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마을이 생긴 후로는 전혀 모르던 분들의 서재를 우연히 방문하는 경우도 늘었다. 모처럼 짬이 나서 원없이 서재 순방을 한 뒤 새삼 다시 느끼는 점은, 서재를 꾸린 분들이 참으로 다양하고 그 서재에 담긴 책들도 그만큼 다양하며, 누구든 적어도 어느 면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정도의 깊이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냥 독자였다면, 그 사실이 반갑고 감동적이라 만족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나는 그렇게 편하고 말 수만은 없어 문제다.
사실 제대로 된 서평을 쓰자면, 한국에 한두명 있을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들고 가야 할 것이다. 인터넷 서점의 편집자가 논평이나 분석이나 연구나 수필을 쓸 필요는, 물론, 전혀 없다. 편집자는 알라딘에 오는 분들의 눈을 대신 달고 책을 딱 한 발만 먼저 보는 사람이다. 그 눈의 소유자는 두렵게도 너무나 다양한 사람일 수 있으므로, 누구의 눈을 달아야 할 것인가 또 문제다. 전에 다니던 신문사에서라면, 명쾌한 답이 있었다 - 중학교 3학년생의 눈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냥 중학생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3학년인지는 잘 모르겠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차는 중1에서 고3까지 어마어마한데?) 알라딘 편집자는 그 눈을 알기 위해 판매통계에 기댄다. 그 분야에 있어서 가장 평균적인 연령의, 가장 평균적인 독서를 하는 분의 눈을 다는 것이 가장 공평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좀더 짱구를 굴리면 그 책을 클릭해서 볼 사람으로 대상을 좁힌 다음 프로파일을 추론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줍잖은 예측은 대부분은 대충 들어맞고, 가끔은 말도 안되게 빗나가고, 많은 경우 제대로 알 수도 없다. 책이 누군가의 눈에 띄는 데에는 단순한 진열(즉 알라딘의 의도)이나 미끼(가격이나 이벤트)나 충격요법(미디어추천 등)을 넘어서는 무언가 매지컬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눈으로 보기엔 딱 2% 부족한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내 눈으로 보기엔 딱 2% 넘치는 책이 대중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결국 인터넷 서점 편집자의 작업은 목적이 비교적 명확한 것이지만, 한계 또한 명확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실망스럽게 생각하진 않는다. 한계가 있는 일이라 재미가 없다거나, 한계가 있어서 못해먹겠다, 는 건 싫어하는 일을 할 때 자주 동원되는 변명이지, 진정 깊숙하게 마음쓰는 일에 대해서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그 한계가 유발하는 어쩔 수 없는 울타리를 이렇게 저렇게 뛰어넘고, 뛰어넘다가 울타리를 조금 무너뜨려 울기도 하고, 울타리를 무너뜨렸다고 사람들한테 혼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다시 울타리를 따라서 가면서 교묘하게 그 바깥까지 넘나드는 비밀구멍을 발견하기도 하고, 남들이 그 비밀구멍을 알아채버리면 좀 실망하지만 누가 먼저 발견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거라고 고쳐 생각한 후 즐거워지기도 하고...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모자라 찾아내지 못한 책이나, 알았지만 내게 주어진 한계 탓에 오래 마음쓸 수 없었던 책들에 대해 무수한 서재의 무수한 조용한 독서가들이 정곡을 찔러 말해주고 있다는 것은 고마워할 일이다 - 이것이 사실 애초부터 찾기 쉬운 곳에 이미 놓여있던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