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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 덕분이다. 알고 보니 이 산문집의 제목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제목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이후, 5년간 책은 내 서재에 잠들어 있었다. 스물 아홉 편의 산문이 이 책에 담겨 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책을 사고 나서, 정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떤 소설의 리뷰를 쓰는데 참고하느라 `나는 왜 쓰는가'라는 대표 산문을 읽었을 뿐이다. 놀랍게도, 그 산문은 해가 갈수록 내 글쓰기가 달려나가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을 해명하고 지지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왜 나는 점점 정치적인 글쓰기에 치중하는가'였다.
조지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쓰기의 동기를 크게 네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이다. 작가들은 허영심이 많고 남보다 더 똑똑해 보이고 싶어하는 자기중심적 성향이 크다. 이런 경향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최상층의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특성이다.
둘째, 미학적 열정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또한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관심이다. 셋째, 역사적 충동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하려는 욕구에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지향하며 왜 분투해야 하는지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에서 기원하는 글쓰기다. 그러면서 오웰은 이 에세이를 의미심장하게 마무리한다.
자신이 일평생 글을 쓰며 돌아보니 이 네가지 동기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그 중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가 가장 따를만한 동기란 점은 분명하다고 선을 긋는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작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조지오웰이 글쓰기의 동기로 꺼낸 네가지는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써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생각이다. 순전한 이기심에서 미학과 역사를 거쳐,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로 이어지는 글쓰기의 욕망은 자연스럽다. 성장하며 생각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내면에서 밖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런 과정은 뛰기전에 걸어야하고, 걷기 전에 기어야만 하는 인간육체의 발육단계를 연상케 한다. 조지 오웰의 대표산문 스물 아홉 편을 읽으며 이 작가의 소설을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음에 새삼 놀랐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렇게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을까.
그의 산문들은 생의 주기마다 작가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좋은 산문은 유리창 같아야 한다는 말로 글이란 것이 개인적인 관심에서 사회적인 공감의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작가로서 활동한 시기는 인류사의 가장 불행한 역사인 1,2차 세계대전과 겹친다. 초등학교 시절 1차 대전을 겪었고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던 40대 시절엔 2차 대전의 포화가 세계를 뒤덮었다.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였다. 그의 아버지는 식민지 인도의 아편국 관리였다. 그는 첫돌이 되기전에 영국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을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보낸다. 사립학교에 가기 전 수료해야 했던 예비학교가 바로 그곳이었다. 작가는 <정말 정말 좋았지>라는 산문을 통해 그 시절을 회고한다. 이 에세이는 부모와 떨어진 기숙학교가 가진 폐해를 돌아보고 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교장 부부의 전횡 속에서 오웰은 매질과 질낮은 의식주의 고통을 이겨내야했던, 그 시절 지배와 감금이 일상화된 기숙학교의 폐단을 고발한다.
훗날 명문 사립학교 이튼을 졸업한 그는 졸업생 대부분 대학진학을 하는 것과 다르게 대영제국 식민지 버마에 경찰로 지원한다. 이 시절에 쓴 글 가운데 <교수형>은 사형집행에 동행한 자신의 기억을 추스리고 있는 작품이다. 법집행 과정에서 무감각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료들에 대한 회의와 제국주의의 하수인인 식민지 경찰직에 혐오를 느낀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라고 표현한 그는 결국 훗날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임하고,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 계급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이 고행의 시기 그는 노숙자와 다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작가로서 습작기를 보낸다.
"그들 사이엔 대화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우선 배가 고프기 때문에 영혼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너무 거창한 주제다. 다음 끼니가 확실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건 다음 끼니뿐이다." 14쪽
오웰은 인생사의 다양한 경험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았다. 오웰 산문의 보고는 언제나 현장이었다. 1936년 레프트 북클럽이란 한 진보단체는 그에게 잉글랜드 북부의 탄광촌을 취재해 책 한 권을 써줄 것을 요청한다. 탄광 노동자의 삶과 생활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그는 <위건부두로 가는길>이란 르포르타주를 써냈다. 스페인이 프랑코 정권의 파시즘으로 기울자 공화파 민병대의 일원이 돼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탈로니아 찬가>(1938)라는 책을 남기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소설 대표작 <동물농장>과 <1984> 같은 작품들은 47년 인생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작품일 뿐이다. 그는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로서 궁핍하게 일생을 살아왔고 산문을 쓰며 작가로서 기반을 단단히 했다. 그의 글쓰기의 근본은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었다.
조지 오웰 산문의 특성은 유려하지 않지만 표현이 정제되고 단어 쓰임이 정확하며, 전달방식이 간결하다는 점이다. 기자 생활을 거치며 많은 기사문을 쓴 경험에서 드러나는 글쓰기 특징일 것이다. 그의 산문들은 소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 부를만 하지 않다. 주제가 무겁고 조밀하며 분석적이며 하고 싶은 말을 독창적인 개성안에 담아내곤 한다. 그는 일평생 접시닦이, 서점 점원, 서평가, 기자, 노숙인, 군인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글쓰기를 갈고 닦았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정치철학과 인생관에 따라 생활이 보장된 식민지 경찰직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는 이후 유럽의 부랑자 대열에 합류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297쪽
조지 오웰 스물 아홉 편 산문들을 섭렵하며 산문의 매력에 빠졌다. 그같이 좋은 산문들을 써보고도 싶었다. 또, 막상 쓴다면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한 작가의 산문들을 연달아 읽으며 얻은 용기일까. 그는 부랑자일 때도 글을 썼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시절에도 <1984>의 문장들을 다듬고 고쳤다. 글을 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원고에서 손을 놓지 않을 정도로, 건강을 손상시키며 문장을 완성해 나갈 정도로 그것은 대단한 일인가. 그 연속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스물 아홉 편 오웰의 산문속에 있었다. 왜 쓰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작가는 어떤 고통과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것인지, 그는 산문으로 답한다.
표제작 <나는 왜 쓰는가>을 읽고 많은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었다. 책은 유독 그 작품에서 지저분해지고 말았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순전한 이기심'으로 밝힌 문단에선, 운좋게도 나는 내가 글을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을거라는 필연적 이유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293쪽
나는 내가 한 개인이라는 자각을 버리고 싶지 않다. 일평생 시키는 일에 충실한 영혼없는 기계로 생을 마칠 순 없다. 나는 재능의 유무와 상관없이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욕망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꾸준한 글쓰기다. 오웰은 정확히 세상에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8살이었던 자신에게 굴욕과 매질을 일삼았던 세인트 시프리언스 예비학교의 교장 부부의 만행을 마흔 넷의 나이에 <정말 정말 좋았지>라는 역설적인 산문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 시절 교장 부부는 빈말로 아이들을 칭찬하거나 상처주기 일쑤였다. 오웰은 그 모든 것들을 겪는 내내 마음속 한가운데 결백하게 남아 있는 내면의 자아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진심은 증오뿐임을 아는 자아였다"(406쪽)
생을 끝마치기 불과 2년 전, 그는 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굳이 들추어내어 산문으르 쓸 생각을 했을까. 그를 작가로 키운 건 바로 세상에 널린 소모품이 아닌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한 개인이라는 자각'이었다. 8살 어린 시절 고통을 응시했던 자아는 일생 세상의 부조리와 공포에 맞서 외부 세계를 고발하는 자아로 변신해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게 했다. 산문 쓰기를 추동하는 힘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변함없는 응시다. 그것을 우리는 작가의 시선이나 양심으로 부른다. 영혼없는 허깨비로 생을 소비할 것인가, 관점이 분명한 글쓰기를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것인가. 조지 오웰의 특별한 산문들에 그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