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 선재 스님의 삶에서 배우는 사찰음식 이야기 선재 스님 사찰음식 시리즈 2
선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리는 것 없이 다 먹는 나로서는 편식 같은 건 모르고 살아 왔다.  모시고 있는 팀장님과 점심을 같이 먹다가 그가 밥에 들어가 있는 야채들을 가려내는 것을 보고 퍽이나 재밌었다.  지천명의 나이에 아이처럼 야채를 가려내다니. 그는 아이들을 키우며 편식에 대해 뭐라고 가르쳤을까, 궁금했다.  고기 먹을 땐, 상추도 싸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기 본래의 맛을 방해한단다.  그분의 건강이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편식만 하지 않을 뿐 나의 식습관이 좋다고 볼 수도 없다.  얼마전까지 밥을 먹고나서도 부엌 선반을 뒤져, 과자 부스러기를 몇 개 먹는게 습관이었다.  식후엔 믹스 커피 한 잔은 마셔야 직성이 풀렸고 밥은 무척 빨리 먹었다. 

식습관에 대한 이런 나쁜 습관들과 결별하고자 노력했다.  몇 달 전부터,  술을 끊었다.  음식을 천천히 씹기 위해 노력했다.  과자류의 섭취를 철저히 제한했다.  식후 마시던 커피를 끊었다.  라면 등 면류를 먹지 않는다.  술,과자,커피,라면?  삶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들을 끊고 과연 나는 행복했을까?  담배처럼 금단증상도 없었다.   몸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고 할까.   뱃살이 줄었고,  몸이 그 전처럼 많이 피로하지 않았다.  건강에 좋지 않다고 무척 잘 알려진 음식들과 결별은 인내와 약간의 불편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선재 스님의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불광출판사, 2017)를 읽다가, 건강을 위한다면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나쁜 음식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눈에 와 박혔다.  `기특하게도' 지금 내가 바로 실천하겠다고 노력하고 있는 삶 아닌가. 

하지만, 그 음식들과 결별하기까지 내 건강이 결코 우호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쁜 음식들과 지금껏 결별하지 못한 이유는 음식과 건강의 인관관계에 대한 안이한 사고 때문이다.  나쁜 습관이 쌓여 삶을 망친다는 것을 잊고선 말이다.  스님들이 절에서 해먹는다는 사찰음식에 관해 단순히 해설해 놓은 책이란 상상과는 다르게, 이 책은 바른 먹거리와 음식 문화, 식습관과 건강 그리고 불교철학에 관해 쉽고 공감가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에세이집이다.  불교계에서 `사찰음식 명장'이란 칭호를 최초로 받은 선재 스님은 우리나라에 사찰음식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오랜 수행 기간 내내, 사찰음식 대중화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그는 40여년 동안 사찰음식을 연구했고, 자신의 병을 사찰음식으로 다스렸으며, 지금도 사찰음식 수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불교 음식 문화를 전수하고 있다.

그런 그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때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  본래 몸이 약했으나 출가 후 몸을 혹사하며 수행하고 공부하느라 건강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수행이 여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자신이 승가대학 졸업 때 쓴 <사찰음식문화 연구>라는 논문을 한 자 한 자 다시 읽기 시작한다.  죽음이 목전에 와 있던 시절 읽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그는 "내가 쓰고도 정작 나는 글대로 살지 못했구나"라고 후회한다.  의사가 선고한 1년의 시간, 그는 철저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먹고, 살아보겠다고 작정했다.  부처님 말씀에는 모든 병은 음식으로 치료하며, 음식은 곧 약이라는 말이 나온다. 

약이 되는 음식이란 무엇인가. "자연 그대로의 음식, 제철 음식, 때에 맞는 음식, 깨끗한 음식 등이 부처님 법에 맞는 음식입니다."(30쪽) 그때부터 그는 모든 가공식품을 끊었다.  건강하지 못한 몸에 무리를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전통방식으로 직접 담가 먹었다.  아침은 가볍고 맑게, 점심은 든든하게 먹고, 저녁은 아침보다는 많게 점심보다는 적게 먹었으며,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간장과 된장 등의 장류와 김치를 먹었고 제철에 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었습니다. 충분히 쉬었고 명상과 염불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인스턴트 식품은 사탕 한 알도 먹지 않았습니다. 자연식이 아닌 것은 철저히 가렸습니다. 한 번쯤이야, 한 모금쯤이야. 한 끼쯤이야, 이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내 몸에서 일어나는 사찰음식의 효과를 제대로 가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며칠이 흐른 뒤 나는 점점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도 말이지요."  31쪽, 선재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싯다르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자 신분일 때의 이름이다.  당대 유행하던 고통을 통한 깨달음이란 수행법을 따르고자 그는 곡기를 끊고 자발적인 고행을 거듭한다.  번뇌의 원인이 육체의 욕망에서 온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은게 아니라 뼈와 가죽만 남은 채, 혼미한 정신 상태로 쓰러질 찰나에 도달했다.  싯다르타는 겨우 몸을 추스리고 강물에 몸을 씻은 후, 근처에서 우유를 짜고 있던 여인에게서 유미죽 한 그릇을 얻어 먹었다.  죽을 먹고 나자 온몸에 기운이 돋았고,  강가의 보리수나무 밑으로 걸어가 편안해진 몸과 마음으로 깊고 고요한 명상에 들어가 이윽고 부처가 되는 깨달음을 얻는다.  

불교에서 음식이 가진 가치를 이야기할 때, 잊어서는 안되는 예화가 바로 부처의 깨달음이 고행에서가 아닌 육체의 건강과 편안함에서 나온 결과물이란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저자나 부처와 같은 절박함과 깨달음을 갖고 살까.  바쁘다는 이유로, 외식, 맛있다는 이유로, 인스턴트, 편리하게 한끼 해결 가능한 편의점 음식이 인기다.  음식에 대한 절제나 철학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유투브를 점령하고 있는 먹방들은 음식을 전투적으로 먹는다. 그들이 먹는 음식이 거의 인스턴트다.  한발 더 나아가 `푸드파이터'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누가 더 많이 빠르게 먹는가로 승부를 가른다. 음식을 먹는다기보다는 자기 몸을 혹사하고 학대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선재 스님은 이 책에서 사찰음식에 담긴 철학을 다음 몇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지금 당신의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라.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한가한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암에 걸려서도 자신이 준비하는 논문 때문에 음식할 시간이 없으니 사찰음식을 잘하는 분을 소개시켜 달라는 어느 여교수의 부탁을 받고, 그가 해준 말이다.  둘째, 사찰음식은 수행자들이 최선의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오랜 세월 수많은 지혜를 모은 산물이다.  인간의 몸이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생명의 윤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몸을 맑게 만드는 음식이다.  셋째, 사찰음식은 생명의 음식이다.  채식과 자연식, 소식을 지향하는 사찰음식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생명 존중이 담겨 있다.  넷째, 입에만 맞는다고 음식이 아니다. 배가 부르고 기분만 좋아진다고 음식이 아니다. 정말 좋은 음식은 내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이다.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은 아무 음식이나 입속에 넣지 않는다.

"아픈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면 제일 먼저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말한다. 종이에는 육류 위주의 음식과 가공식품, 탄산음료, 여기에 남성들은 술이 빠지지 않고 적혀 있다.  맛으로 보면 짠맛, 매운 맛, 단맛에 집중되어 있다. 종이에 적은 것을 다시 보여주면 대부분 놀라면서 멋쩍어한다.  생각없이 먹고 살았구나 싶은 것이다.  단지 음식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음식을 선택하는 `나'의 욕심과 게으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음식은 곧 내가 살아온 모습이다."  148쪽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을 갖기 마련이다. 그것이 종교수행자의 경우라면 일반인보다 더할 수 있다.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예찬은 거의 종교적인 신념의 수준에 올라와 있다. 그것이 아마도 읽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세상의 건강한 음식을 어찌 사찰음식에서만 찾을 수 있겠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의 종교가 불교는 아닐 것이다.  그의 음식에 대한 종교적인 신념은 자신의 병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이 사찰음식 덕분이라는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속성이 강하다.  그런 종교적이자 광적인 집착을 책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매우 상식적인 수준의 건강한 식습관 철학이 곳곳에 배어 나온다. 또, 분명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갖고 잘못된 음식의 홍수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쁜 습관과 결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찾지 말라.  지름길 따위는 없다.  오직 결단이 있을 뿐이다.  좋지 못한 음식을 바로 지금 이순간부터 먹지 않는 것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 좋은 음식을 먹고, 매일 운동을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 따지고 보면 책의 내용을 종교적 색채를 빼고 설명하면 이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생각과 삶을 위해서도 식습관의 변화는 필요하다.  뭐, 그렇게 안 먹는게 많냐?는 핀잔을 들어도 좋다.  내 몸을 사랑한다면, 좋은 음식을 찾아 먹지 말고 나쁜 음식부터 절제하는 습관이 필요할 듯하다.  

더불어,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종교 수행자로서 불교의 철학을 쉽고 평이한 언어로 풀어낸 점은 평가받을만 하다. 평생 음식연구를 한 분으로서는 믿기지 않게,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과 사색을 글로서 풀어내는 저자의 내공은 깊이 있고 담백하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보석같은 문장들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삶이 갈수록 야박해지고, 분주해질수록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다'는 잘못된 인식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잘 먹기 위해 산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게 아닌가.  싯다르타가 깨달음에 이른 것은 유미죽 한 그릇 덕분이었다.  한갓 유미죽에서 깨달음이 왔다면, 음식은 영혼의 어머니이자 존재의 스승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