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학교’ 7년 성적표, 이만하면 100점 아닌가요?
한겨레 권복기 기자 이정아 기자
»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지난 2000년 설악산 오색약수터 부근 마을로 내려온 우성숙씨는 단희(왼쪽), 남호 두 아들이 커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시골 생활 7년째, 설악산의 너른 품속에서 자란 두 아이는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단아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속초/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자연 속에서 ‘파랑새’ 찾은 우성숙씨네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취직을 위해, 취직이 되면 직장에서 살아남고 승진하기 위해, 나이가 들면 자녀들을 위해 참고 희생해야 한다. 행복한 시간은 늘 미뤄진다.

우성숙씨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그는 아이들의 행복이 미래에 있지 않다고 봤다. 지금 행복하고, 오늘이 행복하고, 그런 오늘이 쌓여가면 아이들의 인생은 행복할 것이라고. 2000년 4월, 우씨는 두 아들과 설악산 오색약수터 부근 마을로 내려갔다. 사업을 하는 남편 김우석씨는 주말부부를 감수하기로 했다. 우씨는 아이들에게 유명 학원과 과외 대신 자연과 시골 생활을 스승으로 줬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우씨와 아이들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았을까?지금의 행복을 왜 미루나

지난주 우씨는 시댁의 상을 치르러 대구에 갔었다. 주위에서 큰아들 단희 때문에 다들 한마디씩 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힘든 세상에 고등학교에도 보내지 않는 게 말이 되냐는 거였다. 시골 고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남호(17·양양고1)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씨는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씨는 자연이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고 있다고 믿는다.

두 아이는 자연 속에서 뛰놀며 자랐다. 여름이면 부근 남대천에서 멱을 감았고 겨울이면 차에 썰매를 달고 도로를 질주했다. 특히 산을 좋아하는 단희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대청봉에 올라간 적도 있다. “길가의 나무까지 기억한다”고 했다.

남호는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지난해 겨울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남호는 우씨에게 부탁해 서울 학원에 등록을 했지만 금방 내려왔다.

“여기서는 바깥에서 친구를 만나 공을 차고 농구를 하고 남대천에서 목욕을 하고 그렇게 노는데 서울의 학생들은 친구를 학원에서 만나요. 친구가 될 수가 없어요.”

두 아이는 설악산 자락에서 자연 못지않은 스승들도 만났다. 첫 스승은 단희와 남호의 담임을 맡았던 오색초등학교의 한 교사였다. 우씨는 그가 만든 상장을 보여줬다.

‘책임상, 남호는 한 번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구나. 곶감 만들 새끼를 꼬는 일도 열심히 하였고, 공 찰 때는 세 번이나 넘어졌지만 벌떡 일어나서 뛰었지. 우리 반 모두는 이런 남호를 칭찬하여 상장을 준다.’

“아이들에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아침밥 먹고 오기와 엄마가 아침상 차리는 것 도와주기가 숙제였는데 숙제 검사를 해서 아침밥을 먹지 못한 아이에게는 라면을 끓여주시곤 했습니다.”

또 다른 스승은 같은 동네에 사는 신명환씨. 사부님으로 불리는 신씨는 아이들에게 걸림없는 삶을 보여줬다. 쌍절곤, 장봉술, 낙법 등 무술부터 골프와 스킨스쿠버까지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어린 제자’에게 가르쳤다. 차에 태우고 가다 내려놓고 집으로 찾아오게 만들기도 했다. 단희는 중학교 때 신씨로부터 술을 배웠고 물론 금방 끊긴 했지만 담배도 배웠다. 심지어 성교육도 받았다.

“신 선생님은 못하게 막아 아이들이 갈망하도록 하기보다 스스로 해보고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해 선택하도록 하셨어요.”

명상 선생님도 생겼다. 우씨에게 명상을 가르쳐준 류성천씨. 아이들이 고민이 생기면 “사람이 살다 보면 된똥을 눌 때도, 무른 똥을 눌 때도 있다”며 편한 말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이다.

물론 가장 큰 스승은 우씨다. 그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줬다.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늦잠을 자도 그냥 뒀다. 남호는 시험기간에 늦잠을 자서 2교시까지 시험을 보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교복 다림질까지 혼자 한다. 솜씨에 놀란 이들이 물으면 “엄마가 안해주면 이렇게 돼요”라며 웃는 아이들.

7년 전 도시학교 벗어나
자연 선생님에 내맡겼다
스스로 공부하며 한의사 꿈꾸는 첫째
남 위할 줄 알고 제 생각 단단한 둘째
“이곳에 오길 잘했어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우씨를 자주 놀라게 했다. 단희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사형제와 관련해 토론이 벌어졌다. 담당 교사도 사형제를 옹호하던 상황. 단희 혼자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강도가 너희 가족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단희는 “누구나 잘못을 합니다. 그 사람도 참회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또래보다 어른스러워서 그런지 단희는 자신보다 서너살 많은 친구가 많다. 단희의 꿈은 한의사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서울 노량진의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고 있다. 어려서 만화 동의보감에 푹 빠졌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천식이 심한 짝의 상태를 병상일기처럼 기록했던 그다.

학교생활과 친구를 좋아하는 남호는 공부를 잘해 ‘특별반’에 뽑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놀기도 좋아하고 운동도 잘해 ‘인기짱’이다. 친구들은 남호의 마음씀씀이를 좋아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학시험을 앞두고 남호가 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러 간다는 거였다. “너 공부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친구 가르쳐 주고 남는 시간에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습관적으로 학생들을 때리던 한 교사의 수업 시간을 앞두고 칠판에 ‘폭력은 싫어요’라고 써놓고 반 아이들을 몰고 남대천에 놀러 갔을 정도로 배짱도 있다. 3학년 때는 친구가 양보해달라고 하더라며 ‘따논 당상’이었던 전교 회장 출마를 포기했다.

“오히려 제가 욕심이 생겼는데 남호는 쉽게 내려놓더라고요.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스스로 행복하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커가길 바랍니다.” 우씨의 유일한 바람이다.

속초/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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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3-2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어머니세요. 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