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사모가 놀라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역시 선생님이세요!”
“귀신이 어느 쪽에 있었어?”
“부엌 저쪽 끝이요.”
김경자 사모는 무서운지 한준의 뒤쪽에 섰다. 한준은 부엌을 둘러보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새벽에 목이 말라서 물 마시러 내려왔는데,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김경자 사모가 손가락으로 냉장고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소리?”
“달그락 소리도 나고, 부스럭 소리도 났어요.”
“어떤 형체인지 봤어?”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어요. 그냥 새까만 게 있었는데, 제가 부엌에 들어오자마자 쏜살같이 튀어 나갔어요.뭔가 묵직한 게 부딪친 것처럼 쾅, 하고 넘어지는 소리도 났고요.”
김경자 사모가 설명하는 내내 한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펼쳤다가 접었다가 허공에 팔을 뻗는 둥 기묘한 동작을 취했다. 놀란 김경자 사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뭐 하세요?”
“신령님께 여쭙는 중일세. 부정 타니 더 이상 묻지 말도록.”
김경자 사모는 황급히 두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한준은 팔짱을 끼고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고급스러웠지만 구조 자체는 평범했다. 기역 자 모양의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일랜드 식탁이 놓여 있었다. 식탁 의자 하나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김경자 사모가 말한 뭔가 넘어지는 소리의 정체는 이 의자인 듯했다.
“요즘 들어 계속 소리가 났다고 했지?”
“네, 선생님.”
“시간대는?”
“거의 새벽 시간이었어요.”
“정확히 몇 시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희 식구들은 보통 열한 시면 잠들어요.”
“CCTV는 확인해봤어?”
“네. 아무것도 안 찍혀 있었어요.”
한준은 휘파람을 불며 허리를 쭉 폈다.
“에그머니, 선생님. 오밤중에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김경자 사모가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한준은 코를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상한 냄새가 희미하게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비 오는 날 하수구 오수가 역류할 때처럼 역한 냄새였다. 한준은 부엌 안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갔다. 부엌의 오른쪽 벽면에 흰색 나무문이 달려 있었다. 손잡이를 돌려 여닫는 종류였는데, 밑에는 대형견 한 마리가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작은 덧문이 따로 달려 있었다.
“김 사모, 저 문 뭐야?”
김경자 사모는 여전히 부엌 입구에서 쭈뼛대고 있었다.
“뒷마당으로 나갈 때 쓰는 문이에요.”
“저 밑에 달린 덧문은?”
“딸애가 개 한 마리를 데려왔었거든요. 뒷마당 가서 놀라고 따로 달아준 거예요.”
하지만 집 안에 개를 키우고 있는 흔적이 없었다. 한준은 김경자 사모를 돌아보았다.
“개는 어디 있어?”
“다른 데로 보냈어요. 털도 너무 많이 빠지고 시끄러워서.”
한준은 흐음, 소리를 내며 문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뒷문 너머에는 앞마당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널찍한 마당이 있었다. 작은 창고가 하나 놓여 있는 걸 제외하고는 휑뎅그렁했다. 한준은 고개를 들어 건물 벽과 담장을 살폈다. 이 저택에 들어올 때 정문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걸 확인했는데, 뒷마당에는 CCTV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곳에도 방범 장치가 있었다. 누가 담을 타고 외부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담장 벽에 엉켜 있는 넝쿨 식물들 역시 끊기거나 짓밟힌 흔적이 없었다. 한준은 바닥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뒷마당 끄트머리에 설치되어 있는 하수구에 멈췄다. 집 벽에 붙어 있는 하수도관과 연결된 곳이다. 한준은 고개를 숙여 하수구 주변을 살폈다. 뒷마당에 깔려 있는 잔디들 중, 하수구 주변의 잔디들만 납작하게 쓰러져 있었다. 한준은 휴대폰을 들고 플래시를 켰다. 잔디 위에 축축한 진흙이 찍혀 있었다. 작은 발자국 모양으로, 아주 선명하게.
한준은 손가락 끝을 진흙 위에 살짝 갖다 댔다. 찍힌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물기가 많았고 물컹했다. 한준은 뒤를 돌아보았다. 김경자 사모는 여기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한준은 넥타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