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일을 컴퓨터로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하드디스크가 늘어났다.

하드디스크는 5년도 훨씬 넘었을 IDE 방식도 있고, 3, 4년 된 SATA 방식의 하드디스크도 있다.

데이터가 많아지고, 하드디스크를 하나씩 늘려가다보니 본체의 디스크 랙에는 무려 6개나 되는 하드디스크가 자리를 잡았다.

데이터가 많으면 늘 불안하다.

잃어버릴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게 쌓아놓은 것이 모두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오랜 시간에 걸쳐 모아놓은 자료를 한꺼번에 없애는 것도 ‘아집’과 ‘집착’에서 놓여나지 못한 중생으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짓이다.

늘 조심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컴퓨터를 다루었는데, 마침내 사단이 났다. 며칠 전부터 화면에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하드디스크 정리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하드디스크가 몇 개씩 되면서도, 데이터가 거의 목까지 차올라서 겸사해서 하드디스크를 새로 장만했다.

이번에는 좀 마음 먹고 깔끔하게 하드디스크며 데이터를 정리하겠노라고 ‘굳은 다짐’을 하면서 새로 도착한 1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를 컴퓨터에 장착했다.

이때부터는 제사장이 제를 올리는 듯한 경건한 마음이 되어서 조심스럽게 하드디스크를 다뤄야 한다.

컴퓨터를 만진 세월이 20년이 넘었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경건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먼저, 얼기설기 뒤엉킨 케이블을 모두 빼내고, 하드디스크에 번호를 적었다.

모두 6개, 새로 장착할 하드디스크까지 7개. 이 가운데 1테라 이하는 이번 기회에 모두 빼내서 따로 보관하기로 생각했다.

실수 없이 일을 하기 위해 하드디스크의 시리얼 번호를 모두 적고, 그 옆에 일련번호를 먹였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는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것이었다.

그 안에는 꽤 많은 데이터가 들어 있었는데, 데이터 때문이라도 빨리 손을 써야 했다.

새로 구입한 1테라 하드디스크를 장착하고, 케이블을 연결한 다음 컴퓨터를 켰다. 이때 운영체제를 설치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부팅하면서 곧바로 운영체제를 설치했다.

1테라바이트를 반으로 나눠, 각각 XP와 7을 설치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운영체제를 설치할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그나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어서 다행이다.

이번에도 역시 문제가 생겼다. 운영체제 설치를 마치고 첫 화면이 뜨면, 메인보드 CD를 넣고 각종 드라이버와 유틸리티를 먼저 설치한다.

그리고 비디오카드 CD를 넣고 설치한다. 대개 문제 없이 잘 설치되지만 이번에는 비디오 카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화면 해상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모니터의 케이블을 컴퓨터 본체에 두 개 모두 연결한 것이 문제였음을 알아냈다. DVI 케이블과 VGA 케이블을 모두 연결했더니 모니터 설정에서 모니터를 두 개로 인식하고, 해상도 조절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했고, 운영체제의 업데이트까지 모두 마쳤다.

이제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를 본체에 장착한 다음, 데이터를 모두 새로 설치한 하드디스크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혹시 빠뜨린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를 로우레벨 포맷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한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다.

데이터를 옮기고 먼저 인터넷 검색에서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겼다’는 메시지를 입력하니 몇 개의 해결 방법이 나타났다. 먼저, 베드 섹터를 찾아서 복구하는 방법.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는 시게이트 제품이었는데, 시게이트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유틸리티가 있었다. Seagate DiscWizard와 SeaTools for Windows가 그것인데, 유용하긴 했지만 이 유틸리티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에는 베드 섹터가 없었고, 디스크 앞부분에 Delay가 생기는 것이 문제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Delay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로우레벨 포맷’ 외에는 없는 듯 했다.다시 HDD Regenerator라는 프로그램을 구해 하드디스크 복구를 시도했지만 역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hddguru.com에서 로우레벨 포맷 유틸리티를 내려받아 하드디스크를 완벽하게 포맷했다. 모든 데이터가 사라지고, 하드디스크는 초기화 된 것이다. 이 과정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컴퓨터를 수십 번 부팅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하염없었다.

하지만, 로우레벨 포맷까지 했음에도, Delay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하드디스크 A/S센터에 문의를 했고, 교체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 가지 문제는 해결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새로 장착해 운영체제까지 설치한 하드디스크에 기존에 사용하던 하드디스크를 연결하자 하드디스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빼놨던 기존의 운영체제 하드디스크를 다시 연결하고 데이터들이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를 연결하자 탐색기에 하드디스크가 모두 나타났다. 아니, 한 개를 제외하고.

데이터가 가득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 한 개는 기계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이미 파티션이 날아간 상태였다.마음이 급해져서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용산 서비스센터로 달려갔다.

하드디스크가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지, 대기자가 꽤 많았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차례가 돌아왔다. 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를 점검한 다음, 로우레벨 포맷을 한 하드디스크는 새 제품으로 교환을 해주었지만, 데이터를 인식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는 기계적으로는 정상이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데이터를 살리려면 데이터 복구 센터에 맡기라고 하는데, 하마터면 거액을 들여 그렇게 할뻔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교환한 새 하드디스크를 장착하고 컴퓨터를 켜서 확인했다. 데이터가 들어 있는 기존의 하드디스크도 장착했더니 잘 인식했다. 문제는 데이터를 인식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 한 개.

서비스센터의 직원은 데이터를 복구하기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마음 속으로는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인식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를 장착하고 데이터 복구프로그램을 설치한 다음 ‘물리 드라이브’를 읽어들였다. 그리고 밤새 컴퓨터를 켜놓고, 데이터 복구프로그램이 하드디스크를 읽도록 내버려두고 잠을 자러 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니터를 보니 화면에는 아직도 12시간이나 더 디스크를 읽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타나 있었다. 320GB의 데이터를 복구하기 위해 온전히 하루를 꼬박 지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읽었던 데이터를 보고나서 복구를 할 것인지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취소’ 버튼을 누르자 데이터 복구프로그램이 읽었던 섹터에서 데이터 목록이 주르륵 나타났다. 아… 다행히 미리 백업을 해둔 것들이었다. 그리고 하드디스크 전체를 복구 할 수 있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였다.

굳이 복구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문제가 생긴 하드디스크도 본체에서 빼내고, 기존에 운영체제를 설치했던 하드디스크도 빼내서, 본체에는 꼭 필요한 운영체제용 하드디스크 1개와 데이터가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 2개, 그리고 새걸로 교환한 하드디스크 1개를 장착해 모두 4개의 하드디스크가 순서대로 장착되었고, 모두 1테라씩 4테라바이트의 용량이 되었다.

그동안 사용했던 120GB, 250GB, 320GB 등의 하드디스크는 은퇴를 했다. 이제 데이터를 다시 정리하고, 필요하면 1TB 이상의 하드디스크가 장착될 것이다. 아니면 요즘 눈길을 끌고 있는 NAS도 선택 대상이다.생각해보니 무수히 많이 백업해 두었던 CD와 DVD를 요즘은 거의 구입하지도, 사용하지도 않게 되었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오고 가고, 인터넷으로 저장하고, 대용량 하드디스크와 NAS에 저장하면서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엄청난 데이터를 잃게 되고 말았다. 이건 필연이다.

대량, 집중화는 그만큼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데이터를 완벽하게 보관하는 방법을 모색하던지, 아니면 과다한 데이터를 포기하고 자료에 대한 다이어트를 통해 가벼운 마음을 갖던지 구 가지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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