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머니와 산다
한기호 지음 / 어른의시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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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는 빠르게 지나갔다. 5일에다 징검다리 근무을 거쳐 2일을 보태 7일간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휴가 전 A4에다 일정을 적었다. 그 계획을 거의 대부분 실행했다. 영화를 두 편 봤고, 글을 세 편 썼고, 물놀이를 갔고, 아이와 놀아주고, 그리고 양가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어디 먼 곳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빼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못한 일을 원껏 한 것이다. 근무 강도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회사 시스템 탓에 요즘 난 여유가 없다.  회사 집, 다시 집 회사 생활을 한게 몇 개월 째였다. 그 와중에 찾아온 여름휴가는 말그대로 꿀맛이었다.

휴가 때 가장 잘 한 일을 꼽으라면,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이다.  전화를 하고 밥을 먹은게 몇주 만이다. 이,삼일에 한번 꼴로 안부 전화를 하던 내가 몇주간 연락을 끊었다. 남편과 아들 역할을 동시에 잘 해내기란 쉽지 않다. 세상 모든 아들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가족이란 무엇인가. 남과 가족이 다른 건, 소원했던 관계도 회복이 쉽다는 것이다. 엄마와 연락을 끊었던 기간의 침묵과 그 무관심이 내겐 너무 힘들었다. 그 즈음 짧지만 고통스런 시간을 보듬아 준 책이 있었다.  출판평론가 한기호의 <나는 어머니와 산다>(어른의 시간,2015)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2009년 3월 28일 어머니는 내게 오셨다"로 시작된다. 그 시간 이후, 저자는 블로그에 간병일기을 써 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급격히 쇠약해 지셨고,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장남인 저자는 어머니를 모실 각오를 하고 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장남으로서 부모 부양이란 당위로 시작된 어머니와 동거는 그렇게 7년 시간이 흘렀다. 세상 그 누구에게나 평범하지 않을 시간속 상념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호기심, 고통을 담 넘어 지켜보는 안도감,  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쳐올수도 있는 현실이란 불안감이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준다.

7년간의 간병일기는 다른 듯 하면서 비슷하다.  삶은 습관이고 반복이라 하질 않던가. 잇몸이 닳아 음식을 씹을 수 없는 어머니를 위해, 저자는 매일 국을 끓인다.  국 한가지로 자주 싫증을 내시는 어머니를 위해, 국거리 재료를 달리해 국을 끓여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고백은 고통에 대한 공감보다는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휴일에 어머니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일, 드라마를 함께 보고 말 벗이 되어 드리는 일, 아침 출근길마다 깊은 포옹과 입맞춤을 나누는 일,  저자가 담담히 기록하는 어머니와 일상의 풍경이다. 그러나, 저자는 보살피고 부양하는 자로서의 아들이나 투정부리고 사랑받기만을 바라는 어머니의 단선적인 모습만을 그리지 않는다.

어머니와 함께 산 7년 간, 어떤 변화가 그 둘 사이에 일어났을까.  이 책이 한 효자의 지극정성 간병기로 읽히지 않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  치매 초기 증상과 쇠약한 기력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아침마다 목발을 짚고 밥을 짓는다. 드라마 내용을 일일이 아들에게 들려줄 정도로 기억력을 회복해 나간다.  아들도 달라졌다. 주변 사람들을 어머니 대하듯 하니 인간관계가 좋아졌다. 무슨 일이 생겨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하여, 저자는 "어머니는 나에게 침묵으로 올바른 인간관계를 가르쳐주신 큰 스승"이라고 적었다.

나이들어 아들의 부양을 받는 부모는 짐이 아니라 생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어머니와 함께 보낸 7년간 성치 못한 정신과 몸을 갖고도 자신을 묵묵히 챙겨주시는 어머니를 수없이 목격했다.  술에 취해 들어와 컴퓨터 앞에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에 안쓰러워 하다, 조용히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버튼을 대신 누른다.  밤새 지팡이를 짚고 몇 번이나 거실에 나와 집을 살피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아들의 몸에 이불을 덮어 주시고 창문을 닫으신다. 낮에는 하루 종일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저자의 경혐담은 부양의 개념을 `시혜'라는 일방향에서 사랑이라는 쌍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나보고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라고 하는 이는 되도록 만나지 않고 피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요양원에 모시니 편하더라, 요양원도 요즘 괜찮다'는 이야기를 쉽게 내뱉는 사람에게는 인간미가 아닌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인간에는 인간만의 늙어가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이 저마다 있겠지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의 모성 본능을 자극해 어머니가 인간의 자존심을 최대한 끝까지 지키도록 해 드리고 싶다."   146쪽, 한기호 <나는 어머니와 산다>

다산 정약용의 글에 심취했던 시절, 알듯 모를 듯한 문장과 마주한 적이 있다.  다산은 학문에 뜻을 두어야 독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근본부터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 근본은 "효도과 공경"이라고 단정지었다.  독서와 효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독서와 공경은 또 어떤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공하기 위해서인가.  한 때 자기계발서들이 겁없이 내걸고 나온것이 독서 성공론이다. 하지만, 물질 사회적 성공에 앞서 인간에 대한 도리를 알지 못한다면?  사람에게 부모만큼 가까운 존재는 없다. 그 부모에게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인생에서 성공에 이를 수 있을까.

저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평론가로 살아왔다. 간병 일기의 사이사이 그는 치열하게 읽고 쓰는 삶의 단면을 엿보인다.  혼자된 몸으로 어머니를 챙기고,  하루에 두 세 시간 쪽잠을 자며 쌓여가는 책을 먹어 치우고,  밀려드는 청탁과 강연 일정을 소화하는 중년 남성의 일상을 담아낸 이 책에서 독자들은 따라하기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초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떻게든 책을 읽지 못하는 핑계거리를 찾아온 독자들의 낯을 부끄럽게 한다.  독서는 지하철에서 졸음 쫓으며 하는 것이며 생각은 뛰다 멈춰서 하는게 아니라 뛰면서 하는 거라던 김미경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코스모스나 가을 국화에 탄성을 내지르고 싶다. 그러나 일정을 소화하기도 쉽지 않다. 어머니를 모시는 주부의 역할, 두 회사의 경영자, 한기호 개인의 글 공장주 등의 역할을 하다 보니 죽지 않고 살아서 뛰어다니는 것도 벅차다."  248쪽

저자는 젊은 시절 대학에서 배운 것이 없다고 고백한다.  유신 치하의 대학생활이라서가 아니다. 오늘 우리의 대학이라고 다를게 있을까. 그나마 배우고 싶은 교수의 강의는 늘 서론 몇 장을 훑다 끝났고, 그는 배움의 갈증을 책으로 풀어야했다.  가난해서 책을 살 수 없어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쓰다듬다 오곤 했고, 술에 취해 외상으로 책을 잔뜩 사 와선 책값 갚느라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자신의 오늘을 만든 것은 바로 그 시절부터 읽어왔던 책이라고 단정짓는다.  일평생 책을 읽어 부자가 된 것도 아니요, 큰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닐테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그에게 책은 올곧게 살아가는 근본을 가르쳐준 도구 아니었을까.

책에 빠져사는 한 남자는, 치매 앓는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그리고 그 둘은 어머니와 아들로서 점차 서로를 알아간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는 말이 있듯이, 어머니와 아들도 한지붕 아래 부대끼며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 가운데, 아들은 깨닫는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의 하나는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자원한 일이다".(266쪽)  그는 병든 어머니를 수발하며 사람을 인내하고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아들의 관심과 사랑이 어머니의 건강을 호전시켰고, 자존감을 길러주었다.  곧 닥쳐올 고령화 사회의 표준모델은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 바탕 두어야 함을 이 책은 증거한다. 

여름 휴가에 때맞춰 읽은 책 한 권을 통해, 나는 엄마와 짧은 냉전을 끝냈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러 역할을 소화해내야 하는 한국의 성인 남성들은 괴롭다. 때로 인간 관계가 외줄타기와 같은 상황임을 직감한다. 그럼에도, 그 모두를 조율하며 사랑해야 할 것이다.  다산이 독서의 근본을 효와 공경에 두었듯, 인문학 공부의 근본 또한 그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소외의 영역으로 내몰리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나이들어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한 출판평론가의 간병일기에서, 부모와 관계짓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  책과 어머니라는 큰 스승을 모시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저자의 삶은 독서에 뜻을 둔 이들의 삶에 비추는 서광(曙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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