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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살림집에 ‘전통’ 숨결 불어넣다
옛 방식으로 집짓는 목수 박충수씨

생땅 나올때까지 땅 파고 집터도 바닥에서 1M이상 높게
못하나없이 나무로 뼈대 짜맞추고 짚 넣은 황토 벽돌 쌓아올려

» 전통 건축 방식으로 나무와 흙을 써서 집을 짓는 박충수씨는 옛날 집짓기 방식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애쓰는 목수다. 박씨는 생활하기 편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며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그런 집을 지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인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300년은 가야 제대로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다 그렇게 집을 지었어요.”

박충수(48)씨는 전통 집짓기를 현대 살림집에 되살리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민족 전통 건축이야말로 미학적으로나 견고함이나 에너지 효율면에서보나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궁궐, 사찰, 재실 등은 옛날 방식으로 짓지만 살림집을 그렇게 짓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안타까워 한다.

박씨는 나무와 황토 등 천연재료를 써서 전통적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 경남 산청과 강원도 인제에 짓고 있는 한옥은 터닦기부터 일반 주택과 다르다. 그는 콘크리트 기초 대신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터를 만든다. 생땅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고 그 위에 자갈과 흙을 넣고 다진다. 1미터 이상 땅을 판 적도 있다. 맨 위에는 황토로 채운다. 집터도 바닥에서 1미터 가량 높게 한다. 땅에서 올라온 물기운으로 기둥이 썩기 때문이다.

“궁궐이나 전통 한옥 모두 방바닥이 땅보다 1미터 이상 높습니다. 그래야 집이 수백 년을 갑니다.”

뼈대도 전통 짜맞추기 방식으로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 만든다. 뼈대는 그 자체로 지붕을 떠받칠 수 있다. 짜맞추기는 설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략 150개의 부분으로 이뤄지는 뼈대는 하나만 틀려도 모두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설계가 치밀해야 한다. 두달 이상 설계를 한 적도 있다. “많은 집들이 벽체로 지붕의 무게를 떠받치도록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벽체를 헐어도 뼈대와 지붕은 고스란이 남아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단열위해 창에 한지 바르고 지붕에 60Cm 두께로 황토 올린다
구들방도 하나씩 꼭 만든다…가장 효율적인 난방법 이기에

황토는 벽체, 마감재, 단열재로 쓴다. 그는 짚을 넣은 황토 벽돌을 쓴다. 이물질은 황토의 좋은 성분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참나무숯, 톱밥 등 여러 가지 천연물질을 넣고 벽돌을 찍어 봤지만 짚이 최고였다. 마감재로 쓰기 위해 느릅나무껍질, 찹쌀풀, 다시마물 등 주위에서 좋다는 재료는 모두 써서 황토를 반죽했다. 신통치 않았다. 오랜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황토는 물로 반죽해 적당한 시간동안 숙성시켜야함을 알게 됐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분을 머금고 내뱉는 작용이 떨어진다고 한다.

박씨는 전통 방식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다. 전통은 현대 문화에 맞게 되살려야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통 한옥은 외풍이 세고 화장실, 부엌 등 생활공간이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그 마저 고집하면 과거에 얽매이는 겁니다.”

그의 이런 철학은 지붕과 창에 담겨 있다. 그는 옛날 방식대로 지붕에 60㎝ 두께로 황토를 올린다. 단열을 위해서다. 황토는 1m 두께일 경우 불을 때면 이틀이 지나야 온기가 느껴지고 이틀 이상 지속될 정도로 단열효과가 크다. 그럼에도 요즈음 지붕은 값이 비싼 기와 대신 화학제품인 아스팔트싱글을 덮어 지붕이 뜨거워지기 쉽다. 박씨는 황토와 함께 아스팔트싱글과 지붕사이에 틈을 내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지붕의 열을 앗아가는 방식을 고안했다.

창도 그렇다. 현대인들은 창을 크게 낸다. 단열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창 안쪽에 전통 창살문을 만들고 한지를 바른다. 한지는 통풍성이 뛰어나면서도 단열효과가 큰 소재라고 한다.

박씨는 집을 지을 때 구들방을 하나씩 만든다. 그는 구들도 오랜 시간 연구를 했다. 그가 만든 구들은 통나무 3개를 집어 넣으면 30분 안에 따뜻해지고 24시간 온기가 지속된다고 한다. 구들도 아랫목은 조금 뜨겁게 윗목은 미지근하게 되도록 한다. 방 안에 온도차가 있어야 공기가 순환되기 때문이다. 그는 “공기도 머물러 있으면 탁해지고 썩는다”고 말했다. 구들의 ‘전설’인 경남 하동군 칠불사의 아자방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선사가 아()자 모양으로 구들을 만들어 그렇게 불린 것으로 한 번 불을 때면 한 달 반 동안이나 따뜻했다고 전해진다.

“한 번 열을 받아서 그렇게 오래 열을 머금을 수 있는 소재가 어디 있습니까. 아자방의 비밀은 숯가마처럼 불을 꺼트리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들이야말로 선조들이 남겨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가장 효율적인 난방법입니다.”

박씨는 숨겨지는 곳이 없도록 집을 짓는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봐도 알 수 있어야한다는 게 그의 건축관이다. 그가 지은 집이 그렇다. 집을 둘러보면 안팎으로 숨겨진 곳이 없다. 그가 지은 집은 예쁘고 야무지다. 모든 소재가 정직하게 다 드러나있다. 그는 그런 집을 닮았다. 산청/권복기 기자

“할아버지가 유명한 도편수…
몸 안에 ‘목수 피’ 가 흐릅니다”

» “할아버지가 유명한 도편수…몸 안에 ‘목수 피’가 흐릅니다”

박씨는 집짓는 일을 복짓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의 집짓기는 돈벌이를 위한 게 아니다. 곶감을 만들어 팔아 한 해에 2500만원을 번 적이 있는 그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살 수 있다.

그가 1년에 짓는 집은 2~3채에 불과하다. 공사비는 재료비에 품삯만 얹어서 받는다. 집을 지어달라는 사람이 끊이지 않지만 다 지어줄 수가 없다. 대신 전통 집짓기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오면 누구에게나 알려준다.

그는 자신이 목수가 되리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적성검사 결과 겉을 보면 뼈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건축가가 되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도 흘려 들었다. 중2 때 <장자>에, 고교 때는 프로이트에 심취해 정신세계에 몰두했었다.

17년전쯤 그는 경남 산청의 시골마을을 지나다 한 마을에서 재실을 짓는 것을 보고 마음이 끌려 무작정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일이 너무 재미있어 목수를 모시고 다방에 가서 하루에 한 두 가지씩 기술을 배웠다.

“3년쯤 지나니 혼자 집을 짤 수 있겠더군요. 이상하게도 다른 분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르는 거예요.”

목수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작은어머니가 “너네 할아버지가 유명한 도편수였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 목수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는 매번 다른 집을 짓는다. 같은 집을 지어본 적이 없다. 집터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햇볕은 물론 아침 저녁으로 바람 방향이 바뀌는 것까지 고려해 집을 짓기 때문에 그는 설계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는 재주가 있으면서 생각이 바른 사람들을 찾아 자신이 10여년 동안 연구한 전통 집짓기 기술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전통 집짓기 기술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재주가 있으면서 생각이 바른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권복기 기자                                                                                                                  200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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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존 것을 나혼자 누리면 쓰것소?
 
 
별장·미술관 지어 누구나 대접하는 변동해씨 /

“전남 장성에 가면 산속에 참숯과 편백나무와 황토와 죽염까지 써서 손수 별장을 지어 놓고 누구나 와서 쉬라고 열쇠를 100개나 나눠준 사람이 있대.” “뭐 하는 사람인데? 아주 부잔가보네?”

어느 주말, 우연찮게 들려온 소문과 호기심에 이끌려 한번 가보기로 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10분 남짓, 〈태백산맥〉과 〈내 마음의 풍금〉을 찍은 ‘금곡 영화마을’ 안내판을 따라 산길을 오르니, 맨 꼭대기에 ‘소담한’ 시골집이 한 채 서 있다. ‘세심원’(洗心園·마음을 씻는 곳)이라 쓰인 나무 팻말 위에 깨진 기와 한 장을 올려놓은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언능 들어옷쇼잉, 먼 길에 여까정 오느라 애썼소.” 어제 본 듯 반겨주는 이가 바로 세심원지기인 청담 변동해(52)씨였다. 반바지에 흰고무신 차림이 영락없이 동네 고샅길에 마을 나온 중년 아저씨다. 현관문을 열자 확 풍겨나는 편백나무향과 반닫이 위에 떠놓은 정한수 한 잔이 절로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방명록은 없고, 지금꺼정 받아논 명함만 4천장이 넘드만요.” 1999년 7월 완공해 개방한 이래 꼬박 7년간 어림잡아 1만5천명쯤 다녀갔단다.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을 따라 온 발길들이다. “첨부터 나는 관리인일 뿐이고, 쉬러 오는 사람들이 주인이란 맴으로 대한께 그런가 한번 연을 맺으면 꼭 다시들 옵디다.” 청담이 짐작하는, 소문난 이유다.

» 세심원과 금곡숲속미술관 지기로 문화사랑방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변동해씨. 세심원 거실에서 광주 요델협회 회원들이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저짝 황토방을 따땃허니 데펴놨응께 건너갑시다.” 잇대어 지은 별채의 쪽마루에 올라앉으니, 아래서는 낭랑한 계곡물 소리가 올라오고 첨성대를 닮은 굴뚝 위로는 총총한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이 존 것을 나 혼자만 누리믄 쓰것소?”


이튿날 광주에서 요델협회 회원 가족들 20여명이 와서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그는 이날 직접 농사지어 만든 흑보리쌀 고추장과 죽염된장으로 끓인 무시래깃국, 부인이 담가준 ‘전라도 김치’, 야생 죽로차로 줄잇는 식객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지난 2월 버려진 마을 구판장을 개조하고 평생 모은 소장품을 내걸어 ‘금곡 숲속미술관’까지 문을 연 청담은 요즘 또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세심원과 미술관에서 음악회나 강연회, 다도와 명상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문화의 향기를 더 멀리 퍼뜨리는 것이다.

‘장성 토박이 황주 변씨, 농고 출신, 2005년 장성군청 민원팀장(계장)으로 30년 만에 명예퇴직, 읍내 25평짜리 빌라 거주, 소형 트럭 보유.’ 지극히 평범한 이력의 서민인 그가 이처럼 재벌들도 따라하기 힘든 ‘만인의 별장’에 ‘문화사랑방’까지 꾸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와 인연으로 인근 ‘휴휴산방’에 자리를 잡은 동양학 저술가 조용헌씨는 “사주에 불이 유난히 많고 물은 없어 호를 ‘청담’으로 지어줬다”며 “청렴하게 공덕을 쌓아 유명한 선대의 가풍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풀이한다. 정작 청담의 답은 간단하다. “돈보다 정성으로, 혼자보다 여러니, 쟁이기보다는 퍼주고 사는 것이 행복허지 않소?”

장성/글·사진 김경애 기자


마음 씻으러 온 객들이 주인 - ‘만인의 별장’ 세심원 이야기 /

‘아니온듯 가시옵소서’, 세심원의 한쪽 서까래 밑에 걸려 있는 목판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마음을 씻고 가는 것이니 흔적을 남길 것도 없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세가지가 없다. 시계, 달력, 텔레비전. 대신 세가지 금기는 있다. 술과 고기, 휴대폰이다. 도시와 일상에서 묵은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다. 1999년 문을 연 초기엔 멋모르고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며 어지럽힌 객들도 없지 않았지만 “집 기운에 눌린 듯” 지금껏 이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다.

» 축령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세심원 별채 황토방의 쪽마루와 굴뚝, 오른쪽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멀리 산 아래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누에치던 움막 10여년 손수 개조
숯·편백·황토·죽염의 자연주택
7년간 1만5천여명 발길
사용료 안받고 음식까지 챙겨놔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축령산 자락의 산골에 세심원이 자리잡게 된 내력은 제법 길다. 지난 80년 9급 공무원이던 (청담) 변동해씨는 우연히 구입한 터에 쓰러져 가고 있던 누에치는 잠실을 10여년에 걸쳐 소일 삼아 직접 집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대대손손 토박이에 생활민원 담당을 해 ‘발이 넓었던’ 그는 96년 무렵 지역의 숯굽는 장인과 함께 주민 소득증대 사업으로 ‘숯공예품’을 개발하고 덜컥 공장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장사와는 인연이 없어, 곧 문을 닫는 바람에 숯만 창고 가득 남았다. 마침 축령산에는 국내 유일의 50년생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간벌 때마다 쓸만한 목재들을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남은 숯 2톤을 바닥에 깔고 그 위 마루를 편백으로 깔았다. 벽은 죽염을 섞은 황토로 발랐다. 독특한 편백향 덕분에 모기나 벌레도 없고, 숯이 습기를 머금어 종종 비워놓아도 늘 실내가 고슬고슬한 말 그대로 ‘웰빙자연주택’이 탄생한 것이다.

방 3칸·부엌 겸 거실·욕실 1칸, 황토방 별채 2칸, 다 지어 놓고 보니, “평생 전원의 삶을 꿈꾸면서도 엄두를 못내는 월급쟁이들과 함께 나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맞고 인연 닿는 지인들에게 열쇠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사용료 같은 건 애초 받지 않았고, 쓰레기 처리가 골치 아파 되도록 먹을거리도 가져오지 않도록 했다. 대신 쌀과 김치, 밑반찬을 냉장고에 구비해놓고 알아서 챙겨 먹도록 ‘부탁’했다.

세심원은 지역의 명소를 넘어 씨를 퍼뜨리고 있다. 지난 2월 경북 청도에서 버섯농사를 하는 박복규씨가 ‘길상원’을 열어 교류하고 있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서 견학을 오고 있다.

2005년 2월 30년9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을 한 그는 세심원지기로 새로운 출퇴근을 하면서 황토방의 군불을 단 하루도 꺼뜨린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정성만으로, 그 큰 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 그의 퇴직 이후부터 방문객이 급증하자 월 25㎏씩 쌀을 보내주거나 감사 편지와 함께 봉투를 남겨두고 가는 자발적 후원자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기는 하다.

“남매는 다 자라 지 앞가림허니께, 많지 않은 연금이지만 관리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지라우.” 옆에서 말없이 웃어주는 부인의 이해심이 세심원을 지켜온 또다른 힘인 듯했다.

금곡숲속미술관이야기
문화 모르믄 촌사람잉께 기냥 들와서 보시요

» 금곡숲속미술관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나 영화마을 구경왔다 우연히 들른 관광객들이나 소담한 초가지붕 한옥 갤러리의 운치와 갖가지 내력을 지닌 작품들의 품격에 놀란다.
“사람들이 미술관 문턱서 겁 먹고 고갯짓만 슬끔 하고 가불더라구요. 기냥 쑥 들와서 보믄 좋을텐디, ‘미술 콤푸렉스’가 엄청나두만요. 그랴서 차근차근 일러주다 보니께 인자는 민중갤러리의 농민 큐레이터라고들 허네요.”

‘문화 보시’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청담 변동해씨의 열정과 지극 발원(?)으로 문을 연 ‘금곡 숲속미술관’은 세심원과 더불어 장성의 또다른 명소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지난 2월 개관 기념잔치 때는 전국 각지에서 1천명이 넘는 하객들이 몰려와 2.5㎞ 진입로가 막힐 정도였다.

미술관은 겨우 30여평에 불과한 단층 초가한옥, 청담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소담’하다. 2년 넘게 버려졌던 마을 구판장 건물을 한 달에 걸쳐 개조한 것이다. 세심원을 즐겨 찾는 광주의 한 건설업체 대표가 조명과 전기시설 공사를 하고, 자신은 그림·장식물·진열장 등 전시 컬렉션을 도맡았다. 숯 위에 편백나무 마루를 깔아 세심원 분위기를 그대로 옮겼고 2평짜리 방과 화장실, 개수대도 갖춰 묵을 수도 있다.

전시작품은 25점 남짓, 그렇다고 허접한 시골미술관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작가인 황순칠씨, 조계종 4대 종정 서옹 큰스님, 한국화 대가 남농 허건, 아산 조방원, 현당 김완영 등 호남 남도 화맥을 이끄는 대가들의 산수화와 선필들이 나란히 걸렸다.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동심 그림도 시선을 붙든다. 운암 조용민씨의 글은 일본 여행길에 붓이 없어 목욕 수건 네귀를 묶어 쓴 것으로 ‘프로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걸작이다. 100여년 전 청담의 고조부 때부터 사랑채에서 쓰던 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로와 고사한 오수목 조각들, 300년 묵은 먹감나무 판으로 만든 다상이 운치를 돋운다. 하지만 청담은 작품들의 값을 모른다. 산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쌓은 교분으로 하나둘 얻은 것들이니 가치를 따질 수조차 없다.

마을 구판장 개조한 초가집에 친분 예인들 작품 걸고 설명까지
‘민중갤러리 농민 큐레이터’ 소문, 문화사랑방 키울 후원회 채비중

입소문을 따라 1주일에 150명 안팎의 관람객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데 힘입어 전시 일정도 하나둘 잡히고 있다. 오는 10월 말 황순칠씨의 초대전, 내년 생태미술 기획전, 김문호씨의 천탑전 등을 준비 중이다. 가을부터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이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미술관 앞마당에 창작공간도 지을 작정이라니 그의 문화 보시행은 끝이 없어 보인다.

» 금곡숲속미술관 밖 전경.

“여그 시골 사람들은 손재주든 소리든 다 한가락씩 하는 쟁이고 예술가”여서 일년 열두달 채울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세심원과 달리 미술관은 그의 열정만으로 꾸려가기에 벅찰 수밖에 없다. 작품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유지는 물론 보안 시설 관리비 등으로 한달에 최소 150만원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함께 ‘월 1만원 후원회’를 꾸릴 참이다.

“지아무리 잘 묵고 잘 산다 해도, 나라에 ‘문화’가 없으면 난장판이 되지 않겄소.” 비록 산골 구석이지만 문화사랑방지기가 되고자 하는 청담의 안목은 넒고 크다.

노형석·김경애 기자                                                                                                    200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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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지키던 소나무숲 조경용 팔아넘기다니…


강원 송림리 주민들 허탈
100년 넘은 나무들 파헤쳐
힘모아 공사저지 나섰지만
사유지 막을 길 없어 발동동


» 김낙기씨가 27일 오전 강원 강릉시 연곡면 송림1리 마을 인근 소나무 파내기 현장을 지켜보다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송림리인데….”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1리 김낙기(70)씨는 100년 넘게 마을을 지켜주던 소나무숲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소나무숲은 마을의 한 부분이었는데 사유지라고 외지인이 팔아넘기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허탈해했다.

28일 송림리 주민들은 시민운동 단체인 강릉 생명의 숲 회원들과 함께, 닷새째 벌어진 소나무숲 이식작업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송림1리와 2리 사이 밭두둑에 약 200m 길이로 펼쳐진 숲에는 가슴높이 지름 42㎝, 높이 10m 가량인 소나무 50여그루가 서 있다. 이 가운데 37그루를 파내기 위해 굴삭기와 삽으로 인부들이 뿌리 주변을 떠내 줄로 동여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한때 실력으로 파내기 공사를 저지하기도 했지만, 사유지에서 벌어지는 합법적 공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주민 김황식(53)씨는 “4년 전 밭을 매입한 서울의 부재지주가 지난해 조경회사에 소나무숲을 팔아넘겼다”며 “마을 사람들이 솔잎혹파리 방제작업을 하는 등 애써 가꾸지 않았다면 숲이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홍동선 강릉 생명의 숲 고문은 “지난 15일 소나무를 강릉의 명품으로 키워나가겠다고 추진위원회까지 발족시킨 강릉시가 마을의 상징이자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강릉시도 이 숲의 경관과 공익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뾰족한 보전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릉시는 땅주인에게 소나무 반출에 필요한 소나무재선충 감염 여부 확인증 발급을 거부했지만, 최근 강원도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았다. 박종환 강릉시 보호계장은 “시에서 땅을 사들이지 않는 한 (소나무숲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8일 소나무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개정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 시행령이 발효됐지만, 이 지역이 재선충 발병 지역이 아니어서 이들 소나무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주민 정정순(64)씨는 “오대산 찬 바람을 막아주던 당당한 소나무들이 이제 수도권 아파트의 정원수가 돼 약물을 매달고 연명하게 될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강릉/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사진 박종식 기자                       2007. 3. 28


 

 

ps. 요즘은 모든 일이 자본의 논리로 돌아간다. 돈이 된다면 그 속에 어떤 세월,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한낱 휴지조각이 될 뿐이다. 자본의 논리 아래 의미를 잃어가는 것이 어디 한둘이냐... 돈의 논리로만 가격 매겨져 사들이고, 팔리고, 파헤쳐지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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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제품1호’ 유에스비포트
‘나눔제품1호’ 유에스비포트

나눔유에스비포트는 우리나라 나눔상품 1호다. 제품 판매 금액의 일부를 떼어 기부하거나 기증받은 일부 제품을 판매해 모은 수익금을 나눔에 쓴 적은 있지만 나눔 자체를 목적으로 기획, 생산, 판매된 제품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이 제품은 최근 1만1364개 상품 전량이 모두 팔렸고, 매출액 3억6천만원은 모두 국제적인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기부됐다.

이 제품에는 많은 이들의 땀과 정성이 깃들여 있다. 지에스칼텍스는 2억5천만원에 달하는 제작비와 억대의 비용이 드는 마케팅 및 홍보 업무를 맡았다. 지난해 유에스비포트판매와 함께 벌인 주유 마일리지 기부캠페인을 통해 모은 3천만원에 회사 돈 5천만원을 보탠 8천만원도 가난한 대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추가로 기탁했다. 자회사인 넥스테이션 직원들은 제품을 발송하려고 ‘야근 봉사’를 했다.

나눔 목적으로 첫 기획·생산·판매
뜻모은 업체들 제작비·디자인 분담
3억여 매출 전액 월드비전 기부
“나눔이 나눔을 낳자는 뜻에서 U자 하나 덧뭍였지요”



» 지에스칼텍스 박필규 과장, 이은희 월드비전 후원개발팀 간사, 이노디자인 김성준 팀장(오른쪽부터)이 ‘대한민국 나눔상품 1호’인 나눔유에스비포트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나눔유에스비포트의 판매에는 디자인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 제품의 디자인은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인 이노디자인에서 기부했다. 김영세 대표는 월드비전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궁극적인 가치는 바로 ‘사랑으로 출발하라’입니다. 월드비전을 통해 국내 최초의 자선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접했을 때 이것이야말로 디자인을 통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적극적인 참여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김 대표는 월드비전 활동의 뿌리인 예수님을 상징하면서도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멋드러진 십자가를 디자인에 담았고, 제품 이름은 Nanuum으로 지었다. 우리말로 읽으면 나누움이다. 유(U)자를 하나 덧붙인 것은 나눔이 나눔을 낳고 나눔이 나눔을 이어가도록 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제작사인 아이오셀은 고가의 금형을 공짜로 제공했고 유에스비포트를 컴퓨터에 연결했을 때 곧바로 동영상이 뜨도록 하는 기술도 탑재했다. 이 기술로 인해 이 포트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한비야 긴급구호팀장이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손’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이 나온다.

나눔유에스비포트의 탄생과 전량 판매는 우리 사회 나눔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기획부터 생산과 판매까지 1년3개월의 여정을 바라보면서 가장 기뻐했던 이는 이 제품을 처음 기획한 월드비전 후원개발팀 이은희 간사다.

그가 나눔상품을 기획하게 된 것은 2005년 12월. 전재현 후원개발본부장이 영국의 나눔상품에 대한 기사를 전해주면서다. 영국의 세계적인 그룹 유투(U2)의 리더 보노는 자선브랜드 ‘레드’를 만들어 소비와 나눔을 이을 수 있도록 했다. 애플, 모토롤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의류회사 갭(GAP), 신발회사 콘버스 등이 참여해 자사 제품에 레드 상표를 달았고 판매액의 일부를 에이즈 사업에 기부하고 있다.

이 간사는 그보다 더 창조적인 상품을 만들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소녀가장 집에서 다친 아이를 안고 있다. “이 아이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가치있는 아이들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모으는 나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 고민과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번 제품이었다.

이 간사는 이제 두 번째 나눔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실용적이면서도 크게 부담되지 않고 쓸 때마다 나눔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상품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다. 문구류쪽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지에스칼텍스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나눔 상품을 계속 개발해 소외된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권복기 기자, 사진제공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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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운' 미국 도서관 13곳 돌아보니...
 
» ‘부러운’ 미국 도서관
한겨레신문사와 삼성,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지난 11~19일 가장 앞선 도서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미국을 방문했다. 무려 89개의 도서관이 밀집해 있는 뉴욕과, 지역 커뮤니티와 도서관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리고 ‘모두를 위한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워싱턴주 3곳을 찾았다. 일주일 동안 둘러본 미국의 다양한 도서관들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한국의 도서관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 미국 뉴욕공공도서관의 어린이 도서관인 도넬 분관 서가 모습. 어린이 책이 나이대별로 세분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서가에 분류돼 있다.

대형 열람실 없고 카페 분위기

지난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번컴 카운티에 있는 팩 메모리얼 도서관. 어린이실 한 귀퉁이에서 3~6살 아이 6~7명이 귀를 쫑긋 세운 채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다. 스토리 텔링 시간이다. 선생님은 책장을 넘겨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중간에 잠깐 덮고 노래를 불러준다. 손수 기타를 튕겨 가며. 그리곤 아이들을 모두 일으켜 세워 같이 춤을 춘다. 6살 조슈아는 “너무 재미있다. 매일같이 (스토리 텔링이 있는) 수요일이면 좋겠다”며 밝게 웃었다.

‘라지 프린트’(large print; 큰 활자)라는 표지가 붙은 책장 앞에서는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4명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목들을 살펴보고 있다. 왼 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책을 고르던 한 그리섬(72)은 “5년 전부터 일주일에 나흘 정도는 도서관에 온다.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벽 쪽에 있는 서가로 가보니 벽에 기댄 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는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앉아 낚시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한 아주머니는 서너 권의 책을 펼쳐놓고 뭔가를 베끼고 있다.

일주일 동안 둘러 본 미국의 도서관들을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운영 방식, 예산 및 장서 규모, 사서의 수, 운영 프로그램 등 저마다 특색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의 도서관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주민을 위한 열린 도서관은 그 무엇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다. 미국 도서관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우체국이나 소방서, 동사무소, 시민체육센터처럼 지역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시는 아예 ‘모두를 위한 도서관’(Libraries for All)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지난 1998년부터 대대적인 도서관 신설 및 정비 작업을 벌이고 있을 정도다.


■ 책읽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가 기본…곳곳에 소파 놓여 편하게 독서

둘러본 13곳 도서관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대규모 열람실은 없었다. 다만 군데군데 1~2인용 책상이나 소파가 놓여 있다. 사람들은 서가 사이에서 벽장에 기댄 채 책장을 넘겨보다가 더 편하게 읽고 싶을 땐 책상이나 소파로 옮겨 앉았다. 간단한 메모 공책을 가져와 중요한 대목을 옮겨 적거나, 노트북을 열어 타이핑하는 모습도 흔하게 띄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 캐피톨힐 분관은 편하게 책을 읽도록 벽 사이에 거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해 놓고 있었다. 마침 그 공간에서 영화 잡지를 보고 있던 사무엘 리치몬(21)은 “집에서보다 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며 “비번일 때나 주말에 자주 찾는다”고 도서관 예찬론을 폈다.

널따란 책상은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보거나 지도책을 뒤적이는 노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장소. 철학서적을 읽듯 진지하게 신문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 늦은 나이에 러시아어를 배우겠다고 러시아어 교본을 보고 공부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무위고(無爲苦)’라는 단어를 무색케 했다.

서가의 구조 또한 책읽는 사람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했다. 군대 열병식처럼 줄을 딱딱 맞춰 배치된 서가 대신 사람들의 동선을 고려해 자연스럽고 편한한 느낌의 서가가 들어서 있었다. 채플힐 공공도서관 케이 엘 톰슨 관장은 “픽션·논픽션 코너와 참고도서(레퍼런스북) 코너, 신문·잡지 코너, 어린이 코너 등을 유기적으로 배치하고 서가 높이도 적절히 조절해 편의성을 최대한 높였다”고 설명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도 각 서가의 층이 약간의 경사를 두고 죽 이어져 있고, 바닥마다 책 분류 번호가 크게 적혀 있어, 원하는 책을 곧바로 찾을 수 있는 편리성을 극대화했다.

편리성은 이동도서관 운영에서도 확인된다. 상당수 도서관이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책을 무료로 배송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의 분관인 ‘와싱톤 말하는 책과 브래일 도서관’은 관내 도서관들의 배송 요청을 전담해주는 독특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신청땐 무료 배달

■ 풍부한 장서와 다채로운 프로그램…책 외에 음반 등 자료 무궁무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뉴욕 공공도서관은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 중심으로 구성된 연구도서관 4곳과 지역별로 거미줄처럼 설치된 분관 85곳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곳의 도서자료는 무려 1억점이 넘는다. 한 곳당 약 110만점의 도서자료를 갖고 있는 셈이다.

도서자료는 단지 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의 비중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이밖에도 시디, 음반,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디브이디, 오디오북, 이(e)북(전자책), 사진, 영화필름, 무대의상, 포스터, 악보 등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뉴욕 공공도서관 도넬 분관은 16㎜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작품 8500점을, 미드맨해튼 분관은 출판·광고업자,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위한 사진컬렉션만 1만2천점을 소장하고 있다. 미드맨해튼 분관 사서 월수 리(72)는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모든 것이 장서”라고 설명했다.

특히 오디오북은 미국 도서관에서 특색 있고 인기를 끄는 도서자료다. 도서관마다 오디오북 코너가 따로 있고, 그 곳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권까지의 책이 꽂혀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 도넬 분관 조안 로자리오 선임사서는 “오디오북은 차를 타고 가면서나 집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책이라는 장점이 있다”며 “하루에만 1천권 넘게 대출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5권 정도의 오디오북을 빌련간다는 산 안드리아(34)는 “아이들 침대 맡에서 들려주기에 딱 좋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독서토론 모임, 스토리 텔링, 숙제 지원, 영유아 서비스, 가족 서비스, 직업 상담, 건강정보센터 운영 등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심지어 이력서 첨삭강의, 자영업자 센터까지 두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전문 사서들보다는 지역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지원을 받는다. 예컨대 숙제 지원은 대학생들이, 독서 토론은 교수나 연구자들이, 직업 상담은 컨설턴트들이 해주는 식이다.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지역내 도서관에 없다면 다른 도서관 프로그램을 찾거나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한다.

채플힐 공공도서관 매기 하이트 사서는 “공공 도서관의 제일 목표는 지역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공공서비스와, 정보화 사회에서 필요한 고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디지털 서비스는 미래도서관의 핵심…도서관끼리 소장 책 목록 공유

1996년 벤튼재단이 미국 시민 101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이 미래의 공공도서관에 요구하고 있는 역할 가운데 디지털과 종이매체의 정보자원을 결합한 복합 서비스가 중요하게 꼽혔다(60%).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높은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에 걸맞게 미국 내 어느 도서관을 가더라도 인터넷 서비스는 기본이다. 인구 1만명이 안되는 작은 동네도서관에 가더라도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가 최소한 2대 이상 설치돼 있다. 노트북을 가져와 쓸 수 있도록 무선인터넷 환경도 거의 대부분 구축하고 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 캐피톨힐 분관 낸시 슬로트 관장은 “인터넷이 안되는 도서관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디지털 서비스를 위해 미국 공공도서관들은 저마다 ‘오피에이시(OPAC; Online Public Access Catalog)’라는 종합정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관내 장서에 대한 목록 정보를 검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출 상태를 확인하거나 및 희망 도서 대출을 예약할 수 있게 해준다. 또 희망도서 구입을 신청하거나, 도서관 이용이나 도서 정보에 대한 질문을 올리고 답을 받을 수도 있다.

오피에이시는 도서관끼리 도서자료를 서로 공유해서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도 제공한다. 가령 어떤 책을 검색했는데, 관내 도서관에는 없고 다른 도서관에 있다면 온라인으로 대출을 예약해서 받을 수 있고, 자기 동네에서 빌린 자료를 다른 도서관에 반납할 수도 있다. 뉴욕 공공도서관 58번가 분관 존 박 완딘 관장은 “주 또는 카운티마다 관내 모든 도서관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고 했다.

■ 학생, 학교와 손잡은 공공도서관…학교숙제 도와주는 서비스까지

도서관은 나이,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가장 긴요하게 이용하는 층은 학생들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미국 공공도서관들은 갖가지 학습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최근 몇년 동안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히 고안된 다양한 프로그램과 과외활동을 운영해 오고 있다. 우선 5개의 분관에 ‘숙제 도움 센터’가 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 와서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숙제에 대한 도움을 받는다. 숙제 도움은 인터넷으로 가능하다. 8개의 분관에서 온라인 숙제도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시애틀 시내에 8곳이나 된다. 6~12살의 학생들에게 숙제 도움, 컴퓨터 교육, 읽기와 쓰기 능력 향상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3개 도서관에는 ‘부모 자원센터(parents resource center)’가 있는데, 부모가 어떻게 자녀의 학교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얻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은 학교 수업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뉴욕 공공도서관 도넬 분관은 교사가 원할 경우 언제든지 수업을 도서관에 와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도서관 조안 로자리오 선임사서는 “아이들 수업을 위한 교실을 따로 마련하고 있는 공공도서관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채플힐 공공도서관 카보로 분관은 아예 학교 안에 설치돼 있다. 1995년부터 맥더글 초·중학교 안에 있는 학교도서관을 공공도서관으로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1만8천명으로 극히 적은 이 지역 주민들은 관내에 공공도서관을 갖게 됨으로써 차로 40분 넘게 걸리는 채플힐 도서관에 가는 불편을 덜게 됐다. 제임스 레러 사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공공도서관 담당 사서가 각각 1명씩 있어서 유기적 협조를 하기 때문에 운영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지역민들도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뉴욕·애쉬빌·채플힐·시애틀/글·사진 박창섭 기자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에 있는 수와나노아 도서관. 사서 2명인 작은 도서관으로 주민들의 휴식공간 기능도 하고 있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 이 도서관을 찾은 60대 주민이 응접실처럼 꾸며진 열람실을 이용하고 있다.

미 공공도서관 10곳중 8곳 ‘작은도서관’의 힘!
인구 2만 5천명 미만 지역 도서관 ‘주민 활동센터’ 역할

미국 도서관은 17세기 청교들에 의해 세워진 작은 규모의 개인도서관에서 시작됐다. 이 도서관들이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공공성 개념이 등장했고, 작은도서관들은 점차 각 주나 카운티가 예산지원을 하고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미국의 작은도서관들은 개인이 만들어 운영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 공공도서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인구 규모로 볼 때 미국 작은도서관은 2만5천명 미만 지역에 세워진 도서관을 말한다. 전체 공공도서관의 약 80%가 작은도서관이다. 인구 2500명 미만이 사는 지역에 있는 작은도서관도 3천개에 육박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 있는 스와나노아 도서관이 이처럼 아주 작은 도서관에 속하는데, 상근 직원이 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 작은도서관은 규모와 상관없이 도서관의 고유기능인 장서 구비, 대출, 참고 서비스, 인터넷 서비스 등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수와나노아 도서관 사서 그리프 포드는 “카운티 공공도서관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운영에 별다른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각 주들은 작은도서관이 지역의 활동센터로서 주민과 지역단체를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장서 구입, 인터넷 환경 구축, 사서 교육에 있어서 도심 도서관과 차별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년 전 빌 게이츠 재단에서 받은 200만달러 기금 가운데 상당액을 작은도서관에 투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작은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매년 시상도 한다. 미국 공공도서관협는 1991년부터 인구 1만명 이하 지역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보인 공공도서관을 선정해 ‘최우수 작은도서관 서비스상’을 주고 있다. 또 2004년부터 라이브러리 저널과 빌게이츠 재단이 공동으로 모범적인 업무를 하는 작은도서관을 찾아내 ‘베스트 작은도서관상’을 시상한다.

박창섭 기자

 

 

ps. 이런 글을 보면 부러운 건, 가지지 못한 자의 동경...

내가 사는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운대 지역엔 신도시 건설 후 엄청난 인구가 불어났음에도,

나 어릴 적 이용하던 낡고 작은 건물의 시립도서관 한 곳만이 유일하다.

신도시가 생겼으니 좀더 크고 현대적 건물의 도서관도 하나 생기겠지? 하며 동생이랑 이야기나누며

기대하던 게 1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수많은 건물들이 새로이 생겼건만, 그 중에 도서관은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왜 이런 데에는 인색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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