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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평점 :
내가 좋아하는 서민 교수가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자칭 `글쓰기 지옥훈련 10년'을 채우고 하산한 그가 나름 터득한 `글쓰기 무공'을 담아낸 책이다. 칼럼을 즐겨 읽었던 독자이자 그가 어떻게 글쓰기 수련을 해 왔는지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갑다. 나는 서민의 글쓰기 스타일을 좋아한다. 의사, 교수, 예능인, 칼럼리스트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능력자지만 언제나 솔직하고 겸손한 그의 태도는 마음에 든다. 저런 정도의 스펙을 가진 유명인이면 우리 사회에서 목에 힘깨나 들어가기 마련인데, 서민은 그렇지 않다. 그는 이름처럼 친근한 `서민'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지나치게 솔직한게 흠일 정도로 그간 인터뷰나 책을 통해, 자신의 컴플렉스와 인생사를 소소히 드러내논 바 있다.
그렇다고 그가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서울대 의대 출신에다, 대학교수로서 학생들도 열심히 가르치고 외국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될 정도로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성실함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대학교수다. 대학 교수중에서 서민처럼 예능에 나와 사람들을 웃기며,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이웃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며, 당대 권력의 치부를 돌려까는 특유의 칼럼을 쓰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서민은 `알라딘 서재'에서 유명한 서평가 `로쟈'를 앞지르고 서재 리스트 1위에 오른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자신의 글쓰기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는 교수도 없다. 교수는 그냥 있어도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사기 마련인데 말이다.
서민은 왜 그렇게 글쓰기에 집착하게 됐는가. 특유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그의 책 <서민적 글쓰기>(생각정원,2016년)에는 그가 글쓰기에 집착하게 된 인생사가 드러나 있다. `안 생겼다'는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는 자신의 컴플렉스를 공부와 유머로 극복하고자 했고, 이런 인생사의 전략은 잘 들어맞았다. 의대에 들어가서는 자신보다 더 `안 생긴' 의대생들을 만나고서 동병상련의 공감을 느꼈다고 회상하는 부분에선 역시 서민다운 유머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서민이 글쓰기에 빠져들게 된 것이 외모 때문이라고 하는 고백은 지나친 비약 같다. 그는 본래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지식인과 교양인으로서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런 욕망인 것이다.
서민 교수는 우리 나라 출판물 가운데 교수집단이 써 낸 대중교양물이 지나치게 빈약한 것은 교수들이 글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맞는 말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인 장하준이 써낸 경제학 서적들을 보라. 그가 써낸 책들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가 뭔가. 장하준의 글은 쉽고 재미있다. 그간 독자들은 경제학에 이런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지 장하준의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한국의 경제학 교수들이 장하준보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다. 장하준 만큼 글을 잘 쓰지 못할 뿐이다. 글쓰기가 한 사람의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글쓰기는 전문가의 필수적 재능이며, 능력이어야 한다.
서민은 대학 시절 이후, 일간지 칼럼리스트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고 기회가 되면 소설, 수필집, 유머 등 가리지 않고 책을 펴냈다. 물론 그 중 제대로 성공한게 별로 없다고 그는 말한다. 서른 이후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독서를 하기 시작했고 그 10년동안 물불 안가리고 글을 써내며, 글쓰기를 수련했단다. 그 결과, 그는 유명 일간지 두 군데에 칼럼을 연재할 기회를 얻었고 쓸만한 대중전문서를 집필했으며, 알라딘 서재 1위를 탈환하는 글쟁이로 성장했다. 그리고, 특유의 유머와 비유적 감각을 글쓰기에 녹여내며 `서민적 글쓰기'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10년간 노력해서 글을 잘 썼다는 것 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글을 잘 쓰는 다양한 노하우가 집약 돼 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며,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한번만 읽어보면 이해될 만큼 평범한 노하우다. 이 책이 글쓰기 책으로서 독자에게 하나의 가르침을 줄 수 있다면 바로 `스타일의 개발'이란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서민의 글쓰기는 분명히 매력이 넘친다. 유머가 있고, `모자란 권력자와 한심한 정치'를 돌려까는 것은 그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하지만, 누구든 서민처럼 글을 쓰려 하면 안 된다. 그런 방식은 서민의 트레이크 마크로 서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글쓰기를 흉내내는 순간, 그것은 한낱 시시한 아류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한때, 한국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흉내내는 작가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성공한 작가 누구였는가.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 우리나라는 글쓰기를 장려하기보다 더 멀어지게 만드는 교육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글쓰기에 관한 모든 책이 독서를 필수조건으로 꼽지만,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책을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아니 읽지 않을수록 더 유리해지는 시스템이니 말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곱 살 때부터 서른까지 책이라곤 교과서만 읽었던 내가 대학입시의 수혜자가 된 게 그 증거다." 48쪽
서민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글을 잘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그는 글쓰기에서 지독한 노력파였다. 교수로서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를 마다하고 그는 지옥의 글쓰기를 수련하기 위해, 모진 고통과 인내와 실패를 감수하며 10년간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냈다. 더군다나 그는 직업인이자 생활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남는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공을 쌓아갔다. 그는 일간지에 칼럼을 쓰며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유머와 끼가 넘치는 칼럼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서민적 스타일'이란 글쓰기 풍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오직 서민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보적 글쓰기다. 하여, 나는 그의 글쓰기가 전혀 부럽지 않다.
내겐 나의 글쓰기 스타일이 있고, 나는 그것을 찾고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또한 10년간 서평을 써오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간 발견한 글쓰기의 노하우는 `꾸준함', 즉 `우보천리'였다. 소걸음만큼 나아가는 것, 어제보다 단 한 발자국만 나아가도 만족하는 것, 그게 나의 글쓰기 수련 방법이었다. 직장인으로서, 또 생활인으로서, 나는 최선을 다해 틈틈이 책을 읽고 한달, 한해도 거르지 않고 평균치의 책을 읽고 글을 쓰려 노력했다. 아직 난 서민처럼 `글쓰기 지옥훈련'을 끝마치고 하산할 단계는 아니다. 충분히 수련됐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간 꾸준하게 글쓰기를 연마하면서 느낀 것은 글쓰기는 배울 수 있는게 아니란 점이다.
글쓰기가 나아지려면 글을 직접 써보아야 한다. 독서와 글쓰기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그것이다. 독서가 TV나 스마트폰 사용보다 능동적이긴 하지만, 글쓰기와 비교해선 지극히 수동적인 일이다. 책만 읽고 글을 써보지 않는다면 글쓰기는 절대로 늘지 않는다. 피아노를 잘 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늘부터 피아노를 연습하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고 시작이 끝의 서막이다. 글쓰기는 글을 쓰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찾고 그것을 연마하고 발전시킨다면 우리는 자신만의 색이 분명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는 것"을 소망했다. `서민적 글쓰기'가 가닿고 있는 지점이 그와 같다.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남을 흉내내려 하지 말고 자기의 글을 쓰자. 글쓰기, 배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