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utmeg > 12월 1일 <갤러리 페이크>와 나 [1]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책과 음악과 그림이 있다면, 좋아하기에 배우고 알고자 하는 것이 책이요, 좋아하긴 하지만 애써 찾아보려고도 지식을 얻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음악이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 그림이다.

그런 나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일인데, 내가 아직 어렸을 적 아버지는 딸이 화가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남몰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그 딸이 나이기에 그 소원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었지만, 틈이 나는대로 그림 보러 다니기를 즐기는 아버지 입장에서 보자면 한번쯤 마음 속으로 그런 소망을 가져보는 것도 나름의 멋이었으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딸이 유치원에 들어갔을 무렵 조용히 그 꿈을 접었다. 그 냉정함 또한 딸의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한 일이지만.

그리고나서 또 한참 후, 아버지는 딸과 같이 어떤 소원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가 얼마만큼 그 소원을 소중히 여겼는지 딸은 모른다. 다만 딸의 지난 이력으로 보건대 그 소원은 화가의 꿈보다는 좀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지난 시절의 가장 큰 상처로 기억되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남에게 말을 꺼내는 법이 없는 그 실패 이후 아버지는 다시 한번 조용히 꿈을 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일 이후, 딸은 커다란 사고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폐가 되지 않을 학문을 그럭저럭 공부하고, 사회에 다소 폐가 되는 -_- 직장을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책 파는 일이 천직이라며 직장을 뛰쳐나왔는데, 그 급격한 변화의 시간 속에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 딸은 모르거니와 지금도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길이 완전히 빗나갔는데 -_-;;; <갤러리 페이크>는 미술에 관한 만화다. 그 외에는 나와 아버지와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왠지 나는 <갤러리 페이크>를 읽을 때마다 아버지가 딸에게 가지고 있었을 소원과 그 딸과 그리고 그림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 다 쓰고 보니 완전 딴 소리만 한 것이 되었는데, <갤러리 페이크>는 한참 좋아하는 만화 중의 하나여서 언젠가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 제목 끝에 [1]을 붙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