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_늑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사내는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큼지막한 드라이버 하나가 박혀 있었다. 


“계속 그렇게 기도나 하고 있을 거야?”


카를로스가 물었다. 당장이라도 혀를 잘라버리고 싶지만 꾹 참았다. 사내에게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었다.


“너희한테 돈하고 그 지도를 준 새끼가 누구냐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인가?”


사내는 못 들은 척 계속 주기도문을 외웠다. 똑같은 기도문 계속 반복하기 기네스 신기록이라도 세우려고 결심한 모양이다. 카를로스는 사내의 어깨에 꽂혀 있던 드라이버를 뽑았다.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와 사내의 굵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다. 검은 전갈 문신이 진득한 피로 번들거렸다. 사내의 입에서 기도문 대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를로스는 나르코(마약 밀매상을 뜻하는 에스파냐어 속어)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새끼 마약상으로 시작해서 나름대로 자기 사업을 꾸려가다가 디에고 모레노를 만났다. 동물농장에 가담한 후에는 조직의 사업을 관리하며 좀 더 큰물에서 놀 수 있었다. 평생을 나르코로 살면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카를로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꽤 많은 사람을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팼고, 때론 죽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고문해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원하는 정보가 있으면 돈을 주고 샀다. 지금까지는 그걸로 충분했다.




난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독실한 크리스천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카를로스는 초주검이 된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택 지하실에서 전갈 문신을 데리고 난리굿을 친 지 벌써 세 시간째다. 벽 한쪽에 세워놓은 기다란 망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말이 안 통하면 두들겨 패고, 그래도 안 통하면 찍고 째고, 그것도 안 통하면 깨부수는 수밖에. 카를로스는 두 손으로 망치를 들고 사내 앞에 섰다.


“불어. 그럼 살려줄게.”


사내의 눈에는 공포의 기색이 역력했다. 드디어 먹힌 건가? 카를로스가 회심의 미소를 띠는 순간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시옵소서…….”

“이런 개새끼가!”


카를로스는 자제력을 잃고 망치를 한껏 치켜들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대로 사내의 정수리를 박살내버리고 싶었다.


“도와줄까?”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이였다. 그녀는 1층에서 지하실로 내려오는 계단 중간에 앉아서 카를로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기 앉아 있었던 걸까? 카를로스는 순이를 쳐다보며 슬며시 망치 대가리를 내렸다. 계단을 완전히 내려온 순이는 카를로스에게 다가왔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나 보군.”


그녀가 물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


카를로스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순이는 사내에게 다가가 유심히 상태를 살피더니 잡동사니로 가득한 지하실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초짜들은 함부로 손을 대다가 죽여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


그녀는 지하실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캐비닛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먼지바람이 뿌옇게 일어났다. 그녀는 인상을 쓰고 캐비닛 안을 뒤적거리다 꼬치를 구울 때 쓰는 가늘고 긴 꼬챙이를 끄집어냈다. 순이는 꼬챙이를 손에 쥐고 사내에게 다가왔다. 그는 아직도 주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사내의 뺨을 매섭게 후려쳤다. 통증에 넋이 나간 듯, 사내의 표정이 한순간 멍해졌다.


“잡아.”


순이가 꼬치로 사내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뭐하려고?”


카를로스가 물었다. 순이는 대답 대신 사내를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무슨 속셈일까? 이 녀석을 어떻게 요리할지 구상 중인 걸까? 카를로스는 순이가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그는 망치를 땅에 던지고 사내의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알고 싶은 게 뭐지?”


순이가 물었다.


“이놈은 이미 알고 있어. 자기가 뭘 말해야 하는지.”


카를로스가 말을 끝내자마자 순이가 우악스럽게 사내의 왼쪽 눈꺼풀을 벌렸다. 그리고 꼬챙이 가운데를 손에 쥐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카를로스도 숨을 삼켰다. 꼬챙이의 날카로운 끝이 사내의 눈동자에서 1센티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순이의 손에는 약간의 떨림도 없었다. 그녀는 마치 로봇처럼 정확하게 멈췄다. 


“말해.”


순이가 말했다. 사내는 침만 꿀꺽 삼켰다. 꼬챙이를 든 손이 다시 치켜 올라갔다. 


“밤새도록 할 수도 있어. 원한다면.”


사내는 대답 대신 꿀꺽 침을 삼켰다. 순이가 다시 꼬챙이를 내리찍었다. 꼬챙이 끝은 또 다시 사내의 눈동자를 겨눈 채 바로 위에서 멈춰 섰다. 전보다 거리가 더 줄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미세한 차이지만 사내에게는 달랐다. 그에게는 꼬챙이가 각막과 종이 한 장 차이로 멈춰 선 것처럼 느껴졌다. 순이가 조금만 손을 떨어도 꼬챙이가 눈을 파고들 것 같았다. 극한의 공포가 사내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역겨운 냄새가 피어올라왔다. 카를로스가 냄새를 쫓아 고개를 돌려보니, 흘러내린 피로 물들어 있던 사내의 바짓가랑이가 대소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로…… 로보(Lobo)!”


사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순이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를로스가 영어로 번역해주었다.


“늑대(wolf).”


순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가 뭐 어쨌다는 거야? 제대로 말해!”


카를로스가 사내의 귓가에다 윽박질렀다.


“늑대 문신을 하고 있었어. 메…… 멕시코 놈이었고…….”

“확실해?”

“인사하는데…… 네타 그라시아스(Neta gracias)라고 하더라고…….”


네타(Neta). ‘정말’을 뜻하는 멕시코 은어다. 이 사내는 상대방의 억양을 바탕으로 그가 멕시코 출신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 새끼 이름이 뭐야? 소속은?”

“몰라.”

“그것도 모르면서 의뢰를 받아?”

“정말 그거밖에 몰라…….”


사내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래……, 얼굴은 기억나?”


카를로스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사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

“눈 색깔은?”

“갈색! 갈색이었어.”


갈색 눈동자를 가진 멕시코 사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녀석을 더 족쳐봤자 쓸 만한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소변과 함께 뱉어낸, 늑대 문신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카를로스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정보일 터였다. 카를로스는 뒤춤에 차고 있던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뭐야 씨발! 불면 살려준다며?”


사내가 고함을 질러댔다. 카를로스는 탄창을 열고 총알을 하나씩 채워 넣으며 말했다.


“뻥이야.”


그 한마디에 사내는 무너져내렸다. 저항할 힘도 다 빠져나갔는지 물에 젖은 짚단처럼 축 늘어졌다.


“조카뻘 되는 애한테 그런 짓거리를 한 새끼를 살려둘 것 같아?”


카를로스가 사내의 머리통에 총을 겨눴다.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사내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서 물어? 너랑 같이 있던 그 여자애 말이야.”


카를로스가 윽박질렀다.


“아…… 걔 말하는 거야? 씨발, 그건 그냥 전리품이었다고…….”


사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쓰레기 같은 놈.”


카를로스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때 망치가 번개처럼 날아와 사내의 주둥아리를 파고들었다. 사내의 턱뼈가 으스러지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둔중한 쇳덩어리가 그대로 사내의 혀를 짓이기고 목울대를 부숴버렸다. 피를 한 바가지 쏟아내며 사내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의 아래턱은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망치의 궤적을 따라 함몰된 얼굴은 피로 물들어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카를로스가 경악한 얼굴로 순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내를 발로 툭 차서 죽은 것을 확인한 후 망치를 내려놓았다.


“총알이 아깝다.”


순이가 손에 묻은 피를 바지에 닦으며 말했다.








 <슬픈열대>

  7월 14일 출간예정


  [연재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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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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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7-07-0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리 전개 상 잔인한 장면은 어쩔 수 없는 거죠ㅠㅠ 미드 보는 것 같아요!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