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글쓰는 일은 고통스럽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읽는 행위보다 쓰는 행위가 더 능동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은 생각과 삶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글과 삶의 불일치가 글쓰기의 고통 가운데서도 가장 큰 고통이다.  그것은 달리 자기배반이다.  자기배반에 왜 들어설까?  얻을 게 있기 때문이다.  명성이거나 한 자리이거나 금전이거나, 그런 것들이다.  작가 김훈은 말과 언어가 가진 관념성에 깃든 거짓을 고통스럽게 파악하고 있다.  그는 매우 신중하게 소설을 쓴다. 유명한 일화지만 <칼의 노래>를 쓸 때, 보조사인 `은과 는'을 가지고 몇날을 고심했다는 사람이다.  

소설 <남한산성>은 이 말과 언어에 대한 작가의 또다른 고민이 얽혀 있는 작품이다.  삶과 글이 불일치하는 가장 극명한 역사의 장을 김훈은 담아내려 했다.  400년 전, 서울 땅 <남한산성>이란 고립무원의 성에서 인조와 당대 과거를 통과한 최고의 엘리트들이 나눈 말과 글이 이 작품의 핵심을 점령하고 있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서술보다, 이 말과 언어로 구성된 관념이 현실을 왜곡하는 현장을 포착한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더 유명한 1636년 12월의 병자호란은 그 결말이 너무나 허망하다. 2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조선을 징벌한 청태종은 46일간 1만 2천명으로 남한산성속에 들어가 숨어버린 조선 왕 인조를 치욕스럽게 항복시킨다. 항복의식으로 `3배 9고두' 즉 3번 큰 절을 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게 했고 인조의 이마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삼전도에 차려진 높은 단 위에서 청태종은 황제의 권위로서 내려다 보았다.  이 역사에서 도대체 가르칠 것이 무엇인가.  치욕말고는 없다.

임진왜란을 겪고 겨우 40년 만에 다시 겪은 참화였다. 하지만, 치욕이라고 해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역사가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는 자신을 바라볼 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겪는 것에서 새로운 삶과 미래를 궁리할 수 있다. 소설은 김상헌이 인조의 뒤를 따라 혼자 송파강을 건너며 늙은 뱃사공의 목을 치는 장면을 인상깊게 다룬다.  뱃사공은 인조의 어가행렬을 무사히 강 너머로 인도했고 이제 김상헌의 도하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청군이 오면 그들의 도하도 도울 것이란 말을 건넨다.   인조의 행렬에서 얻은건 군사들의 강압 밖에 없었지만, 청군에게선 곡식이라도 조금 얻지 않을까 하는 무지렁이 백성의 소망이었다.  김상헌은 "이것이 백성이구나"고 개탄하며 품속의 환도를 꺼내든다.  그가 바로 조선 후기에 절개와 지조, 척화의 상징적 존재로 추앙받은 김상헌이다.

김상헌의 언어에선 목숨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이 매순간 드러난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도운 명을 배신하고 오랭캐에 지나지 않는 청에 군신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66세의 노대신으로 자기 몸조차 가누기 힘든 처지였지만,  끝까지 청에 맞서 항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속에서 주화파인 최명길이 구차하게 써내려간 항복문서를 찢어버리고, 임금 앞에서 최명길과 긴 논쟁을 이어가는 척화파의 중심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싸워야만 화친의 길이 열리고 싸우지 않으면 화친할 길도 마침내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이 말 뜻은, 결국 죽을 때까지 싸워보고 난 후 나아갈 길을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현실은 어땠을까?  산성안에는 군민이 겨우 50일을 버틸 수 있는 식량과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성벽에 서 있기조차 버거운 1만 2천의 군사가 있을 뿐이었다. 

"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143쪽, <남한산성>, 김훈 

최명길은 김상헌보다 16살 젊었다.  젊었기에 그가 실리적인 사고를 했는지도 모른다.  최명길의 언어에는 일관되게 현실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김상헌의 반대편에서 산성을 포위하고 있는 청에 항복하고, 그들과 화친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언어에선 매번 자기비하가 전제 돼 있다.  명분이 아니라 뭇 생명들의 생존권이 더 앞서야 한다는 현실 논리를 내세운다. 그것을 위해선, 그 누구의 비난과 모함도 달게 받겠다는 의지를 엿보인다.  "상헌은 우뚝하고 신은 비루하며, 상헌은 충직하고 신은 불민한줄 아오나 상헌을 충렬의 반열에 올리시더라도 신의 뜻을 따라주옵소서"(144쪽)  최명길의 언어는 실속이고 생명이며 현실로 곧게 뻗어 있다.  

소설 속에서 인조는 주화파와 척화파의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인조의 언어는 모호하다. 그는 모든 것을 듣고서 판단하지 않는다. 힘이 밑바탕 되어주지 못한 최고 권력자의 침묵의 언어는 슬프다. 임금의 무능과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심한 무력감이 극치에 달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12월에 성에 든 인조는 새해 첫날을 맞아 북경을 향하여 명의 천자에게 올리는 의식인 망궐례를 행한다.  임금과 세자가 함께 음악에 맞춰 곤룡포를 휘날리며 춤을 춰 명에 대한 공경과 복종을 표하는 일이다.  20만 청군이 자그마한 성을 포위하고, 임군의 거처인 산성의 행궁을 망월봉에서 내려다보며 홍이포를 조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조와 대신들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망궐례를 예에 걸맞게 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난상토론 한다.  과연 동방예의지국이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236쪽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이 빚어내는 풍경"을 묘사하려 했을 뿐, 어떤 역사담론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가하려 한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치열하게 이분법으로 나뉜 이 소설의 서사와 자신이 거리감을 두겠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까. 작가의 해명처럼 작품은 차분한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묘사를 통해 독자들은 병자호란의 시대속으로 쉽게 빨려들어간다. 하지만, 이 전망과 희망과 힘이 없는 시대와 거리를 두고 싶은게 작가만은 아니다. 독자들 누구도 이 소설 속 그 어떤 인물도 되어보고 싶지 않고, 그 시대속에 감정이입하기 싫다.  대세가 이미 기운 상황에서 주화파와 척화파의 말싸움은 하나의 넌센스가 돼 버리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언어는 쓸모없이 진중하다.  길은 하나인데, 상상속의 길을 두개 만들어서 그것을 또 하나의 길이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패기나 용기도 아니요, 절개와 지조도 아니다.

칼을 쓰는 자 앞에서 유창한 논리와 궤변으로 그 칼에 맞서려는 자는 어리석다. 하지만, 어제까지 천자로 모신 왕을 바꿔 섬긴다는 것은 유학의 나라에서 입신양명한 이들의 자기부정이 될 것이기에, 오늘의 기준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도 무리다.  지조와 절개는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어느정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정신이다.  시류와 사익에 따라 당을 옮겨다니는 정치인들을 비하하며 우린 `철새'라고 부르길 주저치 않는다. 조폭세계의 불문율은 `의리', 즉 보스에 대한 지조와 절개다.  400년 전 세상과 지금의 국제정치 환경도 다를 바 없다.  여전히 한국은 그 대상만 달라졌을 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눈칫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그 많은 외침을 이겨내고 나라를 빼앗기는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아직 우리의 국력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강대해지는 중국, 6.25의 혈맹 미국 사이에서 사드 배치를 놓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다.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척화파와 사드를 반대하는 주화파가 건곤일척의 싸움을 일삼는다.  여기서,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묻는 순간 우리는 여지없이 병자호란의 두 대신의 상황에 처해지고 만다. 김훈은 사대는 약소국의 생존술로 그것대로 역사로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과 한국 사회가 조선시대 못지 않게 관념의 늪에 빠져 있다고 일갈한다. 그 단적인 예로,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와 같은 쓸데 없는 논쟁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듣고 싶은 대답은 "북한을 주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친북이다." 정도 아닌가. 정치권에서 이 뻔한 드라마의 대사를 지겹지도 않는지 분단 60년 동안 재방송으로 틀어대고 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신해 46일간  당대 최고 엘리트 관료들과 답이 없는 입씨름을 하던 사이,  백성들은 굶주림과 추위, 청의 약탈과 살육의 제물이 됐다.  현실의 문제를 치유하고 해결할 실질적 힘도 없고, 명예롭게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할 용기와 기백도 없는 남한산성의 척화파와 주화파는 백성과 군인들을 남한산성에 가두고 거친 입씨름으로 시간을 허송했다. 특히 척화파의 거두 김상헌은 조선 후기의 권력을 틀어쥔 서인,노론,안동김씨 세도정치로 맥을 이으며 `절개의 의인'으로 과대 포장됐다.  실리의 길을 가고자 했던 주화파 최명길은 많은 사대부들로부터 `나라를 팔아먹은 자'로 낙인 찍혔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고 보면, 그깟 사대를 누구에게 하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이후, 조선 역사는 사대의 대상을 바꿔가며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일들'의 연속 아니었는가. 

김상헌과 최명길은 모두 사대주의자였다.  그들이 명과 청을 선택한 것은 그 두 나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느 편에 붙는 것이 조선에 더 이익이었는가 하는 관점에서 였다면, 나름 그들은 역사속에서 평가받아야 할 점이 있다.  세계는 공평하지 않다.  평등하지도 않다.  사회속에선 강자와 약자가 있고, 나라간에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있다.  약자로서 처신하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숙명인 경우가 많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하여, 영원한 사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위로를 던지자면, 그들은 시간과 죽음속에서 평등하다.  소설속 작가의 표현처럼 `치욕을 덮는 삶의 영원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삶은 명예보다, 치욕보다, 더 무겁다.  소설 <남한산성>은 약소국으로 살았던 조선의 슬픈 자화상이 깃든 작품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굴욕조차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일 같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한낱 호기이며 허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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