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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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은 한 권의 소설로 기억된다.  정유정의 신작 <28>이었다.  개로부터 시작된 인수공통전염병에 관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28>의 모티프를 그 몇 해 전 있었던 가축살처분에서 따왔다고 했다.  가축전염병 때문에 돼지와 닭과 오리를 산채로 매장해야 하는 풍경은 익숙했다.  포크레인은 땅을 팠고 살아 있는 동물들은 구덩이에 묻혔다.  동원된 공무원들 몇은 과로사 했다.  그 때 죽은 동물들이 수백만 마리는 될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받은 충격이 상당했던가보다.  소설 <28>에서 작가는 동물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인간을 묵시록적으로 묘사한다.  개에서 시작된 전염병은 사람으로 옮겨가고 개를 살처분했던 군인이 한 도시를 봉쇄하고 인간을 살처분하려 한다.


2년이 지난 여름의 초입, 우리는 소설 <28>의 어떤 풍경들을 현실에서 목격했다.  중동 낙타에서 시작됐다는 메르스의 습격이었다. 메르스 사태는 국가방역 시스템의 총체적 구멍에서 기원했다.   무서웠던 건, 소설과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사태의 흐름이었다.  공기 감염이 의심되고, 지역 전파의 우려까지 돌았을 때, 거리에선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소설의 풍경 그대로였다.  현실이 영화나 소설과 닮아갈 때의 공포는 적지 않다.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2011년에 쓰여진 책은 2014년의 어떤 사건의 기시감을 불렀다.   <7년의 밤>은 세령호라는 댐과 그 인근 저지대 마을의 수몰 사고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다룬 작품이다. 


세령호에 살해된 채 수장된 `세령'이라는 12살 소녀의 이야기는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와 함께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기억을 되살렸다.  소설속 지명과 설정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다가 출간년도를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간호대학을 나와 문학상 공모에 당선된 이력이 전부인 정유정은 마치 기성 작가들에게 한 수 가르치듯 소설을 쓴다.  <28>에서 보여준 탁월한 문장과 질서 있는 플롯, 거침없는 묘사와 속도감, 서사안에 담긴 상징과 현실 은유에 독자들은 하루키에게서나 맛보았던 소설 읽기의 재미와 흥분을 경험했을 듯하다.  


2년만에 다시 만난 정유정의 작품 <7년의 밤>은 <28>보다 2년 앞서 발표된 소설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주제의식, 문장과 짜임새를 놓고보자면 우열을 가르기 힘든 수작이다.  <7년의 밤>은 `인연과 운명'에 관한 소설이다. 옷깃 정도 스칠 인연이었을 사람이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에 빨려들어가 엮인다. 작가는 누군가의 삶에 등장할지 모를 이런 순간을 `운명이 변화구를 던진 날 밤'이란 말로 압축한다.  이 소설은 오영제와 최현수의 이야기다.  그들은 세령이란 딸과 서원이란 아들을 두고 있다.  세령은 오영제의 폭력과 최현수의 교통사고와 이어진 살인으로 세령호에 수장 된다.  어린 소녀의 죽음이 인연없는 두 인물의 합작 결과다. 


소설은 인물과 신분의 대비를 드러낸다.  오영제는 부자로서 권력자다.  그는 아내와 딸을 폭력으로 지배한다.  최현수는 가난하다. 전직 야구선수로 살다 부상으로 은퇴해 겨우 식구를 먹여 살린다.  하지만, 아들 서원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그는 능력이 없지만 악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었다.  세령댐 보안팀장으로 부임해 오던 날 밤, 그는 오영제의 폭력에 도망치다 자신의 차에 치여 부상당한 소녀 세령을 두려움에 목졸라 살해하고, 세령호에 던져 넣는다. 평범한 가장이자 소시민이었던 그가 어느 날 밤, 살인범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를 죽인것은 진정 최현수일까.  보여지는 객관적 사실이 모든 진실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에는, 안개가 짙고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에는, 인적이 없고 어두운 호숫가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눈을 뜨고, `아빠'라고 속삭여 올 때에는,  자기를 찾는 전화벨이 심장을 두들기는 순간에는, 흔히들 무의식이라 부르는 `혼돈'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 좀 보여줄까?"   122쪽, 정유정 <7년의 밤> 


이 소설이 인물간 설정한 구도와 사건의 얼개는 치밀하고 촘촘해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세령이라는 소녀의 죽음은 등장인물들의 세가지 포지션을 낳는다.  먼저 죽음을 유발한 자다. 폭군 아빠 오영제일 것이다.  두번째, 죽음의 실행자다.  교통사고를 내고 우발적으로 목을 조른 최현수다. 세번째, 우연히 죽음을 목격한 자다. 소설가 지망생 승환이다.  그는 출입금지구역 세령호에 다이빙을 나갔다 유기된 소녀의 시신을 목격한다. 소설의 초반, 이 세 인물의 동선과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의 문장은 소설의 압권이다. 이야기는 이제 오영제의 명분없는 복수와 평범한 소시민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최현수의 어이없는 몰락, 소설가 지망생 승환의 진실에 대한 추적과 탐구로 들어선다.


최현수는 교수형을 당한다. 그의 죄명은 세령을 죽이고, 아내와 세령호 저지대 마을 사람들을 수장시킨 것이다. 사건이 나고, 7년간 최현수의 아들 서원은 세상에 정주하지 못한다. 살인자의 아버지를 둔 아들을 세상은 가만두질 않았다. 능력없는 남편이라고 엄마에게 구박받던 아빠였지만 아들 서원은 세상에서 그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다.  왜 아버지는 살인마가 되어야 했을까. `7년의 밤'은 아버지를 증오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만약 진실의 조각 하나가 왜곡돼 있다면, 세상에 공표된 사실의 일부가 착각이라면?  그것은 정말 `난데없이 운명이 변화구를 던졌고 그것을 잘 받아치지 못했던 아빠의 사소한 실책'에 지나지 않을 테다.


폭군 오영제는 세령의 실종과 죽음 이후 당당히 정의의 심판자로 나선다.  자신의 딸을 죽인 자를 찾아 똑같이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불탄다. 그러나, 딸의 영혼은 최현수의 교통사고와 목졸림이라는 물리적 사건에 앞서 이미 `살해되었다.'  그것은 최현수의 물리적 살인보다 어쩌면 더 엄중하고 실제적인 살인일 수도 있다.  작가가 이 작품속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삼고자 하는 맥락이 여기에 있다.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의 죽음은 누구 탓일까.  정의로운 법은 힘없는 일부분만 처벌했다.  메르스 사태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바이러스를 들여온 환자 책임이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그 말은 개그다. 


"스스로 부른 운명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다.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너는 아비 목에 수없이 밧줄을 건 놈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풀어야 한다고. 살인범이 아닌 `최현수'라는 불행한 인간의 목에서, 우물에 갇힌 채 죽어간 덩치 큰 남자의 삶에서, 내게 승부구를 요구한 포수의 손에서, 내 아버지의 가슴에서."  515쪽, 에필로그


소설은 다큐가 될 수 없다. 다큐는 사실에 치중해야 한다.  소설은 사실의 빈틈을 다뤄야 한다. 이야기되지 못한 진실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집중해야 한다. 설명될 수 없지만 설명해야 하는 것, 게을러서 착각하고, 손쉽게 망각되기 쉬운 진실의 파편들을 수집해야 한다.  이같은 소설의 본령에 충실한 작품이 바로 <7년의 밤>이다.  정유정은 세상 사람들의 편리한 착각과 망각속에는 결코 간단치 않은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고발한다. 세상은 소수의 오영제가 던지는 변화구를 다수의 최현수가 받는 시스템이다.  그곳에서 권력있는 자는 언제나 진실의 옷을 걸치고 화려한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는데 능숙하다. 


<7년의 밤>속 평범한 가장 최현수의 몰락은 권력의 언어에 길들여진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은유다.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 부당함을 그저 인내하고 노예의 삶을 수락한 사람들에게 객관적 실체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위다.  끝까지 `왜'를 추구하지 않는 사회에서 부정의는 시간과 함께 잊혀지며 불편부당을 이야기는 하는 사람은 그저 `불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최현수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진실을 안고 교수대에 오른다. 하지만, 그것은 아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었고 아들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었다. 오영제는 죽지 않았고 7년이란 침묵속에서 서원은 새로운 희생양으로 등극한다.  아들을 구원하는 이가 끝까지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고 탐색했던 승환이란 설정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진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결국 그들의 운명을 좌우한다.


정유정은 곧 한국 문단의 대표주자가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은 장편 두 편을 섭렵한 것이 전부지만, 나는 이렇게 단언하겠다.  한국 독자들이 괜히 하루키에 열광하는게 아니다.  하루키는 사소한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재주가 남다르다.  매 작품마다 이야기의 구체성이 담보되고 인물들이 생동한다.  하루키의 작품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이야기속에서 인물과 사건은 하루키 특유의 독창적이고 풍부한 내러티브로 창조된다.  위트있고 감성적인 문장은 덤이다. 이 모든 하루키의 장점을 가진 한국 작가를 찾으라 한다면, 나는 두말없이 정유정을 꼽겠다.


아직 정유정의 문장이 하루키만큼 독자를 매혹시키진 못한다.  하지만, 서사의 역동성과 흡인력과 인물은 하루키에 필적하며 오히려 압도한다. 그가 문장의 감수성이란 단 하나 남은 고지를 넘어설수만 있다면, 그는 세계 독자의 눈높이에 다가설 것이다.  그의 후속작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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