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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 속도에서 깊이로 이끄는 슬로 리딩의 힘
이토 우지다카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독서에 뜻을 둔 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독서법을 찾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친다. 나름의 독서법을 소개하는 책들을 보거나 실력있는 독서가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다. 독서법에 정답이 있을까. 없다. 그것은 단지 앞에 놓인 산을 어떻게 오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 20세기 알파니스트 라이홀트 메스너는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를 아무런 지원없이 단독으로 등정해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나의 루트를 뚫고나면 그것이 자신만의 길이 되는 것이다.
전후인 1950년대 일본의 중등학교 교사 하시모토 다케시는 신생 사립학교인 나다 중학교에 부임해 50년 동안 국어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학교의 선생님들은 한 과목을 6년간 전교생에게 가르쳐야 했다. 물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도 과목 담당 선생님께 전권이 부여되었다. 하시모토는 공인된 교과서를 버린다. 그리고 얇은 소설책 한 권을 3년간 읽는 수업을 시작한다. 훗날 이 수업은 `기적의 교실'로 일본 NHK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에 소개된다. 하시모토의 슬로리딩 교육법은 이 학교의 졸업생들이 몇 년 후, 일본 최고 명문 도쿄 대학에 최다 합격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일본 문예평론가 이토 우지다카가 지은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21세기북스)에는 `기적의 교실'을 만든 하시모토의 일생과 `은수저 수업'이라 명명된 슬로리딩 독서법, 그리고 제자들의 기억속에 남은 하시모토의 수업에 대한 회상이 담겨 있다. 페이지 중간중간에 삽입된 `천천히 깊게 읽기' 의 장에선 슬로리딩의 가치와 의미를 여러 작가와 `은수저 졸업생들'의 인터뷰로 심도 있게 다시 짚고 있다.
하시모토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몸이 약해서 자주 병원에 드나들었고 한번은 복막염에 걸려 죽을 고비도 넘겼다. 아버지는 신발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었지만 수금날이 되면 말술을 먹고 돈을 날리기 일쑤였다. 어린시절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책상 앞에 앉을 시간,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가 책읽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 덕분이다. 국어시간에 담임은 교과서를 소홀히 하고, 자주 소설책을 읽어주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몸동작과 억양까지 살려 들려주는 문장들은 9살 하시모트를 몰입의 즐거움과 소설책 읽기에 매료되게 했다. 소년은 그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뭔가를 사달라고 졸랐다. 책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집안이 파산했다. 하시모토는 공부를 잘했고 이를 눈여겨 본 중학 담임 선생님 덕분에 입주 가정교사로 취업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도쿄 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해 졸업 후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학시절 그는 평생 공부의 방법론을 익히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연히 일본 한자 연구 1인자의 프로젝트 <대중일사전> 편찬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때를 "먹고 자는 것도 잊고 하루 종일 한자의 바다에서 헤엄쳤다"고 회상한다. 하시모토에게 이 작업은 `대충 아는 정도로 끝내지 않는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궁리한다' 는 자신의 독서 교육철학을 세운 기회였다.
" 이번 신입생부터 교과서를 쓰지 않겠다. 중학교 3년 동안 `은수저' 한 권으로 수업하겠다'. 일부러 버린다. 일부러 파고든다. 일부러 돌아간다. 1950년 4월, 이렇게 해서 마침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의 교실'이 탄생했다." 83쪽,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
하시모토가 교재로 채택한 소설책 <은수저>는 작가 나카 간스케가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짧은 소설이다. 일본의 과거와 잊혀진 문물, 사투리, 고유명사가 담겨 있고, 한 아이의 성장담이 주 내용이었다. 하시모토는 <은수저>를 3년동안 가르치겠다고 선언한 이유를 슬로리딩 철학으로 해설한다. "한가지 가치있고 질 좋은 것을 집중해서 철저하게 흡수하면 그것이 향후 모든 일의 바탕이 된다는 사고"(38쪽)다. 이것은 전후 일본 사회의 주류였던 성장과 속도를 바탕으로 한 교육방식과 역행하며, 한 작품을 깊이 읽고 그곳에서 지식을 확장하는 독서법의 성공 사례로 재탄생한다.
`은수저 수업'의 특징은 책 한 권을 느리게 읽는 것에만 있지 않다. 하시모토는 아이들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멈추고 그것을 머릿속에서만 아니라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하기를 바랐다. 그런 경험을 위해선, 책을 속독해서는 안되고 여유롭게 천천히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읽는 중간 텍스트에서 벗어나 언제든 다른 주제로 뛰어넘는 일도 필요하다. 독서는 이때 능동적인 방향으로 건너뛴다. 한 권의 소설이 천개의 지식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하시모토의 국어 수업 교재는 소설책 한 권이었지만 매시간 선생은 자신이 정성을 쏟아 연구한 인쇄물을 들고 나타났다. 아이들은 하시모토의 인쇄물에 열광했다.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이야기가 매회, 정갈하고 완성도 있게 편집 돼 있었다고 `은수저 아이들'은 회상한다.
어느날 학급 반장이던 학생이 인쇄물을 나눠주던 하시모토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런 속도로 200쪽의 소설을 언제 다 읽습니까?" 하시모토의 수업방식은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의 조바심을 불러오곤 했다. 독해,작문,문법 등을 다양한 교재로 학습하던 여타의 공립학교 학생들에 밀리지나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반장의 항의섞인 질문에 하시모토는 이렇게 답한다.
" 속도가 중요한게 아니다. 설령 빨리 읽어 나간다고 합시다. 여러분에게 뭐가 남을 것 같습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내 수업은 속도를 다투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속독을 가르칠 생각도 없습니다. 그보다 다들 조금이라도 어렵다고 느낀 곳, 흥미로운 곳에서 스스로 옆길로 빠지면 좋겠습니다. 자꾸만 파고들어서 자신의 세계를 깊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갈 생각입니다.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은 곧바로 쓸모 없어집니다.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낀 것에서 마음이 동하여 스스로 깊이 파내려 가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내 수업에서 힌트만 찾으면 됩니다. " 131-132쪽
일생을 책과 벗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게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줄곧 책을 읽었다. 하지만, 어떻게 책을 읽어야겠다는 특별한 철학은 없었다. 시간이 많고 열정이 있었을 때 나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섭렵하기 위해 노력했다. 직장에 들어와서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은 부족했지만 독서를 포기할 순 없었기에 책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턱없이 부족해지자, 매일 조금씩 읽기라는 내 독서법도 변화의 때가 온듯 하다. 하지만, 지금껏 독서에 임하며 한번도 속독과 친해본적이 없다. 책을 빨리 읽는다는 방법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런 재주가 없었기에 나는 문장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뒤로 돌아가 반복해 다시 읽는 방법을 택했다.
정독의 장점은 책을 소화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는 방법, 다시 서평을 쓰는 과정을 통해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인풋이 적으니 아웃풋도 적었으나 나는 꾸준함의 위력을 믿고 그 방식을 줄곧 따랐다. 그것이 내가 지난 십수년간 책과 친해지는 방법이었다. 물론 속독의 장점은 많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 때, 책 한 권을 너무 오래잡고 있으면 남에게 뒤쳐지는건 아닌지 조바심이 일곤 했다. 평생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한정 돼 있기에, 속독을 통해 그 양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전후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하시모토 선생은 그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슬로리딩을 시도한다. 소설책 한 권을 3년간 읽으며 국어교육을 대체하는 것이다. 하시모토에게 6년간 국어교육을 받았던 `은수저 학생'들이 포진한 나다 학교는 훗날 일본 최고 명문대학에 최다 합격생을 배출한다. 슬로리딩과 높은 학업성취도는 상관 관계가 있었을까. 졸업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하시모토 선생의 교수법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하시모토의 슬로 리딩 수업을 통해, 단순한 정보습득이 아닌 깊이 있는 지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방법을 익혔고, 모든 공부의 기본인 국어에 흥미를 느끼자 그것이 학력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시모토의 슬로리딩이 주는 메세지는 `독서란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남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읽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독서성공론이 횡행하고 있다. 모든 것이 경쟁과 효율로 치환되는 세계의 아니러니한 풍경이다. 하지만, 독서는 경쟁의 수단이 아니다. 책을 빨리 많이 읽어야 하는 사람은 특수한 소수에 그친다. 그것은 목적이 특정된 독서법이다. 누구를 위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쉼없이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학교와 사회속에서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때 인간은 창조와 예술의 세계에 젖어들 수 있다. 무목적성이 독서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 밤마다 조금씩 책을 읽는 사람은 그때마다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말고 시공간적으로 동떨어진 또다른 세계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력을 기르고, 다른 사람의 감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효과가 있습니다." 40쪽
조직속의 인간이 그 안에서 일하는 풍경을 보라. 그는 그 시간동안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대면할 시간이 없다. 그는 조직의 부속품으로 시간을 소비한다. 조직속에서 성공하는 인간의 조건은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버리고 조직의 목적과 임무에 충실한 것이다. 그때 그는 조직의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 우린 언제 자신의 내면 깊숙히 자리한 진짜 나와 마주앉게 될까. 독서하는 시간이다. 목적없이 책장을 넘기고, 어느 행간에서 사유의 실마리를 발견할 때 인간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천천히 깊게 읽는' 슬로리딩은 내가 발견한 부담없고 목적없는 책읽기의 전형이다. 아무리 두꺼운 책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끝에 이른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책읽기가 두렵지 않고, 평생 책과 멀어지지 않는다. 우보천리(牛步千里)이며 티클모아 태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