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 문화집시 페페의 감성에세이
곽효정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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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직 파릇파릇한 십대 때는 ‘과연 내게 올까 싶었던 서른’이었고, 청춘을 불사르던 이십대 때는 ‘아직은 나에겐 먼 서른’이었다. 그리고 정작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그것은 ‘실감이 나지 않는 나의 서른’이었다. 지금 내 나이 서른하고도 둘. 과연 나는 이 책의 제목처럼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나? 난 새삼 나의 서른이란 나이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무얼 해도 행복한 줄 몰랐고, 무얼 해도 사랑할 줄 몰랐던 나는 방향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자 행복하지 않을 때에도 행복할 수 있고, 사랑이 떠난 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중에서 - 

   

내가 서른을 산 지금,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 순간순간을 더 잘 즐길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순간들이 나에겐 처음 겪는 현재요, 그로 인한 알 수 없는 미래를 동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때론 절망하기도 했고, 때론 깊이 상처받기도 했고, 또 때론 처절하게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얼 해도 사랑할 줄 몰랐던 때도 있었다. 사랑을, 그리고 사람을 믿지 못했던 때도 있었고. 서른. 저자의 말처럼 서른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나니, 나의 아픔과 상처마저도 행복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비로소 인생의 달콤함을 깨달았다고 해야 하겠지.

 

 

“딸. 넌 적어도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을 쉽게 미워할 수 없었다. 영혼이 흐릿해지는 것은 곧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므로 사람을 미워하는 일은 살인만큼이나 무서운 것이었다. ‘미움의 싹’이 타인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빨리 가르쳐준 아빠가 미웠다.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없게 하는 아빠가 미웠다. 하지만 어린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천사니까 미워해도 되겠지.

-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중에서 -

아빠, 나는 지원 따위 바라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가 자라나길 바랐던 그 모습이면 충분해요. 네가 가는 길을 믿는단다. 계속해서 그 길을 향해 가거라.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고요. 그것은 어떤 경제적 지원보다 더 크고 값진 것이니까요.

-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중에서 -

“할아버지, 나는 왜 눈물이 많아요?”

“그건 네가 태어난 날, 하늘에서 가장 큰 마음을 선물해서 그렇단다.”

“가장 큰 마음이 뭔데요?”

“살다보면, 비겁해질 때도 있고, 이게 아닌데 싶을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애써 그 마음을 모른 척 한단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을 칠하지. 탁한 색으로 칠하기도 하고, 밝은 색으로 칠하기도 하지. 넌 그렇게 마음을 칠하면서 조금씩 아팠을 거야. 그래서 세상 모든 일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거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강하단다.”

“왜요? 잘 우는 사람은 약해 보여요.”

"그렇지 않단다. 눈물은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두고 봐라. 넌 그 눈물로 무언가를 이뤄낼 거야. 울었던 시간만큼 넌 움직일 테고, 움직임은 점점 커져서 운동력을 가질 거야.“

-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중에서 -

  

서른을 넘기며 얻게 된 부모라는 자리. 이제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질문이 아닌 답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아직은 나도 답보다 질문이 더 많기만 하다. 그런데 저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참 멋진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미움과 눈물에 관한 것이었다. 살다보면 미워지는 이가 있기 마련인데, 저자의 아버지는 무작정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영혼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되라며 저자가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하셨다. 미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나 역시 눈물이 많은지라 저자의 할아버지의 말 역시 가슴에 와 닿았다. 눈물이 많은 이는 하늘에서 가장 큰 마음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울지 말라는 말보다 할아버지의 그 말은 저자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더는 눈물을 많이 흘리지 않았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저자의 할아버지의 말처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정말 강한 걸까?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이런 멋진 말로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려 변화되게 만들어주고 싶다. 아직은 답보다 질문이 더 많은 나이지만, 아이들이 나에게 질문을 할 때쯤이 되었을 때는 나도 저자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멋진 말을 들려주는 멋진 부모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선생님은 저마다의 체형이 다르고 발전하는 정도가 달라서 함께 배우더라도 좀 더 빨리 진도를 나가는 사람도 있고 아주 더디게 배우는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견디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한다고 하셨다. 모든 일에는 자기만의 속도가 있기 마련인데, 남과 비교하면 그걸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그날의 수업을 끝내셨다.

-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중에서 -

  

어렸을 때는 천재가 참 부러웠다. 조금만 노력해도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천재가. 하지만 서른을 넘긴 지금은 성실한 사람이 참 부럽다. 서른을 넘기고 보니 인생의 승리자는 대부분 성실한 이들의 몫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그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은 꾸준한 노력으로 결국에는 성공에 이르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 진다’는 에디슨의 말이 사실임을 서른을 넘긴 지금에야 가슴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른. 서른을 넘기면 인생이 달콤해지냐고 누가 묻는다면, 서른을 넘기면 인생이 달콤해지진 않지만 인생의 달콤함을 알게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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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워야 한다, 젠장 재워야 한다 - 아이에겐 절대 읽어줄 수 없는 엄마.아빠만을 위한 그림책
애덤 맨스바크 지음, 고수미 옮김, 리카르도 코르테스 그림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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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태어난 지 일 년이나 된 우리 아기. 낮에는 더없이 착하기만 한 아기인데, 밤만 되면 너무나 힘겨운 아기로 변신을 한다. 일찍 재우는 것도 일이지만, 더 힘든 건 자다가 종종 깨어난다는 것. 처음엔 왜 그럴까 걱정이 되다가도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곤 했다. 아기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기한테 짜증내고 화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엄마인 다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낸 어느 날 알게 된 책 <재워야 한다, 젠장 재워야 한다>는 나에게 쌓였던 짜증을 거둬가고 작은 웃음을 안겨주었다. 우리 아기만 밤에 재우기가 힘든 것이 아니다는 걸 새삼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랄까. 아니면 가슴에만 묻어두고 쉽게 내뱉지 못한 말을 이 책이 나를 대신해 속 시원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랄까.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랄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시원한 쾌감이란. 책 표지에 씌여진 ‘오늘도 참다 참다 삼켜버린 그 말’을 이 책은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매일 밤 벌어지는 전쟁 같은 일들을 그려놓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정말 참 힘겨운 밤을 보내야만 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예방접종을 맞은 우리 아기. 예방접종을 맞은 날은 아기가 보챌 수 있다고 여기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헌데 웬걸 보채기는커녕, 꺄악꺄악 소리를 지르면서 거실과 방, 부엌을 오가며 밤 늦게까지 신나게 노는 것이 아닌가. 신랑과 나는 이 녀석이 우리 몰래 커피나 콜라를 마신 것은 아닌지, 병원에서 예방접종이 아니라 흥분제를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예방접종을 맞으면 좀 늘어지던지, 컨디션이 안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어째서 이 녀석은 평소보다 더 활발해져서는 더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늦게까지 흥분한 채로 집 안을 활보하다 겨우 진정하고 잠든 우리 아기. 좀 자는 듯 싶다가 새벽에 중간중간 일어나서는 울다 우유를 마시고야 다시 잠들었다. 밤 늦게까지 신나게 놀았으니, 낮에 먹은 거는 진작에 다 소화를 다 시켜 새벽에 허기가 지는 건지 어쩐 건지. 돌이 지났으니 이제 밤중수유도 끊을 만도 한데,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우유를 마셔야 다시 잠이 드는 우리 아기. 그럴 때마다 난 졸린 눈을 부비고, 끓어오르는 짜증과 화를 속으로 삭이면서 우는 아기를 달래 다시 잠을 재워야 했다. 도대체! 왜! 아침까지 주욱 이어서 자 줄 수는 없는 건지.

 

아기를 재우며 힘겹게 보냈던 어젯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내 눈에 다시 이 책 <재워야 한다, 젠장 재워야 한다>가 들어왔다.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웃음이 났다. 다정함과 짜증을 오가는 말들이 절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너무나도 다정하게 달래다가도 나중에 가서는 짜증 섞인 말로 혼을 내곤 했으니 말이다. 아기를 재우는 데는 동서양이 별반 차이가 없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기를 키우는 엄마아빠의 고충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이 책의 편집자가 쓴 당부의 말처럼 잠 안 자는 아이 때문에 화가 치밀 때마다 이 책을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밤마다 잠을 설치며 아기를 재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세상의 많은 엄마아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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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guin Loves Mev - 청춘 만화가 펭귄, 영국 청년 메브를 만나다
펭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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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게 된 <Penguin Loves Mev>. 뭐지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다 나는 그만 펭귄과 메브 커플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 한국 여성과 영국 남성이 만나 생기는 일상 속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야기들은 더더욱 재미있었다. 조금만 읽어볼까 하고 펼쳤던 책장은 한참 웃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펭귄과 메브 커플의 이야기를 보면서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일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일상을 더 아름답게 느끼게 해주었다. 자칫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상 속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담았기에 더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작은 일들조차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참 특별한 일들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힘들었던 일들도 지나고 나면 소중한 추억이 되듯 때론 괴롭기도 하고 짜증났던 일들도 재미난 일들도 담겨져 웃음을 주고 말이다.

 

이들의 일상 속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나도 나의 소소한 일상들을 글이든 그림으로든 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하루하루 놀랍고 신기한 일들이 항상 생기게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소소한 일상들을 나만의 수첩에 담아 놓는다면 정말 멋진 나만의 이야기책이 될 텐데 말이다. 또 나중에 아이가 크면 추억의 이야기책이 되고 말이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아이와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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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 - White
리엔데르트 얀 비스 지음, 서율택 옮김 / 지원북클럽(하얀풍차)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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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그림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안에 역시 귀여운 그림과 짤막한 글귀로 채워져 있어 더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헌데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이 내가 원하는 딱 그런 책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뒤쪽 절반은 앞쪽과 같은 그림과 내용이 담겨 있지만 원작인 영문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종종 바랐던 스타일의 책을 이렇게 딱 만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난 간단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좋은 번역서를 볼 때마다 영어로 된 원서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었다. 근데 이 책은 한 권의 책에 번역서와 원서가 함께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난 그야말로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큰 기대 없이 고른 책이었는데, 내 마음에 이렇게 쏙 들다니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예쁜 그림과 좋은 내용 때문에도 이 책을 권하고 싶지만, 나처럼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가장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이들이다. 이 책은 <너를 위해>라는 제목처럼 누군가를 알게 됨으로써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이 너무나 예쁘게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적힌 '우리 시작해 볼까요?'라는 글귀는 수줍은 고백에 대한 답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알 수 있게 해 놨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담아둔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면 수줍은 고백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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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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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에 대한 환상은 누구나 있다. 갈림길에서 내가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미련 역시도.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난 내가 못 가본 길은 무엇인지 떠올려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내 인생에서 한 가장 큰 선택은 고등학교에 오면서 한 선택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가 꿈꿔왔던 화가라는 꿈을 접은 것. 그 꿈을 접은 후 나는 다양한 꿈을 꾸며 살아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꿈을 꾸고 있다. 화가라는 꿈을. 내가 화가라는 길 대신 걸었던 다양한 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는 하지만, 때때로 나는 상상해본다. 내가 만약 내가 고등학교 때 꿈 꿨던 화가라는 길을 접지 않고 계속 꿈꾸며 걸어왔다면 지금의 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 또한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이 컸기에 궁금했다. 작가 박완서는 어떤 순간, 어떤 길을 떠 올리며 아름다운 상상을 했을까. 그녀 역시 자신의 그렇게 원했던 길이었음에도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접었어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가지 못 한 길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아쉬움과 미련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책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

 

이제는 알아주는 소설가가 된 그녀. 그녀가 낸 책만도 수십, 수백 권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대한민국에서 그녀의 이름을 어렴풋하게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학창시절 꿈꿨던 못 가본 길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건 전쟁 때문이었다. 전쟁 중에 살아남았지만 대신 그녀는 그녀의 꿈을 버려야 했다. 게다가 그때는 그녀의 꿈이 막 이뤄지려던 순간이었기에 그녀의 허탈감은 배로 컸을 것이다. 남북의 정세가 더 불안정했던 때, 그녀는 그 순간을 떠올렸던 것이 아닐까.

 

작가 박완서가 걸어 온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길 또한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꿈꾸고 활기차야 할 여대생 시절을 반납한 채 가족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며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이런 그녀가 어찌 못 가본 길에 미련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지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의 작가 박완서가 된 것을 독자로서 감사할밖에.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가장이 되는 순간 가졌던 지극히 인간된 마음을 너무나 솔직하게 적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가질만한 감정이고,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가질만한 감정이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인지. 그녀의 솔직함에 그녀가 더 인간적으로 보였고,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다는 것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간된 감정을 갖는다는 건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는 것을, 그런 인간된 감정으로 인해 나 자신을 나쁜 사람이다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그동안 가졌던 나쁜 마음들조차 감싸주며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이렇듯 작가 박완서가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해 말해주기는 했지만, 정작 이 책은 그녀가 못 가본 길이 아닌 그녀가 걸어온 길을 그리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왜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알 수 없었다. 그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지만, 그녀가 걸어 온 길 또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녀에겐 가본 길이지만, 그녀가 걸어온 길이 우리에겐 못 가본 길이기에 이렇게 지은 것은 아닐까.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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