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은 친애하는 파트너이자 협력업체─소규모 흥신소─ 수장인 수철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수철을 만나려면 서둘러야 했다. 

곧 있으면 퇴근 정체가 시작되고 도로가 막히기 때문이다. 급히 차에 올라타 액셀을 밟았다. 대한민국의 좁은 도로 위에서는 별 소용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페라리 360 스파이더가 굉음을 토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조선 시절만큼이나 오래된 연식이지만 어쨌든 페라리 아닌가. 중요한 건 클래스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품격.  

“진짜 미친 허영의 끝이다, 남한준. 맨날 돈만 잡아먹는 저 고물, 당장 갖다 버리시지?” 

혜준은 오라비의 로망을 손톱만큼도 이해해줄 생각이 없었다. 언제 한번은 중고차 딜러를 데려온 적도 있을 정도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 속도도 안 나고 연식도 오래되어 멋있지도 않으며 최종적으로는 왜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때 한준은 페라리 앞에 드러누워 소리쳤다.  

“갈 거면 나를 밟고 가.”  

창피하지 않느냐, 실용성도 없는 차 때문에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 그걸로 다른 차를 타고 말지라는 말은 한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로망 하나쯤은 품고 사는 것 아닌가.  

결국 혜준은 중고차 딜러를 돌려보냈다. 한준이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승리를 거둔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오라버니의 마음을 드디어 이해한 건지, 동네 사람들이 전부 창가로 얼굴을 내밀며 무슨 일이냐고 수군대는 게 창피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소중한 건 지켰다.  

최근 들어 밟을 때마다 미세하게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엔진 소리가 마음을 간당간당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 친 덕에 아직까지는 쓸 만했다. 부디 다음 모델로 차를 바꿀 때까지 스파이더가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노라니 어느새 수철의 아파트가 보였다. 
수철의 집 앞에 도달한 한준은 자연스럽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오늘은 무슨 고기…….” 

한준이 집으로 들어서며 말을 건네는 순간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가 날아오고 있음을 직감한 한준은 재빨리 몸을 숙였다. 이윽고 퍽 소리가 들리더니, 방금 전까지 한준의 머리가 있었던 위치에 으깨진 파란 물감이 흘러내렸다. 한준은 그대로 현관에 쭈그려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은 아무리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수철은 거실 끝에 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 한준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은 상태였는데, 손에는 검은 콜트 총이 들려 있었다.  

수철은 집 안에서 사격을 하는 취미가 있었다. 액션 영화를 보다가 필 받으면 총 쏘는 장면을 흉내 내며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껴보는 게 그의 삶의 낙이었다. 수철의 아파트는 남자 혼자 살기에는 과도한, 백 미터 달리기 경주를 해도 될 만큼 넓은 평수의 집이었는데 이는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수철의 이웃들은 한 번씩 항의하러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수철의 위협적인 몸을 보고는 “이웃이라 인사드리러 왔어요.”라며 꽁무니를 내빼곤 했다. 덕분에 그의 취미는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존중받고 있었다.  

“총구 좀 치워줄래?” 
“쫄기는.” 
“한두 번도 아니고 뭘 쫄아. 또 샀어?”  

한준이 거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자신의 유일한 관심사에 대한 질문을 받자, 수철은─제 딴에는─환한 미소를 지으며 붙박이로 된 거실 장 문을 열었다.  

“글록 18 신상이랑 M9A1도 샀어. 보여줘?”  
“아니.” 

한준은 거절했다. 하지만 인간은 듣고 싶은 말만 듣기 때문에, 수철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한준은 약 십오 분가량 삼십 개도 넘는 수철의 전동 총 컬렉션에 관한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수철의 총들은 진짜 총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고가품들이다. 그래봤자 쏠 수 있는 건 서바이벌용 물감이나 비비탄이 고작인 장난감 총에 왜 그리 돈을 들이느냐고 물으면, 수철의 대답은 딱 한마디뿐이다.  

“멋있지 않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준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밀려들지만,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므로 무리하면서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런 놈이 있으면 저런 놈도 있겠거니 하고 살자, 생각하며 애써 떨쳐내곤 했다.  

“오늘은 오겹살 먹자고.” 

신상 총에 관한 설명을 마친 뒤, 수철은 흐뭇한 얼굴로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콜트 총을 허리에 찬 권총집에 집어넣었다. 한준은 뜨악했다. 

“좀 더 평범하게 밥 먹으러 가는 건 어때?” 
“장난감 총인데 뭐 어때? 멋있잖아.”  

장난감 총을 찬 수철의 모습은 실제 기관총을 든 군인을 어린애처럼 느껴지게 했다. 한준은 수철의 멋이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이해시키느니, 다른 시공간에 존재할 얌전한 수철을 이 세계로 데려오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준이 께름칙해서 물었다.  

“점퍼 걸칠 거지?”  
“아니. 차 타고 갈 건데 뭘.”  

이거면 됐다는 듯 수철은 두꺼운 후드를 걸쳤다. 밑단이 짧아, 허리춤에 끼워놓은 총이 도드라져 보였다. 한준은 흰색 롱패딩을 꺼냈다.  

“너 지금 그 콜트 총에, 이거 입으면 완전 빈 디젤이야.” 

그 말이 싫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수철은 투덜대면서도 롱패딩을 입었다.  

“빈 디젤 말고 제이슨 스타뎀으로 해줘.” 
“왜?”  
“그 양반 여자 친구가 내 이상형이야.”  

수철이 최대한 멋있는 표정으로 씨익 웃어보였다.  

오겹살이 치익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철의 눈빛이 사납게 번득였다. 덕분에 고작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은 수능 시험 볼 때나 발휘했을 법한 집중력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정슬기 고객은 예약일 확정.”  

옷은 전부 비닐에 꽁꽁 싸서 별도 보관한 뒤, 앞치마 두 개를 앞뒤로 두른 채 서류를 검토하던 한준이 말했다.  

“벌써?” 

수철이 반문하자 으르렁대는 듯한 그의 말투에 놀란 아르바이트생이 몸을 움찔 떨었다.

“길게 끌 필요도 없어. 그 여자 결혼하면 안 돼.” 

정슬기는 궁합을 보겠다며 오 일 전 미남당에 예약 신청을 한 고객이었다. 입금을 확인한 뒤, 혜준이 인터넷을 뒤져 각종 자료를 긁어모아왔다. 두 사람의 생년월일 및 데이트 성향, 주로 다니는 여행지, 선호하는 관심사. 수철은 고객과 그의 남자 친구가 내다 버린 쓰레기봉투 내용물을 뒤졌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 내부도 촬영했다.  

“이번 건 왜 이렇게 결론이 빨라?”  

수철이 의구심을 내비쳤다. 고기가 다 익은 것을 확인한 한준은 아르바이트생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제 저희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오 분 후에 전역하는 말년 병장 같은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한준은 아이패드를 꺼내 사진 몇 장을 띄웠다. 전부 수철이 찍어온 것들이었다. 첫 번째 사진에는 고객의 애인 방이 찍혀 있었다.  

“봐봐.” 

수철은 고개를 숙이고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평범하다 못해 조금 심심한 방이었다. 눈에 띌 만한 가구는 무채색의 침구류, 커다란 전신 거울이 전부다. 작은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만 놓여 있고 활짝 열린 옷장에는 옷이 그득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전신 거울 옆에 비치한 행거에도 옷이 가득 걸려 있었다.  

“책상에는 볼펜 한 자루 없어. 책도 없고.” 

한준의 손가락이 옷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손가락이 화면에 닿을 때마다 사진이 확대되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의 규모나 가구들에 비해 옷이 지나치게 많아. 고급 브랜드 옷들도 심심찮게 보여. 옷 사이즈들도 엄청 작은 걸 보니 마른 체격의 소유자야. 타고나게 말랐을 수도 있지만, 일부러 체중에 신경을 쓰고 있을 가능성도 커.”  

사진이 빠른 속도로 넘어갔다. 한준은 쓰레기봉투 속에서 꺼낸 증거물들을 확대했다.  

“내용물들 봐. 음식과 관련된 게 없어. 치킨 상자조차 없단 말이야. 화려한 옷을 좋아하고 체중 관리를 하는 걸 보니 타인의 시선을 즐기고 자기애 성향도 강해. 싫증도 잘 내고. 별 하자 없는 양말이나 물건, 액세서리들도 쉽게 버렸어. 결정적으로 이거.” 

한준은 사진 한 장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페이지가 넘어가자, 영수증만 따로 모아 촬영한 사진이 나타났다.  

“이 남자의 거주지, 건물 형태, 그 안에 갖춰놓은 가구들에 비해 지출이 과해. 소득 수준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데 수입 대부분을 외적인 요소에 쓰고 있어. 영수증 내역들도 보면 제법 비싼 식당이나 카페에서 지출한 게 대부분이야. 허세지.”  

한준은 혀를 쯧쯧 찼다.  

“너도 그런 거 좋아하잖아.” 

수철의 지적에 한준은 도도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비교급이 잘못됐어. 나는 잘 버니까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얘처럼 못 벌면서 이러는 건 허세. 오케이?”  

그러면서 사진을 또 넘겼다.  

“그에 비해 정슬기 고객은 관계 지향적인 성격이야. 애인,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벽에 잔뜩 붙여두었잖아. 전체적인 톤도 밝고 따뜻해. 곳곳에 본인이 직접 뜨개질을 하거나 퀼팅한 물건들이 많이 보여. 책장에는 밝고 희망적인 내용의 연애 소설이나 에세이가 잔뜩 꽂혀 있고.” 

수철은 목을 빼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쓰레기봉투에서는 주로 청소기 필터나 생활 쓰레기, 빈 소스 병, 음식 재료 겉봉투가 나왔어. 책상에는 타로 카드도 한 벌 있고. 소소한 일상생활을 즐기고, 작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읽는 책이나 붙여놓은 사진 분위기를 보니 낭만적인 성향도 짙어.” 

한준은 상추를 반으로 잘라 고기를 얹어 작은 쌈을 만들었다.  

“둘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정반대라 더 잘 살 수도 있는 거 아냐?”  

한 입 크기로 쌈을 만들어 우아하게 먹는 한준에 비해, 수철은 흡사 산적처럼 입안에 고기를 우겨넣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코브라가 커다란 알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모습 같아 한준은 진저리를 쳤다.  

“결정적으로 이 남자, 다른 여자 있어.” 
“뭐? 쓰레기봉투에서 속옷이나 스타킹은 못 봤는데.”  
“그런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큰 틀을 못 본다니까.” 

한준이 날렵한 손짓으로 화면을 넘겼다. 다시 남자의 영수증 사진이 떴다. 한준은 가운데에 놓인 영수증 하나를 골라 크게 확대했다. 백화점에서 발행한 영수증이 보였다. 수철은 214,000원이라는 가격을 보더니 수북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인상을 썼다. 

“뭐가 이렇게 비싸?”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한준이 물었다. 수철의 표정을 보아하니, 영수증에 적힌 백화점 이름과 샤넬이란 단어가 바람 여부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찾아내지 못한 듯했다.  

“이게 뭔데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거야?” 
“날짜를 봐. 그 남자, 일주일 전에 향수를 구입했어.” 

수철은 눈을 희번덕대며 사진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아무리 봐도 ‘샤넬(화장품)’이라고만 쓰여 있을 뿐, 어떤 물품을 구입했는지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 밑에 바코드 번호 찍혀 있잖아.”  

수철은 우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기함했다. 

“무서운 새끼. 바코드 번호까지 다 외우고 다녀?”  
“미쳤어? 바코드를 어떻게 다 외워.” 
“그럼 향수인지 어떻게 알아?” 
“혜준이가 찾아줬어. 바코드 번호를 구글에 치면 무슨 물건인지 바로 뜨거든.” 

수철은 화등잔처럼 눈을 크게 뜨고 사진과 한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도 완전히 수긍한 눈치는 아니었다.  

“애인한테 선물하려고 한 거 아니야? 자기가 뿌리려고 했거나.” 

한준이 냉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가 구입한 건 No.5 향수야. 남자들이 흔하게 뿌리는 향은 아니지. 혹여 본인이 뿌리려고 했다면 방 안에 향수병이 놓여 있었을 거야. 하지만 없었잖아? 여자에게 선물하려고 샀을 가능성이 높아. 정슬기 고객의 방 인테리어 분위기를 보면 그녀가 좋아할 만한 향도 아니고.”  

한준은 사진을 넘겼다. 고객의 방을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한준은 화장대 부분을 확대했다. 

“구석에 향수 따로 정리해놓은 거 보이지? 네가 이 사진 찍어온 게 엊그제야. 향수를 구입한 건 일주일 전. 선물 받았다면 여기 있어야지. 그런데 없잖아.”  

그의 말대로 화장대 위에는 수수한 계열의 색조 화장품 몇 개와 기초 화장품, 머스크와 우드 계열의 향수병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고로 향수는 다른 사람에게 갔다, 이 말씀.” 

순간 칙 소리와 함께 아이패드 액정 위에 기름이 튀었다. 한준은 경악하며 재빨리 아이패드를 가방에 넣었다.  

“가방에 들고 다녔을 수도 있잖아.”  

수철이 말꼬리를 잡았다. 한준은 코웃음을 쳤다.  

“가격대를 보니 백 밀리리터를 샀어. 정슬기 고객의 꼼꼼한 성격상 따로 덜어서 들고 다닌다면 모를까, 이 큰 걸 통째로 들고 다닐 가능성은 별로 없어.” 
“숨어서 지켜봤을 때는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사람 일 모르는 거지.” 

수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기할까?” 

한준이 물었다. 수철은 고기를 집다 말고 동작을 멈췄다. 승부욕 하나만으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대회가 있다면, 챔피언은 따 놓은 당상일 수철의 두 눈이 흥분으로 빛났다.  

“투 뿔 한우 걸어.” 

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싫을 이유가 없다. 고급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식당 목록을 떠올리며, 한준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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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스트리 2018-05-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안만들면 이상할 지경이오^^ 엄지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