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총을 소지했다고?”
꾸벅꾸벅 졸던 예은은 옆자리에서 버럭 들려온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출동 준비해. 총 가진 놈 있다니 무장하고.”
전화를 내려놓은 두진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총이라고요?”
평소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는 예은이지만, 이번만큼은 놀랐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니미, 오늘의 운세가 어째 그 모양이더라니. 야, 2팀. 출동 준비.”
두진이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강력반 내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총기 소지라니,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니다. 믿기지 않는 신고 접수에 다들 놀라워하며 총을 챙겼다.
“아직 사고 난 건 없지?”
“어, 바로 신고했나 봐.”
앞서 달려가던 양진명과 유동우가 잔뜩 긴장한 채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은은 급히 차량 뒷좌석에 올라탔다. 대체 얼마나 맛이 간 놈이기에 도심 한복판에서 총을 들고 있단 말인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예은은 다급히 두진을 뒤쫓아 나갔다.
수철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달아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골목이 어두워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마지막에 휴대폰을 꺼내 “여보세요, 경찰이죠? 여기 초…… 총이!”라고 외치는 소리는 들었다.
“니미, 망했네. 너 때문인 거 같은데, 동의하냐?”
수철은 잔뜩 인상을 쓰며 멱살을 쥐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움찔대며 떨고 있는 남자는 비쩍 마른 체격에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수철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김경자 사모의 집을 나온 이후, 수철은 한준의 사인에 따라 담벼락을 돌며 이상한 흔적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지금까지 미남당을 운영하며 여러 사람들을 겪어온 결과, 기묘하다며 벌어지는 일들의 대부분은 사람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간혹 과학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도 있음을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김경자 사모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초자연 쪽이면 무조건 튀는 거다.
한준과 수철은 초인종을 누르기 전 그렇게 합의했다.
도둑이 침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철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길가를 유심히 살폈다. 한준이 보낸 신호대로 바깥을 확인해보니, 앞쪽 담장의 넝쿨들에는 찢겨진 흔적이 없었다. 버젓이 길가에 나와 있는 데다 방범 장치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정문으로 뭔가가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수철은 곳곳을 살피며 혜준에게 지형을 송출했다.
─오빠가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없냐는데? 뒷마당 쪽 하수도관이 오빠가 서 있는 쪽 하수구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쪽으로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대.
무심코 담배를 입에 물던 수철은 눈앞에 뚜껑이 반쯤 열린 하수구를 보았다. 아까 김경자 사모 댁에 들어가기 전, 한준과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담배를 버렸던 곳이었다. 그때도 하수구 뚜껑은 열려 있었다.
“찾아볼게.”
수철은 담배를 귓가에 꽂은 뒤 하수구 뚜껑 근처로 다가갔다. 진흙 발자국이 검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찍혀 있었다. 수철은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발자국을 향해 걸었다. 수철의 맞은편에서 외투 옷깃을 꼭 여민 채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여자가 있었다. 술을 좀 마셨는지 걸음걸이가 살짝 흔들렸다. 수철은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수철을 본 모양인지, 어느 순간부터 여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수철은 딴청을 피우며 바닥에 찍힌 진흙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여자가 그대로 수철을 스치고 지나가려던 순간. 담벼락에 바짝 몸을 붙인 채 김경자 사모의 집 쪽을 주시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수철의 감이 강렬하게 말을 걸어왔다. 저 새끼라고. 수철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한준이가 인상착의도 설명해줬어?”
─하수구 관을 통과해 빠져나간 걸 보니 심하게 말랐을 거래. 냄새도 날 거고.
그러고 보니 사내가 있는 쪽에서 묘한 하수구 냄새가 났다. 허공을 적시는 썩은 내를 맡으며 수철은 남자를 향해 몸을 틀었다.
남자는 위기를 느꼈는지 골목 바깥으로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뛴 방향이 여자가 있는 쪽이었다. 여자는 꺄악,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철은 곧장 남자를 쫓아 달렸다.
수상한 자가 아니라면 저렇게 달아날 이유가 없다. 혹시 위험한 흉기라도 가지고 있어 여자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철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남자는 운동 신경이 좋지 않았다. 뛰쳐나온 그 순간만 빨랐지, 달리는 모양새도 엉망이고 속도도 느렸다. 덩치와 다르게 백 미터를 십 초 안짝으로 끊는 수철은 금세 남자의 뒷덜미를 움켜잡을 수 있었다.
“잡았다, 이 새끼. 너 왜 달아났어?”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꽤 어려 보였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머리와 얼굴에는 오물과 더러운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수철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혼이 나간 얼굴로 부들부들 떨더니, 길바닥을 향해 천천히 손가락을 뻗었다. 수철은 여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다정하고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총이 떨어져 있었다. 배송받자마자 금이야 옥이야 아끼며 어루만졌던 신상 콜트가, 은은한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바닥에 놓인 총, 비쩍 마르다 못해 한 대 치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남자의 멱살을 쥔 채 사악하게 웃고 있는 수철의 모습. 여자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뻔했다. 여자는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 있는 힘을 끌어 모아 소리쳤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강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