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20
권혜영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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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온갖 분야 덕질에 능수능란한 작가가 완성한 현실과 환상의 협주곡.

갖가지 육체적 사랑이 난무하는 세계와 어떤 사랑에도 감흥 없는 세계를 서로 맞대면서,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우리 앞에 끌어다 둔다.

회빙환 소재의 웹소설이 익숙한 이에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모두 새로운 장을 열어 보인다. 흥미로운 소재의 클리셰를 비틀어 흔히 기대하던 서사 전개 방법을 전복시킨다. 빙의한 웹툰 속과 웹툰 밖 현실을 교차하며 한데 엮어보인다.

작가는 거침없고 독자는 짜릿하다.

심야근무를 하다 과로사 한 30대 여성 주인공은 눈 떠보니 19금 성인 웹툰 속 등장인물 ‘이누리’가 되어있다. 애석하게도 이 세계의 남자 주인공은 여러 여성을 거느린 문어발이고, 지금껏 그런 사람(이라 쓰고 놈)의 호구를 자처해왔다.

이 양산형 성인 웹툰을 그린 작가 ‘한소연’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이다. 첫 작품 데뷔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심신이 모두 지쳐 한 컷도 그릴 수 없다. “얼어붙은”(p.214) 상태다.

이누리와 한소연은 웹툰과 현실이라는 각자의 세계에서 고군분투한다. 저마다의 사정을 딛고 일어서 보려한다. 죽어서도 이 지경인 현실을 규탄하거나, 잊고 지내던 과거의 열정을 더듬으며 현실 속 돌파구를 찾으려 애쓴다.

결국 종착지는 ‘사랑’이다.

덕질 관련한 순도 높은 애정부터 ‘자신을 위로’하는 법에 관해 무람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친구와 협력하고 우정을 나눈다. 무심하게 제삼자의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파악하고 돌파하는 용기도 삶을 향한 애착, 곧 사랑이다.

각자의 삶에서 사랑을 회복하는 지점, 어떻게든 살아내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곧 나를 향한 사랑이고 순애임을 두 주인공을 통해 직시하게 된다.

일단 빠져들면 출입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소설.

흥미롭고 솔직하다. 밖에서 읽다가 뒤를 흘끔대는 순간들이 있지만, 뭐 어떤가. 어느 때든 간에 “왔어?”라고 말하며 환대해 줄 세계는 분명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이 책을 열면 그 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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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의 괴이도감
현찬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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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모든 거짓을 뒤집어엎어 밝은 진실 아래 보는 것이 다 좋은 줄로만 아시오? 가만히 놔둬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오. 그게 사람에 대한 배려고, 예의요. p.225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p.245


신라와 가야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동양풍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하다. 작가가 공들여 빚은 세계관은 현실이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시야를 확장시킨다.

악의는 없었으나 순리를 거슬러 이무기의 저주를 받게 된 강수, 두꺼비님과 인간 사이에 난 맹인 점복사 두타비 그리고 흰 까치 돌이가 함께 한다.

동양풍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강수와 두타비의 이야기에 마음이 열릴 것이다.

이들은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다. 기이한 사건에 함께 묶여, 제각기 구원자가 되고 동행자가 된다. 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만난 이들은 서로의 낮과 밤을 지켜준다.

우정은 아름답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여정은 이어지고 삶은 기록된다. 만남과 헤어짐, 경계의 안팎에 자리한 존재들, 괴이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서로 맞대고 스쳐가는 날들은 설화가 되고 기담이 된다.

강수와 두타비의 관계성이 인상 깊다. 서로 대척점에 있으면서 또 닮은 구석이 있는 둘의 조합은 순수한 우정으로 영근다. 티키타카가 잘 맞고, 한쪽이 허술하면 나머지가 기민해 합일이 매끄럽다.

그래서 강수와 두타비의 시간은, 서로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고 두 세계가 각기 존재하는 것을 긍정하는 이야기다. 피끓는 쟁투가 아니라 가슴 먹먹한 모험기다.

자연을 숭배하기보단 이해하려는 가야인과 신화 속에 사는 사람들, 신라인(p.234)이 ‘괴이’를 찾는 모험이야기.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공존을 말한다.

그들이 연구하는 이치와 신화에 깃든 묘미가 맞닿으면 비로소 환상의 녘, 영춘이 어슴프레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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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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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혹 그 땅에서는, 문명하였다는 그 세상에서는, 여자도 무엇이 될 수 있나요? 여자도 발버둥 치고 싸울 수 있나요? 내키는 대로 시절을 욕심낼 수 있나요? -p.125


시절이 격동하니 몸도 마음도 졸아붙을 만 한데 가기 계손향의 의기는 험한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다. 활자로 압축된 배경 속에서도 녹록지 않은 시대상이 선연하다. 개화기 서양 문물, 일제강점기, 만세 운동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배치하고, 버텨내는 민초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두껍지 않은 분량 속에 담긴 생애들마다 사연 없는 이가 없어서, 오래 공들여 읽게 된다. 특히 계손향이 부르는 노랫말과 들려주는 전래동화에 덧 비치는 그의 애상과 감성, 시대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애틋하다.

“그대와 같은 것을 보고 있”(p.29)다는 미리견 사절단 노월은 계손향이 더 넓은 세상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이어지는 그녀의 삶은, 기생과 망국이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다.

흔한 클리셰인가 싶지만 막상 읽어보면 로맨스소설로 한정하기에 서사가 뻗어가는 보폭이 크다. 시대와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계손향의 삶은 구태의연함을 버렸다.

특히 단순히 욕망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노월과의 사랑은 은은하고 운치 있는 ‘붓꽃의 향기‘를 닮아 있다. 사랑에 매몰되어 삶을 종속시키거나 자신을 저버리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그 순간은 계손향이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긍정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모든 것을 억압하는 시절을 살아내면서도 “재주라면 나라 하나 망하게 할 만큼 좋다“고 너스레를 떨고, ”이미 망해버렸으니 이제 그 재주를 구하는 데“(p.239) 쓸 거라는 포부를 내보이는 계손향의 면면이 매력적이다.

깨어 있는 자, 더 멀리 내다보는 자는 어느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장, 생생한 시대상 묘사, 진취적인 주인공이 어우러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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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 움직이는 시인, 살아 있는 언어
김신정 지음 / 사계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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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윤동주를 왜,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p.8)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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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하면 별 헤는 밤, 저항시인, 독립운동 등이 생각난다.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의 마지막에 다다르는 그가 겪은 참담한 고통의 시간 정도를 감히 가늠해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는 이런 윤동주의 윤곽을 선명하게 비추고, 생전 끝내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던 시인의 시어와 시 세계를 깊게 들여다본다.

육필이 그대로 남겨진 습작노트들에 빼곡하게 들어찬 퇴고의 흔적들은 시간을 압축하고서 우리를 윤동주와 마주하게 한다.

시어를 고르고 조합하고, 생각나는 낱말들과 문장들을 낙서한 메모들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치열한 창작욕, 그를 둘러싼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이 덧대어 비친다.

오래된 습작노트와 낱장 원고들을 통해 열어젖힌 윤동주는 늘 경계에서 정체성이 어긋나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여러 겹의 목소리를 들려“(p.240)주는 시와 산문을 남겼다.

나고 자란 간도와 식민 지배 아래 조선과 유학을 떠난 일본에 이르기까지 윤동주는 경계를 넘나들며 계속 “움직이는 시인”이다. 그래서 그는 다중언어 (조선어, 조선어 중에서도 함경북도 육진의 방언, 일본어 등) 환경에서 시를 써야했다.

그의 고유한 시어는 “여러 말들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p.162)이자, “당대의 ‘산 말’ 속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고 잇고 다듬”(p.231)어낸 산물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윤동주의 시를 해체하고 시 세계를 완상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 그를 둘러싼 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려 한다.

저자는 윤동주 시인을 향한 열렬함으로 무장하고 그의 습작 노트와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고, 사람들을 직접 만난다. 그들은 저마다 윤동주의 시를 번역하거나 소리내어 읊고, 그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그를 기리고 기억한다.

시간의 경계도 나라의 경계도 다 흐릿하고 오직 윤동주만이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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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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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모양의 꼬투리, 벌노랑이 꽃.
꽃말 : 복수 (p.147-148)


보통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다. 어둠과 악으로 무장했지만 유쾌하기까지 하다. 사이코패스 가정교사 위니프레드 노티는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망설임 없이 순도 높은 악을 행하고, 광기에 물든 잔혹함을 드러낸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것은 두려움, 그래서 그는 아직까지 두려움을 모른다.(p.79)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수록 사실 뒤틀린 것은 세상이지 노티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애초에 그가 죽음을 행하고 어둠을 부릴 때, 아무도 설득하려 든 적이 없는데 은은하게 동조하게 되는 건 서사가 가진 힘일 것이다.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 묘사가 잦다. 식욕, 번들거리는 입가, 살코기 뿐 아니라 콩팥과 같은 내장요리를 즐기는 순간을 목도하는 관찰자의 시선은 귀족 사회의 부조리함과 위선을 훑는다. 덧붙여 여성을 향한 억압이 세계관 내에 잔잔하게 깔려 있음을, 노티가 그것에 잘 벼린 날을 세운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채게 될 것이다.

노티는 자기 이름 위니프레드에서 ”프레드는 내 안에 사는 악마 이름“이라고,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악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p.45)다고 이미 고백했다. 악을 저택에 불러 들였으니 징조를 읽어내는 것은 주인된 자의 몫이었다.

핏빛으로 얼룩진 활자들을 읽다 보면 분명 혐오가 이는 지점이 있다. 그런데 노티는 언제나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어서, 윤리적 잣대가 무소용이어서, 한바탕 광기 어린 장난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그가 완성하는 죽음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독자는 갈비뼈 안에서 쉬고 있는 어둠을 잘 다독여야 한다. 동요하지 않도록. (p.222)

정말 참신한 캐릭터가 이끄는 잔혹한 여정, 고삐가 없다. 마지막까지 허를 찌르는 순간들이 잦아서 숨이 자꾸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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