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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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유는 고상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책 읽는 일이 힘들고 책읽는 사람이 귀하다보니, 그것을 때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책을 보는 이유나 영화 한 편을 보는 이유도 따지고 들어가보면, 뭔가 내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한 행위다. 순수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런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 가운데 얻는 재미조차도, 지금 우리 욕망이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증표다.  변화는 앎에서 온다. 평이한 말과 언어에서 변화를 바랄 수 없다.  지금 막 생산된 언어라는건 가볍고 검증되지 못했다.  수천년 전 문명과 사회가 출현할 당시부터 지금껏 수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연구되어 다양한 주해로서 살아남은 책들이야말로, 우리가 자신의 삶속에 초대해 볼만한 경지에 이른 문장들이다. 이것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읽히는 고전은 지금 매우 한정 돼 있고 편향 돼 있다. 동양 특히 한국의 근대화는 서양철학과 종교가 전파되는 수단과 방법을 의미했다. 철학이라하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근대로 넘어오면 칸트나 헤겔, 현대로 오면 사르트르나 키에르케고르 등 철학자의 이름이 굴비엮이듯 나온다. 비록 그 철학에 대해 알바 없지만 우리는 고전을 서양위주로 읽고 이해했다.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낮았고, 그것은 아마도 20세기에 공산화된 중국에 대한 소원함도 그 이유였을 듯하다. 또, 동양사상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는 한자어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과 일반 대중들이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양고전에 대한 지식인들의 굼뜬 번역 작업도 원인이다. 그러한 점에서 신영복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돌베개)은 특별하고 귀중한 저작이라 본다.

2016년 1월 타계한 신영복은 박정희가 독재로서 나라를 어지럽힌 시절, 조작된 용공사건으로 구속돼 만 20년 2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한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20년 이상을 양심수로 수감된 지식인은 흔치 않다. 그는 출소 후 곧바로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수감시절 책을 놓지 않았고, 공부에 매진했다.  출소 후 사석에서 감옥을 언제나 `나의 대학시절'로 부르기를 주저치 않았을 만큼 그는 감옥에서의 시간동안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인문학 공부를 지속했다.  그의 `감옥 인문학'은 몇가지 점에서 특별하다.  첫째, 그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인 엘리트로서 보통의 지식인이 가진 관념에 머문 지식을 타파한 곳이 감옥이었다는 점이다.  사형수에서 감형돼 무기수가 된 그는 수많은 잡범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지식인이 가질만한 우월의식이나 책속에 매몰된 협소한 인문학에서 벗어난다.

둘째, 감옥이라는 특수성은 지식인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해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점이 신영복의 공부를 특정한 영역으로 내몰게 된다.  많은 책을 반입할 수도 없고, 지닐 수도 없는 감옥에선 얇거나 두꺼운 고전 한 권이 요긴했다. 쉽게 읽고 넘길 수 없는 동양고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감생활 동안 벗할 수 있고,  하나의 자구를 몇날 며칠이고 머릿속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방편이 되었다.  신영복은 <강의>에서 십수년 동양사상을 홀로 공부하며, 익히고 사색한 내용을 풀어 놓는다. 그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독서하고 궁리한 깊이가 문장에서 느껴질 정도다.  무엇보다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은 `써머리'라 부를 수 있는 분량임에도, 수천년간 동양을 지배해온 춘추전국시대의 다채로운 사상에 입문하고, 본격적으로 그 분야를 독서하기 전 충분한 워밍업을 할 만큼의 적절한 깊이와 수준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영복은 <강의>에서 독자들의 고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풀 수 있도록 돕는다. 흔히 사상가와 그들의 경전을 금지옥엽인냥 떠받드는 경향이 일반 독자들이 고전을 읽고, 고대 사상가를 대우하는 수준이었다.  공자의 <논어>라고 하면, 비판의식보다는 그 자구 하나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해석하고자 주력하곤 했다.  이 책에서 신영복이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과 사상가들을 풀이하는 방식은 비판과 견제에 가깝다. 맹자가 공자를 노자가 공,맹을, 순자가 묵자를 천하를 통일한 법가 철학의 한계를 비판하고 논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서술 방식은 공.맹을 비롯해 고대 사상을 추종하는 독서에 주력해왔던 독자들에게 사유의 자유로움을 선물하고, 관념적인 사상의 추종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신영복은 동양 고전을 읽는 하나의 독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의 인권 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선을 긋는다.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제[時制]다. 공자의 사상이 당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오늘의 시점에서 규정해, 그 반민주적 반민권적 요소에 관해 폄하할 수는 없다.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하는 것은 폭력적이다"(141쪽) 그렇다면, 고전의 논리를 어떻게 현대로 끌어올 수 있겠는가. 신영복은 그 시제를 혼돈하지 않으면서, 사람[人]과 백성[民]에 대한 보편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고전의 담론을 그대로 오늘의 현장으로 생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 고대 사회 형성기 사상들을 다루고 있다. 즉, 서양 고전이 아닌 동양 고전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신영복은 서양철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해왔던 동양사상을 고전 강독이란 형식으로 풀어 쓴 이유를 동양 사상의 그 지극한 현실주의와 인본주의적 가치에 두고 있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이념은 모두 서양의 것이지만, 그 모순은 세계를 종교,경제적으로 분열시키고 반목하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는 정치,종교,경제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하며,  전쟁과 테러라는 반인본주의적 모순속에 휩싸여 있질 않은가.  신영복은 이것이 서양문명을 지탱해온 두 개의 축, 즉 종교와 과학의 모순된 구조에서 시원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과학과 종교가 자기의 논리를 극단으로 이끌면서, 인간중심의 인본주의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염두해 두면, 동양사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서양의 과학과 종교가 인간을 배제하고 신이나 극단의 이성주의에 매몰돼 있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에 반해, 동양 사상은 지극히 인간사회의 현실주의적 소용과 관계에 치중한다. <논어>는 정치 사상이기 전에,  인간관계론의 보고다.  인[仁]과 덕[德], 그리고 예[禮]를 크게 보면, 임금과 신, 민이라는 위계에 적용할 수 있는 가치이지만 동시에 사회 속에서 타자와의 관계맺기에 있어 모두 응용 가능한 가치들이다. <논어>를 읽어본 사람은 공자가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경원[敬遠])는 논리를 펼때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공자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저 먼 하늘이 아닌 지금 이곳에 당장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형이상학과 종교에 빠져 현실 감각을 잃고 결국엔 인간을 수단으로 가치전락시키는 지금 세계에 필요로 가르침이기도 하다. 

" <논어>는 그러한 담론 중에서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붕朋이건 예禮건 인仁이건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근본이라는 덕치德治의 논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사상에 비하여 <논어>가 갖는 진보성의 근거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193쪽, 신영복 <강의>

맹자는 공자를 이어받아 자신의 사상체계를 다졌지만,  그는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진보적인 정치철학을 성립시켰다. 맹자의 민본주의는 이렇게 묘사된다. "한 국가에 있어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다. 그 다음이 사직이며,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이다"(217쪽) 즉, 임금도 잘못하면 언제든 민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혁명의 논리를 편 것이고, 민에게 해를 끼치면 어떤 권위와 성역마저도 가차 없이 헐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노자와 장자는 공,맹을 비판하며 그들의 사상을 협소한 정치,사회 논리로 폄하 한다. 공,맹을 동양사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독자들에게 노,장의 스케일은 놀랍게 포괄적이다.  노,장은 공,맹 사상을 패권 경쟁을 둘러싼 일체의 반자연주의적 무도無道한 작위로 단정하였다. 

이 책에선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묵자나 순자 사상도 다룬다.  특히 묵자는 겸애와 반전 평화 사상의 원조로 이 책에서 크게 다루어진다. 겸애 사상을 설파한 묵자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서 예수가 구사한 문장을 묵자가 말하고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패권 경쟁에서 모든 희생을 감수한 기층 민중들의 고통을 대변했다.  전쟁을 살인행위로 보았고, 단 한 줌의 의로움도 없는게 전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반전평화론의 원조로서 비록 우리 시대 그 이름이 많이 알려지진 못했지만, 그 사상은 언제든 인류의 잔혹한 역사앞에 초대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런 묵자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 바로 맹자다. 맹자는 묵자의 고결한 가치인 엄격성과 비타협성이 이상주의적이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 했다.  

신영복은 자신의 고전 강독을 자평하며, 방대하고 깊은 동양 사상을 지면과 시간의 한계에 막힌 수박 겉핥기라고 언급한다.  하나의 사상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은 한 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의 고민이 얽혀 있는 말이다.  신영복은 동양 사상에 대한 강독을 통해 주요한 사상을 요약하고, 그것이 우리 시대와 현실에 적용 가능한 통로와 의미는 무엇인지를 찾는다.  이런 작업은 우리가 고전에 어떤 자격을 부여하고, 읽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그 점에서 신영복의 동양 고전 강독은 `써머리'에 그치지 않고 고전 공부의 방향과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영복은 동양 고전을 인간관계론에 치중해 읽는다. 그는 동양 고전이 결국 지향하는 것은 `인성의 고양'이라고 결론 내린다. 

인성의 고양이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성은 혼자 있을 때 고양되는게 아니라, 어울리며 관계를 맺어가며 한 단계 성숙해 나간다. 그는 인성이 이웃과 함께 그 시대의 아픔을 주입하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회를 만들고, 결국 좋은 역사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허황된 형이상학을 주입하고, 관계보다는 개인에 치중한 서양 사상이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를 동양의 고전들이 다가서고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것은 서구적 가치가 개인의 존재성을 강화하고 개인의 사회적, 물질적 존재 조건을 확대하고 해방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구별됩니다. 서구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보다는 개인의 존재 조건을 고양하는 것이며 그 존재 조건들 간의 마찰과 충돌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06쪽

신영복의 책에 자주 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식인으로서 그는 독보적인 장점을 지닌 사람이었다. 최고 학부을 나와 한 시대의 엘리트로 살았고, 깊은 내공을 쌓은 지식인으로서, 단연 그의 언어와 사유는 사려 깊고 충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장점은 아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만 20년 20일간 갖혀 있던 감옥에서의 삶에서 떨어져 나온, 겸손과 인간 이해의 세심함이 전해져 온다. 그가 인생의 삼분의 일 이상 의식주를 함께 한 이들은 소위 세상에서 밑바닥 취급을 당한 `잡범들'이었다.  신영복은 그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인간학의 최고봉을 수료했다. 그것은 이론과 상상이 아니라 현실과 실천이란 관점을 제시하며, 그의 공부와 성품에 남다른 식견과 자세를 갖게 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 세상에 나온 것은 십 수년 전의 일이다. 신영복은 당대의 문제의식을 배려한 문장을 곳곳에 심어놓았다. 그같은 문제는 십 수년 전이니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고전을 어떻게 읽고 우리 삶에 적용시켜야 하는지 알려 준다. 더불어, 특정 사상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고대 사상가, 그 자신들의 견제와 비판의 자세에서도 배울 수 있다. 공,맹의 유가 철학과 노,장의 도가철학은 상반되는 세계 인식과 정치,도덕을 설파하면서도, 그 나름의 가치와 철학을 함유하고 있다. 비판이 금지된 사상과 관념은 인간에게 득보다 해가 더 크다.  서양 역사에 빗대보자면, 중세의 종교적 독단이 한 시대를 암흑기로 내몰았다는 점이 한가지 예가 될 수 있겠다.  

나는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살아가기 위해 책을 읽는다.  동양 고전은 신영복의 말대로, 인간관계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철학이다. 그것은 중국 역사상 고대국가 형성기에 다채롭게 피어난 철학이었다.  그들의 철학은 심오하고, 나름의 의미와 깊이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삶에 이식되는 가르침은 언제나 `취사선택'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분하는 실력과 기술을 단련시키는 것은 독자들의 의무가 아닌가.  많이 배우면 교만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지식이 부족하면 귀가 얉아 진다. 자기의 삶과 자신의 역사와 한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우는 일은 배움,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  특히, 고전 독서야말로 옛 시대를 읽고, 옛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신영복이 앞서 걸어간, 깊고 풍성한 사유와 겸손한 인간 이해에 밑바탕 둔 고전 독서를 많은 독자들이 뒤따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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