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글쓰기 - 단순하지만 강력한 글쓰기 원칙
박종인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다.  한 분야에 능통해지기 위해 10년 그 이상을 수련해 왔는데, 어느날 그 분야의 `듣보잡' 고수가 나타나 너의 방식은 틀렸어! 라고 일갈한다면 어떨까.  산야의 고수들은 이때 두 방식으로 대응할 게다.  첫째, 네가 뭔데 내 방식을 틀렸다고 참견하는거냐?라며 무시하는 것.  둘째, 그래 이거야 하며 그간 고집한 방식을 과감하게 고치고 새 길을 가는 것.  첫번째 방식도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지름길 놔두고 고생할 뿐이다.  두번째 방식을 곧바로 차용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세상 고수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우리앞에 나타난 `듣보잡' 선생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자의 글쓰기>(북라이프, 2016년)를 쓴 박종인은 조선일보 기자다.  내 평생 이 분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안 읽을 듯 하다.  그 신문사가 맘에 안 들어서다.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한 것도 그 회사 때문이다면 우스울까.  결국 샀다.  난 이 책에서 `기술적'이며 `기교적'인 글쓰기를 습득하길 원했다.  목적이 분명한 독서다.  그는 `여행과 인물에 관한 글과 사진'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그는 인문적인 글쓰기에 능통한 기자며, 조선일보 저널리즘 아카데미에서 `고품격 글쓰기와 사진 찍기'를 강의하고 있다. 1992년부터 기자로 살았으니 `기자의 글쓰기'를 오랜 시간 숙련해 온 사람이다.  `글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가', 그 노하우를 독자가 얻을 수 있다면 이 `부적절한 로맨스'는 성공이다.  


그간 틈틈이 많은 글쓰기 책을 읽어왔다.  지난 10년간 내 글쓰기는 꾸준한 연습과 이론적인 학습에 밑바탕을 뒀다. 강의를 들어본적은 없어도 다양한 저자들의 글쓰기 책을 읽으며 내 글쓰기를 되돌아 봤다.  나름의 노하우가 담긴 글쓰기 책은 도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반이다.  도덕교육이 한 사람을 완벽한 도덕적 인간으로 만들지 않듯이, 글쓰기의 정도가 담긴 책들도 모든 독자를 완벽한 글쟁이로 변신시키지 못한다. 이런 `갭'은 왜 발생할까.  오래된 습관을 뜯어고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 문장을 짧게 쓰면 한국어의 리듬감이 살고, 주어 술어의 호응이 안 맞는 문법적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문장을 짧게 쓰는 게 몸에 익지 않으면 문장은 길어지기 마련이다. 


길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게 되는 역설,  글쓰기의 함정이다.   <기자의 글쓰기>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몇가지 글쓰기 원칙'들을 제시한다.  글쓰기에 관한 서론이 아니라 본론으로 직행해, 좋은 글의 요건을 보여준다. 요즘엔 인공지능이 기사를 쓰는 시대라고 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가 있다.  기자들의 글쓰기에는 분명한 원칙이 존재해서다.  언론사에 취업했다고 좋은 기자가 되는게 아니다. 그들은 나름 도제식 교육을 선,후배 사이에 시행한다.  기사문에 평균치의 품격을 갖게 하는 힘은 거기서 나온다.  저자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나열한 기자의 글쓰기 원칙들을 살펴보자. 


"쉬움" "짧음" "팩트(fact)"다.  무슨 소린가.  이 세가지 원칙이 책의 고갱이다.  먼저 "쉬움"이다.  글쓰기에 서툴수록 글을 어렵게 쓴다. 글이라고 하면 현학은 기본이요, 수사는 필수고, 목표는 작가다.  글은 유식하게 써야 제맛이라고 착각한다.  하여, 글에 거추장스러운 부사나 형용사 등의 수식어가 잔뜩 들어간다.  음식에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요리를 버린다.  얼굴을 많이 뜯어고친 성형미인들은 티가 난다.  모두 쉽게 질리고 외면 받는다.  고수들은 쉽게 쓴다. 


"나 글 좀 씁네 하는 순간에 글에 현학이 들어가고 글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스스로 읽으면서 나는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쓸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당신을 보고 고수들은 웃는다.  너 조금만 있어봐.  선생이라면 혼을 내고 친한 독자라면 비웃고 조금 통이 큰 사람이라면 기다려준다.  좋은 글은 자연스럽게 쉬운 글로 모인다."   127쪽,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둘째, "짦음"이다.  글을 못쓰는 사람일수록 문장이 길어진다.  글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쓴 글을 보라.  문장이 길다.  `단문(短文)으로 글을 쓰면 주어, 술어 호응이 잘 맞는다.  문법적으로 완벽할 뿐더러 읽을 때 어색하지 않다.  단문은 글 읽는 호흡을 빠르게 하며 리드미컬하게 읽히게 한다.  쉽게, 짧게라는 이 원칙,  쉽다.  하지만, 몸에 익혀두지 않으면 글은 어려워지고 길어진다.  아무리 고치려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인 악습이다. 


셋째, 팩트(fact)다. "주장은 팩트, 사실로 포장해야 한다"   사실, 이 책을 칭찬하게 만드는 원칙이다.  수많은 글쓰기 교재들이 나와 있지만, 팩트를 이렇게 강조하는 책은 처음이다.  <기자의 글쓰기>에선 팩트란 말이 100번은 반복된다.  `쉬움'과 `짦음'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의 기술임에 비해, 이 `팩트'는 연마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글쓰기의 고수가 되는 마지막 경지가 여기다. 글을 `팩트'에 기반해 쓰느냐, 아니면 형이상학적인 주장과 논술과 단어들로 채우느냐.  하지만, 글에 팩트를 채워넣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글쓰기 10년 공부는 다 허사며, 하산은 멀고 먼 일이다.  


"`팩트는 신성하다'는 말이 있다. 기자 세계에서 통하는 격언이다. 글은 팩트를 담아야 한다. 주장이 아니라 팩트다. (중략..) 자기가 생각하거나 느낀 것만 가지고 쓴다면 그 글은 힘이 없다. `굉장히 아름답다'라고 쓰지 말고 굉장히 아름다운 이유를 써야 한다. `난리 났다!'라고 호들갑을 떨지 말고 무슨 난리가 났는지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47쪽


저자가 소개하는 부수적인 글쓰기 노하우도 쓸만하다.  첫째, 좋은 글은 구성이 있어야 한다.  무슨 말?  기승전결에 기반해 글을 쓰라는 얘기다. 서론,본론,결론 3단계로 글을 쓰면 글이 밋밋해 진다.  기승전결에서 중요한 부분은 `전'에 있다.  주제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마지막 `결'로 돌아와 주제를 제시한다.  `전혀 엉뚱해 보이면서도 연관된 장면'으로 한번 돌려주는 단계가 전(轉)이다.  `독자들은 엉뚱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숨을 고르게 되고, 결론으로 치닫는 글의 마지막을 예상하게 된다'(186쪽).  지금껏 전 단계를 염두해 두고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 변주를 알아두면 글이 풍성해질 듯하다. 


둘째, 글의 힘은 첫문장과 끝문장에서 나온다.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 첫 문장을 쓰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사이에서 크게 갈등했다 한다.  첫문장 조사 하나 때문에 고수들은 고민한다.  오직 초보들만 첫문장을 대충 시작한다. 저자는 첫문장과 끝문장을 떡밥과 미끼에 비유한다.  떡밥은 물고기를 모이게 한다.  미끼는 모인 물고기 떼 가운데 한 마리를 낚게 한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가 뭔가.  내 주장에 대한 동의와 공감이다.  그 목적의 실현 가능성은 첫문장과 끝문장에 달려 있다.  대충 시작할 수 있겠는가.


셋째, 좋은 글은 입말로 쓴다.  이 원칙도 신선하다.  보통 사람들은 글을 쓸 때 말과 글은 다르다 생각한다.  말은 그냥 가볍게 해도 되고, 글은 왠지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글과 말은 다르지 않다.  "제일 좋은 글은 술자리 혹은 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쑥덕대는 바로 그 형식 그대로 쓴 글이다."(50쪽)  친구들과 이야기 할 때, 구체적이며 쉽고 짧은 문장을 구사하게 된다. 좋은 말하기는 좋은 글쓰기와 상통한다. 팩트와 입말로 글쓰기, <기자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글쓰기 원칙이다. 


" 칼럼은 팩트를 통해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가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팩트로 구성을 하고 자기가 맞다 틀렸다 얘기는 빼도록 하자.  잘 쓴 칼럼들은 다 그렇다.  이 사람 착하다, 이 사람 나쁘다, 라는 얘기를 되도록 숨겨야 객관적인 글이 될 수 있다."  245쪽


여기까지다.  인정하자.  저자는 `듣보잡'이 아니라 기자 세계의 글쓰기를 독자에게 성심성의껏 전수해 준 고수였다.  글쓰기 책을 참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낯설다.  분명 내가 그동안 익히 알고 있는 글쓰기 원칙들이었으나 착각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 글쓰기가 미궁에 빠진 이유를 목격했다.  그동안 글쓰기라면 무턱대로 내 방식대로 쓰면 족하다고 믿었다.  앞서 말했지만, 그 방식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지름길 놔두고 돌아가는 격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길을 가다 노동하는 촌부에게까지 배움을 구했다.  잘못된 방식을 고치지 않는 관성이 걱정거리라고 고백했다.  <기자의 글쓰기>는 내 글쓰기가 잘못된 지점을 콕콕 찔러 댔다.  


글을 잘 쓰고 싶은가.  이 책에서 제시한 기본적인 원칙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팩트'에 치중하자는 말, 백퍼센트 공감한다. 기자들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고, 맞춤법에 충실하다.  글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글쓰는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조지 오웰, 김훈, 장강명, 김소진, 모두 기자 출신 소설가다.  그들은 기자에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일생 글을 읽고, 써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자의 글쓰기>에서 저자는 자신의 오랜 노하우를 가감없이 선보인다.  이제 고집을 버릴 때다.  글쓰기, 무턱대로 연습한다고 잘할 수 있는게 아니다.  오래 쓴다고 더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먼저, 글쓰기의 정도를 익히는게 먼저다.  잘못된 방식을 탈피하지 않으면 우리 글쓰기는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당신 글쓰기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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