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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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에 대한 환상은 누구나 있다. 갈림길에서 내가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미련 역시도.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난 내가 못 가본 길은 무엇인지 떠올려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내 인생에서 한 가장 큰 선택은 고등학교에 오면서 한 선택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가 꿈꿔왔던 화가라는 꿈을 접은 것. 그 꿈을 접은 후 나는 다양한 꿈을 꾸며 살아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꿈을 꾸고 있다. 화가라는 꿈을. 내가 화가라는 길 대신 걸었던 다양한 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는 하지만, 때때로 나는 상상해본다. 내가 만약 내가 고등학교 때 꿈 꿨던 화가라는 길을 접지 않고 계속 꿈꾸며 걸어왔다면 지금의 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 또한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이 컸기에 궁금했다. 작가 박완서는 어떤 순간, 어떤 길을 떠 올리며 아름다운 상상을 했을까. 그녀 역시 자신의 그렇게 원했던 길이었음에도 그 길을 가지 못하고 접었어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가지 못 한 길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아쉬움과 미련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책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

 

이제는 알아주는 소설가가 된 그녀. 그녀가 낸 책만도 수십, 수백 권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대한민국에서 그녀의 이름을 어렴풋하게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학창시절 꿈꿨던 못 가본 길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건 전쟁 때문이었다. 전쟁 중에 살아남았지만 대신 그녀는 그녀의 꿈을 버려야 했다. 게다가 그때는 그녀의 꿈이 막 이뤄지려던 순간이었기에 그녀의 허탈감은 배로 컸을 것이다. 남북의 정세가 더 불안정했던 때, 그녀는 그 순간을 떠올렸던 것이 아닐까.

 

작가 박완서가 걸어 온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길 또한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꿈꾸고 활기차야 할 여대생 시절을 반납한 채 가족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며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이런 그녀가 어찌 못 가본 길에 미련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지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의 작가 박완서가 된 것을 독자로서 감사할밖에.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가장이 되는 순간 가졌던 지극히 인간된 마음을 너무나 솔직하게 적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가질만한 감정이고,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가질만한 감정이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인지. 그녀의 솔직함에 그녀가 더 인간적으로 보였고,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다는 것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간된 감정을 갖는다는 건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는 것을, 그런 인간된 감정으로 인해 나 자신을 나쁜 사람이다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내가 그동안 가졌던 나쁜 마음들조차 감싸주며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이렇듯 작가 박완서가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해 말해주기는 했지만, 정작 이 책은 그녀가 못 가본 길이 아닌 그녀가 걸어온 길을 그리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왜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알 수 없었다. 그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지만, 그녀가 걸어 온 길 또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녀에겐 가본 길이지만, 그녀가 걸어온 길이 우리에겐 못 가본 길이기에 이렇게 지은 것은 아닐까.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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