마을로 내려온 우성숙씨는 단희(왼쪽), 남호 두 아들이 커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시골 생활 7년째, 설악산의 너른 품속에서 자란 두 아이는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단아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속초/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자연 속에서 ‘파랑새’ 찾은 우성숙씨네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취직을 위해, 취직이 되면 직장에서 살아남고 승진하기 위해, 나이가 들면 자녀들을 위해 참고 희생해야 한다. 행복한 시간은 늘 미뤄진다.

우성숙씨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그는 아이들의 행복이 미래에 있지 않다고 봤다. 지금 행복하고, 오늘이 행복하고, 그런 오늘이 쌓여가면 아이들의 인생은 행복할 것이라고. 2000년 4월, 우씨는 두 아들과 설악산 오색약수터 부근 마을로 내려갔다. 사업을 하는 남편 김우석씨는 주말부부를 감수하기로 했다. 우씨는 아이들에게 유명 학원과 과외 대신 자연과 시골 생활을 스승으로 줬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우씨와 아이들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았을까?지금의 행복을 왜 미루나

지난주 우씨는 시댁의 상을 치르러 대구에 갔었다. 주위에서 큰아들 단희 때문에 다들 한마디씩 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힘든 세상에 고등학교에도 보내지 않는 게 말이 되냐는 거였다. 시골 고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남호(17·양양고1)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씨는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씨는 자연이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다고 믿는다.

두 아이는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랐다. 여름이면 부근 남대천에서 멱을 감았고 겨울이면 차에 썰매를 달고 도로를 질주했다. 특히 산을 좋아하는 단희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대청봉에 올라간 적도 있다. “길가의 나무까지 기억한다”고 했다.

남호는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지난해 겨울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남호는 우씨에게 부탁해 서울 학원에 등록을 했지만 금방 내려왔다.

“여기서는 바깥에서 친구를 만나 공을 차고 농구를 하고 남대천에서 목욕을 하고 그렇게 노는데 서울의 학생들은 친구를 학원에서 만나요. 친구가 될 수가 없어요.”

두 아이는 설악산 자락에서 자연 못지않은 스승들도 만났다. 첫 스승은 단희와 남호의 담임을 맡았던 오색초등학교의 한 교사였다. 우씨는 그가 만든 상장을 보여줬다.

‘책임상, 남호는 한 번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구나. 곶감 만들 새끼를 꼬는 일도 열심히 하였고, 공 찰 때는 세 번이나 넘어졌지만 벌떡 일어나서 뛰었지. 우리 반 모두는 이런 남호를 칭찬하여 상장을 준다.’

“아이들에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아침밥 먹고 오기와 엄마가 아침상 차리는 것 도와주기가 숙제였는데 숙제 검사를 해서 아침밥을 먹지 못한 아이에게는 라면을 끓여주시곤 했습니다.”

또 다른 스승은 같은 동네에 사는 신명환씨. 사부님으로 불리는 신씨는 아이들에게 걸림없는 삶을 보여줬다. 쌍절곤, 장봉술, 낙법 등 무술부터 골프와 스킨스쿠버까지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어린 제자’에게 가르쳤다. 차에 태우고 가다 내려놓고 집으로 찾아오게 만들기도 했다. 단희는 중학교 때 신씨로부터 술을 배웠고 물론 금방 끊긴 했지만 담배도 배웠다. 심지어 성교육도 받았다.

“신 선생님은 못하게 막아 아이들이 갈망하도록 하기보다 스스로 해보고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해 선택하도록 하셨어요.”

명상 선생님도 생겼다. 우씨에게 명상을 가르쳐준 류성천씨. 아이들이 고민이 생기면 “사람이 살다 보면 된똥을 눌 때도, 무른 똥을 눌 때도 있다”며 편한 말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이다.

물론 가장 큰 스승은 우씨다. 그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줬다.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늦잠을 자도 그냥 뒀다. 남호는 시험기간에 늦잠을 자서 2교시까지 시험을 보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교복 다림질까지 혼자 한다. 솜씨에 놀란 이들이 물으면 “엄마가 안해주면 이렇게 돼요”라며 웃는 아이들.

7년 전 도시학교 벗어나
자연 선생님에 내맡겼다
스스로 공부하며 한의사 꿈꾸는 첫째
남 위할 줄 알고 제 생각 단단한 둘째
“이곳에 오길 잘했어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우씨를 자주 놀라게 했다. 단희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사형제와 관련해 토론이 벌어졌다. 담당 교사도 사형제를 옹호하던 상황. 단희 혼자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강도가 너희 가족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단희는 “누구나 잘못을 합니다. 그 사람도 참회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또래보다 어른스러워서 그런지 단희는 자신보다 서너살 많은 친구가 많다. 단희의 꿈은 한의사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서울 노량진의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고 있다. 어려서 만화 동의보감에 푹 빠졌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천식이 심한 짝의 상태를 병상일기처럼 기록했던 그다.

학교생활과 친구를 좋아하는 남호는 공부를 잘해 ‘특별반’에 뽑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놀기도 좋아하고 운동도 잘해 ‘인기짱’이다. 친구들은 남호의 마음씀씀이를 좋아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학시험을 앞두고 남호가 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러 간다는 거였다. “너 공부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친구 가르쳐 주고 남는 시간에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습관적으로 학생들을 때리던 한 교사의 수업 시간을 앞두고 칠판에 ‘폭력은 싫어요’라고 써놓고 반 아이들을 몰고 남대천에 놀러 갔을 정도로 배짱도 있다. 3학년 때는 친구가 양보해달라고 하더라며 ‘따논 당상’이었던 전교 회장 출마를 포기했다.

“오히려 제가 욕심이 생겼는데 남호는 쉽게 내려놓더라고요.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스스로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커가길 바랍니다.” 우씨의 유일한 바람이다.

속초/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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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3-2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어머니세요. 담아갈게요~
 

[말들의 풍경] <51·끝> 한국어의 미래
한국어의 세계화, 다양하고 알찬 학습교재 마련이 우선이다


교재를 여러 언어로 다양하게 마련해놓는 것은 외국인들의 한국어 학습 의욕을 북돋우는 길의 하나다. 길을 잘 닦아 놓으면, 그 길로 들어서 산책을 할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수천에서 1만 여에 이른다는 자연언어들 가운데, 그 말을 쓰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한국어의 순위는 어디쯤일까? 개별 언어와 방언의 경계를 긋기가 쉽지 않아서 한국어의 순위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흔히 아랍어라 부르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 언어를 그 고전적 형태(문어 형태)에 주목해 한 언어로 간주하면, 한국어의 순위는 아랍어보다 크게 뒤질 것이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사뭇 다른 구어 형태의 아랍어들을 서로 다른 언어로 친다면, 한국어는 그 각각의 아랍어들(이집트 아랍어, 알제리 아랍어 등)보다는 큰 언어다.

이렇게 기준이 물렁물렁하긴 하지만, 순위를 얼추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과 해외의 한인공동체 인구를 7,500만 남짓으로 잡으면, 그 사용자 수로 볼 때 한국어의 순위는 12, 13위 정도 된다. 1억 가까운 사람이 쓰는 독일어보다는 작은 언어지만, 7,200만 남짓 되는 사람이 쓰는 프랑스어보다는 큰 언어다. 수천이 훨씬 넘는 언어들 가운데 12, 13번째로 사용자가 많다는 것은 한국어가 매우 큰 언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12, 13위라는 순위만큼 한국어가 위풍당당하지는 않다. 우선, 순위의 앞머리 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베이징어(보통화), 스페인어, 영어의 사용자 수가 3억에서 9억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고작 수천만의 화자를 거느린 한국어의 비중은 탐스럽지 않다. 남한 인구가 정체 상태에 있는 데다가 북한 인구는 심지어 줄어드는 추세여서, 적어도 단기적으론 한국어 사용자가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12, 13위라는 순위가 어떤 자연언어를 제1언어(모어,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매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어의 상대적 위세는 훨씬 더 초라해진다. 사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수천개의 자연언어 중 한국어의 순위는 12, 13위
제2, 3 외국어로 배울 매력적인 조건들도 많지 않아

한국어 학습 외국인들“학습교재 단조롭고 부실” 불만
정부 추진 세종학당도 효율적 학습교재 마련돼야 실효

영어가 베이징어보다 훨씬 작은 언어고 심지어 스페인어보다도 약간 작은 언어라고 할 때, 그것은 이 언어들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수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3억2,000만 남짓으로 추정돼 3억3,000만 남짓으로 추정되는 스페인어 사용자보다 조금 적다.

그러나 영어를 스페인어보다 비중이 작은 언어로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영어는 지구 행성의 보편어에서 그리 멀지 않는 국제 교통어의 지위를 이미 확립했지만, 스페인어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일부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제 모국어에 이어서 배우는 언어는 베이징어나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다. 영어는 스페인어나 (9억인의 모어인) 베이징어보다 비중이 큰 언어인 것이다.

한국어는 모국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매긴 순위보다 교통어로서의 순위가 사뭇 떨어지는 언어다. 그것은 한국어공동체 바깥에서 한국어가 그리 매력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제1언어로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은 제1언어로 프랑스어를 익히는 사람보다 많지만, 한국어가 프랑스어보다 더 비중있는 언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프랑스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수억 명에 이르겠지만, 한국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아주 늘려 잡아도 수백만 명 정도일 테니 말이다.

교통어로서의 비중만 보면, 한국어는 모국어 화자가 6,000만이 안 되는 이탈리아어보다도 덜 중요한 언어다.

그렇다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다시 말해, 외국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이 질문은, 자신이 배울 외국어를 고르는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뭘까라는 질문과 관련돼 있다.

사람들은 우선,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를 배우고자 한다.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언어의 커뮤니케이션 폭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나 교통어 화자가 가장 많은 영어는 이 언어들이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제2언어 후보가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를 사람들은 배우려 들고, 그러니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7,500만 남짓의 인구집단은 이 언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규모다.

그러나 모어 화자가 이렇듯 많은 데 비해, 한국어를 교통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한국어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이 가까운 과거에 이르기까지 그리 크지 못했고, 한국인들이 역사의 오랜 기간 국제교류에 소극적이었다는 뜻이겠다.

이 점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익히는 사람이 지금 적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다음, 첫 번째 조건과 부분적으로 겹치겠지만 중요성에서는 아마 으뜸으로, 사람들은 제게 경제적 이득을 베풀 언어를 제2언어로 배운다. 사람들이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를 제쳐놓고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려 드는 것은 영어가 경제활동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회사에 일자리를 얻으려 해도 영어를 다소 아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에서 영어는 각급 학교의 필수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고를 권한을 학생들에게서 박탈할 만큼 영어는 온 세상의 교육과정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것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의 경제적 힘과 관련이 있다. 북한과 함께 한국어 사용권의 핵심부를 이루는 남한 지역의 경제적 활력은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베트남이나 몽골처럼 한국과 경제관계가 긴밀해진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셋째, 사람들은 문화 영역의 자아 실현을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 여기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허영심이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는 스페인어에 견주어 모어 화자가 훨씬 적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을 뺀 대부분 지역에서,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이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거기엔 프랑스어권에서 축적된 문화가 스페인어권에서 축적된 문화보다 더 풍요롭다는 판단이 개재돼 있다. (거기엔 또 부분적으로 정치적 이유가 개재돼 있다.

한 때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스페인 못지않게 넓은 해외 식민지를 경영했던 프랑스는 오늘날 유럽연합이나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스페인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발언권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들의 문화적 허영심을 만족시킬 매력이 한국어에는 넉넉하지 않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한반도 문화는 고전중국어로 다시 말해 한문으로 축적됐고, 한국어가 문화의 도구로서 본격적으로 행세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한 세기 남짓 전이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은 배우기 쉬운 언어를 배운다. 다시 말해 제 모국어와 문법 유형이 비슷하거나 어휘가 닮은 언어를 익히려 한다. 일본의 경제력은 프랑스를 포함한 프랑스어권 전체보다 크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 수는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적다.

그 이유의 큰 부분은, 앞에서 시사했듯, 프랑스어로 축적된 문화가 일본어로 축적된 문화보다 더 매력적으로 비친 데 있겠지만, 대부분의 언어권 사람들에게 일본어가 배우기 너무 어려운 언어라는 사정도 거기 포개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세계적 규모로 행사하는 경제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 다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몰려 있다.

최근 들어 그 관계가 뒤집히긴 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스페인 사람들이 제2언어로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선호했던 것도 영어보다는 프랑스어가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와 더 닮아 배우기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관효과’라 부를 만한 것도 학습동기 부여에 간여한다는 점을 지적하자. 사람들은, 꼭 제 모국어와 닮지 않은 언어일지라도, 서로 닮은 언어들이 많은 언어를 배우고 싶어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나 이탈리아어를 배우기는 쉽다.

네덜란드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독일어나 덴마크어나 영어를 익히는 것도 쉽다. 그러나 동아시아 바깥 사람이 일본어를 어렵사리 배워보았자, 그 ‘연관 효과’로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정도다. 그러니 일본어는 동아시아 바깥 사람들에게는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한국어도 같은 처지다.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들이 그나마 일본에 꽤 있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 확대되고 있는 교류나 어찌해볼 수 없는 지리적 근접성말고도, 일본사람들이 배우기에 한국어가 비교적 쉽다는 데 그 이유의 한 가닥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로 앞에서 내비쳤듯,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언어를 외국어로 배운다. 최근 프랑스어를 제치고 스페인어가 미국인들의 제2언어로 떠오른 것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지역 대부분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데다가, 미국 사회 안에 스페인어를 쓰는 이민자가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인접 효과가 지리적 인접 효과를 상쇄하는 경우도 있다. 루마니아나 폴란드나 세르비아 같은 중부 동부 유럽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프랑스보다 독일과 더 가깝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외국어로서 독일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선호한다. 그 나라들에 이런저런 이유로 프랑스 애호가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최근 늘어난 것도, 일본인들에겐 한국어가 비교적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사정에다가, 지리적 문화적 인접성(‘한류’에 대한 친화감을 포함해)이 포개지며 나타난 현상일 테다.

이런 모든 조건들을 따져서 판단할 때,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울 사람이 앞으로 크게 늘 것 같지는 않다.

한국어권 경제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학습 동기를 유발할 다른 요인들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어를 배울 의욕을 북돋을 길은 있다. 그것은 사전을 포함한 한국어 학습 교재를 될 수 있으면 여러 언어로 다양하게 마련해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과 대학과 연구소가, 한국어학자와 외국어학자와 교육이론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한 외국인들이 흔히 투덜거리는 것이 너무 단조롭고 부실한 학습 교재에 대해서다. 일리가 있는 불평이다.

좀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서 이 언어를 배우길 우리가 바란다면, 그런 투덜거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 세울 예정이라는 세종학당도 다양하고 효율적인 한국어 학습교재가 마련된 바탕 위에서야 제 구실을 할 것이다. 한국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조붓한 길이다. 시원하게 뚫린 한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성스레 닦아놓으면 그 길을 산책로로 골라 거닐 사람이 왜 없으랴.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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