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발생 1시간 01분 경과
2호선 선릉역 부근

퍼퍼퍼펑! 
연아가 찍은, 화재가 난 선릉역 사진을 보고 있는데 행렬 앞쪽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행렬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들 고개를 빼 행렬 앞쪽을 쳐다봤다. 조금 전보다 더욱 거세게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먹구름이 지하 터널을 뒤덮고 있었다. 


폭발 이후 지하 터널은 빠른 속도로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은 검은 연기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행렬 곳곳에서 짜증 섞인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떤 곳에선 싸움이 벌어졌는지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상황인지 알려달라는 외침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다들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야 돼? 앞뒤가 다 막혔잖아.”


지태가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바로 앞의 선릉역은 화재로 막혔고, 반대 방향인 역삼역, 강남역, 교대역 또한 출구가 막혔다. 교대역을 지나서 더 가볼 수도 있지만, 그쪽으로 갔다간 괴물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이곳에 고립된 것이다.


“얘들아, 이거 봐봐.”


대뜸 연아가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2호선 지하철역들 상황이래.”


연아가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해서 내리자 2호선 지하철역 승강장들의 사진이 쭉 나타났다. 우리가 지나쳤던 역처럼 죄다 붕괴된 모습이었다. 성한 역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처럼 지하에 고립된 사람들이 찍어서 SNS에 올린 사진이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2호선 지하철역들은 싹 다 무너졌대. 그리고 왜 2호선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면서 돌잖아. 그 원 안쪽 지하철역들도 거의 다 무너졌대. 지금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은 자력으로 지상으로 나오기 힘들 거라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래. 아무래도…….” 연아가 잠시 쉬었다가 말했다. “우리 지금 지하에 갇힌 거 같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연아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자 지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게 말이 돼? 2호선만 해도 지하철역이 몇 갠데 그게 다 무너졌다는 게? 그 원 안쪽의 지하철역들까지 다 무너졌다면……. 아냐, 그건 아닐 거야. 그게 어떻게 한번에 다 무너져? 그건 아냐, 네가 잘못 안 거라고!”


지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우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연아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태의 물음에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런데 우리가 본 그 괴물들을 생각해봐. 이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근데 우리가 직접 봤잖아. 무너진 지하철역들도 우리가 다 직접 봤잖아. 그러니까 지금 서울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게 다 현실이라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할 말이 없었다. 연아의 말대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구조대가 올 때까지 여기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 하나? 괴물들이 또 습격해 오면 숨을 곳도 달아날 곳도 없는데?


그때 사이렌 소리 같은 삐삐삐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곳에 몰려 있는 수천 명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재난 경보 메시지 소리였다.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나와 지태, 연아, 그리고 벽에 기대 앉아 있던 누나도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실제 상황입니다. 서울특별시에서 전시에 준하는 테러가 발발했습니다. 가까운 재난 대피소로 대피하십시오. 대피 시 비상식량, 물품, 라디오를 챙기십시오. TV, 라디오를 통해 정부의 안내에 따라주십시오. 곧 모든 채널을 통해 대통령의 발표가 있을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이 떨렸다. 국가비상사태라니. 말로만 들어봤지 이런 상황을 실제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심각한 상황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국가비상사태 선포 메시지를 읽으니 정말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해 있는 이 엿 같은 상황이 갑자기 실감 났다. 그런데 지태는 웬일인지 희망에 찬 얼굴로 나와 연아를 보며 물었다.


“가까운 재난 대피소가 어디냐? 거기 가면 안전한가 봐.”


그러자 연아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밖에 나가면 있겠지. 지금 여기선 갈 수 없어.”
“뭐? 그럼 우린 어디로 대피하라는 거야?”


지태가 의아한 얼굴로 다시 묻자 또 연아가 대답했다.


“이 문자에 나와 있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해당되는 게 전혀 없어. 비상식량, 라디오 그런 건 전부 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이 문자는 그냥 무시해.”


그러자 지태는 정말로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되었다. 놀이공원에 갈 생각에 한껏 부풀었다가 못 가게 된 아이처럼.


“이런 망할 문자는 왜 보내고 지랄이야! 괜히 희망 품게!”


지태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서 버럭 소리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모두 지태처럼 문자 메시지를 보고 희망을 품었다가 실망하게 된 사람들일 것이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돌아보니 한 남자가 숨을 못 쉬고 꺽꺽대며 나를 붙잡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내가 놀라서 남자를 보며 물었다. 남자는 점점 더 숨 쉬기 어려워했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연아와 지태를 쳐다봤다.


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빛이었다. 그러는 사이 남자는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댔다. 발작하는 것처럼 몸이 기괴하게 꺾였다. 주위에 있던 몇몇 어른들이 바닥에 쓰러진 남자에게 몰려들어 괜찮냐고 물었다. 사람들의 말 속에서 폐소공포증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사람들이 진정하라고 말하는데, 남자는 이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죽은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멀쩡하던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꺄아아아아악! 옆에 있던 여자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여자를 쳐다봤다. 소리를 지른 여자가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막무가내로 붙잡으면서 소리쳤다.


“저 좀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요! 선생님! 국가비상사태라니요! 저 좀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네?”


사람들은 왜 이러냐며 서로 여자를 밀쳐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눈이 뒤집히더니 핸드백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내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던 아저씨가 감전되어 쓰러졌다. 


“이 여자가 미쳤나!”


다른 아저씨가 보다 못해 여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여자는 잠시 휘청하더니 어느새 전기 충격기를 내버리고 바닥에 떨어진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집어 들었다. 커다란 유리 조각에 베여 손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여자는 유리 조각을 쳐들고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후려친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 놀란 아저씨의 팔에 유리 조각이 꽂히며 피가 튀었다. 


“아아아아악!”


아저씨가 비명을 질렀다. 여자는 유리 조각을 잡아빼더니 또 찔렀다. 또 찔렀다. 또 찔렀다. 계속 찔렀다. 아저씨의 팔이 너덜너덜해졌다. 저 여자는 미쳤다. 우리는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벽에 기대 쉬던 누나도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다른 사람들도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은 여자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아저씨를 내버려두고 여자는 다른 먹잇감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여자가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밀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짜증 섞인 고성이 오갔다. 그러다 뒤에서 어떤 남자가 덮쳐서 여자를 붙잡았다. 또 다른 사람이 달려들어 여자의 팔을 붙잡았다. 또 다른 사람이 여자의 손을 쳐서 유리 조각을 떨어뜨리게 했다. 여자는 세 남자에게 붙잡힌 채 마구 날뛰었다. 


“아아악! 살려줘! 여기서 빼내줘!” 


갑자기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괴성을 질렀다. 그러곤 여자와 똑같이 다른 사람들을 붙잡으며 자신을 여기서 빼내달라고, 나가서 돌봐야 할 가족들이 있다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남자를 밀쳐내자 남자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왜 날 여기에 가두냐며 사람들을 향해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마구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모두가 정신이 나가버린 듯했다. 누군가는 앞니가 부러져 피가 철철 흐르고, 누군가는 귀를 물어 뜯겨 너덜너덜해졌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광기 어린 폭력이 사람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곳곳에서 비명과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단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다. 국가에서 국민들을 위해 보낸 대피 안내 메시지는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흥분시켰을 뿐이다. 


마구잡이로 싸워대는 사람들을 피해 사람들은 휴대폰을 마구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112, 119에 전화하거나 가족, 지인들에게 전화하더니 살려달라고, 빨리 여기서 꺼내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통화량이 폭주해서인지 전화가 연결된 사람보다 연결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통화가 되지 않자 사람들은 무작정 선릉역이나 역삼역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비가 붙어 드잡이를 하며 싸우는 사람도 있고, 괴성을 지르며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어떤 사람은 터널 벽을 부수려는 듯 마구 두드렸지만 손에서 터져 나오는 피만 확인하고 절망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기도 했다. 지하 터널은 말 그대로 미친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누나를 데리고 집단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심지어 괴물들보다 더. 잠시 쉬었는데도 누나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얼굴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우린 누나를 벽에 기대 앉아 쉬게 했다. 


“괜찮으세요? 더 안 좋아진 것 같은데…….”


누나는 말도 하기 힘든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누나, 곧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조금만 힘내세요.”


내가 말했다.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연아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누나의 얼굴을 닦아줬다. 누나는 고맙다며 연아의 손수건을 받아 쥐고는 얼굴을 꼼꼼히 닦더니 배 위에 손을 올려놨다. 누나의 불룩한 배를 보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저 아기는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괴물도 모자라 사방에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까지 바글바글한 이곳에서.

“일단 엄마한테 전화하자. 우리 여기 갇혀 있다고 말해야지.”


연아와 지태에게 말하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전화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기도 전에 연결이 힘들다는 멘트만 흘러나왔다. 옆에서 연아와 지태는 스마트폰으로 뭔가 검색해보려고 했지만 이 역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서 그런지 속도가 느렸다. 아예 페이지가 바뀌지도 않았다. 둘 다 답답한지 한숨만 내쉬었다.


“아마 누구든 구조하러 올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는데 위에서 모를 리 없어. 119든 아니면 여기 관리하는 서울메트로든, 아니면 군대가 오든, 사람들을 구조하려고 준비 중일 거야.”


연아가 애써 희망을 찾으려는 듯 말했다. 


“씨발, 한 몇 달 지나서 오는 거 아냐? 오긴 오겠지?”


지태가 불안한 듯 되물었지만 나와 연아 둘 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엄마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야 안심될 것 같았다.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어떻게든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야, 근데 엄마도 그 국가비상사태 문자 받았을 거잖아? 그럼 우리가 걱정돼서 벌써 전화했을 텐데……. 다들 전화 온 거 없어?”

지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엄마는 그런 문자 메시지를 받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벌써 우리들의 전화기에 불이 났어야 한다. 스마트폰의 통화 목록을 확인해봤지만 누구한테도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설마 엄마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지상엔 괴물들이 안 나타났다고 했는데…….


“아닐 거야. 그냥 통화량이 많아서 먹통인 거겠지. 엄만 별일 없을 거야.”


내 머릿속을 읽은 듯 연아가 말했다. 그래, 엄마는 별일 없어야 한다.


“맞아. 아마 엄마도 밖에서 지금 우리랑 통화 안 돼서 엄청 답답해하고 있을걸. 엄만 지하철도 안 타니까 괜찮을 거야.”


지태가 연아의 말에 덧붙였다. 지태 말대로 엄마는 출퇴근할 때 지하철이 아닌 버스만 이용했다. 버스가 지하철보다 더 오래 걸렸지만 바깥 풍경을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어이! 단 존슨! 뽕쟁이!”

어디선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존슨은 도핑 스캔들 이후 나에게 붙은 별명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그 유명한 칼 루이스를 제치고 육상 100미터에서 우승했지만 약물 복용으로 탈락한 벤 존슨의 이름을 내 이름에 붙인 건데……. 문제는 평소 날 고깝게 여기던 우리 학교 일진들 말곤 저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봤다. 지태와 연아도 설마 하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기찬이다. 우리 학교의 일진이자 꼴통. 연아를 짝사랑해 나와 지태를 질투하는 재수 없는 자식. 마주칠 때마다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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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2017-10-26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새벽에 정주행으로 계속 읽고있는중이네용....!!!!!!책으로도 빨리 만나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