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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의 도시
연여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평점 :
#서평단 #도서제공
한줄로 압축하자면 주인공 시진의 모험과 성장기다. 그리고 그는 혼란 속에서도 신념을 위해 타협 대신 저항을, 은거 대신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의 대변인이다. 거울처럼 비추는 우리 현실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세심하게 심어둔 단서들, 초반에 심어둔 파편들을 하나씩 쥐어가며, 새로운 우정과 연대, 비밀을 헤아리고 끝내 맞이하는 종장이 먹먹하다.
“이곳의 모두와 함께(p.455)” 동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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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시이자 기업인 라뎀Lathem, 근미래 설정인 이곳은 디스토피아다. 행정의 민영화, 자유가 앗긴 자리에 기본 소득 ‘뱅커 페이’가 들어차고, 삶은 각박하고 계급은 공고화된다. 햇볕 한줌도 온전하게 누릴 수 없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상의 불행으로부터 비켜나 공중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이들이 있다.
전세계적인 토양오염으로 몸에 뿔이 자라는 ‘각인’이 등장하고, 뿔이 없는 인간들은 ‘면역인’이라 명명한다. 행세깨나 하는 ‘면역인’들은 공중도시를 만들고 공중과 겹쳐지는 지상의 코어 구역은 모두가 꺼리는 우범지역이 된다.
자연은 한줌 자비를 베풀어 ‘흑각’이라는 자생식물로 각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흑각을 도구화하고 계급을 나누고 낙인을 찍고 배척하고 배반한다. 다만, 이 모든 부조리에 저항하는 이도 있다.
주인공 ‘시진’은 뱅커이자 면역자로, 기본 페이에 기대 살면서 친구 제레미와 암석사막의 야생 흑각을 채취하면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한다.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누나 ‘유진’의 행방불명과 각인 친구 ‘베르트’의 살해 사건 등으로 삶의 궤적이 크게 바뀌게 된다. 언제고 면역자의 눈으로 바라볼 것 같던 세상이 새롭게 짜맞추어진다. 그 와중에 새로 만나는 인연들이 생기고, 친구 제레미와의 관계도 재정립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코어’와 지상 ‘그늘’ 구역을 오가면서 행동하는 시진은 누나 유진과 베르트의 빈 자리를 규명하고자 애쓴다. 그들의 부재가 의미하는 바와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겹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자연이 허락한 ‘흑각’을 통치와 지배, 억제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설정에 저항해서 주인공 시진이 ‘불법적으로’ 야생 흑각을 채취하고 유통하는 장면의 의미 역시 곱씹게 된다.
시진은 불심 검문으로 지상과 공중을 잇는 2구역의 보안국으로 붙들려 가면서 “이런 취급을 받을 바에야 24시간 캄캄한 그늘에 종일 박혀 공중을 떠받치는 편이 백배 나았다(p.17)”고 말한다. 지상의 대부분이 선망하는 공중시민권자들의 구역은 시진에게 별 매력이 없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이런 취급’을 눈여겨보게 된다. 직접 증거도 물증도 없지만 괘씸죄 하나로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취급, 시진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정교한 설정으로 암울한 세계를 직조하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시진의 행적들을 조명한다. 자유와 평등, 주권같은 것들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지켜내기 위해서는 깨어있고, 행동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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