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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이 참 감성적이다. 책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지는 않지만, 서점에서 보았다면
한번쯤 들었다 놓았을법한 제목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리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역사적이다. 우리로서는 치욕의 역사라 할 수 있을, 한일 합방 전후 중국의 정세
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루쉰, 그는 누구인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아큐정전>이란 소설로 혹은 `노신'이란 필명
으로 유명한 작가다. 오늘날 중국인이 근대의 아버지라고 칭하고 있다는 소설가. 그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중국의 혼란기에 중국민중에게 길을 열어보였던 한 사람의 사상가였다.

일찍이 서양의 실용학문에 관심을 있어서 기술과 의학 교육을 받았고, 혼란기의 중국 민중
의 정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육체보다는 정신의 개조가 필요하단 생각으로 과감히 일본유학
시절, 의학에서 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귀국해서 베이징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한다.

루쉰이 살았던 시대의 중국은 1980년의 광주처럼, 합법을 가장한 국가주의 폭력과 살인이
난무했고, 전제주의가 막을 내린 청국의 쇠퇴후에는 수많은 군벌간의 정치권력의 쟁탈전
속에서 민중이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대였다. 그는 그 시절에 활동하던 혁명가들의 스승
이나 다름없었다. 중국문명 비평 작업을 통해서, 중국의 문화와 학문을 비판한다.

이 책은 루쉰의 짧은 산문들을 모아둔 책이다. 그는 소설을 비롯하여 수많은 `잡문'등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그 글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서 편집해 놓은 책이다. 역시 소설가로서의
루쉰의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서, 이같은 산문들 보다는 소설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이 책속에서도 역시 짧지만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루쉰의
사상을 엿볼 수는 있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가감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에
서 어설픈 국수주의같은건 찾아볼 수 없다. 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 기도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그는 과감히 비판의 화살을 밖이 아니라 중국과 중국민중 내부로 돌리고 있다.
중국의 쇠락과 혼란의 원인을 타인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매우 신선하게 보인다.

최근 이문열이라는 소설가는 한일합방의 국제법적 합법성을 강조했단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로서 워낙에 억지 주장을 많이 하는 작가라 귀담아 들을 가치조차 없다.. 이 사람을 보면,
언젠가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해서 기소된 김완섭이란 사람이 생각난다.
둘다 비슷한데가 있다. 파격적인 주장을 내세워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칭
지식인이라는 자로서 그들은 한 세기전 중국의 루쉰에게서 배워야 할 바가 많다. 우매한
중국민중을 어둠에서 일깨워 문화와 정치의 개혁을 이끌었던 시대의 스승 루쉰에게서 말이다.
그들은 오히려 민중을 우매함으로 이끌고 있으니..어찌 그들이 한 시대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날은 과히 쭉정이 지식인을 감별할 수 있는 지식인 감별사가 필요한 시대다.


기억에 남을만한 글로,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1923년 12월 26일 베이징 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회
에서 했던 연설을 묶은 것이다.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를 내세워 변혁기에
중국 신여성들이 전통과 보수적 편견을 이겨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역설하는 글이다.

<류허쩐 군을 기념하며>, 중화민국 15년인 1926년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도중 살해된 류허쩐과
그외 40여명의 청년학생들을 추모하며 적은 글이다. 마치 1980년의 광주를 보는 듯한 이 사건
을 통해서, 루쉰은 `추도사도 비통함이 가라앉은 뒤의 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암울한 정치적
현실을 개탄한다.

<후지노 선생>, 중국에 의학을 배우러 갔을때 자신의 노트를 일일이 수정해주는가 하면 그
어떤 사람보다 자신을 아껴주었던 일본인 선생을 추억하는 글이다. 국적을 넘은 스승과 제자
의 친분과 오랜 우정으로 루쉰의 학문에 채찍질이 되어준 한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한 글이다.


<밑줄긋기>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에 난 길과 같다.
사실 지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단편<고향故鄕>)"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안타깝지만 중국은 너무 변혁이 어렵습니다. 책상을 하나 옮기거나 난로를 하나 바꾸려
해도 피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더구나 피를 흘린다고 해서 옮기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커다란 채찍이 등을 후려치지 않는 한 중국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채찍이 언젠가는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어쨌든 분명히 내려칠 것입니다."







200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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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워 인생론 홍신사상신서 8
쇼펜하워 / 홍신문화사 / 1990년 10월
평점 :
절판


 

1995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책을 다시 펴들었다. 아마 한 번이 아닐 것이다.
`쇼펜하우어 인생론'으로 육문사에서 나온 책을 한 번 읽었고, 다시 얼마 안 있
어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이 책을 손에 쥐었다. 시간을 더 앞질러 가보면 대학
학력고사(나는 학력고사의 마지막 세대다)을 보고,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고3의 마지막 겨울에 서점에 들러 들고나온 책이 아마도 이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쇼펜하워와 인연이 많은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런데 1995년
즈음에 우연하게 연이어 두 사람의 번역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책의
내용이 겹치지만 부분적으로 두 책이 발췌 번역을 해논지라, 내용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책은 독일어 원서에서 발췌번역돼 출판한 것 같다.) 우리
나라에 소개된 쇼펜하워의 저서는 두 가지 정도다. 그가 일평생 온 힘을 기울려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한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와 재야?의 학자로서
간간히 발표했던 철학 소품, 논문등을 후기에 묶어 출판한 <여록과 보유 Parerga
und Paralipomena>가 그것이다. <여록과 보유>가 오늘날 <쇼펜하워 인생론>으로
알려진 책이다.

1월에 이 책을 산뜻하게 펴든 이유는 아마도 그때의 저자에 대해 받은 강인한
인상때문이었다. 사실 쇼펜하워는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어 그렇게 독서가
유쾌하지 않을거란 편견을 많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그의
책을 몇 번 정독한 독자로서 얘기하자면, 그는 인생에 대해 온갖 험담만 늘어
놓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이 책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테
니까. 쇼펜하워 인생론에는 그의 염세철학이 녹아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형이상학의 철학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자신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분 독일 관념론에 대한 서술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이전의 칸트의 철학서나 동시대의 철학자 헤겔의 주저와는 그 서술
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이것은 70 평생 동안 거의 당대의 학계에서 그의 철학이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 말년에 들어서 일반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그는 곧바로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대접받게 된다. 그 열광적인 지지
는 자신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쇼펜하워
인생론>으로 묶여 발췌 출판되고 있는 철학적 논문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기이한 사연을 갖고 있는 이 책은 과연 그만한 대접을 받을만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자신의 주저를 보충하는 주석적 성격이 짙은 파편적인 철학논문들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다. 논하는 주제들은 자신의 철학을 간략히 소개하는 철학적 소고들,
또는 나이, 여성, 종교, 자살, 늙음, 삶의 괴로움 등에 관하여 라는 소주제들이다. 이
주제들과 함께 저자의 독특한 인생관을 바탕으로 한 그 글들을 읽고나면 마치 쇼펜하워
와 한동안 깊이 대화하고 난 후의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환영받은
이유라면 뭐랄까, 삶에 대한 그의 해석과 비유들이 명쾌하고 또 날카롭기 때문이 아닐런지.
또 인생의 암울하고 비극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들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부분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건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쇼펜하워의 직관력과 인식의 날카로움이다.
삶에 대한 완전한 진실은 아닐지라도, 또 삶에 위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부정적 인식과 염세 철학속엔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삶의 모순과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것은 그의 철학이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넘어서서,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균형감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라고 한 나의 허두의 명제에서 나오는 귀결은
'처음에 내가 있고, 다음으로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무로
돌리는 파멸과 혼동하지 않게 하는 해독제로서 이 귀결을 견지해야 한다. " 275p

" 인간은 응석을 받아주면 행실이 나빠진다는 점에서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를 대할 때에 너무 관대하다든지 친절해서는 안 된다.
보통 친구에게 돈을 꾸어주는 것을 거절했다고 해서 친구를 잃는 일은 없지만,
친구에게 돈을 꾸어주었기 때문에 친구를 잃는 수가 가끔 있다." 164p

" 가장 현명한 두뇌조차도 밤마다 이상하고 무의미한 꿈에 시달리다가 깨어나서
다시 명상에 잠기기 시작해야 한다면, 우리가 두뇌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철학, 정치, 시, 또는 예술에 뛰어난 자는 모두 우울한 성격인 것 같다."
(여록과 보유)

"나도 청년 시절에는 밖에서 초인종이 울리면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내게
즐거움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년에 들어서서는 같은 일이
일어나도 두려움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슨 귀찮은 일이 생겼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 198p


쇼펜하워는 역사상의 많은 철인 가운데서도 좀 유별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당대의 최고의 철인으로 평가받던 칸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명이 없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평생동안 그의 철학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철저히 무시되었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생활을 꾸려갔고, 결혼은
물론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니체는 쇼펜하워의 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한 명의 친구가 있느냐 또는 한 명의 친구가 없으냐 하는 차이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는 정상적인 생활(결혼과 자녀양육) 자체를 거부했다. 결혼이란
철인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결혼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뿐이지만, 철학자가 결혼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또한
자살과 자살자를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역사상 이렇게 용기있는 염세 철학자는 없었다. 쇼펜하워의 붓끝에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거침없는 자신감이 내포돼 있다. 이런 자신감의 철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대 철학의 주류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히테와 헤겔이 베를린 대학에서 큰
인기를 끌며, 동시대의 철학을 리드하고 있을때 그는 그 대학 강사로 취직했으나, 곧바로
헤겔의 등살에 쫓겨나다시피 그 대학에서 물러나고 만다. 이런 일화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주저속에서 공격의 표적을 헤겔과 그의 철학에 맞추어 놓고 있다. 자신의 철학을 널리
대중에게 소개할 능력을 갖고 있는 대학교수들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평생 그가 재야의
무명 철학자로서 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해주고 말았다.

쇼펜하워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왜 염세주의로 빠져 들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궁핍을 몰랐던 그에게 많은 여가는 삶의 활력을 빼앗아 그를 권태속에 몰아넣었을
것이 분명하고, 기질적으로 의심이 많은 성격은 그를 소심한 겁장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평생 침대곁에 장전된 총 한 자루를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청년시절,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의 외도는 가족과 가정의 따뜻함을 알지 못하게 했을 것이고, 대학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주류 철학계로 편입되기엔 그의 철학은 너무나 개성이 강했다. 인생 자체를
부정해서 완전한 금욕을 주창했고 인류의 사멸을 요구했던 염세 철학은 어떤 희망과 위안도
없이 맹목적이다. 세상의 그늘만을 강조하고 있는 철학자가 세상을 공정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자살을 예찬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정작 그 자신은 70살이 넘을 때까지
장수했으며, 물려받은 유산으로 평생 가난과 육체적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자들이
모두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철학자 쇼펜하워의 우울한 일생에서
그 원인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워는 오늘날 서양 철학사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뛰어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는 젊었을때 당대의 유명한 여류소설가였던 어머니와
다투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 후대의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은 당신(어머니)이 아니라 바로
저(쇼펜하워)일 것입니다." 쇼펜하워 사후 그 말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는 칸트 이후 독일
철학을 설명할 때 뺄 수 없는 철학자가 되었고, 19세기의 대표적 철학자인 니체의 스승으로서
철학의 역사에 그의 이름을 새겨넣는데 성공했다. 니체는 젊은 시절 쇼펜하워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와의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 나는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가 세계, 인생,
자기의 마음을 가공스러울만큼 분명하게 비춰 주고 있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비극의 탄생>>)"
이런 찬사에는 그의 천재성에 대한 사랑이 묻어 있다. 세계와 인생에 대한 그 나름의 독창적인
해석에는 염세주의가 뒤섞여 있긴하지만, 충분히 고민해 볼만한 사색의 소재들이 풍성히 담겨
있다. 자신의 철학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형이상학적 철학 용어를 되도록 줄이고 생활속으로
철학을 끌어내린 책이 바로 <쇼펜하워 인생론>이라 할 수 있다.

 


2004.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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