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습격(1)



수목이 짙게 우거진 숲은 대낮인데도 깊은 밤인 것처럼 어두웠다. 앞장서서 걷던 작은 체구의 동양 여자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사람 키만하게 자란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눈앞에 펼쳐져 있는 열대우림을 쏘아보았다.


, 무슨 일이야?”


뒤따르던 카를로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하얀 피부에 크고 둥근 눈, 낮은 코와 조그맣고 붉은 입술. 카를로스는 이따금 여자의 나이가 서른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놀라곤 했다.


매복.”


여자가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낡은 토카레프를 빼 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카를로스는 여자가 본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분주하게 주변을 살폈다. 하늘을 가릴 듯한 울창한 숲과 몸을 무겁게 만드는 진득한 습기뿐이었다. 적의 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왜 멈춘 건데?”


에두아르도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가브리엘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한 세트처럼 언제나 같이 다녔다.


매복이 있대.”


카를로스가 말했다.


저 여자 말을 믿는 건 아니지?”


에두아르도가 인상을 구겼다.

카를로스는 다시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숲 저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 어느 용병 브로커를 통해 여자를 소개받았다. 브로커는 이 정도 주급으로 최정상급 용병을 고용하게 됐으니 내 덕인 줄 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브로커는 여자가 북한 35호실 출신이라고 했다. 카를로스는 북한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35호실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브로커는 북한의 CIA 같은 곳이라고 대충 설명해주었다.


카를로스의 보스는 여자의 이력을 전해 듣자마자 그녀를 고용하라고 지시했다. 돈은 걱정하지 말고 후한 조건을 제시해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라고 했다. 카를로스는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뛰어난 총잡이였다. 여자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그런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못 미더운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일행의 맨 끄트머리에 있던 흑인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말이 맞는 것 같군.”


사내는 어깨에 메고 있던 M4 라이플을 쥐고 노리쇠를 당겼다. 그의 말에 에두아르도와 가브리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흑인 사내의 이름은 제프로 이집트 군 소속으로 중동전쟁에 참전한 전력이 있는 베테랑 용병이었다. 여자라면 대놓고 무시하는 에두아르도와 가브리엘도 제프의 말이라면 귀를 기울였다.


저 숲은 숨어서 먹잇감을 기다리기에 딱 좋은 장소야.”


제프가 말했다. 카를로스는 여자 대신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숲을 가로지르는 대신 우회해서 간다.”


카를로스가 그렇게 말하며 출발하려는데, 여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는 우회해라. 난 질러가겠다.”


투박한 에스파냐어 발음이었다. 카를로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매복이 있다면서?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그런데도 질러가겠다고?”

놔둬도 어차피 쫓아온다. 목표 지점에서 기다려. 내가 도착할 때까지는 들어가지 마라.”


여자는 제 할 말만 늘어놓더니 수풀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멈춰!”


카를로스가 여자를 뒤쫓으려는데 에두아르도가 어깨를 잡아 세웠다.


그냥 놔둬. 어차피 데려가봐야 짐만 돼.”

내가 처음부터 여자는 데려오지 말자고 했잖아. 큰일 하는데 재수 없게. 차라리 잘됐어. 우리끼리 후딱 해치우자고.”


가브리엘이 주절거렸다. 살이 피둥피둥 오른 두 볼이 말할 때마다 움찔거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제프가 콧방귀를 뀌었다.


짐이 되는 건 너희 두 녀석일 거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카를로스가 제프를 쳐다보았다.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


척 보면 느낄 수 있지. 상대가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 저 여자는 프로야. 그것도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짜 프로.”

제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에두아르도와 가브리엘은 둘 다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저 여자가 프로라고? 그럼 난 아널드 슈워제네거겠다.”

그럼 난 실베스터 스탤론. 우리 둘이 지구방위대 해도 되겠네.”

닥쳐. 우리 여기 있다고 광고라도 하려는 거야?”


카를로스가 목소리를 깔며 윽박질렀다. 두 얼간이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카를로스와 사내들은 숲을 빙 둘러갔다.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비탈길이 나타났다. 카를로스는 오르막길을 걸으면서 내내 여자를 생각했다. 그녀는 무사할까?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마음속에 차오르는 근심과 걱정을 누르며 걷는 데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처리해야 할 임무가 여자의 목숨보다 중요했다. 한참 걷다 보니 멀리 우두커니 서 있는 낡은 오두막이 눈에 들어왔다. 카를로스와 사내들은 잎이 무성하게 자란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오두막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오늘 이 오두막을 습격하러 왔다. 예상대로라면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병이 적어도 대여섯 명은 오두막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두막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너무 조용한데? 뭔가 수상해.’


카를로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타타타탕! 멀리서 요란하게 총성이 울려 퍼졌다. 놀란 새 떼가 시커멓게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카를로스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글록 17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권총의 싸늘한 감촉이 손아귀에 퍼져 나갔다. 더 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열대우림에 다시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여자가 매복에 걸렸나 보군.”


카를로스의 말에 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업자득이야. 자기가 무슨 불나방도 아니고 매복이 있는 걸 눈치챘으면 피할 생각을 해야지.”


가브리엘이 혀를 찼다.


어떻게든 쫓아가서 말렸어야 하나? 카를로스가 뒤늦게 후회했다. 그는 여자에게 이미 지급된 주급을 떠올렸다. 푼돈이지만 아까웠다. 정신 나간 여자를 용병이랍시고 소개해준 브로커를 닦달해서 환불받는 수밖에 없었다.

총소리가 울려퍼진 후에도 오두막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들은 발소리를 죽여 오두막으로 향했다.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두르며 쳐진 낮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단숨에 건물 입구까지 접근했다. 현관문을 가운데 두고 카를로스와 제프가 왼쪽에, 에두아르도와 가브리엘이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카를로스는 가브리엘에게 문을 열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가브리엘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막상 오두막에 도착하니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는 카를로스가 몇 번이나 같은 수신호를 보낸 뒤에야 엉거주춤 문 앞에 섰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가브리엘과 에두아르도 같은 풋내기는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덩치만 컸지, 실전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짜였다.


카를로스가 눈을 부라리자 가브리엘이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뭔가가 톡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비트랩이다.


카를로스가 물러나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무언가 폭발하며 문짝이 박살났다. 거대한 불꽃이 뿜어져 나와 가브리엘의 몸을 후려쳤다. 그는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멀찌감치 튕겨 나갔다. 카를로스와 제프, 에두아르도는 반사적으로 엎드리며 폭발의 여파를 견뎠다. 오두막 안에서 폭포수처럼 총알이 쏟아져 나왔다. 적들은 일찌감치 오두막 안에 틀어박혀서 카를로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브!”


에두아르도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발치에 뜯겨져 나간 가브리엘의 오른쪽 다리가 나뒹굴고 있었다. 불에 시커멓게 타서 언뜻 보면 바비큐처럼 보였다. 가브리엘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었다. 검게 탄 몸뚱아리에서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에두아르도는 가브의 다리와 몸통을 번갈아 보다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카를로스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글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제프도 M4 라이플의 총구를 치켜들며 사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총성이 멈췄다. 뒤이어 탄창을 교체하는 듯,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기회다.


카를로스와 제프가 막 몸을 일으킨 순간, 현관 밖으로 시커먼 솔방울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수류탄이었다. 안전핀이 뽑혀 있었다. 수류탄은 곧바로 터지지 않는다. 폭발에 이르기까지 3, 길게는 5초 정도 시간이 걸린다. 카를로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몸을 날려 피하지도, 수류탄을 걷어차지도 못했다. 그의 두 다리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전쟁에는 이골이 난 제프도 이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시뻘건 운동화 하나가 불쑥 나타나 수류탄을 걷어찼다.


피해!”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카를로스가 고개를 숙이며 질끈 눈을 감았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 오기 전에 들어가지 말라니까.”


퉁명스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를로스가 눈을 떴다. 빨간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목숨을 구해준 싸구려 운동화였다.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운동화를 붉게 물들인 건 모두 누군가의 피였다.










 <슬픈열대>

  7월 14일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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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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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7-06-30 12: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이 캐릭터가 끝까지 능동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러 상황에 치이고 치이는 설정이지만 그냥 소비되는 캐릭터가 아녔으면 좋겠어요

2017-07-18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민욱 2017-07-0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순이는 끝까지 능동적일거예요. 그래서 더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