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작가의 작품 중에 웍더글덕더글이란 것이 있다. 시끄럽게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양이었던가? 그런 뜻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씨네집 이야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딱 그것이다. 웍더글덕더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가족 이야기이다.(우리 집 삼대를 다 합해도 그들 형제들 숫자만큼도 되지 않는다.-0-)소년풍 만화였던 웍더글덕더글을 성인풍으로 업그레이드 하면 이런 느낌이 나올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하나가 문제를 일으키며 쉴 새 없이 집안은 시끌벅적한데...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형제 자매들의 '인생찾기'가 시원스런 폭소를 자아내고, 또 눈물 어린 감동까지 가져다 준다. 만화왕국 일본에 수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
환상의 여인을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여인의 모습을 그린 삽화만큼은 지금도 꽤나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동그란 레이스 모자를 쓰고 허리 잘록한 원피스를 입은 고풍스런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현실이 아닌 듯한 모습. 솔직히 이 소설이 왜 그리 명성을 떨치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상당한 명작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이 작품의 요지는 사라진 여인을 찾는다는 것인데, 그 여인의 존재가 너무나도 기이하고 그 만남 또한 우연 중에서도 으뜸가는 우연인 까닭에, 사람찾기에 대해서는 굳이 추리력을 요하지 않는다. 추리로써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이 작품이 사람찾기만 하다가 끝나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려면 사건 전체를 곱씹어보고 재구성하면서 가설을 세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탐정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추리소설을 읽을 때 독자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 아니겠는가.이해가 안 되면 될 때까지,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조각이 맞을 때까지, 탐색하고 또 재구성해서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 이 기본을 확실히 지키고 있기에 이 소설이 명작으로 남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포우의 작품이었던가? 너무나도 유명한 '사라진 편지'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온 집안을 이잡듯 뒤져도 발견할 수 없었던 편지가 뜻밖에 바로 눈앞에 있는 편지꽂이에 들어있었다는 이 이야기를.'ABC 살인사건'의 경우는 살인 속에 살인을 숨긴 경우. 연쇄살인 사건의 목적이 사실은 하나였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일어날 법한 사건을 역시 시대를 초월해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의 고전이다. 더이상 말하면 사족.
추리소설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읽기도 전에 줄거리가 어떻게 범인이 어떻고...등등... 내용을 몽땅 알아버리게 되면 읽는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 이 책은 특히나 그렇다. 심지어 책 겉표지에 적혀있는 소개글도 무시해야 할 지경이다. 그렇지 않으면 읽는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이 작품은 크리스티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작품이다.추리물 독자들의 선입견을 날카롭게 치고 들어가 여지없이 뒤통수를 후려쳤기에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당시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책 첫장에 '나'라는 일인칭 표현이 나왔을 때 왜 화자가 일인칭이어야 했는지 전혀 의심해보지 않았으므로, 더구나 범인일 거라는 기상천외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으므로, 포와로가 '나'를 향해서 범인이라 했을 때 그 놀라움은 마치 '내가' 범인이 된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나'는 그저 얌전히 화자의 시점을 따라가며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맞고 눈앞에서 불꽃이 번쩍 튀는 기분이었다.역시 뒤통수치기의 일인자 크리스티. 누가 그녀만큼 독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우롱할 수 있을까.굳이 한 가지 흠을 잡는다면, 너무나 특이한 작품인 탓에 망각의 강에 빠져 다시 읽을 수 없다는 것. ㅠ.ㅠ
이 작가의 대표작 '김전일 소년 사건부', 그리고 아오야마 고쇼의 '명탐정 코난'을 읽고 난 후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전보다 많이 제공되는 단서!! 앞서 언급한 작품에서는 독자가 단서를 제대로 알아채고 추리해내기가 어려웠다. 바로 만화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 때문. 하지만 큐에서는 좀 더 세밀해진 현장 묘사와 단서 제공으로 독자들도 추리에 폭넓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물론 모든 사건에서 범인을 맞힐 만큼 만만치는 않다. ^^;;;)이러한 차이는 인물들의 개성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여겨진다. 혼자서 현장을 살피고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는 천재 탐정이나, 혹은 그 천재들이 자기들끼리 단서를 찾아내고는 눈빛 교환만으로 마음을 전달해버리고는 독자들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일단 등장하는 탐정이 여럿이고, 그들이 모두 아직 미숙한 학생이며 서로 다른 능력을 불균등하게 갖고 있다는 설정에서 그 차이점이 생겨난다. 혼자서 결론짓기보다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미비점을 보완해가면서 함께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주인공들이 독자보다 저만치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고뇌하고 보폭을 맞춰주기 때문에 독자는 추리 과정을 함께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갈피를 잡아가게 된다.(11권에서는 범인의 이름이 그대로 보여지기까지...ㅠ.ㅠ)그동안 탐정의 발자국만 뒤쫓으며 '도대체 뭐야?' 라는 불평을 한 적이 있는 독자라면 큐에서 어느 정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다만, 수준이 낮아진 것은 절대 아니므로 머리를 풀 가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