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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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재어린이가 TV에서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살아있는 사람은 평가할 수 없어요.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오직 죽은사람에 대해서만 평가할 수 있죠. “라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소설 첫머리에 아버지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사망하며 시작한다. 명예로운 죽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화자의 부모는 둘 다 빨치산, 남부군으로 해방 후 ‘유물론’을 신봉하는 사회주의자로 지냈는데, 아버지가 먼저 죽은 것이다. 작중화자인 나는 태어날때부터 ”빨치산의 딸“이라는 신분이었다. 그 신분은 연좌제가 넓게 작동하던 시절의 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저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장례를 치르면서 딸은 아버지의 끝나버린 삶에 대해 평가할 수 있었다. 문상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맞이하고, 회상하며 딸이 몰랐던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살면서 느끼던 아버지에 대한 기쁨, 슬픔, 분노, 회한, 미련, 그리움 등을 장례 과정 속에 돌아본다.
작가가 쓰지 않을 수 없는 소설. 목구멍에서 치고올라와 눈물로 끝나는 이야기들. 한국현대사의 그늘을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짠하면서도 유쾌하게 여기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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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평생 당하고만 살지는 않았다. 당하지 않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 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어졌다.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묻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중략...) 다만 당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더 당했다. 아버지는 선택이라도 했지,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겠다 선택하지도 않았다. 태어나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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