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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매듭
배미주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9월
평점 :
#도서제공 #서평단
다섯 명의 작가가 ‘모계 전승’에 관해 말한다.
다채로운 목소리만큼 그들의 이야기가 가진 세계관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사와 문제의식을 폭넓게 확장한다. 독자를 사로잡고 강력한 연대와 구원의 의지를 북돋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흥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오래도록 대물림 되어 온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것들에 대해 지적한다.
‘투명한 존재’로 치부되는 노동자, 사회적 약자, ‘진화’의 전복이 타당함을 알리는 선구자, 친족 간 학대, 자매애, 여성 서사 수집과 전승을 업으로 삼는 자들, 만연한 여성 범죄를 별 것 아닌 일로 보는 타자의 시선, 보도행태 등 현실과 허구를 엮어서 선보인다. 여성과 관련한 일련의 가치관들을 곰곰히 되짚어 보게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전복된 시선으로 훑어볼 때, 어딘가 미묘한 지점들은 분명히 있다.
특히, 매 단편이 끝나면 따로 작가의 인터뷰가 실린 게 좋았다. 그냥 읽고 넘길 이야기에서, 한 번 더 짚어 볼 이야기가 되게끔 한다.
‘우리가 영원히 우리로 연결되어 있음’(p.47)을 알리고 ‘내 삶을 갉아먹는 존재들은 다 버려도’(p.88)된다고 말한다. ‘종이 아닌 개체‘를 강조하면서 ‘저마다의 우리는 이미 온전한 개체’(p141) 단언한다. ‘자매란 내가 겪은 고통을 알겠다고 이해하는 사이’(p.190)로 이것은 혈연관계를 초월하기에, 다시 말해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를 구할 것’(p.261)이라 소리 높이는데, 여지없이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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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미주 작가의 「이삭은 바람을 안고 걷는다」
: 여성 간 연대, 강요된 모성애. 특히 도도 씨의 건조하지만 최소한의 곁을 내어주는 설정이 좋았고, 이삭의 엄마를 전형적인 ‘어머니 상’에서 빗나가게 그린 게 통쾌하다.
정보라 작가의 「엄마의 마음」
: 주인공 완의 집안에 얽힌 ‘저주’는 마치 ‘가임기 여성’에서 여성은 지워버리는 세태가 떠오른다. 여자든 엄마든 자식이든 그전에 사람이라는 것. 완이 평범‘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낳지 않는 것만이‘ ’아이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p.83)이라 생각하는 장면이 제목을 관통한다.
길상효 작가의 「행성의 한때」
: 종이 아닌 개체, 개개인 개성.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라는 간극을 둠으로써 오히려 종렬로 내리꽂히는 모계 전승 극대화한다. 단순히 일반화 된 여성상을 깨뜨리며 ‘늑대’를 끌어온 게 멋지다. 인간 진화론 뒤집는 데서 쾌감이 일고 신선했다.
구한나리 작가의 「거짓말쟁이의 새벽」
: 친족 간 성적 폭력을 함의하고 있다. 불행은 이모-조카 대로 대물림되고, 주인공 지효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원인 불명의 고통, 타인의 고통 전이되는 증상으로 삶이 해체된다. 초반에는 의미가 선명하게 와닿지 않고 어수선한데 마무리 부분에서 여성 간의 연대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쌍둥이 지효와 지인이라는 설정으로 ’자매애‘를 강조한다.
오정연 작가의 「오랜 일」
: 여성 서사, 사연을 수집하고 꿈으로 이어지게 전달하는 ‘수집가’ 설정이 독특하다. 이 수집가들의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들어 있는데 흥미롭다. 시대와 지리적 배경은 다양하고 오직 ‘여성’에게 이어지는 업이라는 점에서 모계전승 그 자체다. 특히 수집한 사연을 소리 내어 말할 때, 스스로를 구원한 자매의 이야기는 현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더 와닿는다. 우리가 목소리낼 때만이 ‘우리를 구원’(p.235)할 것이다.
주인공 영설은 기자로 그의 반려인 미지는 여성 대상 범죄에 의해 희생된다. 그가 그것에 관해 ‘어떻게 목소리 낼 지’ 고민하는 끝에 해답을 찾는다. 사유하는 길은 수집가들이 이미 열어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