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김신정 지음 / 사계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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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윤동주를 왜,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p.8)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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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하면 별 헤는 밤, 저항시인, 독립운동 등이 생각난다.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의 마지막에 다다르는 그가 겪은 참담한 고통의 시간 정도를 감히 가늠해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는 이런 윤동주의 윤곽을 선명하게 비추고, 생전 끝내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던 시인의 시어와 시 세계를 깊게 들여다본다.

육필이 그대로 남겨진 습작노트들에 빼곡하게 들어찬 퇴고의 흔적들은 시간을 압축하고서 우리를 윤동주와 마주하게 한다.

시어를 고르고 조합하고, 생각나는 낱말들과 문장들을 낙서한 메모들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치열한 창작욕, 그를 둘러싼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이 덧대어 비친다.

오래된 습작노트와 낱장 원고들을 통해 열어젖힌 윤동주는 늘 경계에서 정체성이 어긋나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여러 겹의 목소리를 들려“(p.240)주는 시와 산문을 남겼다.

나고 자란 간도와 식민 지배 아래 조선과 유학을 떠난 일본에 이르기까지 윤동주는 경계를 넘나들며 계속 “움직이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는 다중언어 (조선어, 조선어 중에서도 함경북도 육진의 방언, 일본어 등) 환경에서 시를 써야했다.

그의 고유한 시어는 “여러 말들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p.162)이자, “당대의 ‘산 말’ 속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고 잇고 다듬”(p.231)어낸 산물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윤동주의 시를 해체하고 시 세계를 완상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 그를 둘러싼 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려 한다.

저자는 윤동주 시인을 향한 열렬함으로 무장하고 그의 습작 노트와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고, 사람들을 직접 만난다. 그들은 저마다 윤동주의 시를 번역하거나 소리내어 읊고, 그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그를 기리고 기억한다.

시간의 경계도 나라의 경계도 다 흐릿하고 오직 윤동주만이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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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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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모양의 꼬투리, 벌노랑이 꽃.
꽃말 : 복수 (p.147-148)


보통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다. 어둠과 악으로 무장했지만 유쾌하기까지 하다. 사이코패스 가정교사 위니프레드 노티는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망설임 없이 순도 높은 악을 행하고, 광기에 물든 잔혹함을 드러낸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것은 두려움, 그래서 그는 아직까지 두려움을 모른다.(p.79)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수록 사실 뒤틀린 것은 세상이지 노티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애초에 그가 죽음을 행하고 어둠을 부릴 때, 아무도 설득하려 든 적이 없는데 은은하게 동조하게 되는 건 서사가 가진 힘일 것이다.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 묘사가 잦다. 식욕, 번들거리는 입가, 살코기 뿐 아니라 콩팥과 같은 내장요리를 즐기는 순간을 목도하는 관찰자의 시선은 귀족 사회의 부조리함과 위선을 훑는다. 덧붙여 여성을 향한 억압이 세계관 내에 잔잔하게 깔려 있음을, 노티가 그것에 잘 벼린 날을 세운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채게 될 것이다.

노티는 자기 이름 위니프레드에서 ”프레드는 내 안에 사는 악마 이름“이라고,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악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p.45)다고 이미 고백했다. 악을 저택에 불러 들였으니 징조를 읽어내는 것은 주인된 자의 몫이었다.

핏빛으로 얼룩진 활자들을 읽다 보면 분명 혐오가 이는 지점이 있다. 그런데 노티는 언제나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어서, 윤리적 잣대가 무소용이어서, 한바탕 광기 어린 장난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그가 완성하는 죽음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독자는 갈비뼈 안에서 쉬고 있는 어둠을 잘 다독여야 한다. 동요하지 않도록. (p.222)

정말 참신한 캐릭터가 이끄는 잔혹한 여정, 고삐가 없다. 마지막까지 허를 찌르는 순간들이 잦아서 숨이 자꾸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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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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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독창적인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책이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만큼 이 이야기가 가진 의미가 무거운 까닭일 것이다. 한국 무속 신앙적 요소-모계전승을 의미하는가 하면, 더 큰 카테고리 ‘여성’으로 묶어 그들의 목소리,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아리가 되고자 한다.

저자가 구축한 세계관은 문장으로 친절하게 읽히기 보다는 실감하거나 감각한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줄곧 한국 설화나 앞선 세대의 여성에 관해 말하지만 시작과 끝이 선명한 서사가 아니라 주인공 엘사 박의 삶의 궤적으로, 가족에서 기인한 정신적 고통, 기억등으로 드러난다.



엘사 박은 이민자 부모님을 둔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또 그런 마음에서 기인한 죄책감으로 번민한다. 특히, 어머니의 히스테릭한 언사, 그녀가 늘어놓는 가족적 저주, 한국 설화, 민담에 얽힌 여성서사는 엘사를 옭아매려 든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거부하려 애쓰지만 운명 앞에서 모든 노력은 다 헛된 것만 같다.

붉은 댕기 머리를 땋은 ‘친구’를 자꾸만 보는 엘사, 흡사 신병과 닮은 경험은 어머니에게서 엘사에게로 이어진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녀를 “통해 전달된 증언과 어쩌면 복수를 요구하는 조상의 명령”(p.14)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오컬트 소설과의 차이점은, 이 책에서는 무속 신앙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영적인 현상들이 메아리처럼, 기록에서 소외된 여성 억압의 역사를 전달하는 “기억”으로서 묘사된다는 점이다.

읽는 내내, 엘사가 보는 붉은 댕기 머리 친구는 영적인 존재 혹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여성들의 기억, 메아리, 목소리라고 볼 수도 있고, 미국인이지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한국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엘사는 스스로를 “침입자”라고 표현한다. “시간에서, 육체에서 떨어져 나와 카페인과 넘치는 햇살 속을 떠다니는 부유물”(p.18), 현실에 모호하게 걸쳐진, 그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책을 관통하는 서사 줄기는 이런 엘사의 영적 탐구 여정이나 다름없다.

특히 소설의 중간 챕터마다 자리한 한국설화는 이 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해하려 들 때, 해묵은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여성이자 자매들의 계보는 시대와 혈연을 넘어서 여전히 힘이 있다.

에밀레종, 선녀와 나무꾼, 오작교 설화, 심청이야기, 여우자매, 가야 수로왕의 왕비 - 허황옥 설화, 그림자 자매(장화 홍련전의 다른 버전으로 보임), 바리데기 설화를 소개한다. 이것은 엘사의 어머니에게서 이어진 ‘기억들’일 것이다. 위대한 여성들에게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되고 우리가 “그들의 삶에서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p.95)한다는 탄식은, 처절한 성찰이다.

특히 엘사가 이 모든 것에서 놓여나기 위해 입자 물리학자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떠오르는 기억을 막을 수는 없”(p.79)다고 자인하며 기어이 “기억”을 하고 “누군가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을 찾아 헤매기 시작”(p.608)한다. 이는 온전히 나를 받아들이고, 모든 여성들의 비극적 서사와 연대하겠다는 하나의 선언이자 여성 계보를 그대로 보여주는 서사라고 느꼈다.

이민자로서 겪는 정체성과 인종차별, 디아스포라 문학, 여성서사가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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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발칙해도 될까 페이퍼사운드 숨·쉼·음 1
알레프 지음 / 브로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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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음악 안과 밖에서 흘려보내는 일상과 단상을 담백한 문장으로 담았다.

싱어송라이터 알레프가 멜로디에 얹은 가사로 전하던 마음들을, 작가 알레프가 되어 활자로 엮은 문장으로 내민다. 팬들은 환대할 만하고, 그를 처음 만나는 이들은 이 산문집을 건너가 그의 음악을 찾게 될 것이다.

현학적이거나 있어보이는 단어를 고르고 나열하지 않는다. 소탈하고 진솔하게, 세상을 관통해가는 사람으로서의 여정을 나눈다.

속엣말로 묻어둘 만한 내밀한 마음들도 다 꺼내보인다. “창작을 생업으로 삼는 나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p.26)고, “열정은 재능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대신, 오래 남았”(p.19)고, “결핍은 내가 가진 강점을 더욱 집요하게 증폭시키는 일종의 연료로 작용했”(p.35)다고 말한다. 작품에 관한 확신이나 불안, 침묵, 사랑, 음악을 대하는 신념, 오랜 습관들을 담담히 풀어둔다.

솔직한 글은 마음에 오래 잔상을 남긴다. 재능 앞에 여전히 겸허하고, 실패와 성공은 그저 환경이고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p.158-159) 읊조리면서, 음악을 향한 사랑을 무덤덤하게 고백한다.

그의 문장들은 술렁대던 내면을 적요에 잠기게 한다. 만물이 고요해지는 새벽의 순간을 닮아있다. 짊어지던 것들을 다 내려두고 온전히 나로서 세상과 대면할 용기를 준다.

사랑을 당부하고 희망을 발견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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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다커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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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으로 가득찬, 밀실 스릴러이자,
“이기적이고 사악한 가족 이야기.” (p.55)


여미새 x 남미새 조합의 유해함에 숨통 터질 것 같지만 정의는 실현된다.

만조에 고립되는 섬, 고풍스럽다 못해 으스스한 역사까지 안고 있는 대저택 ‘시글라스’가 배경이다.

작가이자 다커 집안의 할머니 비어트리스 다커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아들과 전 며느리, 세 명의 손녀들, 증손녀 그리고 코너 케네디라는 손자뻘 이웃을 모두 이 저택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다커 집안 가족들은 박정하기 그지 없어 단란한 분위기는 찾기 어렵다. 10년 만에 모였어도 저마다 날 세우고 의심할 뿐이다. 비어트리스가 공개할 유언장에나 공통된 관심을 가졌을까 싶다.

사실, 이 ‘다커 가’를 한데 묶을 만한 것은 오직 죄악으로 범벅된 ‘비밀’이었고 이제 그 공과를 가릴 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비밀’은 세월에 몸피를 불려 더는 비밀로 머물 수 없다.

세 명의 손녀인 로즈, 릴리, 데이지 자매 사이에 얽힌 애증, 첫사랑을 축으로 뻗어나가는 과거사는 좀처럼 매듭이 풀리질 않는다. 그 와중에 대저택 시글라스에서는 할머니를 필두로 한 명씩 목숨을 잃게 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공포와 의심으로 서로 불신한다.

스포 없이 읽기를 권하는 책이다. 추리소설 애독자거나 눈치 좋은 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그래도 반전과 반전으로 가득하기에 스포 없어야 참맛을 느낄 듯.

처음 읽을 때 무심하게 지나쳤던 문장들이, 결말을 알고서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없다.”(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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