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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답다. 박사가 그토록 사랑한 숫자들과 아이들이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박사는 80분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지만, 그의 마음은 따뜻하고 모두를 훈훈하게 한다.

아이의 생일을 잊지 않기 위해 큼지막하게 포스트 잇으로 온몸에 메모를 한다.

애틋하고 고귀하다.

너무 많은 것에 시달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 답을 적지 못하는 우리에게

박사가 일깨워주는 간명한 진리는,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힘껏 주위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머리가 쑥 눌린 듯한 모습이어서 붙은 별명인 루트, 그 아이를 지켜내려는 박사의

모습은 순수하면서도 숭고하다.

숫자와 아이의 공통점은, 이야기가 무궁무진 있다는 것일까.

1, 2, 3, 4, 5, 6, 7, 8, 9, 10......

우애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사.

사람들도 숫자처럼 어쩌면 아주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조화롭게

서로를 아끼며 살아 갈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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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재밌는 소설이다.
후련하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 머릿속은 텅텅이지만
생각 하나는 바르고 심지 하나는 굳은
주인공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주인공 엄마와 할아버지 역시 구제불능이지만
그런 셋이 모여 사는 가족은 오히려 평범한 가족보다
더 행복하고 순수해보인다.

서로가 무리하고 있지 않아서 일것이다.
말을 하기 보다는 말을 들어주고
스스로 깨치게끔 하는게 고등학생을 위한 진정한 교육이니까.

작가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썼지만 성인들이 읽기를
더 권하고 싶다고 했고 책장을 덮으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은 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영길이를 좀 닮았다. GTO의. 그리고 공중그네와 인 더 풀 에
나오는 못 말리는 의사 선생이랑도.

이들의 공통점은 끝이 없는 낙천성과 천진함.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깨끗한 본성이랄까.
음, 그런 자세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사회는
좀 더 재밌어지고 신날 것 같다.
즐겁고 유쾌한 세상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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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려라, 아비.

아비

영화 <아비 정전>의 아비는 아니었다.

아버지를 친근하게, 아니 어쩌면 낮추어 부른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그 이름은

묘하게도 아비(阿飛)라는 말과 뒤섞여서 내게 전달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딱 한 번 날듯이 달렸다. 어머니와 잠자리를 함께 하기 위해 피임약을 사러(!)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피임약과 상관 없이 '내'가 태어났다.

엄마도 나도, 어디론가 가버린 아버지를 그리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은 무뚝뚝하다.

"잘 살고 있겠지".

무심결에 한 마디 툭 뱉는 그 말이 왜 다른 어떤 기다림보다 더 절실하게 들리는 것일까.

아버지, 아비, 애비. '어미'와는 또 다른 이 시대의 단면인 아비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음 이리라.

달려라, 달려

달리는 것은 마치 숨쉬는 것과도 같다. 삶에 대한 또 다른 은유다. 조금만 무리해도

금방 균형을 잃는다. 인생 초반부터 너무 달려대면 나중에 후회한다. 몸 상하고 맘 상한다.

딱 한 번 러너스 하이까지 달려본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보다 빨리 달리는-비록 택시로이긴해도-

어머니, 그리고 그들 사이의 나.

언어유희를 좀 해보자면, 달리는 것 외에 우리가 달리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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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작가가 심드렁하게, 그러나 인간 본성에 대한 적절한 묘사를 한 구절이 반향을 가져다 준다.

"정말 나쁜 사람은 자기가 나쁜 줄도 모르는 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

덧2: 발랄하지만, 동시에 속 깊은 문장들이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소설집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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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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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전을 어렵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고전의 정의를, "제목만 몇 수십번을 들어서 나중에는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의 목록"이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고전은 딱딱하고, 재미없고,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를 케케묵은 먼지투성이로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전이 고전이 된 이유는 시대가 지나도 변치 않는 어떤 요긴한 것을 우리에게 넌지시 일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전을 한 번쯤 내 식으로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여기에서 의미를 갖게 말이다. 다시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일은 고고학자처럼 섬세한 손길을 요구하지만, 그 결과는 오래 묵은 장맛으로 담근 김치처럼 감칠맛난다.

<강의>에는 어렸을 때부터 출처도 모른채 마치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들려주시는 옛 이야기처럼 어렴풋이 알아온 동양 사상의 여러 유파들-유가, 도가, 법가, 음양가, 묵가 등-이 쉽고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다.  흔히 설교조의 말을 "공자왈 맹자왈" 이라며 무조건 어려운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특히 유교사상이라고 하면 고루하고 여성들의 자유를 묵살하던 일부 보수적인 유생들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공자의 사상이 활달하고 평이하면서도 인간적이라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는 점이 이 글의 특징이기도 하다. 공자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으며 호탕했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백성들이 약간의 쌀만 수업료로 내도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받아주었다.  일언이폐지, 가정맹어호,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같은 친숙한 성어들이 다 공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더욱 정감이 갔다. 그는 사람의 일을 생각했으며 세상을 주유하며 자신의 정치관이 반영되기를 꿈꾸었다. 공자가 천명한 仁에서도 우리는 사람이 두 명 이상 모여 이루는,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떠올리게 된다.

또 동양사상에서 내 마음을 이끈 것은 도가의 노자와 장자이다. 그들은 결코 인습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세상을 상대적인 개념에서 바라보았다.  노자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 온유하고 융통성 있는 갈대 같은 존재가 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고 보았다.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춘추전국시대에 그런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이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탄을 자아냈다. 노자의 도덕경은 단 1500여자로 되어 있지만 그 해석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폭넓어 그 원본에 따른 텍스트가 무궁무진하게 피어 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수긍이 갔다.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심이 되는 두 가지 열쇠는 도(道)와 덕(德)이다. 도(道)는 천지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동양인들에게 길과 도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며 이는 생활 속에서도 자연스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덕(德)은 도에 따라 체현된 어떤 현실적인 발현체이다. 노자의 이상세계는 소국과민의 대안공동체였다. 나라는 작지만 백성은 적지만 너무나 넉넉하고 평화로운 그 곳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 그리셨던,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고 하신 것과 맞닿은 듯 했다.  

장자의 우화들은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판타지 소설을 보는 듯 이미지가 절로 떠오르는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알레고리 속에서 직접 이야기 하려는 것은 정작 말하지 않는 여백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대붕과 참새의 비유, 오리 다리가 짧다고 늘리지 말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잠언,  장주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주인지 모르는 호접몽의 고사 등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장자>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 그 자체가 내게 다가오는 느낌을 준다. 장자에게 있어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 이러한 사고의 유연성은 자칫 허무주의나 극단적 상대주의로 빠질 위험성도 있다고 하나 결국 어떻게 장자를 읽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논해져야 할 것이다. 유교의 형식적일 수도 있는 도덕담론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인해 <장자>는 많은 글에서 인용되며 풍부한 문학적 함의를 내포하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공이 중어중문학과인 나에게 있어 이 책은 그 의미가 더욱 깊다. <강의>는 제자강독이나 동양정치사상 등의 수업에서 주요 교재로 활용이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나만의 고전 독법이라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이들의 사상을 내 것을 꼭꼭 씹어 소화시켜 써내려가는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꼈다. 현실 속에서 빛을 발하는 고전의 참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행복한 책읽기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수업>처럼, <강의>의 책장도 비록 끝이 나지만 되새겨볼만한 구절에 그어진 밑줄은 손때를 입고 다시 들춰보게 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강의의 講 자는 본래 '익힌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강의를 통해 배운 것을 익혀, 내 것으로 다시 써내려가는 과정이 내가 고전을 사랑하는 또 다른 길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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