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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평점 :
첫 서평을 쓴지 20여 년이 가까워 온다. 서평 쓰기를 시작한 것은 책읽기에 빠지고서였다. 책읽기는 신세계와 같았다. 문자를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 모든 책의 잠정적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고전 위주로 독서한 것은 검증된 책들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이 시간이 넉넉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책 한 권 한 권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타올랐다. 누군가 독서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책을 고르는 기준을 알려준 이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다른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문이자 불만이었다. 왜 나는 작가들처럼 글을 잘 쓰지 못할까.
20년 전 서평쓰는 일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은 바로 이 질문에 맞닥뜨리고서다. 책읽기처럼 서평쓰기도 자발적인 것이었고 어떤 지식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어린시절 독후감을 쓴 기억을 되살렸겠지만 막막했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땐, 볼펜과 플라스틱 자가 필수적이었다. 책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반듯하게 밑줄을 그었다. 책을 접는 일은 감히 하지 못했고 메모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도 20년 전에 읽은 책을 펼쳐보면 반듯한 밑줄들을 볼 수 있다. 서평 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책읽기가 더 재밌어졌다. 그것은 책을 읽는 목적이 되었다.
비록 작가가 되지 못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들을 동경했고 그들의 글쓰기를 흠모했다. 군입대, 대학졸업, 취업 등 세상사에 얽히다보니 서평쓰기는 계속되지 못했다. 내 서평경력은 겨우 10여 년 남짓이다. 직장생활을 하고서부터 10년간 한해도 거르지않고 서평을 써왔다. 그렇게 써온 서평이 한 달 서너편이다. 내 서평 쓰기는 제대로 된 공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없이 미로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그간 글쓰기 책이나 서평집을 읽은 기억은 있지만 서평만을 다룬 책은 읽은 적이 없다. 그런 책도 흔하지 않다. 현역 서평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는 두 저자가 서평 강의록을 묶어낸 책의 출간은 그래서 반갑다. <서평 글쓰기 특강: 생각정리의 기술>(북바이북,2015)이다.
서평 한 편을 제대로 써내기 위해 실용적인 방법과 기술들을 잘 풀이한 이 책은 `서평은 독서의 종착역'이란 말로 시작된다. 상당수의 독자들은 책을 읽는 것에서 독서행위를 멈춘다. 독서는 수동적이고 글쓰기는 언제나 능동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일보다 글을 쓰는 것은 몇배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 고달픈 세계에 자발적으로 발을 딛는 사람은 몇 없다. 그럼에도, 서평 한 꼭지를 완성해 본 사람은 그 즐거움이 독서에 비할 바 아님을 안다. 서평을 잘 쓰기 위한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너무 잘 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읽은 것을 정리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다면 성공한 삶입니다. 돈이나 명예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와 의미'입니다. (중략..) 나를 지키는 비평습관, 자기 입장을 드러내는 습관은 글쓰기를 넘어 삶의 태도로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누구나 자기 생각과 감정이 있는데, 그걸 표현하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니,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무력한 나날을 보낼 뿐입니다." 121쪽, <서평 글쓰기 특강>
김민영은 방송작가, 영화평론가, 출판기자를 거친 현역 필자이자 `서평이야말로 책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이며 효과적인 글쓰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현재 서평 쓰기 커리큘럼을 만들어 8년째 강의하고 있다. 공동저자 황선애는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하고 대학 강의를 했고, 현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서평 입문'을 가르치고 있다.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얻은 경험을 잘 녹여낸 이 책에서 저자들은 좋은 서평의 요건과 서평 쓰기의 실제를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서평이란 책의 후기를 `정리'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정리를 잘하게 될까? 그것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란 질문과 상통한다. 평소 담백하고 힘있는 글을 쓰는 기자들에게 물었다. 그 답은 의외다. "매일 쓰면 됩니다." 기자들이란 글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매일 글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이 그들의 업이다. 글을 다루는 시간이 많을수록 글은 좋아진다. 일반 독자들이 기자들만큼 글과 씨름할 시간은 없다. 이것을 대체하는 것은 꾸준히 쓰기가 될 듯하다. "글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의 완성된 글은 들인 시간만큼 좋아진다는 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의 진리다.
둘째, 서평쓰는 일에도 일정한 패턴과 공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독후감이 일정한 형식없이 소감과 느낌을 여과없이 표현하는 것이라면, 서평은 책 내용을 요약하는 것과 필자 자신의 비평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 둘 모두를 담고 있어야 제대로 된 서평이다. 그 비율을 어떻게 맞출것이냐 하는 것은 글쓰는 사람의 취향과 능력에 따르면 된다. 능숙한 서평가라면 책의 내용을 몇줄로 요약하고, 서평의 대부분을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는데 맞출 수도 있다.
셋째, 서평의 목적은 자기 관점을 표현하는 것에 있다. 관점은 곧 비평의 논거를 말한다. 서평이 잘 풀릴 때는 뚜렷한 관점이 있는 경우다. 반대로 서평을 쓰면서 관점이 정리되는 경우나 글을 끝마치고 나서도 관점을 끝내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독서후의 관점은 독해력에 기반한다. 좋은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책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또, 독자 수준에 알맞는 책의 선택이 좋은 서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독해력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단계를 밟아가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외 이 책에선 서평 쓰기를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분야별 서평 쓰기 로드맵이 알기 쉽게 설명돼 있다. 발췌, 메모, 개요, 초고, 퇴고의 수순으로 진행되는 이 과정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을 `퇴고'라고 적시한 것은 새길만 하다. 모든 위대한 작품들은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 유명한 작가들은 퇴고의 비중을 가장 높게 둔다. 안도현 시인은 `퇴고는 처음이면서 중간이면서 마지막이면서 그 모든 것이다'란 말로 퇴고의 가치를 역설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한비야는 `퇴고부터가 진짜 글쓰기의 시작'이라 했다. 책의 말미엔 별도의 장을 만들어 여섯 서평가들이 서평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 서평교재로서 충실성을 높였다.
" 그만큼 좋은 글, 최고의 글이란 어쩌면 하나의 이상이며, 우리는 그 이상을 좇아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이라는 것은 안목이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를 아는 것이 안목이 될 텐데, 결국 안목을 기르는 방법은 글을 많이 접하는 것입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필사도 해보면서 글의 감각을 기르다 보면 좋은 문장, 아름다운 글을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됩니다." 183쪽
내게 서평 쓰기는 중요한 일상이 됐다. 20년 전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시절엔 시간이 많았다. 책 한 권을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었다. 긴 글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지금은 그 반대다. 자투리 시간을 쪼깨쓰지 않으면 인생 전체가 먹고 사는 일로 모두 소진될 지경이다. 내게 서평은 삶 전체를 `먹고사니즘'에 투항시키지 않겠다는 마지노선이다. 그렇게 격렬한 전투를 10년간 치르고서도 여전히 나는 서평 쓰기가 서툴고 어렵다. 책을 즐겁게 읽고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모니터의 앞에 앉으면 깜박이는 커서를 보며 주눅들기 일쑤다. 서평 쓰기를 체계적으로 공부해보지 않아서다.
<서평 글쓰기 특강>은 서평 쓰기에 막 입문하고자 하는 예비 서평가들의 시간낭비와 시행착오를 줄여줄 것이다. 왜 서평을 써야 하는지, 그 목적에서부터 서평을 쉽고 빠르게 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정리 돼 있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 서평이 막연한 감상과 책에 대한 호불호밖에 담지 못했던 이유를 독자들을 깨닫게 될 터다. 소설가 장정일은 20년이 넘게 개성 넘치는 서평을 독서일기라는 포맵에 담아 발표하고 있다. 체계를 잡은 후에 필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좋은 서평이 자라나는 토양은 지속적인 독서와 글쓰기다.
잘 쓰여진 서평이 그 어떤 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서평의 힘은 가볍지 않다. 책의 운명을 바꾸기 전에 독자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책 한 권 읽기에도 벅찬 시절, 서평을 쓰는 일은 에너지와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세상 모든 지식과 지혜는 일차적으로 책 속에 있다. 그 지식과 지혜를 정리하고 숙고하는 일이 서평 쓰기다. 책읽고 글쓰는 행위는 달리 `어떻게 살 것인가'란 철학적 물음에 답하는 일이다. 누가 대신 자신의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길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궁극적으로 서평쓰기는 삶의 숙제에 제대로 답하기 위한 끊임없는 연습이다. 하여, 서평 쓰기는 자발적 고행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낸 일생은 결코 외롭거나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