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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작가로서 갈고 다듬어질 뿐이다. 하지만 갈고 닦는다고 해서 좋은 작가가 되진 못한다. 일생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인가. 양심처럼 삶이란 대명제 아래 쉽게 내팽개쳐지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양심과 타협한다. 왜냐면,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삶의 경로를 바꿀 결단과 행동을 불러와야만 하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양심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 때문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위선자에 머문다.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조지 오웰은 정확히 그 반대로 살았던 사람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제국주의 시대에 인도에서 태어나, 훗날 `제국 경찰'이 된 그가 생계가 보장된 식민지 경찰직을 포기하고 자발적인 부랑자가 된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의 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가 제국경찰에 사표를 쓴 것은 압제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작가를 꿈꾸어서였다. 평생 그는 작가로서 세상 모든 피압제자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 편에 서서 글을 썼고, `민주적 사회주의'로 표상되는 이념을 드러내는 정치적 글쓰기에 매진한다.
마흔 여섯 길지 않은 인생 속에서 많은 작품을 남기진 못했지만, 그가 오늘날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왜일까. 생동하는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해준 작가가 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은 사회와 정치 비판적인 소설인 <동물농장>과 <1984>와 같은 작품으로 이름을 남겼지만 사실 그는 현실과 뗄 수 없는 기록문학인 `르포르타주'에 능통한 작가였다. 오늘날 그가 써낸 르포르타주는 심지어 역사가들이 참고하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정도로 뛰어난 기록문학의 대명사로 평가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1936년 1월 좌파 출판사인 `레프트북클럽'의 청탁으로 잉글랜드 북부 탄광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노동을 취재 고발한 르포물인 <위건부두로 가는 길>(1937)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청탁한 좌파출판사의 의도를 조금 엇나가고 만다. 당대 좌파인 사회주의자들의 입맛에 맞는 원고를 기대했던 출판사의 의도와 다르게 오웰은 책의 2부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이란 주제를 내걸고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민중들과 융합하지 못하는 현실, 민중들이 사회주의가 아닌 파시즘과 공산주의로 전도되는 이유를 사회주의 내부의 적들 때문이라고 규정짓는다. 그것과 더불어, 제 1부에서 다루고 있는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밑바닥 생활'에서 그가 묘사한 193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 광부들의 생활상은 오늘날 독자들에게 입체감과 질감있는 충격으로 다가오기에 적합하다. 이미, 제국경찰에 사표를 내고 자발적인 부랑자 생활을 겪었고 그 기억을 토대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써낸적이 있는 그였다.
흔히 `막장'으로 불리는 지하 수백미터의 노동 현장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아무런 보호구도 갖추지 못한 채, 채탄 먼지와 지하의 비좁은 협로에서 하루 8시간의 노동을 하고, 비계 바른 빵 한 덩이와 차가운 차 한 병을 점심으로 떼우며 광부들은 일한다. 그러나, 8시간 노동이 다가 아니다. 탄층이 자리잡은 곳까지 출근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왕복 수킬로미터의 지하공간까지 탁한 공기를 마시며 비좁은 갱도를 따라, 굽은 자세로 때론 무릎으로 기며 출근하는 시간은 8시간 노동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웰은 오늘날 석유의 가치를 지녔을 당대, 석탄을 캐내기 위해, 광부들이 얼마나 빈약한 급여를 받고 이 지옥같은 노동을 견디어 내어야 하는지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고상한 세계를 떠바치고 있는 지상 위의 모든 인간들은 저 지하 노동자의 노고에 빚지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당신도 나도 `타임스 문예 부록'의 편집인도, 동성애자 시인도 캔터베리 대주교도 아무개 동지도, `유아를 위한 맑시즘'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눈까지 시커메지고 목구멍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 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말이다" 50쪽, <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오웰이 묘사하고 있는 1930년대 영국은 실업이 만연하고, 하층 노동자들의 굶주림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영국 노동 계층의 전경을 보면 유럽 사회가 2차 세계 대전으로 가는 전운이 감도는 정황들을 포착하게 된다. 영국은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서도 최상위 계급을 제외한 부르주아 지식층, 사무 노동자, 육체 노동자 계급이 모두 형편없는 노동 소득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사회,경제적 취약성은 혁명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오웰이 지극히 혐오했던 사악한 전체주의인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빠져들게 했다. 더군다나, 고통받고 있는 대중은 영국의 고질적인 계급 차별적 시선으로 서로를 혐오하는 상황이었다. 최상위 계층을 제외한 모두가 빈곤한 노동계층이었지만, 광부와 같은 최하위 노동계층을 제외한 이들은 자신들이 영국의 전통적인 중산층이란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체제에 약탈당하고 시달리면서도' 노동 계급은 서로를 불신했고, 한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위기가 닥치면 거의 모두가 압제자의 편에 선다고 오웰은 비판하고 있다. 또, 오웰은 당대 사회주의 운동이 실패하고 있는 원인을 분석 한다.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영국의 노동자들에게 `프롤레타리아'라는 다소 신화적인 인물을 강요하는데, 영국적인 계급의식에 물든 대부분의 고급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득이 얼마나 됐든지 간에, 자신을 `기름때 절은 블루칼라'로 여기길 꺼려한다. 오웰은 차라리 자본가나 프롤레타리아란 말은 덜 쓰고 `약탈자나 피약탈자'란 말을 더 쓰면서 노동 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자신이 사무 노동자든, 육체 노동자든, 소수 자본가의 약탈을 받는 피압제자란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광부나 부두 노동자보다 실제로 더 열악한 수많은 사무원과 점원 중에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에게 프롤레타리아란 칼라 없는 옷을 입는 사람이다. 때문에 `계급투쟁' 운운하며 그들을 감동시켜보려다 질겁하게 만들어버리기만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앞으로 큰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들은 착취자와 피착취자를 가르는 선이 정확히 어디부터인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본질을 고수하는 게 중요한데, 여기서 핵심은 수입이 적고 불안정한 모든 사람은 한 배를 탄 이들이며 한편이 되어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304-305쪽
오웰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급 상류 중산층'에 속했던 사람이다. 더군다나 영국 최고의 명문 사립인 이튼 출신이었다. 대부분의 지식인과 고급 노동자들이 전통적인 계급의식에 포위돼, 하층 노동자와 거리를 두려 했던 영국 사회에서 오웰은 어떻게 모든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작가로 살겠다고 결심했던 걸까. 그 이유를 이 책 2부의 자전적인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1927년 오웰은 휴가를 받아 본국으로 돌아온 직후, 제국 경찰직에 사표를 쓸 것을 결심해 버린다. 제국 경찰로서 5년간 일하면서, 그는 압제의 일원으로 악행을 저질렀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번민 끝에, 그는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그르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가 영국 노동계급에게로 마음이 향한 것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노동자의 처지가 식민지인들의 처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오웰은 작가가 되어 일생 피압제자인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고, 지배층의 착취와 악행을 고발하며,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색이 분명한 글을 쓰기 위해서, 부랑자가 돼 그들과 어울렸고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향해 국경을 넘었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쓰기 위해서, 수개월간 탄광노동자의 집에 하숙하며 지하 수백미터의 탄광지대에 몸을 던져 취재활동을 벌였다.
조지 오웰은 모름지기 작가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첫째는 필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모두가 열쇠수리공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 가운데 남의 집 문을 따는 도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양심, 소위 개념이라고 이름붙여질 수 있는 작가적 관점이 중요한 이유가 그런게 아닐까. 세상의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 지식인의 우월성이 아니라 낮고 소외받는 자의 곁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용기와 소신은 어쩌면 한갓 기술에 지나지 않는 필력보다 더 작가에게 더 필요한게 아닐까. 오늘날 한국 소설과 한국의 작가들이 맥을 추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수많은 필력있는 작가들이 조지 오웰과 같이 낮은 곳에서 낮은 이들의 삶에 동화돼, 그들의 삶을 담아내는 르포르타주를 써 봤다는 이야길 들어보지 못했다. 치열한 글쓰기는 치열한 삶 안에서 발휘될 수 있는 것이고, 그 소재 또한 핍박받는 사람들 안에서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은 작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이 오늘의 독자들이 여전히 그를 읽는 이유 아니겠는가.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자신의 글이 장식적인 기교나 허튼소리에 매몰돼 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 되었을 때'라고 일갈한다. 조지 오웰은 일생 책상 틈바구니에서 공상적인 상상력으로만 글을 쓴 사람이 아니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 이념성을 보여주는 오웰의 정치적 목적성이 지극한 르포르타주다. 그는 이 작품속에서, 당대 노동자들의 전망없는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지식인과 모든 노동자가 분열하고 증오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세상의 험지와 음지에서 정치,사회적 식견을 갖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자로서, 오웰은 모든 피압자제의 편에 서기를 주저치 않았던 진정한 작가정신의 소유자였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글쟁이의 자부심을 지켜준 작가로서 우린 오래도록 조지 오웰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