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삶 - 책으로 세상을 건너는 법
한기호 지음 / 어른의시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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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 사이트를 클릭했다 놀랐다.  나라가 사드 문제, 관료들의 부정부패로 어지러운 판국에 아침부터 올라온 헤드라인 뉴스란게 "포켓몬 go, 한국 상륙, 속초로 포켓몬 잡으러 떠나자" 였다.  편집자가 한심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품격있는' 신문사가 평일 아침부터 미국에서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증강현실 게임을 홍보대사라도 된듯 띄우고 있어서였다.  증강현실 게임이란 현실의 이미지나 동영상에 3차원 가상이미지를 덧씌워 현실과 가상을 섞는 방식의 게임기술을 말한다.  현실인지 게임인지 그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가상체험의 몰입도를 높인다.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오지도 못한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속초로 떠나는 사람들로 버스표가 동나는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고작 게임 하나를 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그들의 발을 이끄는 힘의 정체는 뭘까?


지난 3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 이세돌의 가상 바둑대결이 있었다.  글로벌 기업 구글이 키워낸 최고의 인공지능 컴퓨터와 프로기사 이세돌의 격돌이 벌어진 다섯번의 경기 결과는 놀라웠다. 이세돌은 가볍게 인공지능을 제압하겠다고 호언했지만, 결과는 겨우 1승을 뽑아내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세돌은 다섯 번의 경기 가운데 단 한 번밖에 이기지 못했으나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가 내리 세번을 지고 이긴 네번째 경기에서 놓은 돌을 언론들은 호들갑스럽게 `신의 한수'라고 치켜 세웠다.  하지만, 컴퓨터가 접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창조적인 바둑의 영토마저 인공지능에게 내주고 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인간의 천재성은 이 `괴물 인공지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일자리와 사람들의 혼까지 빼앗는 일이 매일 뉴스거리다. 미래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다.  하지만, 0.1%의 천재도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는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음을 알파고는 경고 한다.  출판 평론가 한기호의 책,  <인공지능 시대의 삶>(어른의 시간, 2016년)은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 미래 세대의 생존술'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알파고' 이후 많은 분석 기사들이 쏟아졌지만, 한 권의 책이 보여줄 수 있는 탄탄한 통찰에는 미치지 못했다.


저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독서운동가다.  그는 출판평론분야에서 30년 내공을 쌓았다.  책 마케팅, 기획, 출판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고, <학교도서관 저널>, <기획회의> 등 그 기여도와 무게감이 남다른 잡지를 오랜 시간 펴내고 있다.  또, 그는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는 열정적인 블로거다.  매년 그는 책읽기와 글쓰기, 독서교육을 주제로 책을 펴내고도 있다.  물론 이 글들은 블로그에 올린 컨텐츠를 기본으로 삼는다.  이번에 펴낸 <인공지능 시대의 삶>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이후, 창조적 분야에서까지 인간의 능력을 잠식하는 컴퓨터에 맞서, 그 대안을 제시해보겠다는 지식인의 마음가짐이 엿보이는 책이다. 


" 이제는 대학 졸업장이나 석,박사학위보다도 어떤 역량을 실제로 갖췄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한 번의 직업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정보에 대한 접근능력이 아무런 경쟁력이 되지 않는 시대에는 정보를 끄집어내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이런 능력 또한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중요한 부분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망각하는 능력,  즉 콘셉트를 뽑아내는 훈련을 제대로 한 사람만이 갖출 수 있다. "  7쪽, <인공지능 시대의 삶>, 한기호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란 것이 특별하지 않다.  그간 펴낸 책들에서 꾸준하게 주장했던 내용이다.  2014년에 출간된 <마흔, 이후 인생길>에서 그는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 교육시스템을 문제삼았다.  세상이 원하는 인재의 가치 기준이 `엑스퍼트' 가 아닌 `프로페셔널'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한국 교육이 학벌과 스펙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을 양산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비판했다. 저자가 프로페셔널의 조건으로 내건 인재의 가치는 `지식을 편집하고 통찰하며 거기서 중요한 컨셉을 끌어내는 힘'이었다.  그런 능력은 평소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며, 그 가운데 중요한 정보를 재편집하는 꾸준한 글쓰기를 연습해 도달할 수 있다.  


저자는 단 200권의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수 있음을 강조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그 분야의 책 100권만 섭렵하면 된다고 호언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의 엘리트 교육 과정이란게 최고 스펙의 대학 졸업생을 양산해 내지만, 결국 그들도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고 들어간 직장에서 정년조차 채우지 못하고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과 경쟁해서 1등이 되는 법, 루저가 되지 않는 길만을 연마했지만,  인생이 지닌 가치, 생명에 담긴 위대함을 배우진 못한다.  한국이 OECD 국가중 자살률 최고,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인 이유다.   우리가 진정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건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자존감을 학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 현실적으로 인간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읽기'가 거의 유일합니다.  책을 함께 읽다보면 나와 남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생각의 차이가 바로 상상력입니다.  그 상상력이 이 세상을 이겨낼 `역량'입니다.  이 역량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낼 힘을 가져다줍니다.  책을 읽어 역량을 갖춘 사람은 미래에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  259쪽


분명해 졌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이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20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백수가 됐다. 공무원 시험에 수차례 떨어졌다.  비정규직을 수년간 전전했다.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내가 섭렵한 직업은 다양하고 초라하다.  대학졸업장은 거추장스럽기까지 했다.  그 시절을 버티게 해준 것은 `책'이었다.  20대, 이후 내게 책은 취미 생활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과 고통에 마주선 이가 답을 찾아내기 위해 벌이는 오랜 투쟁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잘 읽었는지, 잘 썼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책을 읽는 시간, 글을 쓰는 시간동안 나는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칸트, 카뮈, 사르트르를 읽는 동안 나는 그들만큼 삶을 이해하고 있었다.  책은 자존감을 선물했다. 


`포켓몬 go'가 인간에게 살아갈 이유와 존재해야 할 근거를 주는 게 아니다. 게임은 그저 시간을 죽이고, 인생을 도락으로 이끄는 수단일 뿐이다.  저자 한기호의 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낼 힘"을 길러내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 직업을 잡아삼키는게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돈을 잘 벌고, 잘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잘못된 외교, 남북관계가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핵전쟁의 위기 가운데, 개인의 영달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투표일에는 투표장에 가야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려는 정치세력에 표를 던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잠식하는 미래가 중요한게 아니다.  몇 해 전, 천재들의 집합소인 카이스트 학생들과 교수들의 연이은 자살 사건이 있었다.


미래가 보장된 천재적인 젊은이들은 왜 자살했을까.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청년들의 실업, 취업 문제는 최악이다.  학창시절,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법만 공부하고 터득한 이들에게 경쟁에서의 패배는 치욕이자 의미의 상실을 가져온다. 그들은 치열한 두뇌경쟁에서 이긴 천재일망정, `국졸 학력'의 장삼이사 만큼도 인생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과 자존감이 경제 문제에 달려 있진 않다.  5천년 역사를 통틀어 우린 생활의 질이 가장 높은 시대에 태어났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경제적 경쟁관념에서만 보면, 우린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다.  이 삶을 이해하고 통찰하는 상상력과 관점이 중요하다.  그 관점을 기르고 배우는 통로가 바로 책읽기와 글쓰기다.  인생을 살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 시절을 견디고 그 과정에서 인생을 알아가는 능력은 `알파고의 초능력'과는 하등 관계 없다.


그래서, 우린 읽기와 쓰기를 우리 생활로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지금까지는 글을 쓰지 않고도 잘 살았지만 앞으로는 누구나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일을 소프트웨어가 하는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상상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30년 내공의 출판전문가는 블로그에 글을 쓰라고 추천 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거나 영화를 보고 영화평을 쓰거나 어느 것이나 좋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순간, 우리는 자기 생각을 가진 인격으로서 격상 된다.  평생 자기 생각을 갖지 않는 사람이 바로 노예다.  고분고분하고 시키는 일 잘하는 능력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따라잡을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공포와 불안을 안겨주는 것은 인공지능의 놀라운 능력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무지(無知)다.  공자가 말한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의 경지(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다.  삶의 비밀을 아는 자에게 인생은 두렵지 않다.  오직 책을 가까이하고 생각을 멈추지 않으며, 글을 써야 한다.   포켓몬go게임에 홀려 속초행 버스에 오를때가 아니다.  그 열정으로 지금 서점으로 달려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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