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일을 컴퓨터로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하드디스크가 늘어났다.

하드디스크는 5년도 훨씬 넘었을 IDE 방식도 있고, 3, 4년 된 SATA 방식의 하드디스크도 있다.

데이터가 많아지고, 하드디스크를 하나씩 늘려가다보니 본체의 디스크 랙에는 무려 6개나 되는 하드디스크가 자리를 잡았다.

데이터가 많으면 늘 불안하다.

잃어버릴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게 쌓아놓은 것이 모두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오랜 시간에 걸쳐 모아놓은 자료를 한꺼번에 없애는 것도 ‘아집’과 ‘집착’에서 놓여나지 못한 중생으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짓이다.

늘 조심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컴퓨터를 다루었는데, 마침내 사단이 났다. 며칠 전부터 화면에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하드디스크 정리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하드디스크가 몇 개씩 되면서도, 데이터가 거의 목까지 차올라서 겸사해서 하드디스크를 새로 장만했다.

이번에는 좀 마음 먹고 깔끔하게 하드디스크며 데이터를 정리하겠노라고 ‘굳은 다짐’을 하면서 새로 도착한 1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를 컴퓨터에 장착했다.

이때부터는 제사장이 제를 올리는 듯한 경건한 마음이 되어서 조심스럽게 하드디스크를 다뤄야 한다.

컴퓨터를 만진 세월이 20년이 넘었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경건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먼저, 얼기설기 뒤엉킨 케이블을 모두 빼내고, 하드디스크에 번호를 적었다.

모두 6개, 새로 장착할 하드디스크까지 7개. 이 가운데 1테라 이하는 이번 기회에 모두 빼내서 따로 보관하기로 생각했다.

실수 없이 일을 하기 위해 하드디스크의 시리얼 번호를 모두 적고, 그 옆에 일련번호를 먹였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것이었다.

그 안에는 꽤 많은 데이터가 들어 있었는데, 데이터 때문이라도 빨리 손을 써야 했다.

새로 구입한 1테라 하드디스크를 장착하고, 케이블을 연결한 다음 컴퓨터를 켰다. 이때 운영체제를 설치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부팅하면서 곧바로 운영체제를 설치했다.

1테라바이트를 반으로 나눠, 각각 XP와 7을 설치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운영체제를 설치할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그나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어서 다행이다.

이번에도 역시 문제가 생겼다. 운영체제 설치를 마치고 첫 화면이 뜨면, 메인보드 CD를 넣고 각종 드라이버와 유틸리티를 먼저 설치한다.

그리고 비디오카드 CD를 넣고 설치한다. 대개 문제 없이 잘 설치되지만 이번에는 비디오 카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화면 해상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모니터의 케이블을 컴퓨터 본체에 두 개 모두 연결한 것이 문제였음을 알아냈다. DVI 케이블과 VGA 케이블을 모두 연결했더니 모니터 설정에서 모니터를 두 개로 인식하고, 해상도 조절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했고, 운영체제의 업데이트까지 모두 마쳤다.

이제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를 본체에 장착한 다음, 데이터를 모두 새로 설치한 하드디스크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혹시 빠뜨린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를 로우레벨 포맷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한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다.

데이터를 옮기고 먼저 인터넷 검색에서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겼다’는 메시지를 입력하니 몇 개의 해결 방법이 나타났다. 먼저, 베드 섹터를 찾아서 복구하는 방법.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는 시게이트 제품이었는데, 시게이트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유틸리티가 있었다. Seagate DiscWizard와 SeaTools for Windows가 그것인데, 유용하긴 했지만 이 유틸리티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에는 베드 섹터가 없었고, 디스크 앞부분에 Delay가 생기는 것이 문제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Delay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로우레벨 포맷’ 외에는 없는 듯 했다.다시 HDD Regenerator라는 프로그램을 구해 하드디스크 복구를 시도했지만 역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hddguru.com에서 로우레벨 포맷 유틸리티를 내려받아 하드디스크를 완벽하게 포맷했다. 모든 데이터가 사라지고, 하드디스크는 초기화 된 것이다. 이 과정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컴퓨터를 수십 번 부팅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하염없었다.

하지만, 로우레벨 포맷까지 했음에도, Delay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하드디스크 A/S센터에 문의를 했고, 교체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 가지 문제는 해결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새로 장착해 운영체제까지 설치한 하드디스크에 기존에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를 연결하자 하드디스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빼놨던 기존의 운영체제 하드디스크를 다시 연결하고 데이터들이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를 연결하자 탐색기에 하드디스크가 모두 나타났다. 아니, 한 개를 제외하고.

데이터가 가득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 한 개는 기계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이미 파티션이 날아간 상태였다.마음이 급해져서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용산 서비스센터로 달려갔다.

하드디스크가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지, 대기자가 꽤 많았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차례가 돌아왔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를 점검한 다음, 로우레벨 포맷을 한 하드디스크는 새 제품으로 교환을 해주었지만, 데이터를 인식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는 기계적으로는 정상이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데이터를 살리려면 데이터 복구 센터에 맡기라고 하는데, 하마터면 거액을 들여 그렇게 할뻔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교환한 새 하드디스크를 장착하고 컴퓨터를 켜서 확인했다. 데이터가 들어 있는 기존의 하드디스크도 장착했더니 잘 인식했다. 문제는 데이터를 인식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 한 개.

서비스센터의 직원은 데이터를 복구하기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마음 속으로는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인식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를 장착하고 데이터 복구프로그램을 설치한 다음 ‘물리 드라이브’를 읽어들였다. 그리고 밤새 컴퓨터를 켜놓고, 데이터 복구프로그램이 하드디스크를 읽도록 내버려두고 잠을 자러 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니터를 보니 화면에는 아직도 12시간이나 더 디스크를 읽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타나 있었다. 320GB의 데이터를 복구하기 위해 온전히 하루를 꼬박 지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읽었던 데이터를 보고나서 복구를 할 것인지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취소’ 버튼을 누르자 데이터 복구프로그램이 읽었던 섹터에서 데이터 목록이 주르륵 나타났다. 아… 다행히 미리 백업을 해둔 것들이었다. 그리고 하드디스크 전체를 복구 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였다.

굳이 복구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도 본체에서 빼내고, 기존에 운영체제를 설치했던 하드디스크도 빼내서, 본체에는 꼭 필요한 운영체제용 하드디스크 1개와 데이터가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 2개, 그리고 새걸로 교환한 하드디스크 1개를 장착해 모두 4개의 하드디스크가 순서대로 장착되었고, 모두 1테라씩 4테라바이트의 용량이 되었다.

그동안 사용했던 120GB, 250GB, 320GB 등의 하드디스크는 은퇴를 했다. 이제 데이터를 다시 정리하고, 필요하면 1TB 이상의 하드디스크가 장착될 것이다. 아니면 요즘 눈길을 끌고 있는 NAS도 선택 대상이다.생각해보니 무수히 많이 백업해 두었던 CD와 DVD를 요즘은 거의 구입하지도, 사용하지도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오고 가고, 인터넷으로 저장하고, 대용량 하드디스크와 NAS에 저장하면서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엄청난 데이터를 잃게 되고 말았다. 이건 필연이다.

대량, 집중화는 그만큼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데이터를 완벽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모색하던지, 아니면 과다한 데이터를 포기하고 자료에 대한 다이어트를 통해 가벼운 마음을 갖던지 구 가지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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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 : 공공의 적 1-1 (1disc)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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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공의 적 1편과 2편]을 보고그러니까, 영화가 현실을 이끈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것인가.

아니면, 영화는 영화일뿐, 그냥 오락으로 즐기라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대리만족의 자위를 하라는 것인가.

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쨌거나 이 영화 두 편은 무지 재미있다.

예전에 강 감독이 만든 [투캅스]의 코미디와는 일단 차원이 다르다. 아마, 강 감독도 ‘엿같은’ 우리 사회에 좀 질렸나보다.1편에서 ‘강동서 강력계 강철중’ 형사는 출신성분이 다른 경찰이다.

그는 아시안게임 특채 경찰인데, 아시안 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티였다. 한마디로 ‘꼴통’인 강형사는 우연한 기회에 살인자와 만나게 되고, 그를 기억한다.

살인자는 자기 부모를 죽인 패륜아지만 사회에서는 가장 잘 나간다는 펀드매니저.우리 사회의 펀드매니저들은 좀 기분이 좋지 않겠다. 이렇게 냉혈하고 이중인격의 인간을 펀드매니저라고 그리고 있으니.

뭐, 그렇더라도 이건 영화고,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이 중요한게 아니고, 이를테면 엘리트라고 하는 자들의 허위의식과 이중인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니 직업이 어떤가는 큰 문제가 안 된다.

펀드매니저이자 이중인격자,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 역할의 이성재의 연기는 훌륭하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는 냉혈한은 영화처럼 단지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일테면, 극중에서 조이사는 젊은 나이에 성공한 인물이지만 그의 성격은 잔인하고 냉혹하다. 그런데, 그의 부모는 고아원을 돕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내놓을 만큼 덕이 많고 인자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런 부모 밑에서 그토록 악랄한 자식이 나올 수 있을까.나올 수 있겠지만, 그것이 단지 개인의 성격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사회적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비정함’의 원인이 ‘물질’에서 온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꼴통’ 경찰을 통해 잘나가는 엘리트의 범죄를 통쾌하게 해결하는 것으로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것이 이 영화의 재미라면, 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는 영화에 양념처럼 잘 어울린다.

2편에서는 강철중이 검사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검찰’의 교육용 영화로 봐도 좋겠다. 대한민국 검찰은 이 영화를 의무적으로 보고, 한달에 한번씩 꾸준히 봐서 영화 속 검찰을 보고 배우기를 바란다.

역시 ‘꼴통’ 검찰인 강철중은 우리 사회의 거물인사, 사회지도층이고 상류층인 명선재단 이사장 한상우를 잡기 위해 온갖 꼴통짓을 다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부류가 얼마나 썩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역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데, 기껏 정치가 한 두명 더 잡아넣는 것으로 끝나는 걸 보면, 이 영화의 스케일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감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겠다.

우리 현실을 보면, 영화보다 더 규모가 큰 비리가 산적해 있고, 한상우보다 더 나쁜 놈들이 트럭으로 실을 정도로 많이 있지만, 정말로 ‘사회 정의’가 ‘구현’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영화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이고 아주 재미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좋고, 시나리오도 탄탄하고, 조연들의 감칠맛나는 연기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에서 통쾌하게 풀어낸다고 해도 현실이 더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만 보고 잠시 기분좋으려다 현실로 돌아오면 더 짜증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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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dts) - 일반판 (Save the Green Planet)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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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이 영화가 흥행에 참패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관객 1천만명 시대에 고작 몇 천명 정도가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한국 관객의 편식이 얼마나 심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관객의 잘못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고, 이 영화를 만들어서 배급하는 영화사는 ‘마케팅’ 실패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영화사 스스로도 이 영화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당황했을 듯 하다.[지구를 지켜라]는 블랙 코미디, 판타스틱 SF, 서스펜스 호러 등 여러 장르를 혼합해 놓은 듯 보인다. 여기 저기 인터넷으로 찾아 본 관람평을 보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영화사가 어떤 장르에 촛점을 맞춰 홍보를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잘 만든 영화를 가지고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단순히 개봉 타이밍의 문제를 넘어 영화사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박에 눈치챘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도, 판타스틱 SF도, 서스펜스 호러도 아닌, 바로 ‘계급투쟁’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좌편향’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이 영화를 잘 살펴보고 몇 가지 장식을 떼버리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자본가인 강사장과 노동자인 봉구의 대결로 남는다.

외계인 운운하는 것이 영화적 수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다.노동자인 봉구는 강사장을 납치한다. 그가 외계인이라는 것이 이유지만 강사장의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봉구는 바로 그곳, 공장에서 노동조합원이었고, 사랑하는 애인이 파업 현장에서 용역 깡패에게 목숨을 잃는다.

어머니 역시 강사장의 공장에서 일하다 독극물에 중독되어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어릴 때부터 폭력과는 거리가 멀고, 늘 괴롭힘을 당하던 착한 봉구는 자본가가 지배하는 이 사회 속에서 부적응자가 되어 간다.

봉구의 어린시절부터 공장 노동자까지의 삶은 가난한 민중의 자식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평균적으로 보여준다.폭력에 길들여진 사회, 마초가 판을 치고, 폭력이 법보다 위에 있고,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착취가 우선인 사회, 그 속에서 착한 봉구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결국 봉구는 미쳐가고, 그의 상상 속에서 자본가는 ‘외계인’으로 변하게 된다.

그렇다. 자본가는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다. 같은 인간이라면 어떻게 같은 인간을 그렇게 참혹하게 착취하고 내버릴 수 있는가. 일회용품처럼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고 뱉어낼 수 있는가.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노동운동한다고 사시미칼로 배를 쑤시지는 못할 것이다.

공장에서 기계가 사람의 뼈를 가루로 만들어도, 한달에 잘라진 손가락이 가마니로 쏟아져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직 ‘이윤’만을 챙기는 자들이 바로 ‘자본가’이고 그들은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 분명하지 않은가.

봉구는 그런 외계인이 바로 지구를 멸망시킨다고 믿고, 그들을 잡아 지구의 평화를 지키려고 한다.하지만, 영화는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하듯이, 이 영화에서도 역시 ‘외계인’ 아니 ‘자본가’가 승리한다.

뛰어난 실력과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자본가 강사장은 결국 노동자 봉구의 집요한 저항을 뿌리치고 그를 때려눕힌다. 대단한 자본가의 힘이다.신인 감독은 봉구와 강사장의 대결구도를 왜 굳이 노동자와 자본가로 설정했을까?

우리 사회에는 아주 다양한 관계들이 있음에도, 이런 구도를 만든 것은, 감독의 깊은 속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본가’와 ‘노동자’가 존재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 권력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한다.

노동자들은 사회의 권력을 장악한 ‘자본가의 논리’에 매몰되어 자신들의 세계관을 잃어버린다.한 편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고 지나친 비약을 하는 건 아닌가 생각되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미덕은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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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 아웃케이스 없음
나홍진 감독, 김윤석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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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를 만든 나홍준 감독의 작품.한국 영화에서 또 하나의 걸작이 탄생했다. 전편인 ‘추격자’를 능가하는 하드보일드하고 개성있는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영화 도입부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긴장을 풀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와 속도감이 이 영화의 수준을 말한다.

엉성한 듯 치밀한 스토리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만든다. 어찌보면 복잡한 듯한 구성이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사건의 발단이 얼마나 단순하게 시작되었는지, 그래서 그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무릎을 치게 된다.

오해라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바로 그 ‘오해’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지고, 자신의 아내도 아닌, 내연녀와의 불륜을 복수하기 하다 비참하게 죽는 사장을 보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마땅히 비웃게 된다.어설픈 감정은 배제하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사내들의 세계는 영화적으로 과장되었을 뿐, 그것이 현실과 다르다고 누가 강변하겠는가.

넥타이를 맨 정장 안에는 웃는 얼굴로 뒷통수를 치는 거대한 자본과 이윤과 비정함이 있지 않은가. 구남은 살기 위해 죽이고, 희망을 위해 살인을 한다. 살인을 옹호하거나 정당성을 부여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 속 인물들은 조금씩 과장되고 정형화되었지만, 우리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본능이 이 영화를 보면서 꿈틀거리는 걸 느끼는 건 나 혼자뿐일까.

면가의 냉혹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도끼질,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회칼을 휘두르는 한국의 조폭들과 연변의 조폭들, 피가 솟구치고 두개골이 빠개지는 잔인함, 인간의 육체를 토막내 개먹이로 던지는 끔직함, 이런 것들이 과연 영화 속만의 이야기일까.

며칠 전, 굶어 죽은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보자. 그리고 자기 아버지에게 맞아 죽은 세 살짜리 아기를 보자. 영화보다 덜한가?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 속에서 아무리 쾌락을 탐한다고 해서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듯이(감각의 제국), 칼로 난도질 당하고 도끼로 뼈가 빠개지는 잔인함 뒤에는 그보다 더 흉포한 세상이 있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황해’는 현실과 영화를 훌륭하게 접목한 걸작이다.

개인적으로 별 다섯개에 별 다섯개를 주는 최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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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은 조작된 이미지인가?

지난 주,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연히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조용필 씨의 부인 안진현 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는데, 조용필 씨의 모습이 카메라에 가깝게 보이면서 줄곧 조용필 씨의 슬픔과 회한에 대해 전하고 있었다.
그의 붉은 눈시울과 진정으로 슬퍼하는 애닲은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조용필 씨를 좋아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아내가 아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사실은 분명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조용필 씨와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인생에 대해 자세하게 보도하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예인, 스타이니만큼 그만한 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나 역시, 조용필 씨의 노래를 좋아하고, 음악에 인생을 걸고 살아 온 조용필 씨를 존경한다.
하지만, 조용필 씨 본인도 아닌, 조용필 씨 아내의 죽음에 대해 온 방송과 신문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면서 보도한 것은, 인기 스타에 대한 예우를 넘은, ‘죽음’의 상업성은 아니었는지 진지하게 살펴볼 일이다.
지난 주에 두 사람의 사망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한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조용필 씨의 아내에 관한 보도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두산중공업에서 분신자살한 배달호 씨의 죽음에 관한 보도였다.
죽음 자체에 가벼움과 무거움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죽은 이에 대한 예우도 차별이 있을 수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사회적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는 우리가 판단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조용필 씨 부인의 사망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인간적으로 접근했다. 조용필 씨 부부의 남다른 사랑, 갑작스러운 죽음, 사별에 대한 안타까움… 모든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그래서 그 소식을 보면서 눈물까지 흘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
단지, 늘 발생하는 산재사고처럼,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로 취급하고 있다. 물론, 이번 배달호 씨 분신자살 사건이 앞으로 두산중공업의 노사관계와 금년의 노동운동의 방향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리라는, 너무나 당연한 기사가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배달호 씨가 왜 자살했는지, 50대의 가장인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처지에 몰린 이유는 무엇인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슬픔은 어느 정도인지, 그의 사람됨은 어떠했는지 등을 보도하는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한겨레신문]조차도 제목으로 ‘배달호’라는 이름을 넣은 적이 없을 정도다. 노동자는 죽어서도 부속품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배달호’라는 한 인간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죽어갈 때는, 이 땅의 모든 모순이 한꺼번에 그의 목을 조였기 때문이다. 단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고, 간부 역할을 했다는 것 때문에, 월급이 가압류 당하고, 감옥에 가야 하는 처참한 현실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인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조용필 씨 아내의 죽음에 대해서는 감동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지만,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기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의 목소리는 이른바 ‘정보사회’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수 백만 명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언제 해고당할 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빈민’(한겨레21 참고)으로 전락하고 있다.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하게 벌어지고, 빈곤의 심화는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50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지는 또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천박한 문화는 바로 ‘천민자본주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자본주의가 ‘물질(돈) 만능주의’ 사회를 만들고, 물질 만능이 곧 인간의 소외를 만들고, 빈곤의 격차가 불신과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당한 경제개혁이나 사회개혁조차도 ‘사회주의’로 몰고 가는 이런 천박한 구조 속에서 과연 ‘인간다움’이라는 희망이 있기나 할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천박하고 역겨운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은 대부분 가진 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극단적인 예로,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빈민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소수의 가진 자들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차지한다고 하자.
결국 그렇게 해서 가진 자들이 더 행복할까? 빈민 인구는 저항을 시작할테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불안해지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후의 시나리오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남미의 현실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결국 부의 편중은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 북유럽이 잘 사는 이유는 부의 분배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작된 이미지만을 보고 살아가고 있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심지어는 인터넷에서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에게 보여지는 많은 것들은 이미 조작되고 왜곡된 이미지들이다.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해서도 언론은 이미지를 조작했다. 연예인의 결혼, 이혼, 사망 등에 관해서는 매주 많은 시간을 투여해 방송을 하고 있다. 시시콜콜하고 잡담만을 해대는 연예계의 뒷이야기며, 아침 방송에서 수다떨기와 신변잡기만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며, 그 모든 것들이 대중의 관심을 한쪽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된 내용들인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 방송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고작 신변잡기와 잡담과 연예인 이야기밖에 없을까?
이런 시스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답은 아주 쉽게 나온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자본’은 그 자체로 이미 ‘권력’이다. ‘권력’은 ‘자본’을 획득하기 어렵지만, ‘자본’은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이 바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본’과 ‘권력’이 두 죽음을 어떻게 갈라놓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죽음을 바라보면서 한쪽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한쪽에서는 무관심으로 지나가버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조작된 이미지가 심겨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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